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39)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39화(39/184)
39화 강등과 잔류 사이(2)
슈타디온 로테 에르데.
도르트문트 리저브팀의 구장이었다.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꽤 커다란 구장이었고, 경기장은 절반 정도가 차 있었다.
날씨는 화창했으며, 축구하기에 적당한 온도였다.
천연잔디 위에는 물이 살짝 뿌려져 있었고, 경기장에는 무지개가 살짝 걸렸다.
“초이다!”
경기 시작 전 몸을 풀기 위해 나온 최준호는 반가운 동기들을 향해 걸어갔다.
“잘 지냈냐?”
살가운 표정을 지은 토마스가 얼른 달려와 최준호를 부둥켜 안았다.
“보고 싶었다!”
“정말? 혹시 내가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한 건 아니지?”
“아니다!”
“2,400유로 오늘 줄거야?”
“그렇다. 초이가 사라지면 좋겠다.”
“하하하.”
최준호는 토마스의 등을 두드려 주고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김우영에게 눈을 돌렸다.
“…어째 너 더 커진 거 같다?”
“얼마 전 190cm 넘었어. 넌 여전히 내 가슴팍이냐?”
“이 자식아 나도 커지지 않았으면 네 허리쯤 와 있겠지!”
김우영이 피식 웃으면서 악수를 건넸다.
최준호도 악수를 받으면서 반갑게 웃었다.
“너무 빨리 올라온 거 아니야?”
“너는 벌써 유망주 스타가 된 거 같던데?”
“나는 원래 잘했고.”
“지랄하긴. 오늘 아주 작살을 내줄게.”
“벌써부터 이렇게 나오는 거냐?”
“혹시 교체로 출전하면 말이야.”
우영의 말에 준호는 잠시 눈빛을 반짝였다.
‘그렇지. 올라온 지 얼마 안된 녀석들을 주전으로 쓸 리가 없지.’
“그래도 조심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이를 갈고 있어.”
“왜?”
우영은 고개를 돌려 관중석을 보다가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와 있네.”
“뭐가?”
“토마스 투헬.”
최준호도 고개를 돌려 우영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토마스 투헬 옆에는 르네 마리치가 앉아 있었다.
“평소에는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는 것들이 오늘 장난 아니야. 빳빳이 섰어.”
김우영과 토마스가 선발 출전을 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1군 감독이 와 있는 것은 이번 경기에 마이너스였다.
안 그래도 토마스 투헬과 마찰을 빚어왔던 선수들이 이번 시즌 끝나고 대거 이적할 거라는 뉴스 기사까지 뜬 마당이었다.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서 오늘 목숨을 걸고 경기할 것이 뻔했다.
“야, 그런 건 적군에게 말하면 안돼지.”
세 명은 소리가 난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아모스였다.
“쿠키 남았냐?”
“그러겠냐? 너무 맛있어서 당일 날 다 먹어치웠지.”
아모스와 최준호는 가볍게 주먹을 마주쳤다.
“독일 일간지에도 나오고 요새 장난 아니더라?”
“왜 부럽냐?”
최준호의 말에 아모스가 웃음을 지었다.
“그런 널 오늘 콱 눌러버리면 많은 사람들이 날 다시 평가하겠지?”
“야,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하니까 사이코 같잖아?”
“오늘 널 부수고 투헬 눈에 좀 들어야겠어.”
“맘대로 될 거 같냐?”
둘은 미소를 지워버린 채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주먹을 마주쳤다.
“각오해.”
아모스의 말에 최준호는 그저 웃음만 지었다.
**
– 르네. 나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해요?
– 부족한 점? 너무 많지.
– 좀 실망인데요?
– 부족한 게 많다는 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 좋아해야지.
– 그럼 내일 경기를 위해서 어떤 점을 고치는 게 좋을까요?
– 그런 건 우리 팀에 합류하면 다 알게 될거야.
– 일단 하나 정도는 꺼내보시죠. 약발이 듣는다는 걸 알아야 그 쪽 실력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죠.
– 좋아. 그럼 보자. 네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스피드 완급 조절일 거야.
– 스피드 완급 조절이요?
– 그래. 넌 주력이 그다지 뛰어난 선수는 아니야. 근데 순간 속도와 민첩성은 매우 뛰어난 편이지. 그 점을 잘만 활용할 수 있다면, 훨씬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야.
…
르네는 어제 밤 늦게까지 최준호와 나누었던 이야기 일부를 떠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내일 1군 경기를 두고 리저브 팀 경기를 보러 온 감독이라.”
“이기던 지던 어차피 리그 2위야.”
“꽤 많은 선수들이 이적 요청을 했다며?”
“…”
“엠레 모르에게 피치에서 네 발로 기어다니라고 지시를 내렸다며?”
“당연! 훈련에 불성실한 놈들은 네 발로 기어다녀야지.”
투헬이 퉁명스럽게 투덜거렸고, 르네는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봐도 둘 다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근데 넌 왜 여기에 와 있지?”
