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29)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29화(29/184)
29화 SV 메펜(1)
– 똑똑똑.
디아스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기지개를 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아모스가 얼어붙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이미 6명의 선수들이 방출 통보를 받았고, 아모스는 따로 언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었다.
“앉지.”
“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7년 째인가?”
“그렇습니다.”
“축구하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보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말이야?”
디아스는 책상 위의 서류들을 츄리면서 슬쩍 아모스를 보았다.
“축구는 계속 할 생각이야?”
그 말에 아모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마인츠05와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여기까진가? 어제 경기는 정말 즐거웠는데.’
독일에서 축구를 하는 유소년들은 분데스리가에 가겠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 만큼 분데스리가에서 뛸 수 있다는 건 신의 축복을 받은 이들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120만명에 달하는 축구인들 중에서 단 수 십명만 뛸 수 있는 꿈의 리그이기 때문이었다.
분데스리가 까지는 아니더라도 리가3에서 뛸 수만 있다면, 전업으로 축구를 할 수 있을 텐데.
“네.”
아모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이번 시즌 끝나면…”
디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을 보았고, 아모스는 곧 이어질 방출 통보를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도르트문트 II에서 뛸 수 있겠어?”
“……?”
“대답이 없냐?”
“…네?”
아모스는 도르트문트 II 라는 단어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디아스 감독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왜 싫어?”
“아닙니다. 다…당연히 뛰어야죠.”
“그래. 다음 주 월요일에 재계약을 할거야. 괜찮겠지?”
그제야 아모스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정말요? 당연하죠! 무조건 괜찮죠.”
“그래. 그러면 나가서 쉬어라.”
“네. 감독님!”
아모스는 날아가듯 감독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고 몸을 돌리는 순간 아모스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움찔거렸다.
“재계약 한 거야?
최준호였다.
아모스는 두 팔을 쫙 벌려서 눈앞에 서 있는 최준호를 갑작스레 안았다.
“으익! 뭐 하는 짓이야?”
“네 덕분인 거 같다. 어제 활약이 내 축구 인생을 바꾼 게 분명해.”
“내 덕분이라니?”
“네가 락커룸에서 그 이야기를 안 했으면 난 내가 정말 뭘 잘하는 지 몰랐을 거야. 정말 고마워.”
최준호는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축하한다. 그리고 우는 거 아니지?”
“하압! 얼른 부모님에게 알려야겠다.”
아모스가 몸을 돌려 복도를 뛰어가자 최준호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과거 선수 시절에는 다른 선수들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당장 나에게만 신경 써도 시간이 모자란 것 같았으니까.
‘이런 기분도 나쁘진 않네.’
최준호는 몸을 돌려 문을 두드렸다.
– 똑똑똑.
“들어와!”
최준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에 앉아 있던 디아스가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잠시 앉지.”
“네.”
“에이전트를 통해서 들었다. 3부 리그로 임대를 가고 싶다고?”
“네. 감독님.”
“그곳은 아주 거친 곳이야.”
우리가 매체를 통해서 보는 축구 경기는 한 국가의 최고 리그 경기들이었다.
이곳에는 정말 공을 신들린 듯 다루는 선수들이 모여 있기에 아기자기한 패스 게임을 할 수가 있다.
2부 리그도 어느 정도는 축구 같은 게임을 하지만, 3부 리그부터는 패스 게임보다는 뻥 축구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공을 다루는 솜씨가 1부나 2부 리그보다 형편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공을 길게 차 놓고 그것을 받으려니 거친 몸싸움이 일상이었다.
디아스 감독의 걱정도 이해가 갔지만, 아이가 부모의 곁에 떨어져서 홀로서기를 하며 어른이 되듯 축구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경험을 쌓아야 한다면, 좀 더 일찍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디아스는 눈을 돌려 오전에 구단측에서 내려온 메일을 다시 한 번 보았다.
투헬이 가능한 빠르게 최준호를 1군으로 올리고 싶다는 의견서가 첨부된 메일이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 선수 등록 규정 상 16.5세가 넘어야 했다.
지금 최준호의 나이는 15.4세이니 1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했다.
‘U-19에서 경험을 쌓다가 바로 1군으로 콜업 되는 것보다는 3군으로 임대가서 경험을 쌓다가 올라가는 게 좋긴 하지.’
