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34)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34화(34/184)
34화 VS 오스나브뤽(3)
레아는 아버지가 뒤스부르크에서 뛰던 시절, 우연찮게 팀 동료였던 한국의 연정환 선수를 보고는 그에게 흠뻑 빠졌다.
그 조각처럼 생긴 동양인 선수를 보고는 축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7살의 그녀는 벌써 키가 183cm에 달했고, 아버지의 유전자를 받았는지 매우 민첩하고 반사 신경이 뛰어났다.
연정환 선수처럼 공격수 포지션으로 지원했지만 결국 골키퍼가 되었고 지금은 메펜에서 주전 골키퍼 그리고, 독일 여자 축구 국가 대표의 일원이었다.
여자 분데스리가는 12개의 팀으로 이루어졌고, 경기는 2주에 한 번씩 이루어졌는데, 이번 주는 경기가 없는 주였다.
오랫동안 축구를 한 그녀는 당연히 선수를 보는 눈도 꽤 남달랐다.
‘저 녀석 장난 아니잖아? 수준이 완전히 다르잖아!’
레아의 눈에 최준호는 좋아했던 연정환 선수를 떠올리게 할 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머리를 길게 기르면 딱 그 모습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걸 상상하니 괜히 신이 난 레아가 큰 소리로 초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초이! 초이!!”
주변의 사람들도 같이 최준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메펜의 관중들이 열렬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후반 전.
전반전 노란 카드를 수집한 그로스가 최준호를 압박을 제대로 못하면서, 메펜의 경기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최준호가 적극적으로 3선으로 내려와 볼란치 역할을 하며 공을 운반하기 시작하자 오스나브뤽은 빈번하게 역습에 노출되었다.
최준호에게 시작된 스루패스가 루소에게 연결되었고, 모하메드가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앞에서 파울로 끊으면서 메펜은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를 잡았다.
“네 킥이 가장 좋더라. 초이가 차.”
원래 프리킥 담당이었던 갤러거가 양보를 하였고, 최준호는 홀로 공 앞에 섰다.
<초이>를 외치는 관중들의 거대한 함성에 최준호는 잠시 눈을 감고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기분 좋네.’
축구 하면서 관중들이 자신의 이름을 외칠 때가 가장 행복한 최준호였다.
‘그럼 선물을 줘야지.’
최준호는 자신의 오른쪽에 서 있는 벽을 가만히 보았다.
오른발 슛팅을 방해하기 위한 벽이었는데, 최준호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 상대 팀으로서는 이게 분명 최선의 선택일 수 있었다.
아까 오른발로 라보나킥까지 선보인 마당이니 저쪽은 최준호가 오른발밖에 쓰지 못하는 선수라고 생각할 수밖에.
다 최준호의 꼼수였다.
‘이번 골 먹으면 끝이야. 반드시 막아야 해.’
오스나브뤽의 골키퍼 마리우스는 다짐하며 골대 오른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저 위치에서 최상의 슛은 오른발로 감아서 왼쪽 골대에 넣는 것이었으니까.
– 삑!
심판의 휘슬에 최준호는 공을 정면으로 보고 뛰기 시작했다.
수비수도 골키퍼도 최준호의 오른발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가 공 앞에서 오른발을 디딤발로 삼자 다들 당황한 눈초리로 변했다.
– 뻥!
왼발 인프런트에 제대로 맞은 공이 아무런 방해 없이 빨랫줄처럼 골대 왼쪽 구석으로 날아갔다.
– 철썩!
너무나 강력하고 빠른 슈팅에 예상도 못 한 왼발인지라 마리우스는 공이 골대 그물에 휘감아 지는 것을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초이!!!!”
관중석에서 지진이 난 것처럼 난리가 났고, 메펜의 선수들이 최준호에게 달려들었다.
동료 선수들에게 휩싸여 축하 세례를 받는 최준호를 보며 오스나브뤽 감독은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양발을 다 똑같은 수준으로 쓰다니! 도저히 막을 수가 없네.’
**
3-0
오스나부뤽은 최준호의 프리킥 골을 기점으로 의욕이 떨어졌는지 제대로 뛰지를 못했고, 경기 후반에 메펜이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며 승리를 가져갔다.
이후에 몇 번의 위협적인 슈팅이 나왔지만, 마리우스의 선방으로 추가점을 넣지는 못했다.
리그 초반에 3승을 한 이후로 오랫동안 승리가 없었던 메펜의 관중들에겐 정말 달콤한 순간이었고, 그들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머무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일부 사람들은 어리고 재능이 넘치는 동양인 선수를 가까이 보기 위해서 락커로 이어지는 통로에 몰려들었다.
“멋졌어!”
“정말 놀라웠어!”
“올해 본 경기 중에 최고였어!”
