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24)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24화(24/184)
24화 첫 선발 출전(1)
유소년팀에는 온갖 사고들이 끊이질 않지만 자다가 침대 프레임을 차서 다쳤다는 이야기는 또 처음이었다.
“…그래서 오늘 선발 명단 교체가 있다. 토비아스 대신 초이가 들어간다. 그리고 가브리엘 대신 무코코가 들어간다.”
전반기에 토비아스와 가브리엘의 호흡이 제법 좋았다.
하지만 토비아스가 빠진 상황에서 무코코보다 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가브리엘을 굳이 고집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 디아스는 오른쪽 윙어까지 같이 교체했다.
무코코는 스트라이커 포지션이지만, 빠른 주력과 준수한 드리블 덕에 U-15 리그에서 윙어로 뛰었던 경기가 꽤 있었다.
주발이 왼발인 무코코가 오른쪽 윙어 자리에 배치한다는 건 인사이드 포워드 그러니까, 페널티 에어리어로 치고 들어오는 공격을 할 거라는 암시기도 했다.
최준호는 그라운드에서 가볍게 몸을 풀며 알렉산더 아이작을 보았다.
그는 커다란 키를 사용한 공중 장악력이 뛰어났다.
상대 수비수를 등진 후에 헤더로 침투해 들어오는 공격수에게 공을 떨궈주는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친구였다.
물론 기본적인 스트라이커의 능력도 가진 녀석이었고.
여기에 사이드에서 순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무코코라면 대량 득점도 충분해 보였다.
“…저 녀석들 실력이 제대로 펼쳐질지 모르겠어.”
디아스는 며칠 전에 벌어진 패싸움을 떠올렸다.
그때의 다툼이 경기에 영향을 줄 지가 미지수였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 오늘 아침에 선발 교체에 관해 이야기할 때 별다른 반발이 없었잖아.”
“그랬었지?”
“훈련 세션에서 둘 다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니까 다들 속으로는 인정하고 있을 거야.”
미하일이 걱정하지 말라며 웃음을 지었다.
디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그라운드로 눈을 돌렸다.
**
최준호는 코치들이 굴려주는 공을 가볍게 때렸다.
힘을 완전히 빼고 다리의 스윙만으로 찬 슈팅이지만 꽤 강력했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돌려 관중석을 죽 훑었다.
대부분 선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었고, 펜스 가까운 곳에는 딱 봐도 나 축구 관련 일을 하는데? 라고 무게를 잡은 스카우트들이 보였다.
아이작이나 무코코같은 명성을 얻은 유스들을 보러 왔을 것이다.
‘일단 유명해져야 관심을 가지니까.’
그의 눈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진짜 왔구나. 박정수 감독.’
인연은 짧았지만, 과거에도 U-20 감독을 맡아 최준호를 꽤 중용했던 감독이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보여줘야지.’
바이에른 뮌헨은 최강의 독일 축구 클럽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유소년 클럽의 위상은 낮은 편이었다.
도르트문트나 샬케04, 함부르크처럼 어린 자원들을 영입해서 키우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좋은 선수를 비싼 돈에 사 와서 쓰는 팀이었다.
하지만 2014년도 이후에는 아주 유능한 감독과 코치진을 선임하여 유소년 시스템을 개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해 수준이 올라가고 있었다.
‘일단 나보다 키 작은 녀석은 없네.’
크게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 삑!
주심의 휘슬에 경기가 이내 시작되었다.
도르트문트의 선공.
아이작이 공을 무코코에게 주었고, 무코코는 뒤에 있는 최준호에게 공을 굴려주었다.
1군 무대에서 뛰는 선수만큼 정교한 것은 아니었지만 꽤 빠르고 강했다.
마치 <너 오늘 컨디션 어때?> 라고 물어오는 것처럼.
– 툭.
최준호는 다리에 힘을 빼고 가볍게 공을 받았다.
그의 발이 닿자 공은 마치 순둥이처럼 발밑에서 얌전해졌다.
‘오늘 컨디션 최상.’
최준호의 눈은 수비수를 달고 상대 진영으로 뛰어가는 무코코에게 슬쩍 향했다.
‘달라는 이야기지?’
에버튼에서 뛸 때까지는 잘 몰랐다.
사방이 꽉 막힌 벽으로 둘러싸인 것 같은 적 진영에서 고군분투할 때는.
하지만 지금 옆에는 공을 달라고 소리치는 아군이 4명이나 있었고, 달려드는 상대 선수는 한 명뿐이었다.
후방에서 이렇게 여유롭게 있는 느낌이란!
187cm에 79kg에 넓은 어깨를 가진 수비 미드필더인 바우어가 큰 덩치로 뭉갤 듯이 최준호에게 달려들었다.
‘한 대 툭 치면 날아갈 것처럼 생겼네.’
