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30)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30화(30/184)
30화 SV 메펜(2)
“진짜 가냐?”
자신의 짐들을 캐리어 하나에 몽땅 집어넣은 최준호를 보며 김우영이 툴툴거렸다.
“왜 내가 없어지니까 막 슬프고 그래?”
“…미친 새끼.”
서운함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김우영의 대답은 예상 그대로였다.
“…너 가면 아침마다 운동은 어떻게 하냐?”
“토마스랑 같이 해. 하루도 빼먹지 말고.”
“씨발, 진짜 가냐?”
“그래. 나 간다.”
“야!”
최준호가 캐리어를 끌고 문을 열자 김우영이 소리쳤다.
“우영아.”
“……”
“너 앞으로 나랑 같이 축구 하고 싶으면 계속 목숨 걸고 훈련해야 할 거야.”
“……”
“잘 있어라. 내가 미친 듯이 보고 싶어 울거 같으면 연락해.”
“…미친놈.”
최준호는 쿨하게 손을 흔들고 복도를 나서는데 토마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토마스가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축구공을 최준호에게 건네 주었다.
“뭐야?”
“고맙다. 내 우정의 표시다.”
최준호가 축구공을 받자 토마스가 최준호를 와락 안았다.
“내 평생 초이를 잊지 않을거다.”
“……”
“언젠가 유명한 선수가 된다면, 내 자서전에 초이의 이야기를 넣겠다.”
“…토마스.”
“응?”
“나 지금 죽으러 가는 거 아니거든? 내년 이 맘때쯤에는 다시 돌아올거야.”
“……”
“그리고, 축구공 하나에 2,400 유로 퉁치려고 하는데 어림없어. 돌아오면 반드시 받을 거야. 그러니까 방출되지 말고 우영이랑 열심히 운동해.”
“어…어떻게 알았어?”
“그런 것도 모르고서 경기장에서 상대편을 어떻게 속이냐? 너도 내가 막 보고 싶어 울고 싶어지면 전화해. 축구공은 잘 쓸게.”
최준호는 역시나 쿨 하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SV 메펜에서 보낸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초이.”
밖에는 아모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통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그걸 최준호에게 주었다.
“뭐야?”
“우리 어머니가 너 가져다주라고 해서.”
“어머님이?”
“네 이야기하니까, 좋은 친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밤새 구워주셨어.”
양이 상당히 많아 보였다.
최준호는 방긋 웃으면서 쿠키 통을 받았다.
“고마워. 어머니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주고.”
“그래. 아, 나 다음 주부터 도르트문트 II로 가.”
“빠르네?”
“응. 너 가는 곳이 SV 메펜이지?”
최준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모스가 말했다.
“그럼, 우리… 마지막 라운드에서 붙겠네.”
도르트문트 II는 3부 리그에 등록이 되어 있었고, 현재 10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 조만간 보겠네.”
“그때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물론이지.”
“거기 단기 임대 끝나고 돌아올 거지?”
그 말에 최준호는 고개를 올려 BVB 라고 커다랗게 새겨진 유소년 아카데미를 올려다보았다.
사실 그의 축구 인생사를 보면 BVB 도르트문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선입견 없이 오로지 축구 실력으로만 평가해서 계약을 맺어주고, 또 마음 맞는 동료와 감독 코치진들이 있다보니 저절로 좋은 감정이 떠올랐다.
“당연하지.”
비 EU권 선수가 활동하기에 독일 만큼 좋은 나라도 없으니까.
도르트문트라는 명문이라면 챔스 리그에 얼굴을 들이밀 수도 있고.
“다치지 말고, 나중에 경기장에서 보자.”
“그래.”
아모스가 주먹을 내밀었고, 최준호도 주먹을 가볍게 맞대고는 몸을 돌렸다.
**
독일 북부 지방에 있는 메펜.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닿은 곳으로 엠스강과 하제강, 노르트라데강, 도르트문트엠스운하 가 합류하는 곳에 있었다.
높은 건물이 없는 평지여서 뭉게구름 밑으로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방목을 해서 키우는 염소들이 차에 달라붙어 네모난 눈동자로 기웃기웃 거리며 방해를 하기도 했다.
메펜의 시내로 들어오자 꽤 많은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자 오래되었지만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줄무늬처럼 색칠된 축구장이 나타났다.
2층 규모의 관람석이 보였고, 스타디움 근처에는 경기 열릴 때마다 먹을거리와 맥주 유니폼 같은 굿즈를 파는 부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레기오날리그에서 올라왔다고 해서 작은 규모일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스타디움의 크기는 제법 커 보였다.
“경기장에 관중들이 많이 오나요?”
