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37)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37화(37/184)
37화 프로의 무게(3)
3부 리가지만, 뒤스부르크는 꽤 큰 도시였다.
지역 언론사도 4개나 있었고, 오늘 비록 뒤스부르크가 패배하긴 했지만, 논쟁거리가 될 만한 내용이 꽤 많았다.
3부 리그 경기에 관중석이 거의 꽉 찰 정도로 여전히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오늘 라이즌 아레나는 메펜의 21번 최준호 때문에 몇 번이나 뒤집혔다.
메펜의 감독 크리스가 어린 최준호를 보호하기 위해서 인터뷰를 제한하면서, 그들의 궁금증은 계속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그 궁금증은 오늘 패배를 한 뒤스부르크의 감독 일리아에게 향해 있었다.
– 일리아 오늘의 패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우리는 오늘 완전한 전력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년 2부 리그를 위해서 새로운 선수 6명을 선발로 출전시켰지만, 68%의 점유율을 가져왔으며 저들이 5번의 슈팅을 때릴 때 28번의 슈팅을 때렸다. 선수들은 내 기대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다. 다만 오늘 예상치 못한 선수가 예상치 못한 해트트릭을 하였고, 우리는 패배를 당했다.
– 완전한 스쿼드로 나왔다면 승리했다는 것인가?
– 그렇다. 아마도 메펜을 완벽하게 무너트렸을 것이다.
– 오늘 메펜의 21번 최준호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그가 진짜 15살의 플레이어인지 일단 확인해 볼 생각이다. 오늘 그는 누구보다도 베테랑다운 경기를 펼쳤다.
– 그의 플레이에 감탄했다는 뜻으로 들어도 되겠는가?
– 그렇다.
– 일리아, 당신은 8년이 넘게 구단에서 일하고 있다. 맞는가?
– 그렇다.
– 그렇다면 오늘 최준호 선수가 선보인 세레머니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일리아는 그 질문에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메펜 쪽에서 모든 인터뷰를 거절한 채 돌아갔기 때문에, 몸이 단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단을 리가3로 강등시킨 경영진은 이미 모두 퇴진한 상황이었고, 5년의 엄청난 노력 끝에 급한 채무를 갚고, 선수단의 전력을 강화해 리그 우승과 승격을 확정지은 상황이었다.
저주를 퍼붓던 팬들은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렇다면 과거의 일을 끝맺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잘 알고 있다.
– No. 12는 무엇을 뜻하는가?
– 마테우스 하우어의 등번호였다.
– 그가 여전히 뒤스부르크를 사랑한다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가?
마테우스는 언론과 친한 성격도 아니었고,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충분히 자신의 처지를 어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그렇다. 사실 그는 뒤스부르크의 배반자가 아니다.
일리아의 말에 기자단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당시 그 경기 뒤스부르크의 교체 명단에는 골키퍼가 없었다. 1군 골키퍼들이 모두 부상과 질병으로 빠진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마테우스는 전반전이 끝나고, 딸 아이가 교통사고로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소식을 받았다. 당시 수석코치였던 난 마테우스를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팀 상황을 아는 마테우스는 딸의 생사를 함께 하는 대신 뒤스부르크의 운명과 함께했다.
– 사실인가?
– 사실이다. 다만 그는 굉장한 프로선수였지만, 마음까지는 다스리지 못했다. 후반전에 나온 실책에 대해서 스태프들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 왜 그런 사실이 지금까지 숨겨졌는가?
– 구단의 사정 때문이었다. 모든 책임을 마테우스가 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희생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메펜의 어린 선수이자 경기 MVP인 최준호는 그 의미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확실히 15살 다운 유치한 행동이었지만!
마테우스에 대한 진실을 풀어놓으면서도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최준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일리아였다.
**
“맘에 들었어요?”
