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47)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47화(47/184)
47화 스페인 예선전(3)
“…설마 스페인이 떨어질까요?”
“그럴 리가 없을 겁니다. 다시 반격해서 골을 넣을 겁니다. 한국이 스페인을 꺾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한국보다 일본이 우수합니다.”
일본의 기자들은 스페인이 다시 반격해서 추가 골을 넣어 승리할 것이라고 단언을 하였지만, 게임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너무나 손쉽게 동점 골을 허용하자 화가 난 호세 감독이 본색을 드러내며 소리를 질러댔다.
“공격해! 공격하란 말이야!!! 이 게으름뱅이들아!”
전반전 2골을 넣고 너무 일찍 게임을 잠그려 했던 것이 실책이었다.
초반에 6단 기어 넣고 달리다가 서서히 1단까지 내렸는데 갑자기 6단을 내려고 하니 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의 핵심 선수가 빠진 것도 문제였다.
이 상황을 되돌릴만한 교체 선수가 없었다.
스페인이 공세로 전환했지만, 사기가 바짝 오른 한국도 맞받아치면서 20여 분간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공수 전환이 일어났다.
전반에 2골을 넣은 아벨 루이스는 김우영에게 삭제가 돼서 존재감이 없었기에 위협적인 장면은 전혀 나오질 못했다.
후반 43분.
최준호를 따라다니느라 체력을 거의 다 소진한 아벨은 뒤에서 날아온 패스를 받았지만, 숨이 턱까지 올라왔다.
‘빌어먹을! 제길! 멍청한 감독!’
최강의 우승 멤버가 자칫했다가 예선에서 나락 갈 수 있는 상황까지 몰렸고, 억지로 공을 몰았지만 지쳐서 속도가 나오질 않았다.
심지어 주의력도 떨어져 뒤에서 김우영이 바싹 쫓아온 걸 인지도 못 했다.
오직 골대만 보고 드리블하던 아벨 루이스의 뒤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공! 내! 놔!”
– 쑥!
무언가 가랑이 사이로 들어왔고, 아벨은 몇 발자국 더 뛰고 나서야 자기 발에 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차!’
급하게 멈추고 몸을 돌리니 자신에게 공을 뺏은 김우영이 패스를 보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스페인 선수 전부가 아벨의 속도에 맞춰서 공세로 전환했다가 순간적으로 역습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 틱.
최준호는 김우영이 준 패스를 받아 속도를 죽이면서 앞으로 흘렸다.
역습은 빠른 전환이 필수였다.
최준호 역시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지만, 후반 거의 마지막일 것 같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공을 앞으로 흘리면서 몸을 선회하여 속도를 다시 내기 시작했다.
공격수는 4명, 수비수는 5명인 상황이 되었다.
“끊어!”
수비수들의 외침에 카를로스가 달려들었다.
카드가 없는 그는 파울을 해서라도 역습을 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최준호는 노련하게 그걸 읽었다.
‘설마 앞에서 대놓고 태클하려고?’
그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최준호는 공을 양발에 끼고 점프를 뛰었다.
– 촤르륵!
두 다리를 살짝 구부리자 그 밑으로 카를로스의 태클이 지나갔다.
‘뭐…뭐야!’
최준호의 개인기에 미끄러지는 카를로스의 눈동자에는 황당함이 가득했다.
쉽게 볼 수 없는 개인기에 관중석이 난리가 났다.
공격수 4명, 수비수 4명.
호세는 최준호가 카를로스의 태클을 피하는 걸 보고는 싸한 느낌이 목덜미를 자극했다.
그리곤 침이 바싹 마르는 게 느껴졌다.
‘…!’
임효원과 임창오, 황규석이 페널티 에어리어로 짓쳐들어가는 형국이었고, 스페인의 풀백 마테우가 최준호를 1:1로 마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자식 도대체 뭐야?’
눈앞의 검은 머리 괴물.
양발에 패스면 패스, 개인기면 개인기….
다 놀라운 수준이었다.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백업해줘야 하잖아!”
하지만 다른 세 수비수는 한국의 공격수를 마크하느라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마테우가 달려들지 않고, 앞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시간을 지체하려고 하자, 최준호는 달리는 상황에서 몸을 왼쪽으로 슬며시 틀었다.
순간적으로 왼쪽으로 뛰어나가 압박하고 싶다는 본능을 참은 마테우는 몇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공격 나갔던 선수들이 빠르게 복귀하고 있었고, 2~3초 정도만 버티면 역습을 무위로 돌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최준호가 다시 몸을 왼쪽으로 틀었고, 마테우는 두 번째 유혹은 참을 수 없었는지, 상체를 움직이고 말았다.
하지만 왼쪽으로 칠 것 같던 최준호의 몸은 마테우의 오른쪽을 뚫고 나갔다.
