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25)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25화(25/184)
25화 첫 선발 출전(2)
도르트문트 유겐트는 바이에른 뮌헨 JT를 상대로 7-0 대승을 거두었다.
전반전 거의 운동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엄청난 활동량을 보인 최준호는 후반 25분에 교체되었다.
70분 경기에서 그가 기록한 스탯은 1골 3 어시스트.
패스 성공률 62/63(97%), 키 패스(9), 슈팅(1/1)
“데이터가 없다는데?”
“이전에 뛴 경기가 없다고?”
여러 스카우트에게 충격을 준 것은 다름 아닌 도르트문트의 21번 최준호였다.
해트트릭을 기록한 알렉산더 아이작이나 무코코 유수파는 이미 유명세도 있고 저 정도를 보여줄 거라는 기대치도 있었는데, 21번은 첫 등장에 경기 MVP에 뽑힐 정도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정말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수식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디아스는 경기를 끝내고 들어오는 선수 하나하나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당연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도르트문트 유겐트라는 팀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만들게 해준 최준호는 특별하게 두 팔을 벌려 안아주었다.
‘이 녀석은 내가 발굴한 거야!’
전반전 초반에 한 골을 넣고서는 지지부진한 경기 양상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최준호가 활동량을 많이 가져가고, 수비진의 여러 선수와 적극적으로 토킹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그는 매우 노련하게 주변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움직였는데, 그런 행동은 베테랑이라고 불릴 만한 30세가 넘은 선수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간결하고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했기에 주변 선수들이 금방 알아듣고 움직임을 취했다.
’15살짜리가 나이 많은 녀석들을 제어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심지어 최준호의 지시는 디아스의 축구 철학과도 아주 근접해 있었다.
“초이! 오늘 넌 최고였다!”
“…감사…합니다.”
킁킁.
디아스가 향수를 뿌리고 왔긴 했지만, 경기 내내 격렬하게 소리치고 지시하며 열을 내는 바람에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독일인 특유의 체취 + 향수 + 땀 = ?
‘으아, 죽겠네. 그만 놔줘라.’
**
“뛰니까 좋냐?”
“당연하지. 세상에 축구만큼 재밌는 게 어디 있냐?”
“난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나도 뛰고 싶어서 미치겠다. 그런데 아까 관중석에 있던 동양인은 어제 온다던 그 감독 맞지?”
“그렇겠지?”
김우영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우씨! 난 출전도 못 했는데!”
“초보 자식이 벌써 대표팀 승선에 눈독 들인 거야?”
“……”
“한 대 칠 거 같다?”
“그랬냐? 재수 없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넌 내년에 16살이야. 그리고 U-20 대표팀도 있고, U-23도 있고… 실력만 열심히 키워. 그럼 어디든 갈 수 있을 테니까.”
김우영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가 끝나고 얼음찜질을 한 후 식사를 마치고 숙소 앞에 도착하자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왔네.”
“뭐야 이거?”
“노트북.”
최준호는 에버튼 시절 이전만 해도 정말 운동에만 매진했다.
게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 거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활약을 펼치고 싶어서 종일 운동만 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이 하루에 소화해 낼 수 있는 운동량은 정해져 있고, 그 정해진 운동량을 기반으로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는 게 선진 국가의 운동법이라는 걸 독일 리그에서 배웠다.
“뭐 하려고?”
“공부.”
노트북을 책상에 설치한 최준호.
순식간에 트위터 계정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고, 너튜버 계정까지 만든 최준호.
“그건 공부가 아니잖아?”
사실 그에게는 작은 욕심과 계획이 있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뱉은 한마디가 가십이 되어 많은 사람의 관심사가 되는 것이 부러웠었다.
그래서 일찍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서 그런 것을 해보고 싶었다.
영향력이 생긴다면 악의적으로 기사를 써대는 적대적인 기자들과도 한 판 붙을 수 있고.
“국·영·수가 다가 아니야. 세상엔 공부할 것이 얼마나 다양한데.”
“…너 공부 못했지?”
“너 나보다 독일어 잘해?”
“왜 말 돌려?”