혼자 우두커니 창밖을 보던 마테우스는 옆에 털썩 앉은 녀석을 힐끗 보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감독한테 한 소리 들었어요. 괜한 짓으로 노란 카드 받았다고.”
마테우스는 조금은 처진 표정으로 무릎을 만지작거리다가 킥킥 웃었다.
“유치하게 그게 뭐냐?”
“저 아직 15살이거든요. 유치한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하하하. 맞다! 그 말이 맞다! 좀 유치하긴 했는데 약간 감동도 했다. 누군가 내 사정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공짜로 얻어먹고 자고 있잖아요. 밥값은 해야죠.”
“레아가 이야기 해준 거야?”
“정확하게는 이게 알려줬어요.”
최준호는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주었다.
마테우스는 그 사진을 보고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레아가 일반 병동으로 옮긴 날 찍었던 사진이었는데.
사진 뒤편에는 짤막한 글이 하나 쓰여있었다.
– 죽다가 살아난 날 두고 아빠는 축구 했다! 아주 싫다! 아빠는 나보다 축구를 더 좋아한다! 나도 아빠보다 축구를 더 좋아할 테다.
“사진에 찍혀 있는 날짜랑 경기 날을 비교해봤어요. 대충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겠더라고요.”
“…그 녀석도 참.”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너한테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한 거야?”
“좋은 일이 당연히 있죠.”
“그래?”
“리가3 선수가 아무리 잘해봤자, 지역 팬들 외에는 잘 몰라요.”
“그렇긴 하지?”
“마테우스는 12년 동안 분데스리가에 있는 한 클럽에서 뛰었잖아요? 아마 엄청나게 이슈가 될걸요?”
“……”
“그 이슈에 탑승해서 꿀 빠는 거죠. 뭐.”
유명해진다는 건 가치가 올라간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진짜 그럴까?’
마테우스는 최준호의 진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조금 두렵긴 했다.
그다음 날.
“짜잔!!”
운동을 나간 레아가 신문을 가져오더니 식탁 위에 좍 펼쳤다.
“어제 우리 집에 얹혀사는 꼬마 녀석의 유치한 짓 덕분에 자기 몫 챙기지 못하는 아버지 사연이 까발려졌어.”
레아는 이내 휴대폰을 꺼내 언론 사이트에 접속하더니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축하해. 이제 아버지는 명예 회복했네.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큰 스포츠 일간지인 빌트지에서 엉덩이 깐 3부 리그 최연소 선수의 특집까지 다루었어. 축하해. 초이 넌 이제부터 전국구 스타가 될 거야.”
“정말? 그런 거야?
잠시 최준호를 보며 고민을 하던 레아가 말했다.
“나도 다음 경기에서 엉덩이 까볼까?”
**
펠릭스 파슬라크.
키 170cm 몸부게 74kg.
오른쪽 윙백과 윙어가 주 포지션.
18살에 1군으로 부름을 받은 이 단신의 선수는 16/17 시즌 바이에른 뮌헨과의 슈퍼컵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크 리베리를 필두로 한 뮌헨의 왼쪽 공격을 막아내면서, 도르트문트 최고의 재능이라는 수식어를 증명했다.
이후 10번의 리그 경기, 그중에 3번을 선발로 출발하면서 18살의 유망주는 점점 출전 시간을 늘려갔다.
하지만 유스 시절 펠릭스보다 잠재력이 없다는 평가를 들은 크리스찬 풀리식의 급격한 성장으로 경쟁에서 밀렸고, 결국 벤치만 달구다가 도르트문트 II로 잠시 오게 되었다.
구단에서는 1군에 자리가 없어서 이번 시즌 끝나면 좋은 곳으로 임대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최근에 아주 예쁜 여자친구까지 생겨서인지 그는 도르트문트 II에서 낙담하지 않고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도르트문트II 는 선수의 이동이 너무 잦아서, 선수들 간의 조직력을 찾기가 힘들었다.
6개월 이상을 붙어 있는 선수들이 없어서 감독 역시 별 애착 없이 전술을 꾸렸고.