‘…맙소사!’
이미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쏠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테우는 최준호를 방어할 수가 없었다.
팬텀 드리블.
메시의 대명사 같은 드리블 움직임이었다.
그 1초를 참지 못한 결과는 수비수 3명 공격수 4명!
최준호가 공을 빠르게 치며 페널티 에어리어로 진입했지만, 뛰쳐나오는 선수는 없었다.
‘하긴. 니제르전에서는 중거리 슈팅을 때린 적이 없으니까.’
최준호는 중거리 슈팅을 때릴 것 같은 동작을 취했고, 각을 재던 수비수 한 명이 뛰어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두 명의 수비수들이 공격수보다 앞으로 움직였다.
순간적인 오프사이드 트랩!
이미 몇 번이나 당한 상황이라 최준호는 입술을 비틀며 다리에 힘을 뺐다.
‘걸릴 거 같냐?’
– 툭.
준호는 중거리 슈팅을 때리지 않고, 페널티 에어리어에 있는 공격수에게도 공을 찌르지 않았다.
시선도 돌리지 않았던 오른쪽 사이드로 밀어 넣었다.
얼핏 보면 아무도 없는 공간 같았지만.
– 탓탓탓!
박기수가 놀라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이스! 최준호! 역시 대단한 녀석이야!’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부숴버리는 놀라운 공간 패스.
사람들은 최준호의 뒤통수에 눈이 달렸는지 궁금해 할 정도였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느라 역동작에 걸린 수비수들이 재빠르게 한국 공격수들에게 붙으려고 했지만, 박기수의 땅볼 크로스가 더 빨랐다.
니어 사이드에 있던 임창오가 박기수의 땅볼 크로스를 가볍게 골대 안으로 툭 찼고, 골대 그물이 흔들렸다.
월드컵 임창오의 첫 골!
그것도 스페인전 결승 골이 될 수 있는 골이었다.
양팔을 빙빙 돌리면서 코너 쪽으로 달려가던 임창오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역전 골에 스페인 선수들은 아직 7분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모두 절망적인 눈빛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주심의 골 인정 휘슬이 나오자 스페인 감독 호세는 들고 있던 물통을 땅바닥으로 던지고는 분통을 터트렸다.
“이 병신들!”
호세는 바로 4명의 선수를 교체시켰고, 7분 동안 미친 듯이 동점 골이라도 뽑아내려고 총공세를 펼쳤다.
동점이라도 된다면 브라질과 한국의 경기 결과에 따라서 본선 진출의 희망이라도 볼 수 있으니까.
경기 종료 15초를 남겨놓고 코너킥을 얻은 스페인!
스페인의 골키퍼마저 한국의 페널티 에어리어로 들어온 상황.
카를로스가 예리하게 코너킥을 넣었지만, 떨어지는 자리를 예측한 김우영이 먼저 자리를 잡아 헤더를 했고, 그 공은 최준호에게 연결이 됐다.
– 뻥!
최준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공을 멀리 찼다.
많은 이들은 그가 멀리 차서 공을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공의 궤적이 심상치가 않았다.
스페인 골키퍼가 죽어라고 자기 골대로 향했지만, 사람이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공은 5번 정도 바운드 되더니 놀랍게도 골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뛰어가던 골키퍼가 그대로 주저앉았고, 스페인 선수들은 절망에 휩싸인 채 머리를 잡았다.
주심은 골 인정을 하고는 곧바로 경기를 끝냈다.
한국- 스페인 : 4-2
최약체라고 불리던 한국!
이번 대회 우승팀으로 꼽히는 스페인을 상대로 거둔 놀라운 신승이었다.
브라질은 니제르를 맞이하여 4-1로 승리를 하며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하여 월드컵 예선 D조에서는 브라질과 한국이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고, 스페인은 탈락하고 말았다.
벤치에서 대표팀 스태프들과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예선전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본선 진출에 대한 희망을 일찍 접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온 그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그리고 니제르전에 이어서 경기 MOM으로 또다시 최준호가 뽑혔다.
월드컵 경기장을 찾은 많은 스카우트가 강호 스페인을 격파한 한국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
‘…U-17 한국팀 속보를 일본 매체에서 들어야 한다니!’
한국 뉴스 포탈에는 올라오지도 않은 속보가 일본 뉴스 포탈에 올라왔다.
참 아쉬운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선수 한 명이 해외로 진출하면 짜증 날 정도로 많은 기자가 따라다닌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국제 뉴스를 번역해서 그대로 가져오거나, 약간 살을 붙여서 보도를 낼 뿐.
U-17이라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취재하는 기자가 없다니!
‘축구가 아직 돈이 안 되긴 하지.’
어릴 적부터 축구에 미쳐 있던 양창명은 약간의 사명을 가지고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었다.