적당히 몸싸움을 벌이면 공을 쉽사리 뺏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깨를 들이밀어 넣을 찰나.
– 툭…. 툭…
바우어는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가는 공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순간적인 움직임이 어찌나 민첩한 지 최준호는 이미 바우어의 등 뒤로 돌아나가 공을 다시 잡고 있었다.
‘어?’
순간적으로 바우어를 따돌리고 공을 몰며 빠르게 가속하는 최준호.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간결한 터치와 빠른 패스의 플레이가 아니었다.
최준호가 공을 몰고 오른쪽 라인 쪽으로 달리자, 상대편 윙어가 빠른 스피드로 금세 접근했다.
‘빠르네. 그런데 너 헛수고야.’
최준호는 왼쪽 상황을 힐끗 보고는 바로 반대편 사이드로 전환 크로스를 했다.
– 뻥!
공이 넘어오질 않아 순간 멈칫했던 무코코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는데, 엄청난 가속력과 주력은 그를 마크하고 있는 수비수가 따라붙지 못할 정도였다.
– 툭
무코코 앞 공간에 이쁘게 떨어지는 공.
‘역시!’
역회전까지 걸려서 땅에 닿자마자 공을 다루기 좋게 공중으로 살짝만 튀어 올랐다.
이런 패스를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무코코였다.
‘내 선택이 옳았네!’
– 툭.
속도를 줄일 필요 없이 바로 공을 트래핑 후에 골대 쪽으로 향해 달렸다.
이대로 몰고 가서 슈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무코코는 페널티 에어리어로 침투하는 아이작을 보고는 낮고 강하게 땅볼 크로스를 깔아 찼다.
경기 시작 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너무나 빠르게 전개되는 도르트문트의 공격.
바이에른 뮌헨 골키퍼는 판단이 늦었고, 센터백은 아이작과의 몸싸움에서 밀렸다.
아이작은 공을 방향만 돌려놓았고 공은 상대 그물을 갈라버렸다.
경기 시작 21초 만에 나온 전광석화 같은 골에 바이에른 뮌헨 JT 감독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경기장을 째려보기만 했다.
“나이스!”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아이작에게 몰려들며 가볍게 한마디씩 던졌다.
멀리 떨어져 있던 최준호는 그 광경을 보며 웃음만 짓고는 본진으로 복귀했다.
누군가가 옆에 붙어서 말했다.
“너 제법이다?”
같이 미드필더로 뛰고 있는 사힌이었다.
최준호가 대답 없이 웃음만 짓자 사힌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한 무리가 되어 아이작을 축하해주던 무코코 최준호를 보고는 가볍게 엄지손가락을 올려주었고, 최준호는 윙크를 날렸다.
**
“저 21번 자식! 막아!”
쉴 새 없이 바이에른 감독 슈테판의 입에서 고함이 튀어나왔다.
왜냐하면 알렉산더 아이작과 무코코 유수파가 물 만났다는 듯이 2골씩 때려 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에른 뮌헨 JT 선수들은 우왕좌왕하였고, 전술적인 움직임을 취하지 못했다.
“망할 자식들! 21번이 패스 못 하게 계속 압박하라고!”
전반기의 도르트문트는 양쪽 윙어와 스트라이커가 굉장히 강력했다.
그 엄청난 양쪽 윙어가 2군으로 올라가면서 쉽사리 경기할 줄 알았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미드필더에서 괴물이 튀어나왔다.
21번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작은 동양인 꼬마.
물론 21번이 득점을 올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의 모든 공격이 저 선수의 발밑에서 나오고 있었다.
한 골을 먹은 후 소강상태였던 경기는 전반전 중반쯤 최준호를 중심으로 패스워크가 이뤄지자, 승부의 추가 도르트문트 쪽으로 넘어갔다.
최준호의 발밑에서 정말 놀라운 결정적 패스가 주구장창 나오기 시작하면서 내리 세 골을 먹어버렸다.
‘어디서 저런 녀석이 튀어나왔지?’
훌륭한 탈압박 능력.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 같은 넓은 시야.
1군에서나 볼 수 있는 퍼스트 터치 능력.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정확한 패스.
두 명이 달라붙어도 잃지 않은 여유로움.
무엇보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차원이 달랐다.
슈테판 감독의 눈이 부르르 떨리고 있을 때, 아모스는 라이스에게 공을 받고는 부지런히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최준호에게 공을 돌렸다.
‘그래…. 구단이 병신이 아니었던 거지…. 15살짜리 작은 동양인이 U-19로 왔을 때는 아주 특별했던 거야. 토비아스가 있을 때보다는 확실히…. 다른 팀이 되어버린 것 같아.’
최준호가 공을 잡자 바이에른의 미드필더 바우어가 바짝 붙었다.
‘이 자식! 내가 꼭 잡는다!’