투헬의 물음에 르네가 대답했다.
“다음 시즌 잘츠부르크 1군 수석 코치로 일할거야.”
“그렇다면 마르코 로제 그 녀석이 감독인건가?”
“응.”
“제법 일을 잘하는 구단이군. 그런데 왜 여기에 온 거지?”
“그 쪽 선수에게 관심이 많아서.”
르네의 말에 투헬이 인상을 썼다.
“꺼져줬으면 좋겠는데?”
“네 발로 기어갈까?”
“나쁘지 않군.”
“하하하. 1년 정도 임대를 하고 싶은데.”
투헬은 무표정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르네를 보았다.
“어차피 그쪽 규정 때문에 다음 해 겨울 이적시장 끝나고서 등록할 수 있잖아? 차라리 이쪽에 보내서 1년 동안 1군 리그를 경험시키는 게 그쪽에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마르코랑 너랑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그건 별로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아.”
– 도르트문트가 리그 명성도 훨씬 높고, 팀 명성도 높은데 제가 갈 리가 없다는 건 잘 아시겠죠?
르네는 최준호의 이야기를 잠시 떠올렸다.
“그건 그렇고. 오늘 도르트문트 II 선수들이 파이팅 넘쳐 보이는데?”
“그래야지.”
“근데 그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아는 거지?”
르네의 말에 투헬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
메펜 VS 도르트문트 II 38라운드 경기
도르트문트 II에게는 의미없는 경기였기에 다소 무난한 경기가 될거라는 예측과는 다르게 매우 격렬한 몸싸움이 거듭되었다.
메펜의 선수들은 거의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아세우려고 했고, 도르트문트 II 는 혼신의 힘을 뚫으려고 했다.
“이 자식들 오늘 미쳤나?”
도르트문트 II의 선수들은 메펜의 경기력이 예상과 달라 당황한 듯 보였다.
적극적인 맨 마킹에 엄청난 압박으로 공이 전혀 나갈 수가 없었다.
‘뒤스부르크 전보다 더 빡센데?’
하지만 메펜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공격은 전혀 되지 않고 양쪽 다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상대의 숨통을 조였다.
‘무조건 이겨야 해.’
이미 기적같은 6연승을 하였고, 한 경기가 남았다.
파더보른과 포르투나 쾰른과의 경기에서 파더보른이 승리를 한다면 이번 경기 이겨도 강등당하는 메펜이었다.
파더보른과 메펜은 승점 33점.
포르투나 쾰른 승점은 32점.
만약 메펜이 비기고 포르투나가 이기게 되면 포트투나가 잔류하는 상황이었다.
포르투나 쾰른 역시 한 가닥의 희망을 걸고 오늘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이 분명한 상황.
잔류에 대한 희망은 선수단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그들 역량의 120%를 발휘하게 만들었다.
전반전에 탈진을 할 정도로 양측 모두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닌 상황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강등되면 축구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하던 가업을 이어나가려던 마크가 번뜩이는 움직임으로 압박하는 수비수를 제쳐버렸다.
“야, 막아! 이동해!”
아모스의 커다란 고함에 흔들렸던 도르트문트 II의 진영이 다시 견고해지기 시작했다.
견고했던 수비간 간극이 멀어지면서 메펜의 공격수들은 숨통을 조금 틀 수가 있었다.
전방에서 루소와 함께 어슬렁거리던 최준호가 슬그머니 내려갔다.
그는 어제 르네가 던진 완급조절이라는 화두를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속도 조절을 해서 상대 페이스를 뺏는 것은 여태껏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빠르다 느리다 정도로 인식하고 대응을 했을 뿐이지.
자신을 거의 전담 마크하고 있는 아모스가 같이 내려왔다.
“오늘 가만히 있는 게 좋아.”
이미 아모스와 함께 뛴 경험이 있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사령관이며 수비, 패스, 공격 다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다.
센터백 치고는 주력이 나쁜 편도 아니었고.
다만 커다란 키와 덩치 때문인지 순간속도와 민첩성이 떨어졌다.
경기 내내 주절거리며 따라다니는 아모스에게 최준호가 한마디 했다.
“입으로 축구하냐?”
전방으로 거의 공이 오질 않았기에 최준호는 많은 시간 걸어다니고 있었고, 아모스의 움직임은 그런 느릿한 움직임에 적응되어 있었다.
마크는 드리블을 치면서 최준호가 밑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 마크 내가 공 받으러 내려가면 그 빈 공간에 공을 떨궈줘.
메펜의 득점력은 형편 없는 수준이었는데, 최준호가 들어오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그 이야기는 최준호를 통해서 공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크는 내려오는 최준호의 등 뒤에 형성된 빈 공간을 보고는 영점을 쟀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수비력 좋은 센터백이 자신에게 붙기 전에 마크는 공간 패스를 넣었고.
마크가 공을 차는 순간 슬슬 걸어다니던 최준호가 따라오는 아모스 옆으로 달리며 스피드를 빠르게 올렸다.
