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21)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21화(21/184)
21화 도르트문트 유겐트(1)
“그 망할 자식.”
김상식은 김명신과 김우영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김명신이 그렇게 된 것은 어느 정도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김상식이었다.
김명신은 어릴 적부터 유도와 레슬링에 제법 두각을 나타내었고, 전국체육대회에서 중등부, 고등부 입상까지 하였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김명신 역시 큰 허리 부상을 입고서는 운동을 포기하였다.
운동을 할 수 없게 된 김명신은 결국 김상식의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도왔다.
운동한다고 배운 게 없으니 일 못한다고 형제들에게 매일 욕 먹고, 자신도 매일같이 명신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운동하던 녀석 답게 경쟁심이 대단해서 악으로 깡으로 오랜 세월을 버티며 이제는 제법 능력을 갖추었지만, 성격은 괴팍해지고 더러워졌다.
“우영이 짐을 모두 집에서 뺐다고?”
“들리는 말로는 연을 끊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따로 지원을 할까요?”
“우영이 놈이 자기 스스로 알아서 축구를 하겠다고 말했지?”
“네. 회장님.”
모두가 회사를 경영할 수는 없었다.
김상식은 핏줄이라고 해서 맞지도 않는 자리를 주고 싶지 않았고 대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했다.
슛돌이 프로젝트 특집도 그런 종류였고.
김상식은 명절에 식솔들이 전부 모였을 때를 떠올렸다.
명신이 앞에서는 얼어붙은 듯이 대꾸도 못하는 우영이가 스스로 의지를 밝혔다니 대견하기도 했다.
“그럼, 그냥 냅둬. 그 녀석 스스로 얼마나 할 수 있는 지 지켜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평소에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던 김상식이었지만, 우영이 덕에 축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축협에서 정 회장이 발을 뺀다고 했었지?”
“예. 회장님.”
“내가 그 자리 좀 맡아볼까?”
“축협 비리 때문에 한국 축구계가 망가지고 있다고 해서 물러나는 겁니다. 그게 조금….”
“에이! 회장이 영향력도 있고, 돈도 좀 쓸 줄 알아야 뭐든 변하는 거지. 내가 회장이 되면 축구 관련 해서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업계 관련 사람들에게 잘 말해봐.”
“네 회장님.”
“응. 아, 그리고. 그 나 감독한테 이야기해서 눈치보지 말고 특집 영상 뿌리라고 해. 내가 보호해준다고.”
“눈치 보지 말고 라면?”
“그… 최준호라는 선수가 그렇게 잘한다고?”
“이야기로는 그렇습니다.”
“그 녀석이 명신이에게 형편 없는 어른이라고 욕을 했다고?”
비서실장은 그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회장 귀에까지 들어가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네. 회장님.”
“쬐그만한게 당돌하네. 그 녀석이랑 우영이가 친구고?”
“네, 조사해보니 그렇다고 합니다.”
“둘이 경쟁하는… 그런 건 아니지?”
“포지션이 달라서 아닐 겁니다.”
“그럼 둘 다 키워보자고.”
“…둘 다 말입니까?”
“그럼. 일단 유명해져야 축구하는 놈들이 관심을 가지고 볼 거 아냐?
물론, 그건 도리 상 하는 이야기였고, 김상식은 누구보다 우영이가 축구를 열심히 해서 대표팀으로 선발되길 바랬다.
‘이제 우리 집안에 스포츠 스타도 나올 때가 됐지. 암. 그럼!’
**
“야!”
최준호는 밤새도록 잠꼬대를 하는 김우영을 깨웠다.
벌떡 일어난 김우영이 주변을 살폈다.
“…”
“운동가야지.”
“…”
“축구 하기 싫어?”
– 일류 선수가 돼서 보란 듯이 아버지보다 더 잘 나갈 거예요!! 제 생각이 맞다는 걸 반드시 증명할 거라구요.
– 그래? 그 말에 책임 질 수 있지? 이제부터 넌 내 아들이 아니다. 성인만 되면 넌 호적에서 파버릴 줄 알아라.
김우영은 고개를 밑으로 내밀어 운동복으로 갈아 입는 최준호를 보았다.
“축구해야지.”
“응. 얼른 나와. 토마스가 기다리고 있어.”