“너 나보다 영어 잘해?”
“그건.”
“너 나보다 축구 잘해?”
“……재수 없어.”
“너도 계정 만들래?”
김우영은 볼을 긁적거리다가 말했다.
“그럴까?”
김우영도 앉아서 계정을 만들었다.
“크크크. 나도 만들었다.”
계정을 보며 신나는 김우영.
“그렇게 좋냐?”
“넌 이해 못 하겠지만, 난 지금 이런 자유가 너무 좋아. 나, 이제 수업 간다.”
구단은 김우영이 독일어 B1 레벨을 습득하도록 따로 과외수업을 배정해 주었다.
최준호는 Goethe Zertifikat C2 레벨. 그러니까 원어민들도 쉽게 받지 못하는 최고 단계 레벨을 습득한 관계로 따로 과외수업을 받지는 않았다.
“졸지 말고 열심히 해라.”
김우영은 졸지 말라는 말에 피식 웃음만 지었다.
축구 한다고 난리를 치기 전까지, 김우영은 학교에서 계속 전교 1등을 해왔었으니까.
김우영이 나간 뒤 20분쯤 되었으려나.
최준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혀 모르는 번호였다.
– 여보세요.
– 혹시 최준호 선수인가?
–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 반갑네. 난 한국 U-17 대표팀 감독 박정수라고 하네.
그 말에 최준호는 지긋이 웃음을 지었다.
맞은편 거울을 보고 열심히 표정 관리를 하고서는 놀란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네…에? 대표팀 감독님이시라고요?
– 좀 당황했지?
– 아… 아닙니다.
– 오늘 경기 아주 잘 봤네. 너무나 인상적인 경기였어.
– 아… 감사합니다.
– 다름이 아니라, 이번 U-17 월드컵 지역 예선에 자네가 팀에 승선을 해주었으면 어떨까 하고 연락을 취했네.
보통의 대표팀 감독은 <너, 내가 좋게 보고 있어. 그러니까 몸 관리 잘하고 있어> 라던가, <대표팀에 합류시킬 예정이니까, 다치지 말아라> 처럼 선수의 의견은 잘 묻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박정수는 그 결이 좀 달랐다.
최대한 나이에 맞춰서…
오글거리지만.
– 대표팀에 합류하다니 꿈만 같아요.
– 하하하, 그렇게 말해주다니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군.
사실 U-17 대회는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축구빠들조차 잘 모르는 대회였다.
대부분 예선 조별 리그에서 광탈하기 때문에 화제성도 거의 없는 대회였다.
성적이 신통치 않은 이유는 대부분이 16세로 고등학교 1학년이 주축인데, 이들은 2, 3학년에 밀려서 경기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들은 행정 처리가 엉망이어서 선수들의 나이를 속이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보통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우승하곤 했다.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FIFA가 주관하는 U-17 대회.
세계의 스카우트들이 와서 선수를 살피는 대회였으니까.
조별 예선에서 광탈하면 화제성이 없겠지만, 만약 U-17이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준다면?
국제무대에서 이례적인 성적을 내면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게 뻔했다.
유명세를 치르는 것은 그야말로 순간!
– 저, 근데요.
– 부담 갖지 말고 뭐든지 이야기해봐
‘일단 찔러보자.’
– 저, 우영이랑 같이 가도 돼요?
-…응?
벌써 10주째.
처음에는 성격 더러운 진상에 얄팍한 축구 스킬을 가지고 잘난 체하는 녀석처럼 보였는데, 옆에서 같이 있다 보니 진짜 진국이었다.
일단 엄청나게 성실했다.
토마스 녀석은 <어제 먹은 게 부실해서 힘이 없다>는 이유로 서너 번 아침 훈련을 거른 적이 있지만, 우영이는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빡빡한 훈련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지칠 만도 할 텐데, 저녁에는 따로 개인 훈련까지 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용병 선수들이 지겨워하는 언어 과외수업에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었다.
여기에 한국 유소년 레벨에서 187cm에 81kg짜리 덩치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파이팅 넘치고 발기술도 좀 되고, 주력도 갖춘 선수는 아마 없을지도?