몹시 지쳐서 그들을 지나쳐 퇴장하는 선수들과 달리 최준호는 정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팬들과 하나하나 하이파이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실력만 놓고 보면 세계 최고였던 호날두가 커리어 후반기에 가서 쌍욕을 먹으며 추락하는 건 그의 오만함 때문이었다.
축구 선수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경기장을 찾는 팬들 때문이었으니까.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에겐 늘 겸손하고 감사해야지.’
프로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의식이었다.
“초이!”
거기에는 모자를 쓴 레아도 있었고, 최준호는 가볍게 그녀와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하지만 레아가 최준호의 손을 확 잡고는 그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손을 놓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
최준호는 황당한 표정으로 도망가는 레아를 보았다.
“와우!”
“인기 좋네?”
“누구야?”
“열혈팬인가 보네.”
“좋겠다.”
독일인들은 대개 상당히 조심스럽고 느린 편이었다.
아직도 집에 들어갈 때는 열쇠 꾸러미로 문을 따고, 이메일보다는 우표 편지를 이용하고, 낯선 사람과의 만남보다는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인간성이 검증된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발전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평균의 이야기였으니까.
‘망할 녀석…! 뭔 짓이야?’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남자고 여자고 일단 잘 생기고 예쁘면 거부감은 들지 않으니까.
최준호는 마테우스가 이미 통로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
“자, 30분 지났어요!”
아직 씻지도 못한 채 마테우스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최준호는 레아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30분?”
레아는 부엌에서 이미 준비되어 있던 음식을 날랐다.
파스타, 전해질 음료수, 참치, 달걀 삶은 것.
“아직 모르는구나.”
마테우스가 입을 열자 최준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 아내 밀라가 스포츠과학 전공을 했거든. 그녀의 말에 따르면 선수가 격렬한 운동을 한 후 45분이 지나면 바로 단백질과 전해질,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한다고 해. 그래야만 격렬한 운동 때문에 손상된 단백질 시스템을 회복할 수 있고, 다음 날 운동이 가능하다더구나.”
“그래요?”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게 밀라 덕분에 이 나이까지 축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
41살의 마테우스였지만, 오늘 경기를 보니 나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선방을 잘하였다.
“파스타는 차가운데요?”
음식 모두 찬 편이었다.
밀라가 들어오면서 대답했다.
“몸에 열이 많을 테니 찬 음식이 좋아. 그리고 식사 후에 욕조에서 얼음찜질들 해요.”
레아가 식당에 고개를 슬쩍 내밀고 말했다.
“2층은 내가 준비할게!”
마테우스가 대답했다.
“우리 딸 오늘 왜 이렇게 신이 났어?”
“이겼잖아! 정말 놀라운 승리였다고! 그리고 초이가 엄청난 선수라는 게 밝혀졌잖아! 친구들이 난리가 났어. 초이랑 같은 집에 산다고 하니까! 당장 놀러 오겠대!”
“지금은 안돼. 레아야.”
밀라의 말에 레아가 혀를 길게 빼었다.
“나도 알아!”
그리곤 쿵쾅거리며 2층으로 뛰어가 버렸다.
**
식사 후 얼음찜질까지 끝낸 최준호는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보았다.
오늘 있었던 경기를 복기하는 중이었다.
모두가 열광할 만한 플레이를 펼치긴 했지만, 축구 실력이라는 건 한 두 장면의 하이라이트에 결정되는 게 아니었다.
첫째도 기본기, 둘째도 기본기, 셋째도 기본기.
그건 무한대로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수비 스킬이 부족해. 흥분해서 모험을 자주하는 것도 위험하고….’
리가3 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 기뻐할 것은 아니었다.
지금보다 훨씬 수준 높은 선수들과 경기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발전이 필요했다.
한참을 생각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
조심스럽게 속삭이듯 이야기가 들려왔다.
“뭐해?”
레아였다.
“잘 거야.”
“너 안 자는데? 나 좀 들어가도 돼?”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오늘 나한테 한 거 마테우스한테 꼰지른다?”
– 푸다닥.
발걸음을 빨리해서 도망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마테우스가 항상 웃는 것처럼 보여도, 훈련하면서 느낀 건데 보통 성격이 아니었다.
독일은 매우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고, 아무리 천방지축이라고 해도 성격 있는 아버지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최준호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 응! 아들!
– 일어났어?
– 그럼 벌써 일어나서 식사 준비 중이다.
오늘은 잠을 푹 잤는지 아버지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 아무거나 먹지 말고 잘 챙겨 먹어.
– 인석아. 그건 내가 너한테 할 말 같은데? 거기 어떠니?
– 여기 집주인이 독일 축구 클럽에서 일하던 스포츠 과학자였대. 너무 좋아. 나도 같이 챙겨주고.
– 그래 정말 좋구나. 내가 한 번 독일에 가야 하는데.
– 조금만 기다려요. 때 되면 모실게.
– 네가?