그러함에도 현재 리그 8위로 상당히 선전하고 있었다.
그만큼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은 리그 최상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엉덩이 깐 이 녀석이 우리 클럽 선수라고?”
“플레이가 장난 아니지?”
“얘 몇 살이야?”
“15살일걸?”
“에? 더 어려 보이는데?”
“동양인은 원래 나이보다 어려 보이잖아?”
“뭐, 그러면 생각 없이 엉덩이 깔 만한 나이네.”
“경기 끝나고 감독한테 쌍욕을 먹었을걸?”
“…그래도 뭔가 낭만적이네.”
기사를 읽은 펠릭스가 말했다.
“이 일 때문에 한 선수의 희생이 재조명되었고, 뒤스부르크 구단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성명을 내고 있어.”
“뒤스부르크에 있는 지인 말에 따르면 No. 12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할 것 같다는데.”
“이야!”
“엉덩이 깐 보람이 있네.”
“어떤 녀석일까?”
그들의 물음에 한쪽 구석에서 답변이 들려왔다.
“엄청 괜찮은 녀석이야.”
재계약을 맺은 뒤 도르트문트 II로 온 아모스였다.
괜찮은 수비 미드필더 자원은 죄다 임대간 상황이라 아모스는 바로 주전을 꿰찼고, 1군에서 온 펠릭스와 함께 좋은 활약을 펼치며 최근 5번의 경기 중 4승을 챙겼다.
아모스는 훈련을 위해서 축구화를 신고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같이 U-19에서 뛰었어.”
워낙 오랫동안 도르트문트 클럽에 있던 아모스였기 때문에 모두와 친했다.
“어, 진짜?”
“그 녀석 완전 축구 도사야. 나이 생각하고 덤볐다가는 큰코다칠 거야. 그리고 성격도 매우 좋아.”
“꽤 잘 아는 모양이네?”
“그럼 같이 목욕탕에서 주먹질도 했는데.”
그 말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런 소문이 돌긴 했는데 그게 너였어?”
펠릭스의 물음에 아모스가 펠릭스의 옆에 앉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둘은 2011년도부터 같이 입단한 동기였으니까.
“설마 가녀린 녀석한테 얻어맞은 거야?”
“…이 녀석 말고. 동양인이 또 하나 있어. 덩치 크고 인상 더럽고, 그 더러운 만큼 주먹질도 장난이 아니야.”
“동양인? 혹시 저 녀석 말하는 거야?”
누군가가 손가락을 들어 문 쪽을 가리켰고, 다들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정말 커다란 키를 가진 세 명의 선수가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동양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모스는 문 앞에 서 있는 그들을 보며 반가운 기색을 하였다.
‘김우영, 토마스, 그리고 무코코까지.’
“…맞아.”
얼마 전 비 EU권 센터백 자원 두 명이 자국 나라의 클럽으로 임대가면서 공백이 생겼는데, 저들이 부름을 받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저 동양인은 인상이 더럽네.”
아모스가 대답했다.
“나쁜 놈은 아니야. 근데 참을성이 없으니까 괜한 인종차별 농담 꺼내지 마. 그 자리에서 얻어터질 수가 있어.”
목욕탕에서 달려들다가 김우영의 주먹 한 방에 싸움 끝날 때까지 정신을 잃어버린 아모스였으니까.
“그런데 쟤네들로 리가3에서 경쟁이 될까?”
그 말에 아모스가 피식 웃었다.
“저기서 키가 가장 작은 녀석이 무코코야.”
“쟤가? 13살이잖아?”
“미친 월반이지. 저 나이에 도르트문트 II 소속이야. 그만큼 대단한 녀석이야. 참고로 그 옆에 키 큰 멀대들은 아까 엉덩이 깐 녀석 동기야. 축구 도사들은 아니지만, 한 분야에서는 굉장히 특별한 녀석들이지. 이건 거의 우승 전력이 되겠는데?”
