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41)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41화(41/184)
41화 U-17 국가대표(1)
이후 연장시간을 포함하여 7분 동안 도르트문트는 메펜을 공략하였지만, 몸을 던져 수비하는 선수들과 마테우스의 괴물 같은 선방에 막혀 결국 골을 넣지 못하였다.
주심의 휘슬이 끝나기 무섭게 메펜의 벤치에서는 크리스 감독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와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겼다! 잔류다! 이겼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실점을 막은 선수들을 부둥켜안고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파더보른과 포르투나 쾰른이 결국 2-2 동점으로 끝나면서 메펜의 잔류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 미드필더가 맞아?”
새삼 느끼는 생각이지만, 어떨 때는 미드필더보다는 스트라이커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르네였다.
아까 골 장면에서 미드필더들은 어정쩡하게 헤더를 하거나 공을 한 번 잡아서 무언가를 할 법했다.
헤더를 했다면 힘없이 골키퍼에게 갔을 것이고, 공을 한 번 터치했다면 저 덩치 큰 녀석들이 순식간에 덮쳤을 텐데, 그 짧은 시간에 오버헤드 슈팅을 할 판단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투헬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는 무척 만족스럽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최준호를 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내려 시계를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엉뚱한 짓 하지 마.”
르네에게 그렇게 한마디 하곤 투헬은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사람 야박하긴. 어쩌냐?”
르네는 두 손으로 깍지를 지고는 목베개를 하고는 스트레칭을 가볍게 했다.
스타디움에 설치된 커다란 전광판은 이내 바뀌더니 9번을 단 메펜의 선수가 관중석에서 한 여성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관중석에 남은 메펜의 원정 팬들이 좋다며 소리를 치고 손뼉을 쳐주었고, 르네는 한참 동안 그 장면을 보았다.
‘축구도 결국 인생의 한 부분이지. 낮은 수준의 리그 경기치고는 제법 볼만했어.’
투헬이 끝까지 남아 있을 정도였으니까.
– 확실히 최연소 챔피언스 리그 컵 출전은 욕심이 나네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르네는 들것에 실려 나가는 메펜의 골키퍼 옆에서 함께 걷는 최준호를 보았다.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하고는 이내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럼, 일을 진행해볼까?’
**
마테우스의 무릎은 정밀 검사 결과 인대 손상으로 나왔다.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깁스를 하고 다녀야 했다.
“또 다리 부상!”
“이제는 다칠 일이 없을 거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에게 남는 게 뭔데?”
“승리!”
옆에 있던 최준호도 함께 외쳐주었다.
“승리!”
레아는 인상을 한 번 더 콱 쓰고는 축구에 미친 두 남자를 보다가 시선을 최준호에게 돌렸다.
“정말 가는 거야?”
마지막 경기는 끝이 났고, 임대 기간은 다음 프리시즌까지나 U-17 합숙 훈련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최준호였다.
“응.”
“아쉽네.”
석 달 좀 안 되게 한집에 있다 보니 정이 많이 들어버린 레아였다.
“다음 시즌 여기에 다시 안 오는 거야?”
“아마도.”
“그럼 도르트문트에?”
“확실하진 않아.”
“너무 싫은데?”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최준호는 무심하게 대답했고, 레아는 인상을 더 꽉 찡그리더니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저 녀석이 사춘기인가? 안 하던 짓을 하네.”
마테우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망가듯 사라지는 레아의 등을 보았다.
중얼거리던 마테우스는 최준호를 보며 말했다.
“오늘 정말 고마웠다. 네가 없었으면 절대 잔류할 수 없었을 거야.”
“마테우스가 선방을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큰 점수 차로 졌겠죠.”
“언젠가는 네 동료가 될 녀석들인데 괜찮겠어?”
“멋진 녀석들이라 괜찮아요.”
“그래. 비행기 시간은?”
“이틀 후에요.”
“그때까지는 여기서 편안하게 머물러라. 혹시 이 동네에 오게 되면 연락해줘. 방 한 칸은 항상 비어 있을 테니.”
마테우스 그리고 밀라와 잠시 이야기를 끝낸 최준호는 방으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물건이 흐트러져 있던 방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좀, 아쉽긴 하네.’
과거에도 2~3년 간격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녔던 최준호였다.
어딜 가던 3개월 정도는 적응하느라 고생을 했는데, 여기는 잔류에 대한 선수들의 간절함 때문인지 너무나 편안하게 축구를 했다.
아버지에게 한국에 곧 간다고 연락을 주려고 휴대폰을 들었는데, 알 수 없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 네. 최준호입니다.
– 최준호 선수?
– 네. 누구시죠?
– 갑자기 놀랬지? 나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뛰고 있는 공자철이야.
목소리를 들었을 때 어느 정도 감은 잡았다.
과거 U-20 선발이 되었을 때 알고 지내던 선수였다.
‘살짝 연기도 좀 가미해주고.’
– 아, 진짜요? 진짜 공자철 선수요?
– 그럼!
– 반가워요. 근데 갑자기 무슨 일로 연락을?
