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44)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44화(44/184)
44화 U-17 국가대표(4)
경기는 박정수 감독 생각보다 A팀이 훨씬 압도적으로 가져갔다.
최준호가 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빠른 패싱 게임을 하며 점유율을 가져갔고, B팀의 공격은 거의 김우영에게 무마되기 일쑤였다.
특히 게임 시작 5분 만에 오른쪽 풀백으로 뛰고 있는 박기수가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깊숙이 드리블을 한 뒤 낮게 올린 크로스를 임효원이 쇄도하면서 발을 갖다 대어 골을 넣었다.
그리고 B팀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최준호의 발끝에서 시작된 스루패스가 최종 수비수 뒷공간을 파고든 오른쪽 윙어 임창오에게 연결이 되었고, 그의 슈팅이 골로 연결이 되었다.
아시아 예선전에서 보였던 그런 무딘 공격력이 아니었다.
특히 계속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중앙 라인이 굉장히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좋은데요?”
코치들의 말에 박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A, B 팀으로 나누긴 했지만 몇몇을 빼면 다 고만고만한 실력이었다.
이전에도 여러 조합으로 시도를 해봤지만, 지금만 한 경기력은 전혀 나오지 않았었다.
“준호 녀석 활약이 엄청납니다.”
“이미 독일 3부 리그에서 검증된 자원이야. 눈에 확 띄는 건 당연하지.”
“그런데 개인기는 거의 하지 않는군요.”
상대를 돌파 한다거나 개인기를 써서 공간을 창출하는 플레이는 거의 하지 않고, 양옆, 위아래 선수들과 계속 호흡을 맞추면서 패스워크만 하고 있었다.
코치들의 눈길을 끈 건 메펜에서 보여준 그의 창조적인 움직임이었다.
훨씬 강한 상대로 최준호가 그런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오른쪽으로 좀 치우쳐서 플레이하는 감이 있는데요? 의도적인 걸까요?”
“기수 녀석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 걸지도.”
“확실히 저 친구 좋아요. 일단 공을 드리블하면 따라오질 못하네요.”
“그렇지. 스피드는 이미 검증되었고. 체력도 상당히 좋아! 전후반 사이드에서 저렇게 활동을 해주면 분명 기회가 날거야.”
“근데 윤수 오늘 움직임이 너무 안 좋습니다.”
코치의 말에 박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장윤수는 박정수의 제자였다.
8살 때부터 10살 때까지 유소년 축구 교실에서 박정수가 직접 지도한 선수였으니까.
경쟁심이 너무 강해서 때론 과격한 플레이를 하곤 하지만, 그가 여전히 17세에서는 굉장히 좋은 선수임은 분명하였다.
‘무슨 일이지?’
장윤수의 움직임은 팀 움직임과 상당히 동떨어졌고, 팀플레이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오프사이드 트랩을 쓸 수가 없었고, 2번째 골을 먹었다.
“야!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자리 지키란 말이야!”
같이 뛰는 B팀 동료들에게 지적을 당한 장윤수의 멍한 눈길은 반대편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는 박기수에게 향해 있었다.
여러 개의 부정적인 감정이 머릿속을 휘어잡고 있다 보니 동료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이럴 수 없어!’
임효원은 최종 수비 라인에서 서성이다가 최준호가 공을 잡는 것을 보고는 자신 옆에 서 있는 수비수 등 뒤로 돌아 뛰었다.
최준호는 순간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그를 보고는 한 번 공을 터치한 후 그대로 크로스를 올렸다.
양발을 다 능숙하게 쓰는지라 그를 마크하는 선수는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와, 이 녀석!’
전방에서 부지런하게 움직여도 뒤에서 패스가 나오지 않으면 체력만 빠지고 허탈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움직이는 방향으로 패스가 여지없이 날아왔다.
‘신나네!’
비록 눈치를 챈 수비수가 먼저 자리를 선점해 공을 처리하였지만, 임효원은 최준호와 어떻게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 감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B팀도 초반에 얻어맞은 두 골 이후로 엉성한 팀 분위기를 다잡는가 싶더니 A팀의 공격을 제법 잘 막아내었다.
그리고 미니 게임이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을 무렵.
B팀이 코너킥 기회를 가져갔지만, 김우영이 펄쩍 떠서 공을 페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보내었다.
그 공을 잡은 A팀 선수가 오른쪽에 빠른 속도로 뛰어나가는 박기수에게 공을 넘겨주면서 A팀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최종 수비라인에 있던 장윤수가 공을 달고 뛰어가는 박기수에게 달려들었다.
