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2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22화(22/184)
22화 도르트문트 유겐트(2)
– 쏴아아아아
훈련이 끝난 후 U-19 소속의 23명은 모두 공동 샤워실로 보내졌다.
같이 샤워하며 소속감을 키우는 건 피지컬과 조직력을 우선 하는 독일만의 프로그램이었다.
“헤이. 칭크.”
거대한 떡대를 자랑하는 U-19의 주장이자 센터백인 아모스가 험악한 얼굴로 최준호 앞에 섰다.
최준호는 대답 대신 코를 막았다.
기름진 음식을 가장 많이 먹고 씻지 않아 냄새 나기로 유명한 미국인조차 코를 막을 정도로 냄새가 심한 민족이 독일인이었다.
회귀 전 최준호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유럽에서 혹독하게 인종차별을 당했었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면서 당하면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습관화 되었다.
“비켜 새끼야~ 냄새 나.”
“이 자식이!”
보통의 독일인들은 냉정하고 무뚝뚝하다고 하지만 그건 북부 독일인에 한해서였다.
그리고 대화가 별로 없으며 유머가 부족한 민족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똘아이가 가장 많은 민족이기도 했다.
본인이 먼저 말을 뱉어놓고 주먹을 휘두르는 아모스!
하지만 그 주먹은 옆에 서 있던 김우영이 잡아챘다.
“이 씨발 놈이! 죽을래?”
김우영이 잔뜩 힘을 주어 아모스를 밀치자, 아모스는 샤워실 바닥을 나뒹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김우영의 힘은 독일인들 못지 않은 듯 싶었다.
비누칠을 하던 5명의 선수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아모스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최준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말싸움만 하면서 적당히 견제하려고 했는데….
최준호 옆으로 온 무코코 유수파는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짜증이 났었는데, 잘됐네.”
또래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하지만…
정신 연령이 30대인 최준호가 이런 애송이들에게 두들겨 맞는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자, 우리 이제….”
최준호의 말을 자르고 아모스가 소리를 질렀다.
“쳐!”
그러자 김우영이 소리쳤다.
“씨발!”
김우영이 달려드는 아모스에게 선빵을 날렸고, 뒤에 있던 토마스는 도망치기 바빴다.
순간 토마스의 과거 이야기가 기억난 최준호.
‘아놔…!!! 도망쳤다고 했었지!!’
**
선수들 사이에 묘한 적대감과 긴장감은 눈치 챘지만 이렇게 빨리 큰 싸움판이 벌어 질 거라고 디아스 감독은 예상하지 못했다.
10명의 선수들의 얼굴이 모두 엉망이 되었지만 확실한 승자도 없는 것 같았다.
“주장!!!.”
“네. 감독님.”
“팀을 단합시키고 이끌어야 할 녀석이 주먹질을 해?”
“저 놈들이 먼저 욕을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최준호는 터진 입술을 만지다 움찔거리며 얼른 받아쳤다.
“누가 나보고 칭크라고 했더라?”
최준호의 말에 아모스는 말을 잃었다.
‘저 새끼는 동양인이면서 왜 저렇게 독일 말을 잘 하는거야..’
보통의 외국인 용병 녀석들은 놀리면 못 알아듣고 바보처럼 웃음만 짓는 게 고작이었는데, 저 난쟁이 동양인 녀석은 하는 말마다 족족 알아듣고 바로 받아쳤다.
“정말이야? 주장?”
무코코 유수파가 끼어들었다.
“감독님, 사실입니다. 제가 확실하게 들었어요.”
디아스는 아모스를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 보았다.
“아니…그게…”
본때를 보여주려면 모두 다 소집시켜 징계를 내려야했지만 그랬다가는 사흘 후에 있을 바에이른 뮌헨 JT와의 더비 경기에 엄청나게 차질이 생길 게 분명했다.
“오늘은 일단 넘어가겠다. 하지만 다음에는 그냥 지나가지 않을 거다. 이런 상황이 또 생긴다면 다들 계약 해지까지 생각해야 할 거야!”
계약 해지라는 말에 다들 조용히 눈을 크게 뜨며 긴장했다.
팀 분위기를 해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항목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다들 나가.”
감독실에서 쫓겨난 10명의 선수들은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보다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그들에겐 축구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싸움한 거 후회한다.”
최준호의 방에 온 토마스가 안절부절한 모습으로 말했다.
‘이 새끼 도망갔으면서.’
결국에는 얻어 터지고 싸움에 끼긴 했다.
“왜?”
“계약 해지 당할 수 있다.”
“그럴 일은 없어.”
“그럼 괜찮은 거야?”
“그럼.”
건들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으니 앞으로는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날을 위해서는 쌓인 앙금을 해소해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
“이게 경기 풀영상 입니까?”
“네, 맞습니다.”
한국 U-17 감독 박정수는 얼마 전 방영한 슛돌이 특집을 보고 나서는 취재진을 찾았다.
