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27)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27화(27/184)
27화 유소년 리그의 신성(2)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도르트문트 U-19는 오베라하우젠, 본너, 프로이센 뮌스터, VFB hilden 팀을 맞이하여 4연승을 하였다.
후반기 들어 파죽지세로 7연승을 한 도르트문트.
17승 2무 1패로 4경기만 남은 상황
2위인 샬케04와는 승점이 9점이나 벌어진 상황이라 우승은 거의 확실시되었다.
하지만 이런 성적과 상관없이 늘 시즌 막판이 되면 스태프들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번에는 몇 명이나 남으려나?”
18세를 꽉 채운 선수들은 도르트문트 II로 넘어가야 하지만, 재계약 이후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모스를 비롯하여 7명 선수의 운명이 곧 결정될 예정이었다.
“글쎄. 아모스 녀석은 도르트문트 II로 올려서 좀 더 봤으면 좋겠는데.”
“그 녀석 고민이 많지?”
오랫동안 도르트문트에서 유소년을 키웠던 코치들은 아모스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얼굴을 익혀왔던 사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아슬아슬하게 나이가 꽉 차서 승격했기 때문이다.
“요새 아주 우거지상이더라고.”
“훈련은?”
“성실하게 받고 있지. 게임에 나가서도 열심히 뛰고.”
하지만 열심히 뛰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 게 프로의 길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3살이나 어린 김우영과 토마스에게도 밀리는 형국이었다.
“참 아까워. 항상 성실하게 뛰고, 제법 통솔력도 있는 녀석인데.”
“포텐이 터질 것 같다가도 안 터지고.”
코치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디아스 감독이 굳은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작은 탁자 앞으로 가서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방금 구단 측과 이야기를 끝내고 왔어. 일단 2017년 3월 15일에 정식 입단 테스트가 열릴 거야. 그동안 눈여겨본 유스들이 있다면 날짜 통보해서 준비토록 해주고.”
“응.”
“알렉산더 아이작은 최종 합의가 끝났어. 다음 주에 에어푸르트로 임대를 떠날거야.”
“아쉽네. 아주 화끈한 득점력을 가진 녀석이었는데.”
“자기 커리어를 찾아서 떠나는 거지.
“그리고 토마스 투헬 감독이 전술 변화를 요청하더군.”
“전술 변화?”
“지금 4-2-3-1 전술에서 3-4-1-2 전술로 운영하라고.”
코치진 내에서도 전술 변태로 알려진 토마스 투헬이었다.
머리 나쁜 선수들은 버티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전술 변화를 가져가는 토마스 투헬이었고, 그의 요청에 스태프진들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갑자기 쓰리백 전술이라니.”
“그래서 이번에 입단 테스트에도 쓰리백 전술에 맞는 재원을 우선하여 선별할 거야.”
수비 전술을 담당하고 있는 브라함이 물었다.
“올해 계약 만료되는 녀석들은? 살아남는 녀석 있어?”
디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두 방출.”
스태프들이 한숨을 내 쉬었다.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은 U-19에 끝까지 남아 있지 않고, 2군 팀이나 임대를 떠나는 게 보통이었다.
나이가 찰 동안 계속 U-19에 남아 있다는 건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고.
“그러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자원은 15명이군.”
“한 녀석이 또 떠날지 몰라.”
“누구?”
“최준호.”
정말 혜성처럼 등장해서 도르트문트 U-19의 수준을 확 올려놓은 핵심 선수였다.
“왜?”
“3부 리그 팀에서 임대 오퍼가 왔어. 구단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 같아.”
“너무 어리지 않아? 격렬한 경기 중에 다칠 수도 있고?”
“맞아. 좀 성급한 것 같은데?”
“차라리 도르트문트 II로 승격시키지?”
디아스는 코치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대답했다.
“알다시피 그쪽에는 미드필더 자원이 너무 많아. 외국인 스쿼드도 꽉 찼고.”
외국인 스쿼드라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백업이 아니라 주전 자리를 약속한 임대겠네?”
디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니니까 다들 알고는 있어. 나중에 방출 명단에 있는 선수들은 내가 한 명씩 따로 불러서 면담하도록 하지.”
**
“이예!!”
아모스가 주먹을 불끈 쥐고 좋아했고, 최준호는 그 모습에 배시시 웃기만 했다.