장윤수의 굳은 시선이 박기수의 다리로 향할 때쯤이었다.
최준호는 경기 내내 장윤수를 살폈다.
동료들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장윤수의 시선은 항상 박기수에게 고정이 되어 있었다.
그의 표정은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했다.
불안감, 미안함, 질투, 걱정, 분노 등등.
‘장윤수.’
최준호는 박기수라는 이름도 못 들어봤지만 장윤수라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훈련에서 보여주는 그의 실력을 볼 때 적어도 올림픽 대표까지는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두 사람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건…!
“패스!”
뒤에서 들리는 최준호의 커다란 목소리에 박기수는 얼른 패스를 주었다.
최준호가 공을 받았지만 장윤수는 공과 상관없이 박기수만 쫓고 있었다.
장윤수가 어떤 의도로 움직이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저 정신 나간 새끼!’
최준호는 뻥 뚫린 자신의 앞 공간이 아니라 장윤수 뒤를 향해 드리블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다들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
박정수는 인상을 굳히고 이상하게 움직이는 세 선수를 보았다.
– 윤수야 다음 경기부터는 윙어로 뛰자.
– 스피드가 느리고, 침착성도 떨어지고 골 결정력도 별로야. 재근이가 그 자리를 맡게 될 거다. 하지만 넌 체력이 좋고 수비도 괜찮고 적극성이 뛰어나니까 풀백으로 내려오는 게 어떨까?
눈에 뛸 만한 재능은 없었지만, 축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축구에 인생을 걸었다.
하필이면 그 자리를 선배님, 선배님 하며 내내 붙어 있던 박기수가 가져갔고, 장윤수는 자신의 축구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가 좀 더 경험이 많았더라면 이 상황을 잘 헤쳐 나갔겠지만, 그는 혈기를 다스릴 수 없는 어린 17살이었다.
침잠하는 분노가 그의 뇌리를 온통 지배하여 눈앞의 박기수의 다리만 노려볼 무렵!
“야아!”
뒤에서 들려오는 큰 고함에 장윤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 뻥!
어찌나 빠르고 강력한 슈팅인지 장윤수는 눈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피할 수가 없었다.
– 퍽!
공이 장윤수의 머리를 그대로 강타했고, 장윤수는 그라운드에 쓰러져 꿈쩍도 안 했다.
박기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몸을 멈추고는 두리번거렸고, 최준호는 무서운 눈빛으로 쓰러진 장윤수를 쏘아 보았다.
선수들이 모여들었고, 박정수 감독과 코치들이 달려 나갔다.
**
공에 맞고 기절한 장윤수가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렸다.
박기수의 발을 노리고 백태클을 노리던 찰나 이후의 기억이 날아가 버린 상황이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장윤수는 자신이 의료실에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어났냐?”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박정수 감독이 보였다.
“…감독님…”
“괜찮아?”
“이게.”
“너 공에 맞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구급차 올 때까지 잠시 상태 좀 보자.”
팀닥터가 와서 장윤수의 상태를 체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밀 검사를 받아야겠지만, 상처 부위, 동공 반응 전부 괜찮습니다.”
“휴.”
박정수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최준호가 왜 장윤수를 향해서 공을 찼는지 해명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장윤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는 박정수는 그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아까의 상황은 충분히 최준호의 해명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박정수는 주변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다 나가라고 지시를 하였고, 얼마 후 장윤수와 단둘이 있었다.
“윤수야.”
장윤수는 박정수를 보고는 잠시 몸을 떨었다.
뭔가 잘못했을 때 나오는 장윤수 만의 반응.
박정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수가 싫었니?”
“아닙니다.”
“근데 기수한테 뭘 하려고 했지?”
박정수의 떨리는 음성을 들은 장윤수는 그 짧은 순간 자신이 무얼 하려고 했는지 기억해 내었다.
박기수를 망가트리려고 했었다는 사실에 장윤수의 눈동자가 대번 충혈되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죄!!! 죄송합니다. 감독님!”
“이 자식아!”
“죄송합니다!”
“이 멍청한 자식아!”
“죄송합니다!”
“그게 죄송하다는 말로 끝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아닙니다!”
“고작 선발 자리 한 번 내어줬다는 걸로 그렇게 흔들리는 놈! 난 못 쓰겠다.”
