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4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42화(42/184)
42화 U-17 국가대표(2)
미사리 경기장 합숙소로 선수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보였다.
오전 11시까지 모이면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식사 후 체력테스트가 배정되어 있었다.
“야, 뭐해 빨리 와!”
“예! 예! 얼른 갑니다!”
박기수는 학교 선배인 장윤수의 무거운 캐리어까지 같이 들고 있었다.
기어코 자기가 들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걸 그냥 두었는데, 앞서서 걷던 장윤수는 멈춰서 낑낑거리며 오는 박기수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자식.’
그리고는 그에게 다가가 자신의 캐리어를 뺏었다.
“…서…선배님?”
“제대로 못 들 거면 그냥 네 것만 챙겨.”
쌀쌀한 말투로 툭 내뱉고 장윤수는 캐리어를 끌고 먼저 앞서갔다.
“아! 서…선배님!”
올해 16살인 박기수는 U-17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깜짝 발탁하면서 너무나 기뻤고, 평소 동경하던 선배인 장윤수와 함께 뛴다는 것에 너무 기쁜 나머지 스스로 봉사하는 중이었다.
합숙소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작년에 함께 뛰었던 동료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왔냐? 윤수, 주안아?”
“어, 잘 있었어? 효원이! 창식이!”
모두 올해 17살의 축구 명문 고등학교 주전 선수들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박승우, 김승호 발렌시아에서 뛰고 있는 윤강인은 2019년에 열리는 FIFA-U20 폴란드 월드컵을 대비하여 U-19 대표팀으로 월반을 한 상황이었다.
두 명을 제외하면 모두 국내 고교 클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25명 중에 22명이 17세였다.
16세는 박기수 한 명
15세는 최준호와 김우영 두명 뿐이었다.
“무슨 이야기 했냐?”
“아니 축구가 장난도 아니고 15살짜리가 둘이나 있다는 게 말이 되냐?”
“아 걔네들? 슛돌이 프로젝트에서 나온 애들 아냐?”
“축구 선수인지 예능 선수인지.”
“꽤 잘하던데요?”
박기수가 말했다가 모여 있는 선배 한 명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뭐라고 임마?”
“아, 아닙니다.”
“근데 이 새 얼굴은 누구야?”
“박기수라고 내 후배.”
장윤수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박기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함부로 대화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지?”
“조심하겠습니다.”
올해 초부터 주장 완장을 찬 임효원은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어차피 후보군일테니까. 팀에서 불안조장은 하지마. 월드컵이 중요한 거니까.”
“근데 최준호인가 걔 고양중 출신 아니었어? 주장 후배 아니야?”
임효원은 기억하고 있었다.
운동선수가 아닌 듯한 몸을 가진 후배.
듣기로는 편부모 가정이라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 몸을 하고 있으니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감독이 쓸 리도 없었고, 축구부지만 단 한 경기도 나온 적이 없었다.
임효원이 아는 최준호에 대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그런 녀석이 자신보다 빠른 나이에 U-17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감독님은 인맥 따지는 거 싫어하니까. 후배라고 해서 따로 봐주는 건 없어.”
**
‘일찍 가봤자 싸늘한 눈초리만 받을테니.’
아침에 개인 운동을 끝내고, 아버지까지 배웅한 최준호는 느즈막하게 짐을 챙겨 택시를 탔다.
미사리 경기장 정문에 내리자 김우영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왔냐?”
“들어가지 않고?”
“나도 눈치라는 게 있거든.”
“너 그런 것도 있었냐?”
“그럼 나도 사람인데.”
“아, 사람이었구나.”
“이 자식아.”
최준호는 희끗 웃고는 정문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가자.”
최준호가 케리어를 끌고 앞장서자 김우영이 따라왔다.
“한국에 와서는 어디서 지냈어?”
“할아버지 별장.”
“넓어?”
“거기서 축구 경기해도 될걸?”
“넓네. 첫 국가대표 승선의 소감은?”
그 말에 김우영이 웃음을 지으며 V 자를 그렸다.
“최준호 김우영 선수?”
앞에서 기다리는 스태프는 두 선수를 금방 알아보았다.
슛돌이 프로젝트 특집을 통해서 두 선수의 얼굴이 꽤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네.”
“잠시 서류 몇 장 써 주시고요, 두 분은 같은 숙소에 배정될 거에요.”
“알겠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짐 풀고 1층 대강당으로 모여주세요.”
“네.”
간단한 사무처리를 하고는 둘은 배정된 숙소로 향했다.
지나가는 도중에 선수들과 눈이 마주치곤 했는데, 인사를 해도 모두 싸늘한 눈초리로 무시할 뿐이었다.
“저 새끼들이.”
“야야. 가만히 있어.”
