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51)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51화(51/184)
51화 U-17 월드컵 결승전(1)
사흘마다 열린 경기는 선수들의 체력을 완전히 소진했다.
최준호 역시 말리와의 경기 후 이틀 동안 쥐 죽은 듯이 스트레칭만 하며 체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후.’
결승전에 붙을 영국 멤버들을 보던 최준호의 입에서 한숨이 살짝 흘러나왔다.
‘커티스 앤더슨, 루이스 깁슨, 필 포덴, 산초, 앙헬 고메스, 캘럼 허드슨오도이, 에밀 스미스 로에, 스티븐 세세뇽, 모건 깁스 화이트, 코너 갤러거…!!!?’
팀 동료들은 영국이 강팀이긴 하지만 그들 역시 지쳤으니 할만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최준호는 이들과 EPL에서 이미 맞붙은 적이 있었다.
필 포덴은 맨시티에서, 산초는 맨유에서, 에밀 스미스 로에는 아스널에서, 모건 깁스 화이트는 노팅엄 포레스트….
괜히 역대급 전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특히 미드필더진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화려했다.
‘우승이 가능할까?’
최약체 팀이었던 한국은 경기를 거듭하면서 몇몇 선수들의 경기력이 급격하게 좋아졌다.
주장 임효원과 오른쪽 풀백 박기수, 골키퍼 박준용, 센터백 김우영.
이들은 강팀 선수와 맞붙어 전혀 밀리지 않는 기량을 선보였고, 한국이 결승까지 올라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선수들이었다.
그들의 기량이 좋아졌다고 해도 20세도 안 돼서 프로미어 리그에 진출한 저 녀석들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영국 팀은 철저하게 선수 관리까지 하는 터라, 순수하게 실력으로 맞붙어야만 했다.
“왜 그렇게 한숨이냐?”
김우영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최준호에게 말했다.
최준호는 노트북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
“우승하고 싶어서. 넌 안 하고 싶냐?”
사실 축구 선수가 은퇴하고 나면 남는 것은 영광의 트로피와 커리어 뿐이었다.
어쩌면 단 한 번 뛸 수 있는 U-17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와 골든볼을 받는다면 그만한 영광이 어디에 있을까!
“다들 그러는데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기적이라는데?”
“기적 같은 소리 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거야. 우승에 대한 열망과 실행력 그리고 집착과 광기가 없으면 우승 따윈 개소리라고.”
“집착과 광기?”
김우영이 미친놈처럼 눈을 번들거렸고, 최준호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노트북을 가슴팍에 올려놓고는 양손으로 팔베개했다.
“내일 경기에서 잡고 싶은 놈 있으면 말만 해봐. 삭제해 줄게.”
“크크크.”
최준호는 대답은 안 하고 웃음만 터트렸다.
“뭐냐? 그 기분 나쁜 웃음은?”
“내일 삭제나 당하지 마라.”
“후후.”
김우영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자신감을 내비쳤다.
“우리 준용이 형 방에 놀러 갈까?”
“거긴 왜?”
최준호는 눈을 다시 노트북으로 돌렸다.
“왠지 이기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응?”
예선전부터 영국이 치른 경기 점수를 보았는데, 꾸준하게 2점 정도는 실점하고 있었다.
매 경기 평균 5골 이상을 넣는 공격력 때문에 가려져 있었는데, 수비력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최준호는 김우영을 끌고 박준용의 방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박준용의 방 책상 위에는 타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박준용이 꽤 좋은 타로점을 본 날은 대표팀에서 미친 선방을 하기도 했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최준호가 박준용의 책상 앞으로 달려가 얼른 앉았다.
“야야! 멈춰! 그건 신성한 거야!”
“오늘은 제가 뽑아드리면 안 돼요?”
“안돼! 내가 해야 해!”
“에이! 오늘 좋은 꿈을 꿨단 말이에요.”
“…꿈?”
“월드컵 우승하는 꿈.”
우승이라는 말에 박준용은 매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좋은 꿈을 꾸었는데, 한 번은 기회를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제 한국 대표팀에서 최준호는 명실상부한 에이스였다.
지금까지 7골 11어시스트.
득점 부문 4위, 어시스트 부문 1위
경기 평점 9.27로 전체 1위.
MOM 6회.
이번 대회 골든볼 수상자로 가장 유력한 최준호였다.
하지만 영국의 에이스 필 포덴 역시 12골 7도움으로 득점왕과 골든볼을 동시에 거머쥘 유력한 경쟁 상대였기에, 경기 결과에 따라서 트로피의 수상자가 바뀔 수 있었다.
“으음. 그럴까?”