“최준호 선수가 또 MOM이네. 역시! 이 선수 앞으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 선수야. 마지막 골은 완전 푸스카스상 감인데?”
양창명은 부랴부랴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과 기사들을 모아서 생방송 준비를 시작했다.
스페인전.
1골 2도움.
4번의 키패스.
패스 134/142(성공율 94.4%)
롱패스 8/10(성공율 80%)
“양 팀 선수 수준이 다른데… 이런 패스 성공률이라니. 놀랍네.”
드리블 성공률 7/8(87.5%)
뛴 거리 : 12.7km
최고 속도 : 31.1km/h
양창명은 그의 기록을 살피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스피드가 올랐네?”
독일 리가3에서 뛸 때 최고 속도는 29.7km/h였다.
EPL 정상급 선수들의 최고 속도가 36km/h에 육박하는 걸 볼 때 비교할만한 수치는 아니었지만, 최준호는 지금 성장기의 선수였다.
짧은 기간에 이토록 스피드가 올랐다는 건,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피지컬이 가장 약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좋아지고 있단 말이지? 이 선수 20세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진짜 괴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양창명은 준비한 자료를 토대로 라이브 방송 채널을 열기 위해서 제목을 쳤다.
<최준호, 한국의 메시가 될 수 있을까?>
**
“허허허!!”
김상식은 너무나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후원하는 U-17 국가 대표팀이 강적 스페인을 꺾고 빠르게 본선 진출을 결정지었다는 소식과 함께 들려 온 김우영의 첫 골 때문이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암, 이 녀석이 난 놈이긴 하구나!’
자신의 힘으로 축구를 하고 있고 결실을 이루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초청한 전문가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니 축구도 야구만큼이나 꽤 재미있는 스포츠였다.
“그래서 이 친구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김상식은 신문에 실린 작은 사진을 가리켰다.
21번을 단 최준호였다.
김우영의 개인 트레이너에서 이제 축구 해설 전문가로 탈바꿈한 이정석은 어제 보았던 <새벽의 축구 도사> 라는 라이브 방송을 떠올렸다.
“굉장한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굉장하다면 어느 정도?”
“리오넬 메시라고 아십니까?”
“그럼! 설마 그 선수만큼의 가능성이라고?”
“많은 전문가가 그렇게 보고 있고, 저도 그렇습니다.”
“오호! 많은 전문가라!”
김상식은 한국 대기업의 총수였다.
당연하지만 축구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거기서 돈이 될만한 것들도 찾고 있었다.
‘이 녀석이 그 정도의 선수가 된다면 가치가 얼마나 될까?’
“그럼 U-17 국가대표는 이번 대회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나?”
“우승팀이라던 스페인을 부순 한국입니다. 당연하지만 우승까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하!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우승이라….”
김상식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이번에 축구 협회장 후보로 등록을 한 상태였다.
또다시 축구와 관련 없는 사람이 축구 생태계를 가지고 놀 거라는 고약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만약 엄청난 돈을 후원하는 U-17이 우승이라도 한다면, 협회장 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한참 동안 이정석의 판타지에 가까운 축구 이야기를 들은 김상식은 비서 실장을 호출했다.
“그런데 말이야. 왜 한국 국가대표 소식을 현지에서 보도하는 기자가 없는 거지?”
비서 실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축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적고, 1군 경기가 아니라면 거의 보질 않습니다. 기사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보지 않으니, 언론 입장에서는 적자를 보는 일이죠. 쉽게 나서지 못할 겁니다.”
“저런! 좋은 이야기를 계속 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사람들이 축구에 관심을 가지지. 그렇게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거고 거기서 돈을 버는 거야. 새로운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많은 자원을 퍼부어야 하는 거고. 그걸 나는 투자라고 불러.”
“맞습니다. 회장님.”
“우리 그룹이 대주주로 있는 언론 매체들에 압박 넣어. 투자 좀 하라고.”
비서 실장은 김상식 회장의 의중을 알아차리고는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
사흘 후.
한국은 브라질과 경기를 하였고 0-4로 패배를 하였다.
양 팀 모두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한 상황이었고, 주전 선수들의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양쪽 다 거의 2군으로 나왔고, 선수 풀이 좋은 브라질이 손쉽게 한국을 이겨버렸다.
스페인은 니제르를 상대로 11골을 퍼부어 대회 신기록을 세웠지만, 이미 떠난 버스를 잡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한국의 16강 상대는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E조에 속해 있던 일본은 2승 1패를 거두었는데, 강호 프랑스가 온두라스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골 득실 차이로 조 1위를 일본에 내어주었다.
그리고 추첨 결과 한국과 붙게 되었다
양쪽 모두 서로 할만한 경기라고 입방아를 쪘다.
한국 선수단들은 이제 일본과의 경기를 위해서 콜카타로 이동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