U-17에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최준호가 이미 김우영에게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김우영답게 욱하는 성질이 튀어나왔고, 최준호는 그걸 잘 제어해 내었다.
“여기선 주먹을 휘둘렀다가는 바로 끝이야. 영리하게 대응하자.”
“제길.”
**
25명의 선수들이 모두 무사하게 입소했다는 보고를 받은 박정수는 시간에 맞춰 강당으로 내려갔다.
8명의 스태프들과 25명의 선수.
이번 인도 월드컵에서 함께 해야 하는 인원들이었다.
“여러분의 입소를 환영한다.”
온화한 표정과는 달리 상당히 카리스마가 넘치는 목소리였다.
“앞으로 우리는 일주일에 걸쳐 체력테스트, 컨디션테스트, 전술테스트를 끝낸 후 최종 선발 라인업을 뽑을 것이다. 이 선발 라인업에는 실력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개입될 수 없다….”
예선 탈락할 뻔 했지만 박정수가 임시 감독을 맡아서 월드컵 진출을 시켜놓으면서 정식 감독으로 임명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수들도 감독에 대한 신뢰도가 꽤 있는 편이었다.
“…특별히 여러분들은 성장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무리한 운동을 수행하지 않을 것이며, 개인적인 운동을 할 때도 근육과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는 가벼운 스트레칭 위주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또 이번에 과학적으로 검증된 식단을 적용할 생각이다. 탄산수, 과자, 튀김, 돼지고기, 분식류 섭취는 금지하겠으니 감독의 방침에 따라주기 바란다…”
‘후아, 겁나 깐깐하네.’
선수들은 얼굴에 표시는 안 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먹지 말라고 하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목표는 8강이다. 본선 D조에 속한 우리가 만나야 할 팀은 니제르, 브라질, 스페인이다.”
그 말에 몇몇이 가볍게 한숨을 흘렸다.
브라질과 스페인은 나이를 떠나서 항상 강팀들이었다.
“매우 어려운 대진표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박정수는 흔들리는 선수들의 표정을 보다가 최준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표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리가3에서 어린 선수 같지 않은 탄탄한 플레이를 기반으로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움직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박정수는 그를 중심으로 전술 구상을 이미 해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과연 다른 선수들이 이것을 받아들이겠냐는 문제였다.
그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사람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게 굴러가지 않았으니까.
“…오리엔테이션은 이것으로 끝을 내고, 점심 식사 후 2시부터 체력테스트를 할 테니 몸을 풀어두도록.”
**
“…임효원 선배님이죠?”
17세 나이 때만 놓고 보면 한국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공격수 임효원이었다.
이번 월드컵 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었고.
사람도 꽤 괜찮은지 테이블에는 많은 선수들이 앉아 있었다.
임효원은 식판을 들고 자신에게 이야기를 건넨 최준호를 한 번 훑어보았다.
일단 탄탄하게 붙은 근육들이 눈에 바로 들어왔다.
뼈만 있던 말라깽이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중학교 클럽에 있을 때는 수줍은 소녀만큼이나 내성적이었는데, 이렇게 불편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최준호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저 맞은 편에서 식사해도 될까요?”
“그래.”
“감사합니다.”
최준호가 맞은 편에 앉자, 김우영도 따라서 옆에 앉았다.
“…재수 없게.”
어디선가 작은 소리로 누군가 중얼거렸고, 그 소리는 최준호와 김우영의 귓가에 들어갔다.
다들 싸늘한 눈초리로 최준호를 쳐다보았다.
최준호는 그들의 표정을 보며 씩 웃었지만, 김우영은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말 더럽게 하네.”
김우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때문에 테이블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뭐야?”
테이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최준호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저기 코치님 달려오는데요?”
최준호가 말하면서 김우영의 옷깃을 잡아당겼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8명은 모르는 척 딴청을 하였다.
“무슨 일이야?”
코치의 말에 임효원이 얼른 대답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싸우면 바로 퇴소 조치할 거야. 다들 조심해.”
“하하. 아무 일 아닙니다. 코치님.”
안 그래도 맛도 없는 이상한 음식들만 가득 이었는데, 분위기까지 이러자 다들 수저 움직이는 속도가 한없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준호는 서효원 옆에 앉아 있는 선수를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중석 선배님이죠? 제철고에서 윙어로 뛰시는?”
나중석은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차동원 선배님 아세요?”
차동원이라는 이름에 나중석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명문 축구 학교인 제철고에서 차동원은 난 사람 중에 난 사람이었다.
“당연하지! 존경하는 선배님인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둘의 이야기로 향했다.
“차동원 선배님이 나중석 선배님을 아시더라고요.”
“…뭐?”
나중석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제철고 출신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나중석은 그 하늘 같은 선배와 이야기 한 번 나눠보지 못했는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아니 그보다!
“차동원 선배랑 친해?”