김우영은 아주 조심스럽게 최준호 옆으로 다가가는 박준용을 보았다.
그의 눈에는 그저 미신으로밖에 보이질 않는 타로였다.
‘둘 다 뭐 하는 짓인지. 참!’
최준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왼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박준용 몰래 카드에 새겨놓은 작은 흠집들을 찾기 시작했다.
‘어딨더라?’
**
“아무래도 결승전에서 태용이가 뛰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태용이의 발목을 노리고 들어간 살인 태클이었고, 바로 교체해서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2~3개월 정도는 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백업으로 창진이가 있긴 했지만, 말 그대로 백업 자원이었다.
이 대회에서 득점왕 수상이 유력한 필 포덴을 상대로 그를 기용한다는 건 경기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역시 윤수를 기용하시는 것이.”
사실 스태프들은 정확한 사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인도로 넘어가기 전에 장윤수가 벌였던 경기 중 이상 행동 때문이다라는 것 정도만 알 뿐이었지.
그 한 번의 행동으로 감독에게 찍혔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박정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김창진으로 가지.”
“경기가….”
“스리백으로 간다.”
“네? 센터백에 그럴만한 자원이…”
2010년 이후 현대 축구에서는 사라진 포지션이 하나 있었다.
“준호를 리베로로 써야겠어.”
“그건 전혀 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제 물어봤다. 리베로로 뛸 수 있는지. 가능하다고 하더군.”
이번 영국팀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이었다.
특히 필 포덴은 17세에 이미 세계 최고 클럽인 맨시티의 1군 로테이션으로 뛸 정도로 엄청난 선수였고.
그 주변의 선수들도 하나같이 특별한 유망주들 뿐이었다.
준호가 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중석이나 성후를 데리고 그들의 압박을 견디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중앙을 아예 버릴 생각이었다.
극단적 수비와 역습 전술.
역습은 킥력이 좋고 정확도가 매우 훌륭한 최준호의 발끝에서 시작해야 하니 리베로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다행인 점은 최준호가 수비도 상당히 잘한다는 점이었다.
빠른 발과 놀라운 개인기로 수비수를 흔드는 필 포덴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나이에 맞지 않게 굉장히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는 최준호 외엔 없다고 이미 단정을 지었다.
“수비만 해서는 이길 수 없지 않습니까?”
“영국의 주 실점 패턴은 세트피스 상황이야.”
이번 U-17에 나온 영국의 센터백들 키 평균이 182cm였다.
그래서 장신의 공격수에게 헤더골을 제법 얻어맞았다.
“우리에겐 준호와 우영이가 있으니까, 그들의 플레이를 믿어야지.”
전술은 감독이 짜지만, 결국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선수들이었다.
**
“투헬. 이번 이적 시장에 잘츠부르크 쪽에서 최준호에 대해 적극적으로 구애할 것으로 보여.”
단장 초르크는 단독으로 투헬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 관계자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자네 생각을 제대로 듣고 싶어.”
투헬은 원래 축구 이야기는 구단과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선수를 영입하거나 데려오는 일에 대해서도 그다지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다.
그냥 있는 선수를 조합해서 쓰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완전히 꽂힌 선수라면 마인츠 시절 공자철을 6개월 동안 스토킹 끝에 데려오기도 했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축구에서 그의 실력만큼은 첫손가락에 꼽았다.
“생각할 게 뭐 있어? 쓰레기 팀을 끌고 U-17 월드컵 결승에 올라간 선수인데?”
초르크는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 말에 투헬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단장의 사무실에 걸려 있는 선수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적어도 저 녀석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미하엘 초르크는 그 사진을 보고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도르트문트 구단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한 전설 중의 전설.
미스터 도르트문트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10년 동안 도르트문트의 캡틴을 하며 분데스리가 2회 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끈 사람.
미하일 초르크.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상급자에 대한 존경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투헬이었고, 초르크는 투헬의 성격을 이해하기 때문에 방금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릴 수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최준호의 에이전트 쪽에서 재계약의 가능성에 대해 문의를 했거든.”
“그 녀석이 6개월만 빨리 태어났어도, 당장 쓰레기 같은 누리 사힌을 팔아버리고 녀석을 썼을 거야.”
“…농담이지?”
누리 사힌은 현재 도르트문트의 핵심 미드필더였다.
그렇기에 초르크는 투헬이 전혀 농담을 못 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투헬은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얼마를 주든 간에 무조건 잡아. 아, 장기 계약이 좋겠어. 한 20년? 미스터 도르트문트라는 별명은 그 녀석에게나 줘 버리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늘어놓고 휙 나가버린 투헬이었지만, 미하엘 초르크는 투헬이 최준호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첩보에 따르면 잘츠부르크가 500만 유로에 가까운 이적료를 발생시킬 거라고 했다.
