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38)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38화(38/184)
38화 강등과 잔류 사이(1)
마르코 로제는 구단주 크리스토프 프로인트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레드불 유한회사가 구단을 인수한 후 오스트리아 최고 구단으로 떠오른 잘츠부르크는 오스카 감독이 프랑스 축구 클럽인 생테티엔으로 가자 그 대체자로 U-19의 감독이었던 마르코 로제를 선택했다.
그는 자신의 밑에서 U-19 수석 코치를 하며 유망주 양성에 큰 힘이 되어 준 르네 마리치를 바로 호출하였다.
“…그리해서 자네는 다음 시즌부터 나와 함께 1군을 끌어야겠어.”
“코치 자리야?”
“응. 수석 코치 자리.”
르네 마리치의 축구 경력이라곤 유소년 때 1년 정도 한 것 뿐이었다.
다만 축구광이었던 그는 그라운드 위에서가 아니라 데이터 분석을 하기 시작했고, 마르코 로제는 르네 마리치의 능력이 자신의 수석 코치로 삼아도 될 만한 인물이라고 확신했다.
“고마워.”
르네 마리치의 최종 목표는 빅 클럽의 감독이 되는 것이었고, 그는 바로 마르코 로제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1군 선수단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문제가 뭐 있겠어? 올해도 리그 우승인데.”
“유럽 대항전에서 광탈한 게 문제지.”
“아, 그렇군. 유럽대항전이라.”
잘츠부르크는 훌륭한 유망주를 데려와 키워서 써먹는 구단이었고, 구단주인 레드불 유한 회사의 엄청난 투자로 세계 최고의 시설을 갖춘 구단이었다.
이런 시설과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 때문에 노르웨이 출신의 최고 유망주인 엘링 홀란드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공격진은 아주 화려하고 좋아.”
“인정.”
“수비도 조직력을 갖춰서 쉽사리 골을 주지 않지.”
“응.”
“문제는 중앙이지. 미드필더들.”
르네 마리치의 이야기에 마르코는 자신의 책상에서 한 리포트를 꺼냈다.
“그래서 이 선수가 자네의 픽인가?”
르네는 마르코가 건네준 리포트 첫 장을 열고는 바로 덮었다.
그리고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3부 리그이지만 최근 6경기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치면서 최약팀인 메펜의 순위를 끌어올리고 있지. 그 중심에는 그 녀석이 있다고 봐도 무방해.”
함께 일하면서 르네 마리치가 유일하게 칭찬한 잘츠부르크 선수는 엘링 홀란드 뿐이었다.
그가 이렇게 격하게 긍정적으로 구는 것은 대단한 재능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도르트문트가 놓아 줄까?”
그 말에 르네 마리치가 고개를 저었다.
“토마스 투헬도 녀석의 가치를 알고 있어.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야.”
토마스 투헬 밑에서 수석코치로 일한 경력이 있는 마르코 로제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에 들었다면, 일찍 포기하는 게 상책이었다.
“포기해야겠군.”
하지만 르네 마리치는 턱을 괴고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아직 포기하긴 일러. 독일 분데스리가는 16.5세가 되어야 선수 등록을 할 수 있지만, 우리 오스트리아 리그는 그런 조항이 없지.”
“으음?”
“임대가 종료되어도 녀석은 1군에서 뛸 수가 없어. 하지만 우리 구단에서는 1군 출장이 가능하지.”
“임대라.”
“물론 그가 1군에서 통할지는 미지수야. 프리시즌에 유망주들도 모두 전지 훈련을 보내서 경쟁을 시켜보는 게 좋아.”
“거기서 확실히 능력을 보여주면 1군으로 쓰자?”
“그렇지. 아직 어리잖아? 이곳에 있을 때 살살 구슬려서 넘어오게 만들면 최고의 시나리오 인거지. 더군다나 같은 국적의 선수도 있잖아?”
“양희찬?”
“그래. 어린 녀석이 외국에서 얼마나 외롭겠어?”
“흐음. 나쁘지 않군.”
마르코는 잠시 생각하다가 르네 마리치에게 말했다.
“나는 바로 1군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니까, 자네가 그 녀석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오는 게 어떨까?”
“직접 접촉하라고?”
“뭐, 길 가다가 만날 수도 있는 거지.”
“하하. 그렇네. 독일로의 출장은 나도 즐겁지.”
“너무 본심을 보이진 말고.”
…그리고 그 시간 도르트문트 1군 훈련장.
“내일인가?”
토마스 투헬의 질문에 수석코치 피터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일은 훈련 일정밖에 없는데?”
“아니. 도르트문트 II 경기 말이야.”
“아하. 맞아. 홈 경기지.”
“몇 시더라?”
“오후 3시.”
“내일 그 녀석 오지?”