하지만 그건 항상 마음뿐이었다.
최준호의 시선이 왼쪽으로 향한 것을 본 바우어는 오히려 경계하였다.
아까 시선과 정 반대 방향으로 드리블 돌파를 허용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뭐? 라보나킥?’
자신의 앞에서 묘기를 부리려는 눈앞의 생쥐에게 화가 난 바우어는 거칠게 라보나킥을 하려는 방향으로 발을 디밀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라보나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라보나킥 같은 동작으로 시작되는 플립플랩이었다.
그가 발을 디민 방향반대로 공과 함께 빠져나가는 최준호.
바우어가 병신처럼 균형을 잃고 뒤뚱거릴 때 최준호는 잽싸게 공을 차며 전진 드리블을 시작했다.
너무 괴랄 맞은 개인기에 관중석에 앉아 있는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저게 뭐야?”
“어떻게 제친 거지?”
“뭘 어떻게 한 거야?”
슈테판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몸이 유연하니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되네? 이런 데서 실전처럼 써먹어야 1군 경기에서도 써먹을 수 있지.’
최준호는 깔끔하게 바우어를 제치고는 오른쪽에서 무인지경으로 달리고 있는 에티앙의 앞 공간에 크로스를 올렸다.
‘패스 진짜 예술이네.’
앞쪽 공간에 받기 좋은 상태로 떨궈주는 패스에 에티앙은 감탄을 하며 스피드를 살려 그대로 라인으로 치고 들어가다가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하는 아이작을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크로스가 정확하게 아이작을 향해서 날아갔지만, 크로스의 질이 좋지를 않았다.
높고, 느렸다.
‘이건 헤더 슛을 해도 의미가 없겠는데?’
수비수와 몸싸움하던 아이작은 주변 선수들을 살폈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최준호만 프리였고, 나머지는 수비수들에게 견제당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수비수와 함게 점프를 뛰었고, 크로스를 골대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헤더를 해서 보냈다.
퉁…퉁…
‘괜히 특급 유망주가 아니야. 그 상황에서 날 봤네!’
최준호가 굴러오는 공을 보며 발을 디뎠다.
유럽 리그에서 피지컬이 약한 최준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막아! 막아! 막으란 말이야!!!”
바이에른 JT의 감독 슈테판의 고함을 들으면서 최준호는 머릿속에 골대의 위치를 상상하고는 튀어 오르는 공을 보며 그대로 허리를 돌렸다.
– 뻥!
발등에 제대로 얹힌 공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오른쪽 상단 구석을 향해 총알처럼 날아갔다.
슈팅 타이밍을 전혀 재지 못했던 골키퍼는 몸도 날리지 못한 채 골대 그물을 후벼파는 공을 보며 무릎을 꿇고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악! 제길!!”
28미터 정도쯤에서 터진 놀라운 중거리 발리 슈팅.
전반전 끝나기도 전에 5-0.
게임은 이미 터져버렸다.
최준호는 축하해주러 온 동료들과 가볍게 세레머니를 하면서 관중석에 앉아 있는 박정수를 슬그머니 보았다.
‘이젠 절 안 뽑는 게 정말 이상한 겁니다.’
**
“정말… 이상하군.”
넋이 나간 표정으로 경기장을 보던 박정수.
“…무슨 말씀입니까? 감독님?”
함께 온 경기분석관인 백지훈이 물었다.
“저 선수의 레벨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백지훈은 박정수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간결한 터치와 빠른 패스.
놀라운 탈압박 능력.
공간을 뛰어다니며 수적 우세를 가져가려는 오프 볼 움직임.
눈에 확 들어왔던 중거리 슈팅 능력…
오늘 경기에서 최준호는 그것을 모두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 경기는 그가 이전에 보여준 그런 클라스가 아니었다.
오늘의 최준호는 뒤죽박죽인 능력을 갖춘 합주단을 너무나 완벽하게 조율하는 뛰어난 지휘자처럼 보였다.
“저도 가늠하긴 힘들지만, 성인 무대에 가져다 놔도 통할 것처럼 보입니다.”
“동감이야.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거야.”
“네?”
“저런 수준의 선수라면 축구를 모르는 까막눈도 클라스가 다르다는 걸 알텐데, 이 친구는 왜 정식 경기를 뛴 적이 없냐는 거지.”
백지훈은 그 대답이 떠오르긴 했다.
박정수 감독이나 자신과 같은 유학파가 한국 축구계에 가지는 의문.
“에이 굳이 제가 말해야겠습니까?”
“답답해서 그러지. 저 녀석 팀에 합류한 지 한 달도 안 되었을 텐데?”
“네. 그렇습니다.”
“그런 녀석이 팀에서 저 정도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은 리더쉽도 상당하다는 소리야.”
“동감합니다.”
“차출해야겠군.”
“그럼요. 차출을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