“어.”
– 자기 아들의 재능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이 뭘 하겠어? 말 그대로 능력 없는 인간이지.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스트레스를 아들에게 푸는 한심한 철부지 일뿐..
최준호가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것이 김우영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가 아버지의 강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최준호 때문이었다.
지금 축구를 죽어라 하고 있지만 자신의 실력이 프로 무대에서 통할 지는 미지수였다.
엄청난 실력을 가진 최준호가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해주는 순간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되돌리기에는 늦었어. 저 녀석이랑 끝까지 가야지.’
도르트문트 유겐트의 시설은 24시간 개방이 되어 있었다.
굳이 공원을 가지 않아도 구비된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준호와 김우영은 토마스가 운동을 하는 내내 본인이 얼마나 기쁜지 쉴 새 없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주급으로 1,200 유로를 받는다. 이 돈이면 우리 10식구 굶지 않고 교육도 받을 수 있다!”
“일단 내 돈부터 갚아. 알지 800유로?”
최준호가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자 토마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니까 1200유로로는 교육을 받지 못한다.”
“음 못 갚는다는 거지?”
“그…그건 아니다. 2번 째 계약을 맺으면 꼭 갚겠다.”
“그래? 그럼 그 때는 3배야! 2,400 유로?”
토마스는 한참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았다! 더 좋은 계약을 맺으면 반드시 갚는다!”
사실 최준호는 받을 생각은 없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많은 주급을 받게 되었으니까.
주급 4,000 유로면 한 달에 16,000 유로.
이 중 절반이 세금이라고 치면 8,000 유로 한국 돈으로 치면 1,000만원 수준.
유스 생활을 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오케이 2,400 유로!”
**
“여기가 악마의 굴이라고?”
김우영이 도르트문트 U-19가 쓰는 락커룸을 가리켰다.
“멀쩡해 보이는데?”
“겉은 멀쩡해도, 속은 완전 악마가 따로 없지.”
최준호는 오래전 영국으로 넘어갔을 때를 떠올렸다.
경기에서 첫 패스를 받은 것이 팀에 합류하고 4개월 12일 만이었다.
감독과 구단의 만류가 아니었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정도로 혹독하게 힘든 시간이었다.
결국 그 과정을 거쳐오며 단련이 되어 유럽 리그에 적응하게 되었지만, 어딜 가든 인종 차별은 존재했다.
흑인들은 꽤 오랜 세월동안 영국 사회에 녹아들었다지만, 아시아인은 그렇지 못했다.
“캠프에서는 괜찮았잖아?”
“캠프야 어디선가 모인 떠돌이들이지만, 저 안에 녀석들은 이미 자리를 확실하게 꿰찼으니 우리가 자기들 자리를 차지할까봐 두려워서 무엇이든 할 겁쟁이들이야.”
“그거 재밌겠는데?
김우영이 두 주먹을 꾹 쥐고 지금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문을 노려보았다.
“안 그래도 난 항상 화가 나 있거든.”
옆에서 듣고 있던 토마스도 두 주먹을 꾹 쥐었다.
“초이를 괴롭히면 내가 가만두지 않는다.”
“푸핫 순둥이 같은게 뭘 하겠다고?”
김우영이 말하자 토마스가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은 모른다.”
“……”
“아주 어렸을 때 반군에게 잡혀가서 총을 들었다. 총 앞에는 칼이 달려 있었고, 난 그걸 들고 전투를 해야만 했었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토마스가 풍기는 분위기 때문인지 김우영도 슬쩍 뒤로 물러났다.
“…사람을 죽인 거야?”
“그럴 뻔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날 구해줬다.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는 사이에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계속 달려서 결국 도망쳤다. 그래서 아버지 대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토마스가 최준호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걱정하지 마라. 초이를 건들면 나한테 죽는다.”
최준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두 덩치들이 지켜준다니 좋기는 하지만….
‘이것 참, 생각한 것보다 큰 일이 날 수도 있겠는데?’
“거기서 뭐해? 들어가야지?”
셋은 모두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디아스 감독과 그의 코치진들이 오고 있었다.