아모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색해하며 문 앞에 서 있는 세 녀석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헤이! 올라왔냐?”
셋은 익숙한 얼굴을 보고는 몹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토마스가 가장 먼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아모스에게 달려들어 와락 안았다.
“아모스! 보고 싶었다!”
무코코는 수줍은 듯이 로커 바닥만 보며 걸어왔고, 김우영은 하나하나 노려보면서 당당하게 걸어왔다.
아모스는 그들과 인사를 하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나흘 후에 있을 리그 마지막 경기가 재밌어지겠네.’
메펜은 놀라운 경기력으로 6연승을 거두며 17위인 파더보른과 승점이 같았다.
다만 골 득실 차이로 18위를 하였는데, 메펜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르트문트 II와의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물론 이긴다고 해서 잔류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파더보른이 리그 19위인 포르투나 쾰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면 메펜은 99% 강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선발 출장을 한다면 최준호와 맞붙는 위치일 것이고, 아모스는 자신을 한 번 제대로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리프팅 하면서 운동장을 돈다고 해서 축구를 잘하는 건 아니야. 초이. 넌 나한테 묶여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될 거야.’
최근 놀라운 경기력으로 리가3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는 아모스였고, 그만큼 자신감이 대단했다.
**
“…괜찮아요?”
아침을 먹다 말고 무릎을 움켜잡은 마테우스.
밀라가 얼른 그에게 다가가 그의 무릎을 살폈다.
한참 보던 그녀가 말했다.
“다음 경기는 뛰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럴 수 없지. 내 축구 인생의 마지막 경기니까. 항상 마지막은 중요한 법이야.”
“잘 못 되면 또 병원에서 오랫동안 누워 있을 수 있어.”
뒤스부르크에서 떠난 이후 무릎 부상으로 2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진 마테우스였다.
복귀 이후 2부 리그 팀을 떠돌다가 또 무릎 부상으로 1년 병원 신세를 진 뒤 마지막으로 메펜에서 뛰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밀라의 말에 마테우스는 웃음을 지었다.
“팀 강등이 걸린 경기야.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할 수는 없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무릎 때문에 강등시킬걸?”
그러자 마테우스가 오히려 웃음을 지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우리 딸이 사고를 당했던 것만큼 최악이었던 시절은 없었지. 이번에는 레아가 다친 게 아니니까 절대로 팀을 구하게 될 거야.”
“그러다가 다리 불구 돼서 맨날 휠체어 타고 다니면 어쩌려고?”
“난 돈을 받는 프로선수야.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어. 요 녀석아. 밥이나 먹고 얼른 학교 가.”
프로라는 단어의 무게.
돈도 돈이지만, 축구를 하는 사람들의 자존심 문제기도 했다.
최준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오늘 아침 온 문자를 생각했다.
– 야, 나랑 토마스랑 무코코랑 같이 도르트문트 II로 왔다. 다음 경기에서 붙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주 아주… 아주… 어려운 경기가 될 거 같네.’
최준호도 마테우스에게 무릎을 위해서 쉬라고 이야기는 하고 싶지만, 그 문자를 본 상황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놀라운 선방 능력에 기대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으니까.
“야, 초이! 넌 왜 아무 말도 없어? 이 사람 걱정 안 돼?”
레아가 최준호에게 물었고, 최준호는 레아와 마테우스를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연 최준호.
“…다음 경기는 어려운 경기야. 마테우스가 없다면 이길 수가 없어. 그리고 난 이길 수 없는 경기를 뛰고 싶지 않아.”
“뭐?”
“하하하! 역시! 이 녀석이 내 마음을 정확하게 아네.”
마테우스가 손을 내밀었고, 최준호는 그와 함께 하이 파이브를 했다.
“축구에 미친 남자들!”
레아가 씩씩거리더니 의자를 콱 집어넣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