“그럼. 홈 경기 때는 관중석이 꽉 차지. 평균적으로 13,000 명 정도가 올 거야.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거의 온다고 보면 돼. 경기가 열리는 날은 마을 축제지.”
“아, 그렇군요.”
대부분의 유럽이 그렇듯이 가족 중심의 사회였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회식을 하자고 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사회였고.
그런 그들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여서 스트레스를 푸는 날이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최준호가 탄 차량은 SV 메펜의 스타디움인 한슈 아레나에서 조금 더 떨어진 주택 앞에 섰다.
“여기는…?”
“구단 합숙소가 너무 오래되서 정비를 하고 있네. 이번 시즌까지는 여기서 머물게 될거야.”
‘와? 개인 주택?’
분데스리가 급 선수도 아니고 설마?
“구단에서 임대한 주택인가요?”
“아니야. 주장인 마테우스의 집이야.”
뭐,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함부르크에 있던 박홍민도 일반 가정집에서 먹고 자며 축구를 했었으니까.
하지만, 머물러야 할 집이 소속팀 주장의 것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졌다.
“정문으로 들어오면 오른쪽에 1층 건물이 있을 거야. 그곳이 락커룸이니까 내일 8시 30분까지 와.”
“알겠습니다.”
캐리어와 새 축구공 그리고 쿠키통을 든 채 주택 앞에 홀로 남겨진 최준호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살폈다.
집은 지은 지 오래되었지만, 여기저기 손을 본 자국이 있었고, 마당의 잔디는 잘 깎여져 있었다.
집 옆에는 바베큐 그릴과 테이블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야외 파티를 즐기는 모양이었다.
공기는 놀라울 정도로 신선했고, 날씨는 살짝 쌀쌀했다.
“후아.”
최준호는 한숨을 크게 쉰 뒤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 똑똑똑
얼마 후에 문이 스르륵 열렸다.
인상이 좋고 키가 큰 금발의 중년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밀라는 쓴 안경을 한 번 고쳐 쥐고는 고개를 내려서 최준호를 보았다.
“최준호 선수?”
“네. 반갑습니다.”
“밀라 라고 해. 반가워.”
밀라가 반가운 표정으로 문을 활짝 열었다.
“들어와.”
그녀는 최준호의 커다란 캐리어를 번쩍 들어서 먼저 안으로 향했고, 최준호는 나머지 짐을 들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집은 아주 깔끔했고 굉장히 좋은 향기로 가득했다.
현관 옆에 있는 신발장에는 축구화로 가득했고, 낡은 축구공들이 바구니에 잔뜩 담겨 있었다.
그리고 꽤 많이 진열된 트로피들.
‘축구하는 선수 집이 맞네.’
밀라는 힘이 어찌나 센지 꽤 무거운 캐리어를 한 손에 든 채 성큼성큼 2층으로 향했다.
2층에는 2개의 방이 있었는데, 그중 한 방은 누가 쓰는 듯했고, 한 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방이 좋네요.”
“그럼 다행이네. 자, 이건 키야. 잃어버리지 말고.”
최준호가 키 뭉치를 받자 밀라가 말을 이었다.
“마테우스가 팀에 아주 중요한 손님이라고 그렇게 강조를 하더라. 짐 정리하고 쉬다가 7시에 저녁 먹으러 내려오렴. 마테우스도 그때 같이 식사를 할거야. 여기에 있을 동안은 식사 걱정은 하지 마렴.”
너무 자연스럽게 방에 혼자 남겨진 최준호는 침대에 잠시 앉아보았다.
새 침대인지 삐그덕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내다보니 한슈 아레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좋네. 식사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숙식하는데 따로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주인은 친절하고. 이렇게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해주는 걸 보니 팀 적응에도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최준호는 얼마 되지 않은 짐을 풀고는 토마스가 준 새 공을 들고 밑으로 내려갔다.
하루 종일 차만 타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해서 뛸 경기장을 구경할 겸 한슈 아레나에 가보기로 했다.
**
스타디움 관리자에게는 이미 언질이 된 듯 최준호는 아무런 방해 없이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훈련장으로 보이는 그라운드에는 여러 선수들이 모여서 훈련을 받고 있었고, 최준호는 그들을 방해할 생각이 없기에 메인 그라운드 주변에 섰다.
‘인조 잔디네. 축구화는 AG 타입으로 써야겠고. 구장 사이즈는 표준형. 관중과의 거리는 상당히 가깝네. 화가 난 관중이 난입이라도 하면 곤란해지겠지만, 관중과 호흡하기에는 괜찮네. 페인팅도 차분하게 되어 있고, 햇빛 가리개도 있고, 디지털 전광판도 달려 있네?’