아모스가 몸을 돌려 쫓아가려고 했지만, 최준호는 이미 자신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가 이런 움직임을 보일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자신의 몸이 쫓아가지 못할 줄이야!
‘어!!’
손도 같이 뻗었지만 잽싸게 피해버리며 튀어나가는 최준호.
“안돼!”
아모스는 기를 쓰고 최준호의 뒤를 쫓았다.
“수비! 수비!”
너무나 순식간에 제쳐진 상황이라 아모스가 짧게 고함을 쳤고, 최종 라인을 형성하는 2명의 선수는 달려드는 루소에게 시선이 쏠린 상황이었다.
다들 최준호가 패스를 넣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페널티 에어리어로 가라앉았다.
“안돼! 21번 마크해! 뛰어나와!”
아모스는 잘 알고 있었다.
최준호의 킥력을.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나오는 그 무시무시한 킥을.
아모스가 소리를 질렀지만, 루소가 매우 좋은 오프더볼 움직임을 가져가는 바람에 마크의 패스를 받은 최준호 앞은 텅 비어 있었다.
‘역시 판단을 잘하네. 아모스.’
– 툭, 툭.
두어 번 공을 치자 골대와 훨씬 가까워졌고, 아차 싶었는지 수비수 하나가 뛰어나왔다.
뒤에서는 아모스가 죽을 힘으로 달려와 최준호를 거의 따라잡은 상황.
하지만 최준호는 스피드를 빠르게 줄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지? 이런 플레이를 하는 녀석이…. 앗! 파울을 노리는군.’
문전에서 프리킥?
그건 50% 확률로 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뒤에서 최준호를 덮치려던 아모스는 스피드를 내리면서 그에게 가까이 붙으려고 했고, 그건 중앙수비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 툭.
하지만 또 다시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올리며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최준호.
둘은 스피드를 줄이는 상황이었던지라 최준호의 갑작스런 움직임을 따라가질 못했다.
큰 키와 덩치를 가진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
‘제길!’
짧게 두어 번 공을 치면서 두 명과 거리를 벌린 최준호는 무서운 눈빛으로 골대를 노려보고는 허리를 돌리며 왼발을 휘둘렀다.
– 뻥!
강렬한 슈팅!
빨랫줄처럼 날아가는 공은 골대 오른쪽을 갈랐다.
최준호를 따로 왼쪽으로 이동하던 골키퍼는 황당함과 황망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물을 흔드는 공을 그저 보고 있을 뿐이었다.
‘왼쪽으로 진행하면서 오른쪽 구석을 향해 이런 슈팅을 때린다고?’
골키퍼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골을 넣었을 때의 쾌감보다는 뭔가를 깨달은 듯한 최준호의 표정!
“으아아아아아!!!”
루소가 환한 표정으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최준호에게 달려왔다.
“이 자식 미쳤다!”
메펜의 선수들이 죄다 최준호에게 달려왔다.
감독 크리스도 최준호의 골에 너무 기쁜지 연신 허공을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저런 움직임은 없었는데?”
토마스 투헬이 중얼거렸다.
몸이 작은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민첩하고 순간 속도가 좋은 편이었다.
키가 작은 세계적인 선수들은 자신들의 이런 장점을 잘 활용하는 편이었는데, 그 대표가 리오넬 메시였다.
그는 주력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인 속도 조절과 특유의 드리블을 통해서 상대 압박을 풀어버리곤 했었다.
물론 메시에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최준호의 움직임에서 방금 그것이 보였다.
“어리잖아? 발전 가능성은 꽤 열려 있다고….”
르네가 대답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살짝 놀란 상태였다.
한두 마디 조언해서 모든 선수가 변할 수 있다면, 축구 못 하는 선수가 없을 것이다.
어린 선수들은 조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해서 변하기 어려웠고, 베테랑들은 그 조언을 깨달을 만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노쇠해지는 몸이 따라가질 못했으니까.
‘어제 몇 마디 나누었다고, 오늘 시합에서 그걸 한다고? 저 자식…!’
르네는 최준호가 자신이 파악한 것보다 훨씬 잠재성이 큰 선수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빛을 번뜩였다.
“…1군 리그에서 많은 경험을 하면 더 좋은 선수가 될지도 모르잖아?”
르네의 말에 투헬은 대답 없이 무덤덤하게 경기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
전반전은 1-0으로 끝이 났다.
도르트문트 II의 전반전 슈팅은 고작 4번 뿐이었다.
메펜은 2번 뿐이었지만.
1군 감독인 토마스 투헬이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수들은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런 마음이 앞섰는지 개인기로 자꾸 투박하고 거친 상대의 수비를 뚫으려고만 했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없어졌다.
“후반전 선수 교체다.”
긴장감이 흐르는 락커에 감독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토마스, 김우영, 무코코 준비해.”
그는 무코코의 빠른 스피드와 돌파력, 골 결정력 그리고 장신의 김우영과 토마스의 헤더로 경기를 뒤집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