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31)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31화(31/184)
31화 SV 메펜(3)
“마테우스 바우어야.”
190cm가 넘는 키에 다부진 체격을 가졌지만, 최준호가 상상한 것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였다.
“최준호에요.”
공을 굉장히 잘 다룬다는 감독의 언질이 있긴 했지만, 여리여리한 몸매를 보니 좀 걱정스럽긴 했다.
얼굴도 곱상한 게 축구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였고.
3부 리그는 조금 과장하면 기술보다는 몸싸움으로 축구 경기를 하는 곳이다 보니 선수들의 체격이 전반적으로 다 컸다.
몸싸움이 주다 보니 거친 태클이 다반사여서 어떤 감독은 기술보다는 몸의 내구성을 중요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최준호가 당당하게 악수를 내밀자 마테우스는 걱정을 누그러트렸다.
“반갑다.”
“반가워요.”
“내 집이 불편하거나 그러진 않지?”
“그럼요. 좁은 클럽 숙소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이죠. 아주 마음에 들어요.”
마테우스는 붙임성이 좋은 최준호를 보며 걱정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좋은 녀석이네.’
“밀라가 식사를 준비해놨으니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네.”
문 앞에서 간단한 대화를 나눈 최준호는 마테우스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다들 어서 와요.”
밀라가 식탁에 음식을 올리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식탁 위의 음식을 보니 독일 전통 가정식 요리가 아니라 식단 조절을 하는 선수를 위한 것으로 보였다.
바나나, 토마토, 오믈렛, 훈제한 양고기, 구운 새우와 조개류 그리고 한 바구니의 통밀빵.
최준호는 의자에 앉아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식단의 고급 버전 같았기 때문이었다.
“레아! 내려와라!”
밀라가 2층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고, 2층에서 우당탕거리며 누군가 내려왔다.
그리고 최준호는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
“어?”
최준호와 레아는 서로를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마테우스가 물었다.
“서로 아는 사이냐?”
레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최준호가 얼른 대답했다.
“아까 클럽 건물 안에서 봤어요.”
“아, 그래? 아마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눈에 봐도 학생 같았는데, 자주 보게 된다니?
레아가 최준호를 보며 눈을 찡긋하였다.
“반가워. 레아야.”
“어. 최준호.”
“이름 어렵네. 별명 없어?”
“초이라고 불러.”
“응. 초이. 난 SV 메펜에서 여자팀에 있어. 포지션은 아버지 따라서 골키퍼.”
여자축구선수?
“난 메펜 클럽에 잠시 임대 왔어.”
“아버지한테 들었어. 설마… 그게 너일 줄은 몰랐네?”
레아가 무언가를 상상하듯 기묘한 웃음을 지었고, 최준호는 고개를 마테우스에게로 돌렸다.
‘아놔. 뭔 이런 우연이!’
“SV 메펜 여자팀은 현재 1군 프라우엔-분데스리가에서 리그 경기를 벌이고 있어. 우리 레아는 그 팀의 주전 골키퍼지. 그리고 안네-프랑크-슈렐 김나지움에 다니고 있지.”
“축구를 하면서 김나지움이요?”
김나지움은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이른 나이에 아이들의 적성에 따라서 레알슐레, 하우프트슐레, 김나지움으로 나뉘는 독일 교육 시스템상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였다.
“축구를 할지 공부를 할지 아직 결정을 못 해서.”
“그럼 둘 다 잘한다는 거네요?”
최준호의 말에 레아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난 다 잘해. 그런데 너 독일어 정말 잘한다. 네이티브 같아. 독일에 대해서도 되게 잘 아는 것 같아. 한국 국적이라고 했지?”
“응.”
“히히.”
뭐가 좋은지 레아가 싱글벙글 웃었다.
“근데, 얘는 원래 이렇게 잘 웃어요?”
최준호가 레아를 가리키며 말하자, 밀라가 의자에 앉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닮아서 항상 낙천적이고 잘 웃지.”
“허험.”
마테우스가 아내의 칭찬에 머쓱한지 웃음을 지었다.
딱 보니 레아와 마테우스의 웃는 모양이 딱 판박이였다.
‘아버지 닮았네. 큰 키도 웃는 모양도.’
**
식사하고 이른 시간에 잠이 든 최준호는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환경이 바뀌어도 매일 하는 개인 훈련에 빠질 수는 없었다.
정신적인 능력이나 기술적인 능력도 많은 경험 덕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역시 피지컬은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었다.
조용히 문을 나서자 옆 방에서 코를 고는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1층에는 마테우스 내외가 머무는 방이 있어서 고양이처럼 조용하게 집을 빠져나온 그는 문 앞에서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잠시 스트레칭을 하였다.
“몸이 유연해야 다치지 않지.”
그는 중얼거리면서 몸속의 근육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요가에서 가르쳐 주는 것들이었다.
최준호는 과거에도 큰 부상이 없었다.
