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20)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20화(20/184)
20화 리턴 매치(4)
“막아, 막아!!”
캠프 팀의 공격수들이 수비 가담을 하느라 한참 내려앉은 데다가 후반전 20분이 넘어선 상황이었다.
캠프 팀 아이들의 체력이 더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순식간에 공을 가로채서 역습하는 최준호만 막으면 될 거라는 생각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후방에 있던 두 명의 선수가 최준호에게 달려들었다.
“끊어! 끊어!”
외치는 걸 보니 파울을 해서라도 역습 상황을 끊을 모양이었다.
‘그래?’
드리블을 치면서 슬쩍 뒤를 본 최준호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끊어!”
먼저 자신에게 달라붙은 미드필더가 견제가 아니라 다리를 쑥 넣으며 태클을 넣었지만, 최준호는 드라마틱하게 스피드를 줄이면서 공을 접어 태클을 피했다.
하지만 이내 거대한 덩치가 정면으로 달려들었고, 최준호는 수비수의 다리 사이를 노려 공을 툭 차 넣었다.
– 퍽!
수비수의 거친 차징에 최준호의 가냘픈 몸이 그라운드를 구르는 사이.
파울을 불려던 심판이 휘슬을 입에 물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이걸 봤다고?’
수비 백업을 하려고 들어오는 U-16을 성큼성큼 앞지르며 달리는 토마스.
그의 속도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미 체력과 지구력 스피드와 순간속도는 1군 성인 레벨의 선수였다.
‘아이 씨!’
U-16의 골키퍼는 정말 애매모호하게 굴러오는 스루패스를 보고는 나가야 할지 아니면 백업 들어오는 수비수를 기다려야 할지 주춤하고 말았다.
순간 저번 경기에서 토마스에게 골을 헌납한 장면을 떠올리고는 공이 굴러오는 방향으로 뒤늦게 뛰었다.
골키퍼가 부리나케 뛰어갔지만, 공은 뛰어드는 토마스의 발 앞에 먼저 배달되었다.
‘맙소사! 왜 이렇게 빨라!’
페널티 에어리어 밖이라 손을 쓸 수 없었던 골키퍼는 이를 악물고는 고의적인 파울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더 빠른 타이밍에!
– 툭
포물선을 그리며 골키퍼를 넘기고 골대 앞으로 두어 번 튕기더니 골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칩슛이었다.
‘초이의 축구는 항상 옳다!’
토마스는 화색이 가득한 표정으로 최준호를 찾았다.
“초이!!!”
토마스는 코치들이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을 최준호에게 많이 배웠다.
그리고 이 칩슛도 그 중 한 가지였고.
“저 녀석 말대로 역습이 성공했네.”
캠프 아이들은 이제 완전하게 최준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제안한 전술이 실제로 통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그 상황에서 수비수였던 토마스가 엄청난 스피드로 상대 진영까지 달려갈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자자! 열심히 뛰자!”
**
이후 25분여 정도 공방전이 계속되었지만, 더 이상의 골은 나오지 않으면서 3대3으로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무코코가 저렇게 아무것도 못 할 줄이야?”
“1번이랑 22번 협력 수비가 대단한데? 마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며 뛴 거 같아?”
필립과 케빈도 한 구석에서 경기를 보고 있었다.
“1번이 22번이랑 호흡을 맞출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오리엔테이션 때를 떠올린 케빈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무코코의 돌파는 압도적이었다.
단순히 빨라서가 아니었다.
축구를 이해하고 있었다.
불과 12살이.
그런 무코코의 돌파는 토마스가 붙어서 일차적으로 맡았고, 토마스가 돌파되면 뒤에서 백업하던 김우영이 피지컬로 냅다 찍어 눌러버렸다.
반칙도 많이 나오긴 했지만, 피지컬적으로 우세한 캠프팀을 상대로 세트피스에서 골을 넣기는 쉽지 않았다.
“오늘 경기를 보니 1번이 엄청나게 발전했네. 저번에는 무슨 묘기 같은 거 배워와서 잘난 척하던 것 같은데, 기본기가 많이 좋아졌어.”
“첫 실점의 실수가 아니었다면 좋은 평가를 받았을 거야.”
“하지만 역시 동양인 중앙수비수는 아직 무리겠지?”
“아시아인이 덩치가 커져도 내구성에서는 유럽인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
“그래도 한 번 테스트 해봤으면 좋겠어. 아 그리고…21번! 지원 서류 봤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더니… 피지컬만 좀 더 좋아지면 당장 성인 무대에 올려도 될 만큼 엄청난 기술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
“마지막 골. 21번이 찔러넣었던 그 스루패스에는 살짝 좀 지리긴 했지.”