위닝 게임에서 아모스가 이겼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져 주기 시작한 거, 최준호는 계속 그에게 져 주고 있었다.
한참 동안 좋아하던 아모스가 진이 빠진 모양새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너 왜 자꾸 일부러 져 주는 거야?”
“…응?”
아모스는 언젠가부터 최준호가 게임에서는 일부러 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아쉽게 게임에서 진 녀석들은 정말 분통 터진다는 표정을 짓는데, 최준호는 항상 아슬아슬하게 지면서도 그런 반응이 없었다.
“내가 모를 줄 알아?”
“……”
“모른 척 해봐야 소용없어.”
아모스가 아예 못을 박자 최준호가 피식 웃었다.
“이제 눈치챘냐?”
“나쁜 새끼.”
“너도 그러잖아?”
“…어?”
“네 실력 대충 보이는데, 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더라고.”
“내가 계속 이기면 싫어할 녀석들이 있어서.”
“나도 그래.”
“그래도 계속 지냐?”
“뭐, 어때.”
“역시 넌 정말 이상한 놈이야.”
“응.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아모스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리곤 꽤 자조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천장을 보았다.
“내가 U-11 때부터 도르트문트에 계속 있었거든. 벌써 8년째인데 너 같은 녀석은 처음 본다.”
“뭐가?”
“보통 잘난 놈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거든. 때 되면 다들 어디론가 가니까. 위닝 하자고 부르면 너처럼 바로 나오는 놈은 처음이야.”
그 말에 최준호는 아모스 패거리가 모두 18살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그리고 지금이 시즌이 거의 끝나는 시점이라는 것도.
아마 재계약이 없다면 방출될 운명일 것이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돌리지 말고 해.”
“15살짜리 두고 이런 말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네가 보기에도 축구 선수로서 나 가망이 없어 보이지?”
“……”
“그러니까, 뭐랄까 한계에 봉착한 느낌이야.”
“……”
“왜 말이 없어?”
최준호는 들고 있던 게임 패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너 혹시 100m 달리기 하냐?”
“아니.”
“그럼 멀리 뛰기?”
“…무슨 소리야?”
“축구가 개인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면 할 수 없는 육상 스포츠던가?”
아모스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하지만 난 토마스만큼 빠르지도 않고, 김우영만큼 몸싸움을 잘하지도 못해.”
“너 정말 모르는구나? 왜 코치들이 계속 널 주전 중앙수비수로 쓰고 있었는지?”
최준호의 말에 아모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머리 식히고 잘 생각해봐. 네가 뭘 잘하는지.”
“내…내가 잘하는 게 있다는 거야?”
“그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 최준호는 휴대폰을 들며 말했다.
“전화가 와서 먼저 나간다.”
**
– 네, 동현이 형.
– 어, 잘 지냈나? 우리 꼬맹이?
– 생각보다는 잘 지내고 있어요.
– 그래. 생각보다 잘하고 있던데?
– 네? 생각보다 잘하다니요?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중인데? 에이 축구 잘 모르시네.
– 내가 축구에 대해서는 너만큼은 모르지만, 네가 세계적인 선수가 될 거라는 직감만큼은 누구보다 확실하지.
정말 유쾌한 사람이었다.
– 무슨 일이에요?
– 형이 꼭 무슨 일이 있어서 연락하겠니?
– 네.
– 푸힛. 하여튼 애늙은이 같은 녀석. 다름이 아니라 너한테 임대 오퍼가 온 거 같아.
최준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 EU권 출신의 선수를 상대로 임대 오퍼가 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직 신체적으로 여물지 않은 15살을 상대로는.
– 임대 오퍼요?
– 그래. 소문을 확인하고 있는데, 확실한 거 같아.
– 어디서요?
– SV 메펜 1912라는 팀이야. 이번 시즌 리가3로 승격했는데 주전 미드필더가 큰 부상으로 이탈한 모양이야.
최준호도 모르는 팀이었다.
– 재정적인 여유가 없어서 선수 임대를 원하는 것 같아.
– 그렇군요.
– 의논을 해봤어. 성장기도 다 거치지 않은 선수를 성인 무대에 세우는 게 올바른 일인지.
– 그래서요?
맞는 말이었다.
한 선수를 평가하는 데는 축구 실력이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프로의식, 스포츠 정신, 인내심, 적응력과 같은 성격이 엄청 중요했다.