그 녀석이라는 말에 피터는 이제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일 오후 훈련 맡길 테니 스케쥴 대로 진행해줘. 녀석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해야겠어.”
“오케이.”
“내일 도르트문트 II 팀 측에 내가 경기 관람할 거라고 슬며시 이야기해놔.”
“응?”
“그래야 선수들이 진심으로 뛸 테니까. 선수들이 진심으로 뛰어야 그 녀석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을 거고.”
토마스 투헬은 최준호의 경기 리포트를 꼼꼼하게 챙겨보고 있었다.
그가 리포트에서 느낀 건 ‘여유’ 였다.
마치 <이 정도가 필요해? 그럼 이 정도 해줄게.> 이런 느낌?
“내일 경기 승부에 한쪽은 강등이 걸렸는데, 그러면.”
“메펜 따위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야.”
이미 리그 2위를 확정시킨 토마스 투헬은 냉정하게 말하고는 선수들이 훈련하는 연습장으로 걸어갔다.
**
‘이미 리가3 수준이 아니야.’
메펜의 감독 크리스는 오후 훈련이 끝난 후에 남아서 개인 연습을 하는 최준호를 창문으로 슬며시 보았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서 성인 리그에 적응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지금 6경기에서 8골 6도움으로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상대 팀이 전술적으로 최준호를 지워버리려고 나와도 그는 빠져나갈 방법을 만들어냈다.
도무지 15살의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수비 기술이 아직 부족하지만 공미, 중미, 수미 까지 커버가 가능한 자원이었고,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자질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이런 선수는 감독이 여러모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전술 변화를 주었을 때 수행 능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훈련에 매우 적극적이고, 팀에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이야.’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코치진들이 우려했던 피지컬 적인 부분은 계속 좋아지고 있었다.
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40미터 단거리 달리기 기록이 5.21초로 팀의 중하위권이었지만, 오늘 테스트한 결과는 4.98초로 굉장한 진보가 있었다.
민첩성과 순간 속도는 원래부터 좋았다.
그래서 1:1에서 굉장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키도 크고, 몸무게도 좀 붙었는데 최준호가 스스로 부단히 노력해 준 덕분에 경기력에는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무게 중심을 낮추는 움직임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졌고, 덕분에 균형감마저 좋아졌다.
체력이야 팀에서 탑이었고.
약점으로 꼽히던 피지컬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하고 진보시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스스로 언론에 영향을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을 봤을 때, 최준호는 분명 굉장한 야망이 강한 재능 있는 선수임이 분명했다.
자신이 메시의 유스 시절을 알지는 못하지만, 저 녀석 정도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다음 시즌에도 임대하고는 싶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이미 수많은 스카우트들이 경기장을 들락날락하는 상황이었고, 도르트문트가 그를 활용하거나 리가3가 아닌 더 높은 수준의 리그로 임대 보낼 가능성이 높았다.
‘마지막 경기로군.’
내일은 도르트문트 II와의 경기였다.
분데스리가의 2군 팀들이 리가3에서 우승을 하거나 승격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능력이 검증되면 1군으로 올라가거나 상위 리그로 임대를 가기 때문에 선수 변화가 극심했고, 제대로 된 조직력을 찾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어리고 경험이 없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부분이 있어서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그 부분을 파고들곤 하였다.
그래서 퇴장당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개인적 능력은 매우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상위권 팀에 들지를 못하곤 했다.
크리스는 내일 도르트문트 II 를 만나서 아주 거칠고, 더러운 경기를 펼칠 예정이었다.
도르트문트 II를 1군으로 향하는 전초기지쯤으로 생각하는 선수들에겐 마지막 경기를 꼭 이겨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을 리가 없고.
그리고 메펜의 포메이션에도 변화를 주었다.
물론 내일 이긴다고 해서 꼭 잔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경기에서 지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
최준호는 해가 뉘엿뉘엿 떨어짐에도 여전히 땀을 흘리며 개인 연습을 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면서 몸이 무거워진다는 걸 느낄 때마다 연습으로 극복하는 중이었다.
아직 어린 몸이라 그런지 변화에 대한 적응은 굉장히 빨랐다.
‘두 녀석이 선발 출전이면 곤란한데.’
김우영과 토마스는 따로 떼어 놓으면 반쪽짜리 수비수였다.
다만 둘을 붙여 놓으면 완벽하게 서로의 약점을 지워버렸기에 굉장히 까다로워졌다.
여기에 아모스라는 훌륭한 사령관까지 붙어 있으면 어쩌면 난공불락일 수도 있었다.
‘크리스 감독은 저들의 존재를 알 리가 없고.’
다음 경기에서 최준호는 루소 바로 밑에서 공격을 돕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았다.
