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33)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33화(33/184)
33화 VS 오스나브뤽(2)
선수들이 분위기를 탔다고 해서 실력의 차이가 가려지는 건 아니었다.
2골 먹을 거 1골 먹는 정도랄까?
오스나브뤽은 리가3 터줏대감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있던 팀이었다.
가끔 2부 리가까지 올라가서 2~3 시즌 정도 버티기도 했다.
매년 승격팀으로 손꼽히는 팀 중 하나였다.
이 팀의 핵심 선수는 왼쪽 공격수인 줄스 레이메링크로 상당한 수준의 개인기와 드리블 그리고 주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스나브뤽은 줄스를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발이 느린 메펜의 윙백 갤러거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또한 도르트문트II 에서 임대 온 모하메드 엘-부아자티에게 스위퍼 롤을 맡겨서 아까처럼 뒷공간을 뚜드려 맞는 걸 방지했다.
‘감독이 대응이 빠르네.’
20분 내내 메펜의 오른쪽을 공략한 오스나브뤽은 8번의 슈팅을 때렸지만, 메펜 수비수들이 몸을 날려 막고, 마테우스가 신들린 선방을 하면서 간신히 1점차 우위를 가져가고 있었다.
강력한 전방 압박 때문에 수비수에서 미드필더 라인까지 공이 돌지를 못했고, 계속 롱 패스가 나가면서 메펜의 공격은 무산되었다.
최준호가 후방 빌드업에 도움을 주려고 내려갔지만, 커다란 몸으로 밀어붙이는 그로스 때문에 팀원들이 공을 주지를 않았다.
무게 중심을 낮추고 버티고 있어도 불안한지 공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넌 오늘 절대 공을 못 받아. 엄마 쭈쭈 새끼.’
느닷없이 터진 골에 정신 차리라고 감독에게 혼쭐이 난 그로스는 최준호를 잡아먹을 것처럼 대인 방어를 하고 있었다.
결국 강한 압박에 못 이겨 또 수비진에서 롱패스가 나갔다.
몸싸움에서 루소를 압도하는 모하메드가 가뿐하게 헤딩으로 떨궜고, 상대 미드필더가 갤러거가 있는 공간에 쓰루패스를 넣었다.
줄스는 갤러거와 스피드 싸움에서 이겨 공을 따내었고, 개인기로 태클을 거는 갤러거를 제친 후에 메펜의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수비에 합류한 중앙수비수들이 오스나브뤽의 두 공격수를 마크하였지만, 공은 그 뒤에서 성큼성큼 들어오는 그로스에게 향했다.
헤딩 능력이 좋은 그로스는 날아오는 공을 보면서 점프를 하려고 무릎을 굽혔다.
‘동점을 만들어주마!’
누가 봐도 키가 작은 최준호가 헤딩 경합에서 불리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최준호는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수비법을 떠올렸다.
인간의 신체는 항상 균형을 맞추려고 부단히 움직이는데, 헤딩할 때 허벅지를 살짝만 건드려도 제대로 된 점프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우 뛰어난 수비수들은 굳이 격렬하게 상대와 몸싸움 경합 없이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림으로써 제대로 된 헤더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EPL의 수비수들이 대부분 이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고, 공격수들이 수비수들과 경합에서 이겨내 헤더골을 터트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쉬울 거 같냐? 골은 내가 없을 때 넣어라.’
최준호는 같이 점프를 뛰면서 용의주도하게 손으로 그로스의 허벅지를 가볍게 눌렀다.
‘익?’
한쪽 허벅지가 눌리자 균형감을 잃은 그로스는 헤더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공이 그의 머리에 맞았지만 힘 없이 골키퍼에게 날아갔고, 마테우스가 점프를 뛰어서 공을 잡아냈다.
오스나브뤽 선수들이 세컨 볼을 잡기 위해 페널티 에어리어 쇄도하는 상황이었고, 마테우스는 지금이 역습을 나갈 적기라고 판단을 하였다.
“역습!!!”
눈치 빠르게 왼쪽 윙백이었던 마크가 먼저 뛰기 시작했고, 마테우스는 주저 없이 그쪽으로 골킥을 날렸다.
메펜이 역습 전술을 쓸 수 있는 이유가 마테우스의 정확한 골킥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도 여지 없이 마크의 발밑에 떨어졌다.
“수비!! 수비!!”
하지만 오스나브뤽 선수들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었는지 수비수가 빠르게 마크에게 달라붙었다.
피지컬 차이가 커서 몸싸움을 하며 드리블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마크는 공을 한 번 접어서 수비수를 등지고는 패스를 할 곳을 찾았다.
루소는 모하메드에게 묶여 있었고, 또 다른 공격수인 크뤼거는 여전히 자신보다 밑에 있었다.