짧게 편집한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21번이 얼마나 임팩트가 있는지, 선수에게 필요한 센스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선수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제한이 있어서 직접 기술 요원을 데리고 분석할 생각이었다.
“사규상 외부 유출은 안 되니, 여기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방송국 스태프들이 나가자 박정수는 영상을 자세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볼 다루는 스킬이 상당히 안정적인데요?”
“음. 수준급이야. 공을 절대 끌지 않아. 투 터치 안에서 다 해결하는군.”
무엇보다 21번 최준호 선수는 느긋하게 움직이며 누구보다 여유롭게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덩치 큰 수비수들이 압박을 하기도 전에 패스를 하였기 때문에 탈압박 능력은 정확하게 측정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 고개를 움직이네요”
“아주 좋은 습관이야. 한국 유스들에게서는 거의 보기 힘든 데.”
터치하기 전 뿐만 아니라 터치 후에도 주변을 살피며 거의 습관처럼 시야 안에 운동장 전방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패스 성공율은 거의 100%에 가까운데요?”
“그렇게 안 나오는 게 이상한 거지.”
“후반 전부터는 플레이가 바뀌네요.”
“전반전 팀 공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 그걸 직접 해결할 생각인거야”
“네? 이야…!”
최준호가 달라붙는 수비수들을 여유롭게 순간적으로 제쳐 버리는 장면에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에요. 수비수가 많이 당황했겠네요?”
“그렇지. 전반전에는 전혀 없던 움직임이니까. 자 이제 단점도 찾아보자고.”
“일단 피지컬은 꽤 밀리는데요. 172cm에 62kg은 단점인 거 같습니다.”
“후반전 활동량도 많지가 않구요.”
“음.. 그렇군.. 이 선수가 독일에 가기 전에 정식 게임을 몇 번 뛰었지?”
“정식 경기 기록은 없습니다.”
엘리트 과정을 거친 선수들은 적게는 100 많게는 250 경기를 뛰며 경험과 체력을 얻는다.
그렇게 게임을 뛰어본 적이 없는 선수라면, 분명 체력에 부담이 클 것이다.
거의 4시간에 걸쳐 분석이 끝나고 박정수는 몸을 일으켰다.
“독일에 가서 직접 경기를 봐야겠어”
**
“…이건 왜 하는 건데?”
“양발을 다 쓸 수는 없어도 적당히 쓸 정도는 되어야 경쟁할 때 도움이 돼.”
“아니. 그렇다고… 리프팅으로 그라운드를 세 바퀴를 돌란 말이야?”
“왼발, 오른발.. 6바퀴네? 그럼 간다.”
최준호가 왼발로 리프팅을 하면서 운동장을 돌기 시작하자, 김우영과 토마스도 뒤를 따라갔다.
3바퀴를 도는 동안 공을 한 번도 떨어트리지 않은 최준호와 달리 김우영은 리프팅을 세 번 정도 하면 엉뚱한 곳으로 튀곤 했다.
“아잇! 짜증 나!”
“짜증나도 계속 해봐 늘 거야, 넌 토마스 보다는 잘하잖아.”
김우영은 자신의 뒤에서 공이 계속 엉뚱한 곳으로 튀어 우왕좌왕하는 토마스를 보고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어렵다! 초이!”
“새 계약 맺기 싫다고?”
“아니다! 초이!”
최준호는 말을 하면서도 한 번도 공을 떨구지 않았다.
이 훈련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시킨 훈련이었는데, 공을 다루는 기본기가 되었다.
‘난 좀 더 어려운 단계로!’
최준호는 리프팅을 하면서 계속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돌렸다.
말은 쉬워보이는데, 순간적으로 고개를 움직일 때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주 서커스를 해라. 서커스를.”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아모스가 중얼거렸다.
아모스 역시 아침마다 개인 운동을 하고 있었다.
“저게 서커스 같아?”
아모스의 말에 옆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장신의 선수가 질문했다.
알렉산더 아이작.
43억에 영입된 초유망주였다.
스웨덴 국적으로 17살에 193cm 85kg의 거구였고, 제 2의 줄라탄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빅 클럽들의 관심을 받는 스트라이커였다.
U-12부터 나이에 맞춰서 순차적으로 U-19까지 올라온 아모스는 이런 녀석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12살? 15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게다가 땅꼬마 동양인이니 질투와 시기가 가슴속에서 아른 거렸다.
“그럼 저게 뭐 하는 짓인데?”
“네가 그러니까 그 수준밖에 안 되는 거야.”
“뭐라고? 나 주장이야!”
“어차피 잠깐만 같은 팀이니까, 우리 서로 얼굴 붉히는 짓은 하지 말자”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기다란 다리로 서서히 뛰기 시작했고, 아모스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아이작을 노려보다가 들고 있던 공으로 리프팅을 하였다.
‘쳇! 저런 건 나도 한다.’
얼마 후.