– 내일 독일에 있는 한국 선수들 잠시 같이 모일 텐데 나올 수 있어?
– 내일이요?
– 차동원이랑 강주호 선수도 나올 거야.
생각해보니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있는 선수들이 꽤 있었다.
– 차동원 선수랑 강주호 선수도요? 저… 갑작스럽게 연락하시면…
– 내일 데이트 일정 잡힌 거야?
– 아…아닌데요.
– 야야 걱정하지 마! 그럼 형이 데리러 갈게!
– 정말요?
– 그럼 어디야?
– 여기 메펜인데요? 아우크스부르크랑 굉장히 멀어요!
한참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아마도 도르트문트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최준호는 장난기가 발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 오실 거죠?
– 어…어…
– 기다릴게요. 자철이 형! 저 잠시 급한 일 때문에 내일 만나요.
– 야…
– 아! 메펜 스타디움으로 오시면 돼요. 바로 앞이거든요.
최준호는 휴대폰을 닫고는 혼자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과거에도 저 선수들과 꽤 친하게 지냈다.
올림픽 경기에 나가고, 월드컵 경기에 나갈 때마다 많은 조언도 받았고.
공자철이 말은 많지만, 의리도 있고 꺼낸 말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이라, 아마 지금쯤 이 근처에 호텔 잡고 출발할 가능성이 컸다.
최준호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U-17 대표팀 합류가 만만치는 않을 거야.’
고생해서 예선전을 뛴 선수 대신 뜬금없는 선수가 최종 선발이 되었으니 실력과 상관없이 반발이 장난이 아닐 수 있었다.
“…마침 잘됐네.”
**
공자철.
훤칠한 키에 자신만의 머리 스타일.
그리고 대표팀에서 외모 상위권이라고 주장하는 공자철은 약속대로 차를 끌고 스타디움 앞에 나왔다.
동그라미 4개가 연결된 SUV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최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해서 좀 놀라게 해주고, 대화도 잔뜩 나누고, 친해지려고 했는데….
그 장난질 덕에 저녁에 6시간을 달려서 메펜까지 오고 말았다.
사실 그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다가 최근 빌트지에 특집으로 어린 축구 선수와 나이 든 골키퍼의 이야기가 실리면서 알게 되었다.
도르트문트 소속이라는 이야기에 강주호에게 연락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 걔? 장난 아니야. 강인이랑 함께 한국을 책임질 차세대 미드필더가 될 가능성이 커.
– 진짜야 형?
– 구단에서도 특별하게 관찰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
– 그 녀석 왔으면 왔다고 해야지. 근데 어떻게 온 거야?
– 슛돌이 프로젝트 있잖아?
– 응.
– 그거 유소년 특집 캠프 찍다가 스태프 눈에 들었어. 한국에서 정식으로 경기를 뛴 기록은 없다더라.
– 이야! 용 났네! 용 났어.
어떤 녀석인지 많이 궁금했다.
이번 시즌 강등당할뻔한 자기 팀이 막판 스퍼트를 하며 잔류를 한 것도 녀석이 뛰는 메펜과 비슷해서 동질감도 생겼다.
저 멀리에 있는 이층집에서 동양인 소년이 나왔고, 공자철은 그가 최준호라는 걸 금방 알았다.
주변에서 보이는 유일한 동양인이었으니까.
‘여리여리하네. 생긴 건…정환이 형 같고. 크면 인기 많겠네.’
최준호가 곧장 자신에게 왔다.
“안녕하세요. 최준호입니다.
“공자철이야. 만나서 정말 반갑다.
“반가워요.”
“일단 늦었으니까 얼른 타자.”
“네.”
최준호가 조수석에 올라타자 공자철이 말했다.
“너 사람 너무 쉽게 믿는 거 같은데?”
“혹시 저 납치하는 건가요?”
납치라는 말에 공자철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오우 센스 좋아! 넌 왜 축구 하냐?”
공자철은 늘 그랬다.
시도 때도 없이 말을 시켰고, 전화 한 통화 하면 20분은 기본이었다.
어제도 잽싸게 일 있다고 끊지 않았다면 아마 잘 때까지 질문 공세를 펼쳤을 것이다.
“음. 발롱도르를 한 10번쯤 타려고요.”
“으하하!”
공자철은 혹시 최준호가 엄청난 망상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포부 좋네!”
“근데 왜 웃어요?”
최준호가 웃으면서 장난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통은 돈을 벌고 싶다. 어디 리그에 가고 싶다는 현실적인 대답을 하잖아.”
이번에는 꽤 진지한 표정을 짓는 최준호였다.
“…음. 꽤 현실적인 대답인데요?”
그 말에 또다시 공자철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진짜 어이없는 녀석이 나타났네!
**
그다음 날.
독일에 있는 한국 선수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진 최준호는 그들과 찍은 사진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강주호 선수가 김우영도 불렀는데, 이미 한국으로 넘어가서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해.’