메인 그라운드 주변을 다니며 하나씩 파악하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헤이! 공 좀 차 줘!”
축구공 하나가 저 앞에서 굴러오고 있었다.
꽤 50미터는 될 법한 먼 거리였지만, 최준호는 굴러오는 공을 가볍게 찼다.
– 뻥.
제법 커다란 소리를 내며 높게 뜬 공은 손을 흔들던 루스 앞에 정확히 떨어졌다.
볼을 터치해서 손에 든 루스는 살짝 놀란 눈초리로 메인 그라운드 주변을 서성이는 최준호를 다시 쳐다보았다.
‘뭐야? 저 녀석?’
루스는 다시 한번 거리를 가늠해봤는데, 50미터보다 더 긴 것 같았다.
‘설마 내 발 앞에 떨어트린 게 아니겠지? 그냥 우연이겠지?’
한눈에 봐도 작고 날렵한 스타일의 몸이었고, 이런 킥력이 나올만한 타입은 아니었다.
“왜 무슨 일인데?”
루스가 공을 들고 돌아가자 마테우스가 물었다.
“혹시 저 녀석 누군지 알아? 주장?”
루스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던 마테우스는 잠시 뚫어지게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왔네. 동양인 용병 녀석.”
“엉? 그럼 쟤가 우리 팀에 합류한다는 그 15살짜리 녀석?”
“맞아. 신문에서 일부러 찾아봤거든. 그런데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이야?”
“너무 황당한 롱 패스를 받은 것 같아서.”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루소가 다시 한번 최준호 쪽을 보다가 환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경기를 뛰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패스가 온다면 굉장히 좋은 찬스를 잡을 것 같았다.
“예상 외인데? 갑자기 저 친구가 좋아지려는 것 같아.”
“…뜬금없는 녀석이네.”
주전 공격수인 루소에게 좋은 인상을 줬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었다.
마테우스는 공을 리프팅하며 메인 그라운드 주변을 돌아다니는 최준호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느낌이 좋아. 아주.’
“왜 무슨 일이야?”
다른 선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사이, 최준호는 운동장의 사이즈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보폭을 세고 있었다.
2008년에 FIFA 평의회에서 신설되는 경기장은 길이 105m, 폭 68m 로 통일하자고 했지만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국제 축구장 규격인 100~110m, 64~75m 안에만 들면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까.
문제는 서로 다른 크기의 운동장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상대팀의 크로스가 매우 부정확해진다는 점이었다.
홈 팀에 유리하게 작용 되는 점이 있기 때문에 클럽들은 굳이 규격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여기 운동장은 105m에 70m 규격이네? 도르트문트 경기장과는 좀 달라. 아침에 일찍 나와서 사이즈에 적응할 필요가 있겠어.’
그라운드 사이즈를 감각적으로 잰 최준호는 식당, 피트니스 시설, 목욕탕이 모여 있는 부대시설 건물로 향했다.
굉장히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답게 여기저기 보수를 많이 한 흔적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부는 새로 인테리어를 했는지 현대적이었고, 화장실에 비데도 설치가 되어 있었다.
선수들의 숙소로 보여지는 곳은 공사 중이었고, 식당은 제법 넓직했다.
‘나쁘지 않네. 3부 리그 팀치고는 대부분 다 갖추고 있어. 구단주가 꽤 애정을 가지고 운영을 하는 것 같아.’
최준호는 산책을 하듯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목욕탕 앞에서 멈추었다.
‘얼음찜질실이 없는 건 아쉽네.’
하지만 한눈에 봐도 목욕탕은 제법 규모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는 건 사우나와 여러 온도의 대형 욕조가 있을 거라는 소리였다.
‘여기서 찜질 좀 하다가 돌아가자.’
옷을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간 최준호는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로 누군가 씻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목욕탕 안은 안개로 뿌옇게 되어 있었고, 최준호는 물소리가 나는 근처로 가서 샤워기를 틀었다.
– 쏴아아아.
“…누구?”
“……!”
대각선 맞은편에서 나는 소리에 최준호의 눈동자가 살짝 커지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웬 여자 목소리?’
– 찰방찰방.
순간 최준호는 독일의 일부 지역의 목욕탕은 남녀 구분 없이 들어가는 혼탕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설마?’
“누구?”
얼마 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몸을 돌린 최준호는 벼락을 맞은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
큰 키에 몸매가 매우 뛰어난 젊은 여성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 여성은 최준호의 몸을 한 번 훑더니 피식 웃음을 짓고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목욕탕 밖으로 나갔다.
‘클럽 내에 혼탕이라니 미친 거 아냐?’
최준호는 눈을 내려 자신의 몸 밑을 보다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존슨 이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