저렇게 잘 성장하면 한국인 센터백으로 최초로 유럽 5대 리그에 간 강민재 정도 되려나?
– 그 친구랑 마음이 맞아서요. 같이 가면 대표팀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독일에서도 그 친구 때문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좋은 선수예요.
– 그런가?
한 번에 거절은 못 하고 무척 고민하는 말투였다.
김우영이 진짜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대표팀에 합류된 다른 선수들은 오랫동안 같이 게임하고 알고 지내던 사이일 거다.
그에 비해 국내에서 경기를 뛰어보지 못한 최준호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방인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텃세가 나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만약 김우영이라는 방탄조끼가 있다면?
– 긍정적으로 고려해보도록 하지. 소집 날까지 아프지 말고 몸 관리 잘하고 있어라.
–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휴대폰 종료 버튼을 누른 최준호는 주먹을 꾹 쥐고 희미하게 웃었다.
모든 것은 절차가 있고 단계가 있는 법이었다.
판타지 소설처럼 15살짜리가 1군으로 콜업되는 경우는 없다.
U-19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도르트문트 II 군으로 가는 거고, 거기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임대를 통해서 2부 리그 정도로 보내어 성인 무대에서의 가능성을 본다.
거기서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면 임대 복귀 후 1군 스쿼드에 들어간다.
그 기간을 빠르게 좁히면 17세, 18세에 1군 데뷔하는 것이고.
기간을 좁히지 못하면 그저 그런 선수가 되는 것이지.
대표팀도 마찬가지였다.
‘단추들이 잘 끼워지고 있어.’
**
최준호와 통화를 끝낸 박정수 감독은 호텔 밖으로 나가 도르트문트의 야경을 보았다.
사실 이번 U-17은 좀 가능성이 없었다.
장효원이라는 스트라이커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경기력이 좋질 않았다.
이대로 갔다가는 예선 탈락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혜성처럼 최준호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가 오늘 경기에서 보여준 것처럼 중앙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 준다면 대표팀 경기력이 엄청나게 향상될 것이다.
“좀 당돌하긴 하네.”
대표팀에 뽑힌 것만으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인데, 15살 선수가 같이 뛰고 싶은 선수를 천거하는 건 박정수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김우영이라.”
사실 박정수는 외부에서 은근슬쩍 압력이 들어와서 김우영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두 번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돈 많은 재벌 가문의 3세라는 점은 그 외부 압력 때문에 알게 되었다.
최준호라는 놀라운 미드필더에 꽂힌 것도 있지만, 그런 외부 압력을 질색하는 박정수의 성격 때문에 김우영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렸는데 이젠 검토할 필요성이 생겼다.
다시 호텔에 들어온 박정수는 노트북을 켜고, 스태프들이 보내 준 자료를 밤새 검토하기 시작했다.
**
<새벽의축구도사>
독일 주재원으로 있는 양창명 기자는 너튜버 라이브 채널을 열었다.
구독자 340명 정도밖에 되지는 않지만, 언론사를 통해서 알릴 수 없는 이야기들을 푸는 장소로 애청자들이 50여 명이 넘었다.
“오늘 드디어 최준호 선수가 도르트문트 유겐트 소속으로 첫 경기를 했네요. 전술에 제대로 적응도 못 하고, 텃세나 인종차별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좋은 활약은 펼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제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어요. 그는 오늘 전혀 다른 클라스의 선수였습니다. 이제부터 대한민국은 이 선수의 행보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겠네요.”
…
Ayang : 에이 15살짜린데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닌가요?
Totto : 맞아요. 어릴 때 반짝하고 사라지는 선수가 얼마나 많은데.
Fb_Idl : 이 분 잘 아시네? 최준호 선수 정말 좋은 선수죠.
KKK : 제법 전문성이 높고 공정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착각인가요?
OPSOPS : 그런 선수라면 국내에서도 이미 감독 눈에 들어서 뛰었겠죠.
…
양창명은 살짝 날이 선 댓글을 읽다가 말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도르트문트 구단의 양해를 받아서 경기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짧은 영상이지만, 늘 그렇듯 오늘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