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49)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49화(49/184)
49화 한일 더비 16강(2)
한국 VS 일본.
U-17 16강 토너먼트 단판 승부.
최준호는 2026년 월드컵 이후로 A매치에서 일본팀을 이겨본 적이 없었다.
한국 축구 수준도 올라가고는 있었지만, 일본팀의 축구 수준이 급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다르긴 하지.’
최준호는 지금 멤버만 데리고서도 충분히 일본을 이길 것 같긴 했다.
스페인 전에는 몇 선수를 제외하곤 실수 할까봐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 전은 밀리는 실력과는 다르게 이기겠다고 선수들이 이를 갈고 있었으니까.
승리를 위해서는 동기 부여만큼 좋은 수단도 없었다.
다만.
‘그냥 이겨서는 안돼지. 앞으로 한국 축구에 들이밀지 못하게 박살을 내야지.’
최준호는 일본의 골대를 보았고, 전반전 주심의 휘슬로 일본의 선공이 시작되었다.
– 삐익!
확실히 한국 선수들보다 일본 선수의 볼 터치 기술이 훨씬 안정되었고, 몸이 상대적으로 민첩하고 유연했다.
그래서 강하게 압박을 함에도 불구하고 패스 게임으로 후방에서 볼을 끌고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의 핵심 미드필더이자 주장인 히라카와는 자신의 앞으로 달려오는 최준호를 보았다.
‘너냐?’
이상한 인터뷰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한국의 빌런이었다.
히라카와는 1:1로 상대를 제치거나 탈압박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장점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최준호가 자신의 그 기술이 약점이라고 말했었다.
‘내가 빨간 속옷을 입는 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네 생각대로 놀아나지 않아.’
그는 민첩하고 유연한 몸동작으로 최준호를 따돌린 후에 공격수에게 좋은 패스를 해줄 생각이었다.
아울러 최준호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이 자리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오직 승리만 생각하는 프로가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17살의 치기어린 소년이었으니까.
개인기로 최준호를 따돌렸다고 생각하며 그의 압박을 피해 빠져나가는 순간 히라카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뭘, 어떻게 했는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이 최준호의 발 밑에 있었다.
– 툭툭.
‘돌파력 개인기, 탈압박 능력은 아주 훌륭해. 히라카와. 과거의 나는 너에게 좀 당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 왜냐면 넌 유럽 진출 전에는 개인기 쓰기 전에 공을 오른발 바깥쪽에 두는 습관이 있었거든.’
오랫동안 한일 더비에서 그와 경기하면서 얻은 경험이었다.
“제길!!”
최준호가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경기력을 볼 때 최종 수비수가 공격수에게 공을 뺏기는 것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고, 히라카와가 몸을 돌려서 최준호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후방 빌드업 이후 공격으로 전환되는 상태라 일본의 수비수는 많지 않았기에, 신페이가 최준호에게 달려들었다.
‘한국 팀에서 가장 위험한 선수! 하지만!’
일본 팀은 이미 최준호에 대한 대책을 세워놓았다.
페널티 에어리어에 근접하기 전에 파울로 끊어놓는 것이었다.
‘단순한 녀석. 감독의 지시대로 파울로 끊을 생각이겠지?’
최준호는 순간적인 상황 상황마다 빠르게 판단을 하고 몸을 움직였다.
– 툭!
신페이가 옆으로 달라붙어 태클을 하려는 순간 최준호는 오히려 공을 길게 툭 차고 빠르게 가속을 하였다.
어깨와 다리를 넣으려는 신페이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고 균형을 잃어 혼자 넘어져 버렸다.
두 명이 순간적으로 떨어져 나가자 한국의 공격수가 더 많아진 상황이었다.
뒤에서 히라카와가 허둥지둥 달려오고는 걸 본 일본의 센터백들은 최준호를 막는 대신 쇄도하는 한국의 공격수를 막기로 결정했다.
최준호는 날카로운 눈매로 뒤에서 달려오는 히라카와 골대, 그리고 골키퍼의 위치를 한 번에 스캔하였다.
히라카와는 발이 매우 빠른 선수였기에 드리블을 한 번 더 치면 바로 뒤에 달라붙을 수 있었고.
골키퍼는 쇄도하는 공격수에게 시선이 가 있었다.
‘좋아!’
판단이 끝난 순간 최준호는 골대롤 무섭게 노려보며 오른발을 디뎠다.
– 뻥!
왼발에 맞은 공은 강하고 빠르게 휘어나갔다.
“뭐얏!”
이번 대회에서 최준호가 저 정도의 거리에서 한 번도 중거리 슈팅을 때리지 않았기에 예측할 수가 없었지만, 스즈키는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날아온데다가 오른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경로라 공에 닿을 수가 없었다.
– 철렁!
경기 시작 1분 30초.