“그럼요. 얼마 전에 독일에서 같이 맛있는 것도 먹었는데요?”
“어, 진짜?”
“네 차동원 선배랑 공자철 선배 강주호 선배랑 같이요.”
“…공자철 선배도?”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선수들의 싸늘한 눈매가 하나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자고로 한국에서는 인맥이 최고이긴 했으니까.
“에이, 그걸 어떻게 믿어?”
어디선가 말이 흘러나오자, 선수들은 다시 의구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최준호를 보았다.
최준호는 바로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아, 지금쯤이면 아침 식사하러 일어났겠네요.”
최준호는 휴대폰을 꺼내 공자철에게 화상 연락을 취했다.
몇 번의 신호가 가자 자다가 일어난 듯한 공자철의 모습이 보였다.
– 뭐야, 준호야.
– 이제 일어났어요?
– 야, 여기 지금… 5시 10분이라고. 어, 근데 모여 있는 사람들은 뭐냐?
– 여기 U-17 국가대표 합숙소에요. 같이 뛰게 될 선배들이에요.
– 야! 나 아직 안 씻었다고!
– 에이, 이미 본 모습 탄로 났는데, 경기 열심히 뛰라고 한 마디 해주세요.
공자철이라는 이야기에 테이블 근처에 있던 선수들이 죄다 몰려들었다.
부동의 월드컵 주전 미드필더인 데다가 분데스리가 리거.
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존경의 대상이었다.
– 야야! 잠깐만, 머리 좀 빗고!
– 안 빗어도 잘생긴 외모 어디 안 가요.
– 야야!!! ….그러냐?
차갑게 식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라 버렸다.
“공자철 선배래?”
“진짜?”
“어디어디?”
– 여기가 이번 팀 주장 임효원 선수예요.
임효원은 휴대폰 화면이 자신을 향하자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월드컵 경기에서 보았던 진짜 공자철 선수였다.
‘지…진짜네?’
– 어이! 축구 잘할 것 같이 생겼네. 임효원이라고?
– 아! 네! 선배님!
– 준호에게 들었어. 엄청 잘한다고?
임효원은 생글생글 웃고 있는 최준호에게 잠시 눈을 돌렸다가 화면을 보았다.
– 지…진짜입니까?
– 그래. 이번에 준호 녀석 도와서 좋은 활약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보자.
– 아! 알겠습니다! 선배님.
“야, 나도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공자철과 대화라도 한마디 하려고 난리가 났고, 최준호는 휴대폰을 그들에게 넘겼다.
“이야기하는 거 되게 좋아하시니까, 마음 놓고 이야기하세요.”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던 김우영이 최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건 무슨 상황?”
“빨리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상황.”
“갑자기 떠오른 거야?”
최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갑자기 되는 건 없어.”
집에서 개인 운동하고 쉬면서 어떻게 하면 선수들과 빨리 친해질까 고민하고 이것저것 찾아봤던 최준호였다.
“준비를 해놓고 때를 기다리는 거지.”
한 편, 박정수가 뒤늦게 식당에 내려왔다가 난리가 난 쪽을 보고는 스태프에게 물었다.
“무슨 상황이지?”
“공자철 선수가 화상 통화로 선수들에게 한 마디씩 해주고 있습니다.”
“자철이가?”
“네. 최준호 선수가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어린 선수에게는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모습일지 박정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생각보다 저 친구들 금방 팀에 적응하겠는데요?”
그 말에 박정수는 지긋이 웃음을 지었다.
‘공자철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역시 범상치가 않은 녀석이었어.’
“어떻게 자제시킬까요?”
“아니야. 첫날이잖아. 적당히 넘어가자고. 체력 훈련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그럼 다들 식사하자고.”
“네.”
**
축구를 하는데 있어서 기술이나 정신적 능력도 중요하지만 90분 내내 뛸 수 있는 체력의 중요성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특별히 더 좋은 체력을 가지고 있다면 지친 상대에게 더 많은 것들을 할 수가 있었다.
남미 쪽보다는 개인기가 확실하게 떨어지고, 유럽 쪽보다는 피지컬이 확실히 떨어지고, 아프리카쪽과 비교해서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한국 팀에게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 딩!
체력테스트는 요요 테스트로 진행이 되었고, 선수들은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팔짱을 낀 채 선수들의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박정수 감독의 눈이 최준호에게로 향했다.
‘리가3에서 7경기를 90분 모두 풀로 소화했었지?’
텃세가 있어도 결국 잘하면 모두가 마음을 여는 법이었다.
경기에서 승리를 해야하는 건 절대 명제였으니까.
승리를 위해서는 주변에 더 좋은 선수가 있어야 하기에.
체력 테스트에서 그걸 빠르게 증명시킬 필요가 있었다.
‘녀석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