아모스는 한쪽 발로만 계속 리프팅을 하며 그라운드를 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최준호처럼 빠르게 왼쪽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일은 엄두도 낼 수가 없다는 것도.
‘젠장!’
**
며칠 후.
상당히 강도가 센 팀 전술 훈련을 끝내고 디아스가 선수들을 경기장 그늘로 집합시켰다.
그는 가져온 칠판을 세우고는 선수들에게 말했다.
“자, 내일 바이에른 뮌헨 경기 선발명단은 다음과 같다.”
GK 핀
FB 마리우스
FB 틸
DC 루카
DC 아모스
MC 토비아스
MC 사힌
AM(L) 가브리엘
AM(R) 에티앙
AM(c) 데이비드
ST 아이작
새로 합류한 멤버들을 선발 명단으로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독일은 조직력과 팀 전술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고.
최준호를 비롯한 새 멤버들은 교체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 푹 쉬고, 내일 제대로 뛰어보자.”
“네!”
“해산!”
감독 디아스의 해산 명령에 다들 그라운드에 잠시 누워서 숨을 헐떡였다.
미하일 코치의 훈련 강도는 그 어떤 유소년 코치보다도 강했고, 정규 훈련이 끝나는 3시만 되면 다들 누워서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마 후.
“야, 가자!”
한참 숨을 고르던 아모스가 몸을 일으켰고,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따라갔다.
최준호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다가 알렉산더 아이작에게 다가갔다.
“영어도 할 줄 알아?”
“어.”
“쟤들은 어디 가는 거냐?”
“왜 또 싸우게?”
“나 그렇게 멍청한 놈 아니다.”
아이작이 피식 웃었다.
“1층 휴게실에 가봐. 축구 게임 하고 있을 테니까.”
“축구 게임?”
“위닝.”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보통 축구 게임만 했다.
훈련 끝나고 쉬는 시간에 축구 게임을 하는 것 정도는 코치는 상관하지 않았다.
“고마워.”
“가서 어울려봐.”
아이작이 손을 흔들고는 천천히 그라운드 밖으로 나갔다.
“김우영!, 토마스!.”
땀 범벅이 된 둘은 힘든 표정으로 최준호를 보았다.
“우리 축구 게임하러 가자.”
김우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또 뛰자고?”
“아니. 컴퓨터 게임.”
“엥? 그런 쓸데없는 걸 왜 해?”
“설마 해본 적 없는 거야?”
“그런 건 쓸모없는 거라고 아버지가 못하게 했거든.”
“한 번도 안 해 본 거야?”
“어.”
“너 대단하다.”
최준호는 고개를 돌려 헤벌쭉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토마스를 보았다.
‘게임기가 있었을 리가 없지.’
“하여튼 나랑 같이 가자. 따라와.”
“하아, 귀찮게시리.”
김우영이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벌떡 일어나 최준호를 따라갔고 토마스 역시 김우영을 쫓아왔다.
“나도 가자.”
무코코가 몸을 일으키자, 최준호는 얼른 오라고 손짓을 했다.
‘친해지는데 게임만 한 것도 없지.’
**
휴게실에서 음료수를 먹으며 게임을 즐기던 선수들은 최준호와 그의 일행들이 나타나자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늬들?”
아모스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지만, 최준호는 능글맞게 이야기했다.
“뭐하냐? 아… 위닝? 독일 애들은 게임 못한다고 소문났던데?”
“…뭐야!”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아모스를 보던 최준호가 미소를 지었다.
“너 나랑 게임 할래?”
며칠 전에 대판 싸우고 서로 말도 안 붙이던 녀석이 갑자기 게임을 하자고?
‘이 새끼는 배알이라는 것도 없나?’
축구에서는 그저 그런 18살짜리 센터백일지는 몰라도, 위닝이라는 게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실력이 출중하다고 생각하는 아모스였다.
“너 같은…좆밥이지.”
분명 또 비하하는 단어를 쓰려다가 말을 돌린 게 분명했다.
최준호는 상관없다는 듯 한쪽 입을 올려 웃으면서 말했다.
“나 못 이길걸?”
“푸하하. 그럼 한 번 붙어보자. 누가 잘하는지! 라이스 잠깐 비켜줘. 본때를 보여 줄 테니까”
“기대할께.”
라이스가 자리를 비키자 최준호가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덩치가 큰 아모스를 보고는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우리 내기할래?”
“내기?”
“지는 사람이 오늘 저녁 사기.”
“미친!”
휴게소에 몰려 있는 인원만 10명이었다.
“왜 쫄리냐?”
“…. 그럴리가! 후회할 준비나 해라!”
아모스가 이를 악물고 게임패드를 잡았다.
최준호는 과거 축구하는 시간 외에는 위닝 게임에 몰빵을 했었다.
16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위닝 도사가 된 최준호에게 아모스가 이길 리가 없었다.
최준호는 여유롭게 패드를 집으며 생각했다.
‘오늘은…뭐… 이기는 게 목적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