최준호의 왼발에서 의심할 수 없는 완벽한 골이 터졌다.
임창오가 신이 나 고함을 지르며 최준호에게 달려들어 그를 안아서 번쩍 들어 올렸고, 최준호는 가볍게 주먹을 꾹 쥐었다.
“이 자식! 언제 때리나 싶었다.”
이미 훈련을 통해서 최준호의 중거리 슈팅 위력을 알고 있던 임효원도 그의 등을 토닥이며 축하해주었다.
관중석을 대부분 채운 인도 관중들이 골 장면에 신이 나서 함성을 질렀고, 한쪽에 우르르 자리를 잡고 있던 일본 기자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이럴 수는 없습니다.”
“독일 3부 리그에서 이미 중거리 슈팅으로 여러 골을 넣은 선수인데, 저렇게 프리하게 두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스페인처럼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킬패스가 들어갈 수 있으니 당연한 것입니다. 전술상 문제는 없습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운이 좋게 들어간 골입니다. 일본이 곧 동점골 역전골을 넣을 겁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양창명은 피식 웃으면서 몰려 있는 한국 선수들을 보았다.
독일에 있던 그는 급작스럽게 U-17 월드컵 취재를 위해서 파견이 되었고, 어제 도착한 후에 오늘 바로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그래.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한국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양창명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저 멤버를 이끌고 스페인을 격파한 최준호였다.
일본이 과연 스페인보다 더 대단한 팀이었던가?
**
일본의 핵심 미드필더이자 주장인 히라카와는 25분 동안 최준호에게 공을 여러번 뺏겼다.
첫 골을 먹혔던 상황이 또 나올까 봐 일본의 수비수들은 함부로 올라오지 못했고, 히라카와가 자꾸 끊기자 그를 도와주기 위해서 공격수들이 내려왔다.
결국 일본이 준비한 전술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고, 그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걸 깨달은 히라카와는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 나갔다.
‘저 녀석 말대로 돌파가 내 약점인 건가?’
분명 프랑스를 상대하면서도 통했던 돌파와 탈압박이었다.
히라카와는 과감하게 부정하였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 기술은 완벽해!’
최준호는 전쟁에 임하는 듯한 굳은 표정을 짓는 히라카와를 보며 슬며시 웃었다.
‘딴생각이 많아졌네. 다음에는 기어코 날 돌파하려고 하겠네. 그걸 쓸라나?’
한편 일본 벤치의 수석코치 아베는 감독 모리야마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히라카와를 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 녀석 때문에 팀 전술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모리야마 역시 그걸 알고 있기는 했지만, 히라카와는 주장이었고, 저만한 미드필더가 벤치 자원에서는 없었다.
그를 뺀다면 분명 다음 경기에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한국에게 질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모리야마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아베는 또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리하지 말고 공을 돌리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베 코치. 선수를 믿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그 말에 아베는 뒤로 두 걸음 물러나서 입을 꾹 다물었다.
‘…빠가야로 새끼. 히라카와를 믿다가 망할 거다.’
양창명은 필기구를 들고 수첩에 끄적거렸다.
‘일본의 6번 선수 먹히고 있네. 최준호는 마치 6번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는 모양이야? 표정을 보니 좋지 않은 게 이대로 두었다간 일본 무너질 수도 있겠어.’
중요한 역할을 맡는 선수가 무너지면, 보통 팀도 같이 무너져버리니까.
양창명은 고개를 돌려 벤치를 보았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어 보였다.
경기는 한국과 일본이 한 치의 물러남이 없는 듯 중앙에서 공방전이 벌어졌고, 또다시 공이 히라카와에게 연결이 되었다.
여지없이 최준호가 달라붙었고, 히라카와는 입술을 꾹 물고 최준호의 움직임을 노려보았다.
‘지금!’
최준호의 발끝이 움직이는 순간 히라카와는 최준호의 무게 중심 반대편으로 턴을 하면서 공을 발바닥으로 터치했다.
그의 전매 특허 기술인 마르세유 턴이었다.
하지만.
– 툭!
마치 그것을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자신의 발바닥에 걸린 공을 발끝으로 툭 차고는 히라카와가 턴하는 반대 방향으로 뛰어나가는 최준호.
‘…!?’
히라카와는 멘탈이 붕괴된 것처럼 최준호를 쫓을 생각은 못 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빠가야로! 정신차려!”
주변 동료들의 외침에 히라카와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최준호의 뒤를 쫓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떨어진 상황이었다.
“앞으로 나가서 막아!! 중거리 막아!!”
아까 중거리 슈팅이 어른거리던 골키퍼 스즈키가 고함을 질러댔고, 그 고함에 못 이긴 센터백 하나가 황규석을 버리고 최준호에게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자마자, 최준호는 원 터치 후 빠르게 스루패스를 넣었고, 그 공은 왼쪽 공격수인 황규석의 발밑에 정확하게 연결이 되었다.