장윤수가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을 하였지만, 박정수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당장 장윤수를 대표팀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틀 후에 인도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
장윤수가 이런 일로 대표팀을 떠나면 선수단 분위기도 엉망이 될 게 분명했다.
경기에 악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감독으로서 선뜻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선수단에 남겨두겠다. 하지만 인도에서 출전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
장윤수도 자신이 얼마나 미친 짓을 하려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했고, 감독의 말에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진짜 사람 새끼라면 기수한테 가서 사과하거라. 꼴보기 싫으니까 당장 병원으로 꺼져!”
**
정밀 진단 결과 단순한 충격으로 인한 의식 상실, 단기 기억 상실이라는 진단을 받은 장윤수는 미사리 경기장 앞에서 내렸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참 미사리 경기장 건물을 보았다.
‘내가 저기 들어갈 자격이 되는가?’
박정수 감독은 아주 냉정한 인물이었다.
이런 해프닝을 벌였으니 절대로 경기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계속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가 교체로조차 나가지 않는다면, 동료 선수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했다.
소문이 퍼질 것이고, 평판은 부숴질 것이고, 한국에서 축구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축구를 그만해야 할까?’
15분 정도 건물을 보던 장윤수는 몸을 돌렸다.
이대로 합숙소에 돌아가지 않으면 무단 이탈이 될 것이고, 자동으로 대표 선수라는 딱지도 사라질 것이다.
미사리 경기장에서 점점 멀어지던 장윤수는 한참 걷다가 다시 미사리 경기장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니 아직 못한 일이 있었다.
박기수에게 사과하는 일.
정문 가까이 갔을 무렵이었다.
“선배님!”
박기수가 안에서 뛰어나왔다.
“괜찮으십니까?”
장윤수는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뚝뚝한 그의 성격에 쉽사리 내뱉기 어려웠지만…
장윤수는 자신의 성격을 이겨내고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질투해서. 정말 미안하다.”
박기수도 감독을 통해서 들었다.
하지만 그는 선배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장윤수 때문에 2년 동안 경기에서 뛰지 못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박기수는 장윤수를 따르면서도 경기에서 그가 다치기를 원할 때도 있었다.
“네, 사과 받아들이겠습니다.”
박기수가 생각보다 쿨하게 받아들이자, 장윤수는 멋쩍게 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렸다.
하지만 박기수가 장윤수의 옷깃을 꾹 잡았다.
“설마 이대로 떠나시는 거 아니죠?”
“……”
장윤수가 머뭇거리자, 이번에는 박기수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 선배 사과 못 받아들입니다. 같이 본선 가셔야죠.”
박기수가 자신을 또렷하게 보면서 조르듯이 말하자, 장윤수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미안하고, 죄책감도 들고, 심지어 부끄러웠지만 너무나 고마웠다.
“…그렇다면…그러자.”
“네! 선배님.”
“고맙다.”
**
미사리 경기장에 마련된 휴게실에는 선수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으아아악!”
“또 졌어!”
“이 자식 게임도 잘하는 건 사기잖아!”
“케케케케! 도전자 더 있습니까?”
내일 저녁에는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할 U-17 선수들이었다.
미니 게임을 끝으로 미사리 경기장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난 그들은 축구 게임을 하며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최준호와 김우영이 제대로 적응할까 걱정을 했는데 그런 우려가 싹 사라졌다.
실력으로 이미 선수들에게 인정받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최준호는 인싸 기질이 다분한지 선수들과 금방 어울리며 떠들고 놀았다.
김우영은 여전히 선수들과 쭈뼛거리는 것 같긴 했지만, 최준호가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잘하고 있었고.
“이 자식이! 야 묻어!”
“으악! 선배님들 왜 그러십니까?”
“요게 경기할 때는 반말하면서, 꼭 이럴 때만 존댓말이냐?”
최준호는 선배들을 피해 도망을 가다가 창문을 통해서 박기수와 장윤수가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잡았다! 요놈!”
하지만 아마도 오늘 일어난 일은 자신과 박 감독 그리고 두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될 것이다.
“으악! 살려 주십시요!”
**
2017 U-17 FIFA 월드컵 예선전.
브라질이 스페인을 2-1로 격파한 D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D조에서 가장 약체로 평가되던 한국이 피지컬을 앞세운 아프리카 니제르를 상대로 5-0으로 깨버렸기 때문이었다.
최준호는 1골 3도움으로 국제 대회 첫 데뷔 게임에서 경기 MOM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한국이 예선전을 통과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또 다른 이변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할 리도 없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