“한국이라는 나라…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 창고 같아. ”
“동감. 1번에게도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어. 아시아인 센터백의 가능성 말이야.”
**
“고생했다. 다들 수고했어.”
캠프 아이들은 다들 모여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집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다들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U-16 리그 우승팀을 상대로 1승 1무였으니까.
무료로 훌륭한 훈련 코스를 받기도 했고, 가능성을 봤으며, 자신감에 가득 찼다.
도르트문트의 컨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축구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음에 혹시 경기장에서 만나면 아는 척하자고.”
캠프 팀 아이들이 삼삼오오 흩어지는 사이, 김명신이 양복 차림으로 그라운드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김우영 앞에서 멈추었다.
김우영도 덩치가 큰 데 김명신 앞에서는 작아 보였다.
“김우영이.”
최준호는 김우영과 함께 걷다가 자신들을 막은 거구의 사내를 보았다.
그라운드에서는 투기 넘치기 놀라운 활약을 했던 김우영이 눈앞의 사내한테는 잔뜩 쫄아버린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였지?’
“네.”
“네가 감히 내 명령을 무시해?”
분위기를 보니 주먹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난….”
김우영이 뭐라고 말을 하기 무섭게 김명신이 소리를 질렀다.
“축구를 하고 싶다고?”
“저는….”
“축구하지 말라고 했다. 당장 한국으로 갈 거니까. 씻지 말고 짐만 들고나와.”
김우영은 얼굴이 붉어지고 몸을 파르르 떨렸다.
도무지 눈앞의 아버지 앞에서는 싫다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두 주먹을 꾹 쥐고 입술을 문 채 고개를 떨구는 사이.
“야!”
최준호는 고개를 올려서 김명신을 보았다.
자신의 아버지 최현식과는 전혀 다른 성정의 사람.
김우영과 함께 뛰어보니 괜찮은 선수가 될 자질이 분명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그가 얼마나 적극적이며 대담한지, 피지컬이 좋은 무코코를 상대로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고.
김명신과 김우영은 고개를 돌려 최준호를 보았다.
‘어, 만두 귀?’
김명신의 귀를 본 순간 최준호는 살짝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덩치와 저 귀를 보니 눈앞의 사내 역시 한 때 운동을 한 게 분명했다.
“뭐? 야?”
김명신이 노려보자 최준호는 능글맞게 미소를 지었다.
“야, 김우영.”
“……”
“너 병신이냐?”
“……”
“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아버지 도움받으면서 운동한 거야?”
‘뭔 개소리야?’
김우영이 초조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최준호를 보았다.
“난 축구하려고 중학교 자퇴서 내고 목숨 걸고 하고 있는데, 축구를 하려는 네 마음은 아버지 고함 한 마디에 사라지는… 그런 거였어?”
“그럴 리가 없잖아?”
김우영이 고함을 쳤다.
“그럼 당당하게 말해. 네 힘만으로 축구 하고 싶다고. 아버지 도움 따윈 필요 없다고.”
“…뭐?”
“목숨 걸 각오 없으면 축구 하지 마. 그런 정신 상태로 축구 외에 뭘 제대로나 하겠어?”
최준호의 말에 김명신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작고 어린놈이 아주 천둥벌거숭이 같구나?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김명신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지만, 최준호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이미 축구계에서 많은 일을 겪은 어른이었다.
“능력 없는 인간.”
“뭣!”
김명신이 최준호의 멱살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하지만 최준호는 죽일 듯이 노려보는 김명신의 눈을 쏘아보았다.
여기는 도르트문트의 경기장이었고, 자신은 도르트문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망주였다.
저 뒤에서 달려오는 코치들을 보며 최준호가 씩 웃었다.
“자기 아들의 재능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이 뭘 하겠어? 말 그대로 능력 없는 인간이지.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스트레스를 아들놈에게 푸는 한심스러운 철부지.”
김명신은 그 말에 눈이 휙 돌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기 전에 코치진들이 몰려왔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김명신이 아무리 거구라고 하지만 코치 여럿이 달라붙어 제압하자 땅바닥에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김명신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최준호는 긁혀서 생채기가 난 목을 만지작거리다가 거의 얼어붙다시피 한 김우영을 보았다.
“축구 할 거야? 말 거야?”
“…하고 싶어.”
“알았어.”
디아스 감독이 최준호에게 다가갔다.
“너 괜찮아?”
“그럼요.”
“저 망할 인간은 도대체 뭐야?”