‘3개월도 안 돼서 도르트문트 II로 올라온 걸 보니 굉장한 진보가 있었다는 소리인데.’
토마스보다 빨리 달리고, 김우영보다 몸싸움을 잘한다면야 혼자서 다 돌파해서 골을 넣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루소를 활용할 수밖에.”
김우영이나 토마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분명 경계를 할 것이고, 전방에서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 거의 본능적으로 붙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아모스가 문제네.’
아모스는 꽤 판단을 잘하는 녀석이었으니까.
같은 팀에서 뛴 친구들이지만, 이번 경기는 메펜의 잔류가 결정되는 경기였다.
좋은 활약을 통해 팀을 6연승으로 이끌면서 메펜 지역의 팬들은 대부분 최준호의 팬이 되어 있었다.
홈 경기를 하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1만 3천 명의 팬들이 있었고.
여기서 좋은 활약을 펼쳐 팀을 잔류시켜 놓으면, 꽤 많은 골수팬들이 만들어질 게 분명했다.
‘선수의 클라스는 능력이 만들지만, 명성은 팬들이 만들어 주는 법이지.’
이런 기회를 얻고서 대충 그렇고 그런 선수가 될 수는 없으니까.
한 발 리프팅만으로 벌써 그라운드를 7바퀴를 돈 최준호는 다른 발로 바꿔서 다시 돌기 시작했다.
공을 터치하는 감각만큼은 선수 생활 끝날 때까지 절대로 변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감각이었다.
연습을 끝내고 목욕을 한 뒤 마테우스의 집에 돌아가니 굉장히 눈에 익숙한 사람이 있었다.
몸이 제법 푸짐한 것 치고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안경을 쓴 30대 정도의 독일 남성이었다.
“초이 왔어?”
마테우스가 반겨주었고, 그 남성도 몸을 같이 일으켰다.
“네.”
“생각보다 키가 커진 거 같은데?”
“성장하는 시기잖아.”
그 남성은 마테우스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준호 앞으로 왔다.
그리곤 악수를 내밀었다.
“반갑다. 난 르네 마리치라고 해. 지금은 잘츠부르크 U-19에서 수석 코치를 맡고 있지.”
르네 마리치?
최준호가 에버튼에서 총을 맞을 당시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던 세계적인 감독이었다.
‘그래서 눈에 익었구나.’
최준호는 가만히 르네 마리치를 올려다보았다.
수염이 듬성듬성 난 얼굴치고는 눈빛이 강렬한 게 역시나 보통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최준호 역시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당당하게 르네 마리치의 악수를 받았다.
“최준호입니다.”
“요새 경기 아주 잘 보고 있어.”
“그런데 마테우스에게는 무슨 일로?”
르네가 분명 자신을 만나 어떤 언질을 할 거라고 확신한 최준호였지만, 일부러 슬쩍 말을 돌렸다.
“아하! 마인츠에서 시간제 전술 분석관을 할 때 이 친구와 꽤 잘 지냈거든. 네가 엉덩이를 깐 일로 이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겨서 축하도 해 줄 겸… 너와 이야기도 좀 하려고.”
르네는 은근슬쩍 자신의 의도를 내비쳤다.
“이적 제안인가요?”
최준호가 망설임 없이 묻자 르네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이 녀석… 봐라?’
최준호는 르네가 말을 열기도 전에 말했다.
“도르트문트가 리그 명성도 훨씬 높고, 팀 명성도 높은데 제가 갈 리가 없다는 건 잘 아시겠죠?”
‘…마테우스 일 때문에 아직 낭만이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잘 됐군.’
“당연히 이적 제안은 아니야. 임대 제안이지.”
“임대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는 선수 출전에 나이 제한이 없거든. 도르트문트 1군에서 뛰려면 넌 10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오스트리아 리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최준호였다.
“더군다나 우리는 다음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 네가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준다면 아마 최연소 챔피언스 리그 출장자가 되지 않을까?”
…챔피언스 리그?
최준호는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밟지 못했던 유럽대항전이었다.
침이 꿀꺽 넘어갈 수밖에.
더군다나 최연소라는 말에 귀가 펄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법 좋은 공격 자원이 많다고. 노르웨이 특급 엘링 홀란드를 비롯해서…”
엘링 홀란드.
그가 잘츠부르크에 있다고?
스트라이커였던 최준호에게는 그야말로 넘사벽인 공격수였다.
큰 키, 세계 정상급 피지컬, 엄청난 주력, 헤더… 결정력…훤칠한 외모?
아, 그건 아니군.
‘이 정도면 넘어올 만….’
르네는 확실히 그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최준호는 별다른 느낌 없이 씩 웃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밀라! 배고파요!”
최준호에게 한 방 먹은 르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마테우스가 큭큭거리며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15살이야. 저 녀석.”
르네는 실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