실력이 현재라면 잠재력은 저런 정신력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나이에 맞지 않은 더 높은 무대에서 뛰는 선수 중 성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높은 벽에 가로막혀 적응 실패하면 축구를 포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와 같은 팀들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일부러 단계에 맞춰서 선수를 육성하기도 했다.
– 그리고 네 의향을 물어보기로 했어.
최준호의 정신세계는 완벽한 프로 선수였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생각 없이 아무거나 먹는 일반적인 유소년들과 달리 회귀한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식습관을 관리하고 있었다.
탄산음료? 아이스크림? 과자? 이런 건 입에 넣어본 적이 없었다.
탄수화물 고기 야채의 비율을 항상 유지하려고 애를 썼고.
화학조미료가 든 것은 최대한 먹지 않으려고 했다.
이렇게 절제하면서 운동한 지 몇 달이 지속되자 몸이 확실하게 좋아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아직 키가 더 커진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뛰어도 쉽게 지치지 않았고 거친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대를 버티는 것이 점점 쉬어졌고, 지친 상태에서 빠른 상대를 만나도 쉽게 돌파되지 않았다.
– 저요? 당연히 가야죠.
– 어째 1초의 고민도 없냐?
U-19와 리가3의 레벨은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고 리가3의 선수들이 도르트문트 U-19보다 실력이 월등하냐?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만 리가3는 진짜 프로선수들로 축구 게임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다.
U-19에서 잘하면 <오, 쟤 좀 가능성이 있는데?> 라고 하지만, 리가3에서 잘하면 바로 이적 오퍼가 올테니까.
그곳은 진짜 프로 리그였다.
최준호는 애초부터 그렇고 그런 선수가 될 생각이 없었기에 자신에게 온 기회를 절대로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 추진해주세요.
– 알았다. 선수 본인의 의향이 그렇다면야. 하지만 그 팀이 리가3에서 꼴찌인데 괜찮겠어?
– 훨씬 좋죠. 제가 가서 강등을 면하게 해주면 더 주목받지 않겠어요?
– 하하하! 그 자세! 좋아!
**
나흘 후.
마인츠 U-19와 홈 경기.
도르트문트 U-19가 다득점의 화끈한 경기를 하면서,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지역 팬들이 몰려들었다.
대략 1,300여 명이 운집한 경기장.
토마스 투헬은 1군 선수들의 훈련을 코치진들에게 맡겨두고 U-19 경기장을 찾았다.
U-19에서 사용할 쓰리백 전술의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1군에서는 아무리 전술 변태 토마스 투헬이지만, 쉽사리 그 전술로 바꾸지는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어젯밤에 올라온 유소년 전력 분석 리포트를 본 그는 한 선수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No. 21 최준호.
알렉산더 아이작, 무코코 유수파라는 초엘리트 유망주보다 더 높은 순위에 이름을 올린 유소년.
이전에 캠프에서 그의 활약상을 인상 깊게 봤지만, 수준 높은 도르트문트 스카우트 팀에서 이 정도로 평가를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토마스 투헬은 한국인 선수에 대해 선입견이 없었다.
마인츠 감독 시절 한국 국가 대표였던 유자철 선수에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데려오기 위해서 6개월 동안 거의 스토킹하듯 연락을 취했고, 그가 팀에 온 뒤로는 자신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기 때문이었다.
“엇, 토마스?”
토마스 투헬은 자신을 알아보는 듯이 인사를 건네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르네? 르네 마리치?”
토마스는 엉겁결에 르네가 건네는 악수를 받았다.
“U-19 경기에는 무슨 일이야?”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을 친구가 여기는 무슨 일로?”
“아, 지금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일하고 있어.”
“잘츠부르크?”
“응.”
르네는 이내 토마스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잘됐네.”
“무슨 인사?”
“덕분에 블로그 운영자였던 내가 잘츠부르크에서 수석 코치를 하고 있거든.”
“흠. 잘됐네.”
토마스는 <독일 사이코패스>라는 별명답게 아무 감흥이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고, 르네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 축구에 신성이 나왔다고 해서 구경 좀 왔어.”
“신성?”
“언론에서는 그런 표현을 쓰더군.”
“누구?”
르네가 경기장 한쪽을 가리켰다.
“노란색 유니폼. 번호는 2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