‘젠장! 왜 이렇게 늦어!’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오스나브뤽에게 내내 당하던 상황이라 공격수까지 수비라인으로 내려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아무런 방해 없이 달리는 최준호가 들어왔다.
그로스가 최준호의 뒤를 쫓아오고 있는데, 두 선수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는 마크가 패스하려던 찰나.
그를 수비하는 선수도 눈치를 챘는지 강하게 압박하면서 다리를 쑥 넣었다.
몸싸움에서 밀린 마크는 땅볼 패스를 한다는 게 잘못 맞아서 로빙 패스처럼 날아갔고, 최준호는 앞에서 자신을 마크하러 달려오는 선수를 보았다.
‘애매모호한데.’
이 그라운드에서 최준호보다 덩치가 작은 선수는 없었다.
몸으로 밀고 들어오면 꼼짝없이 헌납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최준호는 오히려 빠르게 쇄도했다.
오스나브뤽의 오른쪽 풀백 엥겔은 최준호가 저돌적으로 달려오자 살짝 주춤하였다.
혹시 경합하다가 돌파라도 당한다면 굉장한 위기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리하게 수비하지 말자.’
엥겔이 달려오는 속도를 떨구면서 수비 스텝을 밟는 것을 본 최준호는 묘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수비 훈련을 본격적으로 받으면서, 상대 수비의 행동을 좀 더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최준호는 날아오는 공을 가슴으로 트래핑 할 것처럼 속도를 줄이곤 몸을 틀어서 뒷걸음질 쳤다.
성난 표정으로 달려오는 그로스가 눈에 보였고, 엥겔은 아차 싶었는지 최준호가 돌아나가지 못하도록 몸싸움을 하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몸을 돌린 최준호.
날아오는 공은 그의 등을 맞고 앞으로 튕겨 나갔다.
몸을 돌린 최준호는 엥겔의 움직임을 보면서 미꾸라지처럼 빈 공간으로 빠져나갔고.
덕분에 달려드는 그로스가 엥겔과 부딪혔으며, 둘은 나동그라졌다.
최준호의 등에 맞은 공은 앞쪽 그라운드 떨어졌고, 최준호는 여유롭게 공을 길게 터치하곤 질주를 시작했다.
상대 수비수는 2명 메펜의 공격은 3명.
오늘 경기 시작하자마자 충격적인 골을 넣은 최준호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루소를 마크하던 모하메드가 고함을 치며 최준호에게 달려들었다.
표정을 보니 페널티 에어리어에 도달하기 전에 파울로 끊을 것 같았다.
“오른발 조심해! 오른발!”
골키퍼 마리우스가 고함을 질렀고, 최준호는 모하메드가 붙기 전에 중거리 슛팅을 때릴 것처럼 왼발을 디딛었다.
“젠장!”
모하메드는 안 되겠는지 슈팅 경로를 향해 슬라이딩 태클을 하였지만, 설마 그게 라보나 킥일 줄이야!
– 툭.
다리를 꼬아 오른발로 툭 민 공은 페널티 에어리로 들어가는 루소의 발 앞에 떨어졌다.
‘미쳤다!’
루소는 원터치 이후에 아무런 방해 없이 슈팅을 때렸고, 오스나브뤽의 그물을 갈라버렸다.
최준호의 개인기에 이은 놀라운 어시스트.
여기에 루소의 전매특허인 강슛까지!
정말 오랜만에 너무나 수준 높은 공격을 펼치는 SV 메펜이었다.
팬들은 너무 좋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고, 정말 오랜만에 골 맛을 본 루소는 관중석 가까이 까지 가서 연신 어퍼컷을 날렸다.
동료들이 달려들어 그를 에워쌌고, 미친 듯이 등을 두드려 주었고 주변의 관중들이 루소의 이름을 외쳤다.
최준호는 그 광경을 보며 가볍게 박수를 치고는 또 다시 오스나브뤽의 골대에서 공을 가슴에 품고 중앙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물병을 바닥에 던지는 오스나브뤽 감독의 성난 표정을 보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마라. 나도 성공할 줄은 몰랐으니까.’
**
양창명은 멍한 눈빛으로 공을 들고 달리는 최준호를 보았다.
‘내가 도대체 뭘 본 거야?’
등으로 볼을 터치해서 상대 수비수 2명을 제끼고, 라보나 킥으로 태클을 피해 패스를 넣는다고?
심지어 슈팅 동작에서 중간에 발을 꺾어 공을 인사이드로 깎아 차는 장면은 도무지 어떻게 했는지 설명하기조차 어려웠다.
2000년 중반에 세계를 놀라게 한 호나우지뉴 같은 선수들이 선보인 개인기를 15살짜리 한국 선수가 펼치고 있다는 게….