“1번 아버지요.”
“뭐…?”
디아스는 얼어붙은 얼굴을 하는 김우영과 코치들에게 제압당해 그라운드에 엎어져 있는 김명신을 보았다.
‘황당하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디아스와 눈이 마주치자 최준호가 말했다.
“저 하나 부탁이 있는데요.”
“말해보게.”
“전 도르트문트가 좋아요.”
그 말에 디아스의 눈빛이 반질반질해졌다.
“1번이랑 같이 축구하고 싶거든요.”
“…… 그건.”
“향수병이 도지거나, U-19 녀석들 인종차별에 지쳐서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그 말에 디아스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독일 국적이 아닌 유소년들이 실력이 없어서 성인 무대에 못 올라오는 경우보다는 향수병이나 집단 따돌림 같은 이유로 지쳐서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오랫동안 유소년 클럽을 운영한 디아스이기 때문에 최준호가 말한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저런 걸 입에 담는 녀석도 최준호가 처음이긴 했다.
‘이 녀석의 재능은 월드클래스야. 놓칠 수는 없지.’
현재 U-19 녀석들은 19명으로 두 명을 빼고는 전부 독일 국적이었다.
그 두 명 역시 스웨덴과 폴란드 출신으로 유럽권이었다.
15살짜리 아시아 선수가 팀에 합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디아스도 예측할 수 있었다.
코치들이 어느 정도 커버는 하겠지만, 결국 선수들 사이의 문제였다.
디아스는 오늘 1번이 보여준 활약을 다시 머릿속에 되새기며 눈을 돌려 주먹을 꾹 쥐고 땅에 엎어진 아버지를 노려보는 김우영을 보았다.
‘아시아 출신의 센터백이라. 원치 않게 모험을 할 수도 있겠어.’
“기회는 주겠지만.”
“감사합니다!”
기회라는 말에 최준호는 밝게 웃었다.
주는 기회마저 차 버리는 놈과는 같이 축구 경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몸을 돌리는 최준호.
디아스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의사 표현이 명확하군. 아시아인 같지 않아.’
**
“야, 다들 그거 들었어?”
리그 중간에 있는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클럽으로 돌아온 18살이자 U-19의 주장인 아모스 피에퍼가 라커룸의 선수들에게 말했다.
“뭐?”
“12살짜리랑 15살짜리가 들어온다는데?”
“축구가 장난도 아니고 12살? 엄마 찌찌 먹어야 할 때 아니야?”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긴 했지만, 다들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U-17에서 올라왔다면 나이 차서 올라온 경우이고, 이렇게 월반할 때는 실력이 좋아서 오는 것이니까.
당연하지만 많은 경기를 뛰어서 경기 감각을 올리고 잠재력을 터트려야 하는 이들 처지에서는 능력 좋은 경쟁자가 온다는 게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포지션이 뭐래?”
“12살짜리는 스트라이커, 15살짜리는 미드필더라는군.”
“12살이라니…. 구단이 미쳤나.”
“후반기부터 부임할 디아스 감독이 계약을 밀어붙였다는데?”
라커룸 안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감독이 바뀌면 선수 쓰임새가 바뀌는 법이었으니까.
“근데 15살짜리는 아시아 녀석이라는군.”
“중국?”
“아니 한국.”
“박홍민…?”
“맞아.”
선수들의 분위기는 좀 더 험악해졌다.
그 선수 때문에 좋아하는 클럽이 함부르크에게 깨졌던 과거가 떠올랐으니까.
“여기가 아니라 함부르크로 가야 할 놈 같은데?”
올해 16살에 U-19 주전 미드필더 자리를 맡은 토비 라쉬는 말없이 가만히 듣다가 인상을 찌그렸다.
그 역시 실력을 인정받아 작년에 U-16에서 U-19로 월반을 했고, 여기에 와서도 주전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뺏길 줄 알아?’
“함부르크로 쫓아내 버리자.”
누군가의 소리에 토비 역시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
캠프가 끝나고 이틀 후 최준호는 배정된 숙소로 향했다.
독일 최고의 유소년 시스템을 갖춘 구단답게 매우 고풍스럽지만, 최신식 시설을 다 갖춘 곳이었다.
2인이 한방을 쓰는 기숙사 형태였고, 내부는 꽤 넓었다.
‘드디어, 진짜 축구 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뎠네.’
최준호는 캐리어를 내려놓았다.
짐을 천천히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최준호는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선 사람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왔냐?”
김우영은 숙소 내부를 살피더니 들고 있던 캐리어를 내려놓았다.
“빌어먹을! 존나 좁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