메펜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고, 그는 캐리어 하나를 달랑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주 이른 아침이었지만 메펜 구단에서 잔류에 대한 감사로 공항까지 리무진을 태워줄 예정이었다.
밑으로 내려가자 마테우스와 레아 그리고 밀라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잘 가라. 메펜의 영웅.”
“…부끄럽게 영웅이라니요?”
“그런 현수막이 밖에 잔뜩 걸려 있을 거다. 난 그저 그걸 보고 한 말이야.”
“그런가요? 몸조리 잘하세요.”
“그래.”
마테우스는 가볍게 최준호를 안아주었고, 최준호도 가볍게 마테우스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의 플레이에서 최준호는 약간의 울림을 얻었다.
이전의 자신도 지금의 자신도 가지지 못했던.
“이건 오늘 아침 메뉴야. 항상 경기 뛰기 전과 후에는 섭식을 잘해야 해.”
“감사합니다. 가는 길에 잘 챙겨 먹을게요.”
식사할 때마다 밀라에게서 많은 것을 들었다.
그녀는 레아가 학업을 끝내면 다시 일할 생각이라고 들었다.
이번에는 최준호가 밀라를 먼저 가볍게 안아주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너!”
이틀 전에 도망간 이후로 한동안 얼굴도 보이지 않던 레아가 독일인답지 않게 충혈된 눈빛으로 최준호를 불렀다.
“응?”
“진짜 안 오는 거야?”
“아마도.”
“그러면 언제 볼 수 있는 거지?”
“내가 경기 뛸 때 오면 될 거 같은데?”
“나도 선수야. 바쁘단 말이야.”
“그러면 좀 보기 힘들겠다.”
“……”
‘너무 냉정하게 굴었나?’
마음이야 어른이지만 몸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이기에 엉뚱한 곳에 정력과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때가 되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겠지만.
곧 울먹일 것 같은 레아의 표정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2020년 올림픽에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
“…올림픽?”
“너 축구 계속한다면.”
레아는 계속 올림픽을 되뇌었다.
물론 대학 진학을 하면 언제든지 그가 축구하는 경기장을 찾겠지만, <축구를 계속 한다면> 이라는 최준호의 말이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최준호는 레아가 눈물을 쏟을 것 같아 돌린 말이었지만.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최준호는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문을 나섰다.
마테우스의 말처럼 집 주변에는 라고 적혀진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일하고 가족과 지내는 것 이외에는 유일한 낙이 지역 축구 경기를 보는 것뿐인 사람들이었다.
다음 시즌에도 리가3에서 수준 높은 경기를 보게 될 테니 그 마음을 표한 것 같았다.
이번 시즌 잔류가 결정되면서 경영진 측에서 꽤 많은 영입 투자를 할 테니 다음 시즌은 스쿼드를 더 탄탄하게 꾸릴 것이다.
최준호는 서서 현수막을 보다가 환한 표정으로 다시 걸음을 걸었다.
팬들의 사랑을 느낄 때야말로 가장 기분이 좋을 때였다.
리무진에 올라타기 전에 집에서 나와서 손을 흔드는 레아를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올림픽에서 꼭 보게 될 거야!!!”
레아의 고함은 디젤 시동 소리에 묻혀서 최준호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움직이는 차량을 따라 달리는 레아를 보며 속으로 조용히 읊었다.
‘잘 있어라!’
**
“이 녀석이 오늘 저녁에 온다고 했는데.”
최현식은 트럭을 주차 시키고는 전화를 할까 하다가, 가까운 마트에 들려서 고기와 과일을 잔뜩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집에는 이미 불이 다 켜져 있었다.
‘왔구나! 녀석.’
최현식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정말 몇 달 만인지!
아들 생각 때문인지 피곤함 때문인지 최현식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현관문을 열자, 준호가 서 있었다.
독일로 가기 전에는 삐쩍 말라 거의 뼈밖에 없던 녀석이 제법 탄탄한 몸을 한 채 웃고 있었다.
“왔냐?”
“그럼요. 고기는 왜 사 왔어요? 이미 다 준비해놨는데.”
그 말에 최현식이 잠시 눈가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촉촉한 물기가 손에 묻었다.
최준호는 얼른 최현식에 손에 든 것들을 받았다.
“얼른 씻어요.”
“…그…그래.”
화장실에 들어가려던 최현식이 입을 열었다.
“준호야.”
“네.”
“어디 다치거나 아픈 데는 없지?”
“그럼요. 아주 팔팔해요.”
“그래. 정말 다행이다.”
최현식은 그렇게 말하곤 화장실로 들어갔고, 최준호는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 치익!!
**
얼마 후에 열리는 U-17 월드컵.
미사리 경기장에서 일주일 정도 합숙 훈련 후에 인도로 떠날 예정이었다.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에서 엄청난 후원을 해주었고, 인도에서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는 거의 완벽하게 될 것 같았다.
스태프들과 향후 일정을 논의한 U-17 사령관 박정수는 최종 엔트리 명단을 보면서 지시했다.
“선수들 합숙소에 모이면 가장 먼저 체력 테스트부터 할 테니 준비해 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