– 그럼!
– 됐다. 녀석아. 네 건 네 거고, 내 건 내 거다.
– 고집부리지 마.
– 그만 됐고, 오늘 경기는?
– 당연히 이겼지. 그리고 나 MVP!
– 진짜?
– 응!
– 이야! 대단하다! 축하한다!
최준호는 천장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왼손으로 V 자를 그렸다.
선수 생활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트로피와 기록뿐이었다.
이 팀에서 트로피는 얻기 힘드니 기록을 좀 남기고 싶었다.
– 이번 경기는 시작이야. 앞으로 계속 이길 거야.
– 그럼 누구 아들인데!
– 아침 잘 먹고 무리하지 마.
– 알았다.
– 끊을게.
최준호는 휴대폰을 끄고는 노트북을 열었다.
“라이브 방송이 지금쯤이었지?”
유튜브에 들어가니 <새벽의축구도사> 코너가 진행 중이었다.
제목은 <최준호 선수 최연소 프로 리그 선발 출전!>이었다.
오늘은 직접 채팅을 하지 않고, 가지고 온 이어폰을 노트북에 연결해서 귀에 꽂고는 이불을 덮고 피곤함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오스나브뤽과의 경기를 시작으로 SV 메펜은 최준호의 활약에 힘입어 4연승을 이어가는 사이 서울의 서초동에 있는 58층의 사옥의 꼭대기에서는 김상식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 전문 요리사가 따로 없다고?”
2017 피파가 주관하는 U-17 월드컵은 인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2016년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탈락 위기까지 겪었지만, 한국 대표는 운이 좋게 월드컵 조별 예선에 참여하게 되었다.
U-17 대회는 한국에서는 아예 인지도가 없다고 할 정도였고, 축협에서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예산 배정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전문 요리사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심지어 숙소도 호텔이 아니라 지역 유스호스텔이었다.
“국가 대표인데 머무는 숙소가 이런 허름한 유스호스텔이라고? 이것들이 장난하나?”
대노한 김상식이 소리를 질렀고, 보고서를 올린 비서실장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U-17 대표에 김우영이라는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더라면, 김상식이 이걸로 화를 낼 일은 당연히 없었을 테니까.
“잘 먹고 잠을 잘 자도 조별 리그도 통과하기 어려운 대회인데…. 이래서 능력 없는 새끼들이 높은 자리에 앉으면 안 되는 거야! 우리나라의 축구 새싹들을 이따위로 대우하는 새끼들이 어딨어!”
김상식의 화가 조금 누그러지는 걸 확인한 비서실장이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회장님.”
“이쪽에서 자금 충분히 지원할 테니, 선수들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가장 좋은 환경을 조성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축협회장 선거에 나도 나가야겠다.”
이전 협회장이었던 정 회장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김상식 회장이었다.
단순한 돈벌이나 명예질이 아니라 손자의 미래가 걸린 일이었다.
“그럼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자금 충분히 준비해서 로비해 둬.”
“알겠습니다. 회장님.”
비서실장이 나가자 김상식은 몸을 의자에서 일으켰다.
그는 집안의 지원을 모두 거절하고 스스로 독일에서 운동하는 김우영을 떠올렸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학원에 가고, 대학을 가는 다른 손자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업이라는 것이 누가 시켜서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과감한 도전 정신도 있어야 하고, 자신의 손으로 이루는 성취도 반복되어야만 했다.
‘외국회사 CEO 놈들을 보면 어렸을 때 다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단 말이지?’
사업은 어차피 믿을 만한 녀석들과 함께 하는 팀웍이었다.
믿을 만한 놈을 못 구해도 망하고, 그놈들을 제대로 부리지 못해도 망하는 것이다.
‘책상에 앉아서 펜대만 굴리는 놈들이 뭘 알아?’
그것이 진짜 김상식의 생각이었다.
**
리가3
36라운드.
SV 메펜은 리가3 선두인 뒤스부르크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뒤스부르크는 2010년 이전에는 항상 분데스리가에 이름을 올렸던 팀이지만, 재정 파산으로 리가3로 강등된 뒤에 엄청난 위기를 겪다가 이번 시즌에 부활의 신호탄을 알린 팀이다.
평균 나이 24세.
선수들 대부분이 클럽 유스 출신으로 고르게 실력이 좋고, 조직력이 좋은 팀으로 이미 리그 1위를 확정 지었다.
또한 리그 17위인 포르투나 쾰른이 1승 3패로 고전을 못 하는 상황이었고, 메펜은 꼴찌를 탈출하고 18위와 승점 3점 차이였다.
감독 크리스도 선수들도 이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내일은 아주 중요한 경기다. 다행인 점은 상대가 로테이션을 가동했다는 것이다. 그들도 다른 선수의 가능성을 살펴볼 생각이겠지. 우리는 그 점을 노려서 승리를 가져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