보통 아이들은 두려워하거나 망설이는 경우가 많지만, 최준호는 그렇지 않았다.
‘하긴 홀로 독일에 와서 축구를 하는 녀석이니까.’
3개월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디아스는 최준호가 어디를 가더라도 잘 적응할 만한 성격을 가진 선수라는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각오가 충분히 되어 있지?”
“네. 감독님.”
“알았다.”
**
“으랏차!”
이틀 동안 세 탕을 뛴 최현식은 피곤한 모습으로 트럭에서 내렸다.
준호가 독일에 가서 스스로 축구를 하게 되면서, 나가는 돈이 줄어들어서 빚을 좀 더 빨리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이대로 2년만 더 하면 되겠군.’
잠시 스트레칭을 하던 그는 휴대폰을 보면서 대출금을 확인하고는 베시시 웃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유튜버를 틀었다.
<새벽의축구도사> 라는 유튜버가 준호의 경기를 영상과 함께 매번 다루고 있었는데, 최현식은 그 영상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아들!’
준호가 U-19에서 주전 자리를 금방 꿰차더니 이제는 매 경기마다 공격 포인트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최현식도 덩달아 신이 났다.
마인츠05 와의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2개나 하는 장면을 보며 최현식도 살짝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축구 도사가 되었나?’
밤낮으로 일하느라 준호와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한 게 내심 아쉬웠다.
“야, 최현식.”
휴대폰을 보며 걷던 최현식은 익숙한 목소리로 고개를 돌렸다.
에이전트를 운영하고 있는 박홍기였다.
“어, 홍기야. 웬일이야?”
“왜긴? 식사했어?”
“아직.”
“가자. 내가 점심 사줄게.”
둘은 가까운 고깃집으로 향했다.
“소주?”
최현식은 시원한 맥주가 생각이 났지만, 통화만 하면 몸조리 잘하라고, 술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준호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맥주로. 입가심으로 한 잔만 하자. 저녁에 또 일해야 해서.”
“알겠어.”
박홍기는 주문을 하고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최현식에게 건네주었다.
“뭐야? 이게?”
“이번 U-17 청소년 국가대표 엔트리에 준호 이름이 올라갔다.”
“정말?”
최현식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종이를 보았다.
“응. 이제 그 녀석 국가대표야.”
박홍기는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최현식을 보며 맥주 뚜껑을 땄고, 현식은 종이를 내려놓고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꾹 물고 있는 입술이 조금씩 떨리는 걸 보던 박홍기의 눈가도 살짝 붉어졌다.
“하아… 진짜…구나.”
“축하한다. 한 잔 받아라.”
“그래. 고맙다.”
둘은 맥주를 한 잔씩 주고받으며 잔을 튕겼다.
“그리고, 준호한테 독일 3부 리그 팀에게 임대 오퍼가 왔어.”
“어 진짜?”
“아직 못 들었구나.”
“성인팀에서 활동하기에는 준호 녀석 아직 어린데.”
현식이 걱정스럽게 묻자, 박홍기가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 아주 야무진 녀석이야.”
“그래도.”
“담당 에이전트에게 물어보니 적극적으로 3부 리그 팀으로 임대가고 싶다고 하더라.”
독일의 3부 리그라면 만만치 않은 리그였다.
한국으로 치면 K2 리그?
유스 팀이 아니라 진짜 프로 리그였다.
이제 15살인 아들이 그런 곳에 간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 최현식이었다.
“그 녀석 어쩌면 한국인으로는 가장 이른 나이에 프로 데뷔하는 선수가 될 거 같은데?”
박홍기의 말에 최현식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정말 너무 좋은 일만 일어나서. 꿈인 거 같기도 하고.”
“적어도 꿈은 아닐 거야. 내가 보증하지. 그 녀석 임대 승낙할 거지?”
“준호가 원하면 그렇게 해줘야지.”
“그래.”
**
SV 메펜.
15/16 시즌 리가 3으로 승격.
주 포메이션 3-5-2 역습 전술.
현재 리가 3에서 3승 6무 22패로 리그 꼴찌.
최근 핵심 선수인 미드필더 리처드 볼프강의 이탈로 3연패 중인 메펜의 선수들은 표정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남은 7경기를 모두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자력으로 강등을 면할 수가 없는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5살 짜리를 데리고 온다고?”
“U-19 쪽에서는 꽤 유명하다던데?”