아마도 늦게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서가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5살 이전에 축구를 하다가 다치면, 커서 그 여파가 꽤 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스 시절에 굉장히 많은 경기를 뛰면서 여러 번 다쳤다가 성인이 돼서는 잦은 부상으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천재 선수들이 많기도 했다.
중학교 축구부에 입학했지만, 이래저래 제대로 된 경기를 뛰어본 적이 없는 최준호는 어려서부터 발목 한 번 삔 적이 없었다.
도르트문트로 오기 전에는 몸에 유연성을 더하는 운동을 함께 하고 여러 근육을 강화하기도 했지만, 애초부터 무리한 움직임 자체를 가져가지 않았기에 여전히 아픈 곳은 없었다.
또한 독일에서 포칼컵을 겪으면서 독일 하부 리그 선수들이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최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거칠지. 물론 EPL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관절들을 풀어주는 차원에서 가볍게 한슈 아레나까지 뛰어간 최준호는 클럽 내부에 마련되어 있는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없었다.
축구선수의 피지컬은 헬스처럼 근력만 키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에버튼 시절 피지컬 괴물들에게 밀려 너무 답답해서 코치들의 말을 무시하고 근력만 키웠다가 신체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도 했었고.
코치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들의 도움이 없어도 이제는 스스로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잘 아는 최준호였다.
하지만 최준호는 가장 먼저 자동으로 키와 몸무게를 측정해주는 기구 위로 올라갔다.
…175cm 67kg.
“…진짜?”
최준호는 다시 한번 측정했다.
…175cm 67kg.
도르트문트 캠프에 입소할 때 172cm였으니까…
컸다!
무려 3cm나!
**
– 안녕하세요. 최준호입니다. 실력은 경기장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꽤 짧고 매우 당돌했던 임대생의 소개를 떠올린 감독 크리스는 이틀 후에 있을 32라운드 8위를 하는 Vfl 오스나브뤼크와의 경기를 대비해서 최준호의 실력을 가늠해볼 생각이었다.
일단 그의 체력 수준을 확인해보아야 했다.
“Yo-Yo 테스트 준비해.”
20미터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선수단 전체의 체력 수준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훈련이었다.
이것은 간헐적 회복 테스트라고도 불렸다.
20미터의 거리를 일정 시간 안에 반복적으로 달리는데, 이 시간이 매번 짧아진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그러니까 반복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빨리 달려야 하는 훈련이었다.
시간 안에 20미터를 달리지 못하면 실패.
이 횟수가 많을수록 체력이 좋다고 평가가 되었다.
– 빙!
커다란 소리에 선수들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40번 정도를 반복하면 제법 체력이 좋다고 할 수 있는데, 30번 정도 되자 선수들이 하나씩 실패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 빙!
41세인 마테우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41번 째에서 떨어져 나갔고, 달리고 있는 선수들은 고작 5명이었다.
주전 공격수인 루소와 양 윙백인 갤러거와 마크 그리고 미드필더 사챠와 최준호였다.
다만 인상이 완전히 찌그러진 다른 이들과 달리 최준호는 규칙적인 호흡을 계속하고 있었다.
도르트문트에서 이미 분석했듯이 그의 몸은 지구력에 특화되어 있었다.
– 빙!
43번째에 루소와 사챠가 떨어져 나갔다.
‘스트라이커랑 주전 미드필더 체력은 좋은 편이네.’
최준호는 슬슬 가쁘게 올라오는 숨을 규칙적인 호흡법으로 억누르며 더 빠르게 속도를 내었다.
– 빙!
이제는 쉴 시간조차 없이 계속 벨이 울렸다.
“카악.”
갤러거가 피 토하듯 소리를 지르며 45번째에 떨어져 나갔고, 마크와 최준호만 계속 달리고 있었다.
“저 녀석 장난이 아닌데?”
“이러다가 갑자기 요요 테스트 1등 하는 거 아냐?”
“예상도 못 했네. 저게 15살짜리 체력이라고?”
이미 떨어져 나간 선수들이 모여서 거의 자존심 대결을 하는 마크와 최준호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 녀석 느낌이 좋아.”
루소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강등 위기에 놓인 SV 메펜.
선수들은 모두 새로 온 임대생이 제 역할을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50번째 벨이 울렸고, 이제 쉬는 시간 따위는 없었다.
계속 더 빨리 달려야 하는 상황.
‘이 괴물 자식!’
결국 마크가 50번을 채우지 못하고 그라운드에 뒹굴었고, 최준호는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를 들으며 끝까지 20m를 달렸다.
코치진들도 놀라 휘파람을 부를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최준호도 그라운드에 누워버렸다.
‘하아… 하아…’
격하게 숨을 토하듯 쉬던 최준호는 가물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적당한 선수가 될 생각이 없듯이, 어떤 훈련이고 적당히 할 생각이 없었다.
매번 자신의 한계를 테스트할 생각이었다.