‘택배네! 택배!’
골키퍼 스즈키가 악을 쓰며 슈팅 각도를 막으려고 뛰어나갔고, 임효원에게 붙어 있던 센터백까지 황규석의 슈팅을 방해하려고 움직였다.
하지만 황규석은 프리가 된 임효원에게 바로 패스를 넣었고, 임효원은 다이렉트로 슈팅을 때려 골문을 갈라버렸다.
“으아아아아아!!!”
임효원이 팔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달리면서 골 세레머니를 하였고, 일본 벤치와 일본 팬들 그리고 일본 기자들은 얼음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건 아닌데.”
“일본의 에이스 히라카와의 컨디션이 오늘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차라리 다른 선수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히라카와가 제 역할을 못 해주면 특급 공격수 쿠보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바꾸지 말고 선수를 믿어야 합니다.”
매 경기마다 골을 터트린 쿠보는 오늘 이렇다 할 활약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히라카와가 수비수를 개인기로 뚫고 나올 때 만들어지는 공간을 주로 활약하던 쿠보는 공간도 나지 않을뿐더러 달릴만한 공간을 주지 않는 상대의 짠물 수비에 고전을 하고 있었다.
“히라카와를 역시 교체…”
전반전에 두 골이나 먹자 가만히 벤치에 앉아 있던 모리야마가 몸을 일으켰다.
“아니다. 히라카와는 그대로 간다. 쿠보에게 전달해. 직접 해결하라고. 저쪽 수비수 실력이 별로니까. 히라카와에게는 개인기를 멈추고, 패스워크에 신경 쓰라고 해.”
모리야마의 지시에 아베는 몸을 돌리고는 인상을 잔뜩 썼다.
‘모리야마. 히라카와가 친척이라는 걸 그렇게 티내다가는 감독 오래 못할 것이다.’
**
두 골을 먹힌 후 일본의 전술이 달라졌다.
히라카와는 더 이상 공을 끌지 않고 계속 패스를 하면서 불안했던 일본의 후방 빌드업이 조금은 안정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술의 문제였고.
‘내 약점이 진짜…였어!’
히라카와는 점점 내부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감독조차 개인기를 부리지 말고, 패스를 돌리라고 말하였으니 확신까지 생기고 말았다.
최준호도 히라카와의 움직임이 큰 변화가 있다는 걸 감지했고, 일본의 진영이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번엔 쿠보인가?’
시간이 흘러 전반 41분.
일본의 최종 수비수 라인에서 시작된 롱 패스가 우측 윙어 쿠보에 연결이 되었다.
윤태용은 단내가 나도록 쿠보를 대인 마크하며 뛰어다녔지만, 순간적인 쿠보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젠장! 너무 빨라!’
팔을 휘저어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한참 멀어진 상황이었다.
사이드로 달리던 쿠보는 김우영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크로스를 포기하고, 공을 접어 페널티 에어리어쪽으로 드리블을 쳤다.
“막아!!!”
골키퍼 박준용의 소리에 김우영이 재빠르게 쿠보에게 달려들었다.
툭 치면 날라갈 것 같았지만, 페널티 에어리어였기 때문에 김우영은 두 손을 뒤로 하고 쿠보의 슈팅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쿠보는 김우영의 왼쪽으로 공을 빠르게 한 번 더 쳤다.
‘젠장! 더럽게 빠르네!’
김우영도 몸을 틀어 쫓아가려고 했지만, 쿠보는 이미 오른발을 딛으며 슈팅 준비를 하였다.
– 뻥!
반박자 더 빠른 슈팅!
거기다가 방향까지 확 꺾은 난이도가 높은 땅볼 슈팅이었다.
박준용의 역동작까지 확인 한 쿠보가 득점을 확신하는 순간!
– 턱!!
선수 하나가 미끌어지면서 공을 걷어내버렸다.
일본 기자들은 환호에 찬 표정으로 일어났다가 모두들 머리를 잡았다.
쿠보의 골이 들어가면 후반에 분위기를 살려 역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헉헉헉.”
미드필더인 최준호가 최종 라인까지 내려와서 쿠보의 슈팅을 걷어내 버린 것이었다.
여지없이 골 먹었다고 생각한 박준용은 그라운드에 누워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최준호에게 달려갔다.
“잘했어! 막내!”
“헉헉.”
“네가 개선장군이었구나!”
‘…뭔 소리야?’
최준호는 몸을 일으키며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쿠보와 시선을 마주쳤다.
네가 왜 거기에 있어?
라는 눈빛이었고, 최준호는 희미하게 웃었다.
‘히라카와가 죽었으니 일본의 마지막 카드는 당연히 너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