**
“난 디아스 감독이다. 4년 전만 해도 U-19를 맡고 있었지만, 구단의 요청에 의해서 잠시 U-16과 U-17을 맡았지. 물론 날 아는 녀석들도 있을 거야~”
디아스가 전술실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사이, U-19 선수들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최준호와 김우영이 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저 새끼들 왜 저래?”
김우영이 으르렁거렸다.
“원래 독일 놈들이 무뚝뚝한 새끼들이야.”
“확! 당장 받아버리고 싶네.”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멱살을 잡은 김명신을 떠올린 최준호는 김우영의 저 성정이 누구를 닮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가 김우영과 최준호를 보고는 양 눈꼬리를 잡아 당기고는 씩 웃었다.
“Schlitzauge~~”
뜻은 몰라도 느낌으로 그 단어가 좋은 단어가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김우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최준호를 보았다.
“저 새끼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눈이 찢어졌다는 뜻의 독일어였다.
최준호는 피식 웃으며 그 단어를 입에 담은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이럴 때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면 똑같이 욕을 면상에 박아주며 강하게 나가야한다.
“Hurenson~”
그러면서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주었다.
대충 말하면 창녀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녀석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최준호는 당하면 2~3배로 더 앙갚음 해주는 악동 기질이 있었다.
“Arschloch~ Wichser~”
최준호가 가운데 손가락을 흔들며 능글맞게 아는 욕을 툭툭 던지자 녀석이 무척 흥분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디아스가 갑자기 일어난 선수를 보고는 말했다.
“뭐야? 주장?”
주장이라는 말에 최준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팀웍을 다져야 할 주장 놈이 새로 들어온 선수에게 비하하는 표현이나 쓰고.
‘아주 개판이네.’
“아…아닙니다.”
몹시 흥분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은 아모스는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최준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오히려 빙긋 웃는 최준호가 주먹 감자를 한 번 더 날려주었다.
물론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벙긋거리면서.
– Hurenson~
**
새로온 멤버의 소개가 있긴 했지만 반겨주는 이들은 없었다.
도르트문트는 유소년을 키워서 파는 구단이었다.
유겐트 클럽은 잠시 거쳐가는 곳이었고, 빠르게 리저브팀을 갔다가 1군으로 올라가는 것이 목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는 연령별 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곳은 감독과 코치들은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거의 관여를 하지 않는 편이었다.
– 뻥!
전술실에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강력한 슈팅이 신입 선수들의 눈길을 끌었다.
키는 토마스 수준이었고, 유연하게 볼을 잘 다루며, 슈팅력이 굉장했다.
‘알렉산더 아이작’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 뒤에 바르셀로나에 입성한 월드클래스의 선수였다.
과거 최준호가 에버튼에서 빌빌 기고 있을 때 발롱도르 5인에 꼽힐 정도로 주목을 받은 선수였다.
‘도르트문트 선수였구나. 괴물은 무코코만 있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아이작과 무코코를 제외하곤 최준호의 눈에 들어오는 선수는 아직 없었다.
그 뒤를 이어 무코코가 슈팅을 날렸다.
아이작과 맞먹을 정도의 강력한 슈팅이었다.
하지만 무코코의 슛팅에 다른 선수들이 비웃는 표정을 짓는 걸 보니 무코코도 아직 이 팀에 적응을 못한 듯 싶었다.
‘하긴 12살짜리가 U-19에 들어왔으니 배알이 꼴리겠지.’
“헤이! 초이!”
코치가 최준호를 부르며 공을 툭 차주었다.
U-19에서 성인 무대로 올라가는 건 오로지 능력으로 결정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눈치 보지 말고 코치진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과시해야 했다.
경기에 들어가서도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해야했고.
– 뻥!
최준호는 완벽한 발란스에 유연한 동작으로 굴러 들어오는 공을 때렸다.
마치 레이저가 나가듯 오른쪽 구석으로 처박히는 슈팅에 앞에 서 있던 골키퍼 핀은 꼼짝도 못하고 그물에 철렁이는 공만 보았다.
‘후아… 슈팅이 뭐가 이래?’
아이작이나 무코코의 슈팅보다 더 강력한 슈팅인 건…
‘착각일거야. 그럴 리가 없지.’
U-19 중에서 가장 작은 신장과 형편없는 몸을 가지고 있는 최준호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