**
최준호의 경기를 통해 여러 능력을 이미 확인한 크리스는 굳이 그를 더 테스트할 생각이 없었다.
요요 테스트가 끝나고 충분한 휴식 시간을 준 그는 선수들을 불러서 20분 정도 연습 경기를 시켰다.
이 연습 경기를 통해서 최준호가 얼마나 팀 전술에 녹아들 수 있는지 확인한 후에 선발 명단을 정할 생각이었다.
바로 A 팀의 조끼를 입고 미드필더 라인에서 뛰기 시작한 최준호.
‘당장 해야 할 것은 우리 팀 선수들부터 파악하는 거야.’
전술 자체가 수비에 치중되었고, 단 한 번에 패스에 상대 뒷공간을 부수는 공격법을 쓰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선수들이 전진 패스를 하기보다는 횡패스나 백패스를 하면서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뜻이었고.
공을 뺏기지 않도록 빠르게 패스를 하는 게 주 운영법이었다.
‘감독이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경기 시작하고 최준호는 골을 넣기보다는 동료 선수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신경을 썼다.
– 이 친구는 패스가 힘이 없네. 패스받을 때는 좀 더 가까이 붙어야겠어.
– 이 녀석은 패스를 줄 때 자꾸 앞 공간으로 주네? 뛰어들면서 받는 게 좋을 것 같고.
– 몸싸움은 잘하는데, 발밑이 되게 부정확해. 압박당하면 근처로 가서 도와주는 게 좋겠어.
– 스트라이커는 몸싸움에도 능하고 스피드도 괜찮네? 다만 침착성이 떨어지고 강슛을 좋아해. 세컨드 기회를 잡을 필요가 있겠어.
“뭘 딱히 보여주지는 않네.”
코치진들이 그들의 경기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패스는 굉장히 빠르네.”
“나이도 그렇고 피지컬도 저래서 걱정스러웠는데, 저렇게 빠르게 패스를 해버리면 압박을 당할 일도 없겠네.”
“그렇다고 정확도가 떨어지지 않아.”
“저 정도면 한 명 몫은 충분히 할 것 같군.”
경기가 15분 정도 지났을 때, 두 팀은 서로 골을 못 넣은 채 평형선을 달리고 있었다.
“패서로서는 괜찮긴 한데, 창의성이…”
– 뻥!
코치가 말을 잇지 못한 채 공중으로 높이 뜬 공에 시선이 향했다.
수비수 앞에서 공을 받던 최준호가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 뒷공간으로 떨군 긴 패스가 스트라이커인 루소에게 연결이 되었다.
‘기가 막히네!’
루소는 역회전에 걸려 정확히 자신 앞에 떨어진 후 얌전해진 공을 툭툭 치며 드리블을 했다.
그리고 골키퍼와 1:1 찬스에서 강슛으로 골문을 갈라버렸다.
루소는 멀리 있는 최준호를 가리키며 윙크를 날렸지만, 최준호는 어시스트에 관심이 없다는 듯 이미 몸을 돌려 되돌아가고 있었다.
‘역시 느낌이 좋아!’
**
이틀 후 토요일.
“진짜? 팀에 합류하고 이틀 만에 주전 출전이라고?”
오전 훈련을 끝내고 샤워를 하고 온 레아가 물었다.
그녀는 축축하게 젖은 금발의 머리를 수건으로 비비면서 놀란 눈으로 최준호를 한참 동안 보았다.
“응.”
“너 생각보다 대단하구나?”
“생각보다?”
레아는 무얼 생각했는지 기묘한 웃음을 지었고, 최준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히죽 웃었고, 최준호는 시선을 돌렸다.
“그럼 오늘 저녁에 응원하러 가야겠다!”
마테우스가 점심으로 준비된 오트밀을 먹다가 말했다.
“아버지 경기할 때는 안 오고?”
“맨날 지잖아? 지는 건 보기 괴롭다고.”
“오늘은 안 질 거 같고?”
“초이가 합류하자마자 선발로 출전한다는 건 잘한다는 뜻이고, 뭐랄까? 기대감이 생기잖아?”
“뭐야? 차별 대우야?”
마테우스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툴툴거리자 밀라가 끼어들었다.
“자자!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일단 먹는 거에만 신경을 써요.”
최준호는 눈을 돌려 식탁을 보았다.
역시 축구를 하는 집이라서 그런지 식단 하나는 철저했다.
오늘 같이 경기를 뛰는 날 많은 음식을 먹으면 컨디션이 저하되고, 몸이 무거워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경기 시작 전 3시간 단위로 먹는 것을 관리해야 했다.
경기에서 제대로 뛰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홍삼 가루를 탄 오트밀만 나오는 이유기도 했다.
홍삼 성분이 신체를 피로하게 만드는 젖산 성분을 줄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먹어보기는 최준호도 처음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
32라운드 오브나브뤽과의 경기.
SV 메펜은 강등을 피하기 위해서 이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