유스 경기에서도 놀라운 개인기를 펼치는 걸 보긴 했지만, 여긴 엄연히 레벨이 다른 성인 프로 리그였다.
이런 곳에서 긴장하는 모습 하나 없이 저런 개인기를 펼친다는 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겁이 없는 거냐? 아니면 정말 그런 수준의 선수인 거야?’
하지만 양창명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진짜 이런 기대감을 주는 선수는 처음인 거 같아.’
그의 머릿속에 어떤 기사를 써야할 지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한편.
메펜의 감독 크리스는 두 번째 골이 터지자 코치진을 얼싸안으며 좋아했다.
7경기를 모두 이겨도 17위 팀이 3승 이상을 해버리면 강등은 확정이었다.
그만큼 안 좋은 상황에서 리가3의 강호로 꼽히고 있는 오스나브뤽을 전반전에 2점 앞선다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더군다나 긴장을 풀지 않고 공을 들고 다시 중앙으로 향하는 최준호의 쇼맨쉽에 감탄을 터트렸다.
‘어리지만 리더쉽이 엄청난 선수네. 첫 리가3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긴장 같은 것도 없고, 다급해서 실수도 하지 않고. 자신보다 덩치 큰 선수를 상대로도 등을 지고 잘 버티고. 생각보다 수비력도 상당히 좋아. 그리고 공격력은… 여기에 있을 선수가 아니야. 어떻게 저런 선수가 나올 수가 있는 거지?’
속으로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독일인 특유의 무덤덤함 뿐이었다.
골 세레머니가 끝나고 다시 중앙으로 뛰어가기 시작하는 선수들.
첫 번째 골은 우연일 수도 있었지만, 방금 플레이는 절대로 우연하게 나오는 것이 아님을 다들 깨달았다.
선수들은 최준호가 큰 무대에서 뛸만한 자질을 가진 선수라고 인정했다.
그 깨달음의 결과물은.
– 턱.
그로스에게 압박당하는 상황에서도 패스가 온다는 것이었다.
최준호는 선수들의 바뀐 분위기에 빙그레 웃었다.
‘인정 받았네.’
무게 중심을 낮추면 아무리 작은 선수라도 몸싸움으로 밀어내기 힘든 법이었다.
키가 작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선수들은 대부분 무게 중심을 낮춰서 몸싸움을 견디는 기술에 능했고, 최준호는 그것을 점점 습득해 나가는 중이었다.
특히 그로스처럼 멍청하게 무게 중심을 낮출 생각이 없는 선수라면, 간단한 기술에 그를 허둥거리게 만들 수가 있었다.
공을 발바닥으로 컨트롤 하던 최준호가 민첩하게 어깨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로스 역시 왼쪽으로 균형을 가져가면서 강하게 밀쳤다.
하지만 마치 그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최준호는 힐 킥으로 그로스의 다리 사이에 공을 밀어넣고는 훨씬 빠른 동작으로 오른쪽으로 턴을 해버렸다.
무게중심이 낮을 때 턴 동작이 훨씬 빠른 법이었는데, 그로스는 깜짝 놀라 최준호를 막아 세우려고 했지만, 그의 몸이 따라오질 못했다.
결국 팔을 써서 스쳐 지나가는 최준호의 유니폼을 강하게 당길 수밖에 없었다.
“으악!”
최준호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그라운드에 엎어졌고, 그로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쓰러진 최준호를 보았다.
– 삐익!
그저 유니폼을 당겼을 뿐인데, 심판이 노란 카드를 빼들었다.
“어? 이거 시물레이션이야!”
그로스가 항의했지만, 심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과거 최준호의 별명은 악동이었다.
생긴 건 곱상한데 하는 짓이 악랄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물론 거친 1군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다 보니 그렇게 되긴 했지만.
그로스는 마치 큰 부상이라도 입은 듯 무릎을 잡고 뒹구는 최준호를 보면서 짜증과 절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로스의 말처럼 최준호의 시물레이션이긴 했다.
‘VAR이 없다는 게 이토록 편한 일일 줄이야. 넌 이제부터 나한테 쉽게 달라붙지 못할 거다.’
선수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달려왔고, 벤치에서 팀닥터가 뛰어왔다.
엄청난 활약으로 주말 저녁을 신나게 만들어 준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뒹굴자, 메펜의 팬들은 죽일 듯한 눈빛으로 그로스를 보면서 커다란 소리로 야유를 보내었다.
오스나브뤽의 감독 팀은 찡그린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저 꼬마 녀석 도대체 뭐야? 베테랑인 그로스를 오히려 가지고 노네?’
도무지 15살짜리 플레이라고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그의 찡그린 표정은 오늘 남은 경기가 절대로 쉽지 않다는 걸 의미하는 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