“아무리 그래도 15살은 선 넘었지.”
메펜 선수단의 평균 연령은 31살이었다.
최고령자는 골키퍼 마테우스로 올해 41살이었고, 가장 어린 선수는 최전방 공격수인 루스로 25살이었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7천만원.
오랫동안 리가3에서 버틴 팀들보다는 굉장히 낮은 주급이었지만, 레기오날리가의 대부분 팀이 전업 축구 선수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걸 고려해볼 때 이들의 사정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또 다시 강등을 하면 구단의 재정 상황을 볼 때, 주급 삭감을 당하거나 혹은 방출을 당할 게 분명했다.
“나이로 축구 하면 나는 이미 은퇴했어야겠지?”
팀의 최고령자이자 주장인 마테우스가 무릎에 테이핑을 하며 그들의 걱정을 일축 시켰다.
“그래도 15살이면 축구를 얼마나 했겠어? 서로 몸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경기하는 U-19가 아니라고. 여긴 까딱하면 다리 부러져 실려 나가는 성인 리그잖아.”
“감독이 직접 가서 경기를 봤다니까, 선입관 가지지 말고 좀 믿어봐.”
크리스티안 나이트하르트는 레기오날리가에서 빌빌 기던 팀을 재정비해서 리가3 까지 끌어올린 능력있는 감독이었다.
“…하여튼 주장은 대책 없이 긍정적이야.”
“걱정만 해서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나도 걱정하겠지. 자, 다들 나가자. 다음 경기는 무조건 잡아야 해.”
마테우스가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하자,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선수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15살이면 주장한테는 아들 뻘이네?”
“아, 그렇게 되나?”
“그렇네. 아들이랑 같이 축구 하는 거네. 하하하.”
동료의 소리에 마테우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쁘지 않네. 하하하!”
**
그날 저녁.
최준호는 한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키가 크고 금발의 미남형인 중년 남성이었다.
“반갑네. 나는 SV 메펜의 감독 크리스티안이네. 크리스라고 불러.”
“반갑습니다. 최준호입니다. 초이라고 불러주세요.”
보통 임대는 구단과 구단 합의 끝나면 선수에게 통보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독특하게도 임대를 원하는 구단의 감독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갑자기 찾아와서 당황스럽고 그런 건 아니지?”
“네. 괜찮습니다.”
크리스는 최준호와 몇 마디를 나누고는 그가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에 잠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의사소통 부분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겠군. 아주 좋아!’
“다름이 아니라 임대로 합류하면 자네는 바로 다음 경기에 나와야 할 것 같아.”
“자원이 없나요?”
“있지만 다들 부상에 시달리고 있거든.”
물론 아픔을 참고 뛸 수 있는 녀석들도 있긴 하지만, 강등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는지 훈련에도 도통 의욕이 없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렇군요.”
“우리는 3-5-2 포메이션을 쓰고 있어. 저번 시즌 승격한 팀이라 선 수비후 역습전술을 쓰고 있지….”
크리스는 최준호에게 메펜의 전술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다면 역습 상황에서 전방의 공격수에게 한 번에 찔러주는 패스가 있어야겠군요?”
“그렇지! 마인츠05에서 보여주었던 그런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바로 자네를 주전 미드필더로 쓸 생각이야. 많은 경기에 나가게 될 것이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되겠지. 그것들이 자네를 한층 더 성장시킬 것이고.”
최준호는 크리스가 자신을 매우 원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이미 행정적인 부분도 다 준비를 해놨네. 단기 임대긴 하지만 나와 함께 팀을 이끌어주었으면 좋겠어.”
크리스는 부담이 갈 정도로 반짝이는 눈빛으로 하며 최준호의 손을 꼭 잡았다.
‘어차피 임대 제의를 한 팀은 이 팀 하나뿐이니까.’
서로 다치지 않게 몸조심하며 경기하는 U-19와는 차원이 다른 격렬한 게임이 될 테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성인 무대에서 이 몸뚱이를 제대로 쓰는 법을 익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주전 미드필더로 써 주신다는 거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야망이 가득한 눈빛을 한 채 묻는 최준호.
그가 겪었던 그 어떤 동양인 선수들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자랑하지 않고, 나서지 않고, 겸손을 미덕으로 아는 아시아인과는 좀 달랐다.
크리스는 그가 매우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