‘그렇단 말이지?’
**
결승전 경기 당일.
한국에서 날아온 엄청난 팬레터에 피곤함에 젖어 있던 선수들의 얼굴이 활짝 폈다.
인터넷과 카톡이 있는 시대에 팬레터는 특별함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주로 소속되어 있는 고등학교에서 단체로 보낸 것이어서 그런지, 최준호와 김우영은 팬레터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
– 오빠 화이팅! 응원할게. 꼭 이겨!
박기수는 몸이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친동생이 보낸 편지를 보고는 스스로 용기를 북돋웠다.
골키퍼 박준용은 최준호가 뽑아주었던 세 장의 타로를 떠올렸다.
<천우신조, 귀인, 금의환향>
하늘과 신령의 도움으로 귀인을 만나 경기에서 승리한다는 타로점이었다.
여태껏 타로점을 보았지만, 이번만큼 좋은 타로점을 보질 못했다.
‘오늘 뭔가 느낌이 좋아! 아주!’
김우영은 할아버지가 보낸 엄청나게 많은 화환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고, 최준호는 페이스북에 등재된 새 메시지를 읽었다.
마테우스와 밀라 그리고 레아의 단체 메시지가 담긴 사진이 있었다.
– 초이! 꼭 이겨버려! 영국은 정말 재수 없어. 왜냐고? 우리 독일팀이 영국 놈들에게 깨졌거든.
장윤수는 한쪽에서 휴대폰을 보았다.
– 아들. 오늘은 출전할 수 있는 거니?
그리고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휴대폰을 닫고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버렸다.
얼마 후 로커에 선수들이 다 모이자 박정수 감독은 선수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경기다.”
사실 예선 통과가 박정수의 목표였다.
결승전까지 오리라고는 자신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서 세계 대회에서 한국 축구가 결승까지 간 적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었다.
일본을 깨고 난 뒤에는 한국 언론 기자들이 항상 따라다녔고, 그만큼이나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까지 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겪어야 할 상대가 지독한 강팀이라는 것도. 누군가는 운이 좋아서 올라왔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들 모두 결승까지 올라올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최준호는 박정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국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의 축구 스타일은 킥 앤 러쉬.
좋게 말해서 저런 단어를 쓰지, 사실은 뻥축구다.
대신 템포가 엄청나게 빠르고 거칠어서 아차하는 순간에 골을 먹기가 쉬웠다.
다른 축구 강국들에 비교하여 전술은 매우 단순한 편.
완전히 내려앉으면 그들이 좋아하는 뻥축구를 구사할 수가 없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개인기와 주력, 센스까지 갖춘 필 포덴을 비롯한 몇몇 선수였다.
이미 프로에서 많은 경험을 가진 이 선수들은 아마추어 수준의 한국 선수를 가지고 놀 가능성이 컸다.
이걸 해결할 방법은 오직 협력 수비.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에게 세 명이 동시에 달라붙어 압박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비 중앙 공격의 3선 라인을 촘촘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전술이었다.
지친 선수들에게는 가혹한 일이었다.
수비와 공격 그리고 역습까지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최준호에게 더 많은 부담감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고통 없는 승리 따위는 있을 리가 없지.’
최준호는 걱정보다는 쓰러지더라도 승리를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의지를 불태웠고, 박정수 감독의 멘트는 끝이 났다.
“…후회 없는 결승전을 치르자.”
**
“헤이!”
대기실에 있던 필 포덴이 최준호를 불렀다.
“왜?”
“너 혹시 맨시티에 관심 있어?”
“……”
“감독이 한번 만나고 싶다고 전해달라고 해서.”
아마 감독이라면 펩 과르디올라겠지.
그 말에 최준호는 웃음을 지었다.
“비자 문제 해결할 수 없으면 5년 후에 보자고 전해줘.”
필 포덴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크크크. 너 재밌는 친구구나?”
그의 웃음을 보고는 최준호도 얇게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을 보던 필 포덴은 이내 정색하고 말했다.
“초이. 우릴 이기는 건 2천 년 후에나 가능할 거야. 괜히 이기겠다고 용쓰다가 다치지 말고 돌아가.”
“2천 년 후에? 에이. 90분 후면 일어날 일인데. 그런 싸구려 도발은 수준 낮잖아? 불쌍할 정도로? 그러니까 좀 이따가 우승컵은 만지게 해줄게.”
“하하하!!!”
필 포덴이 엄청나게 큰 웃음을 터트렸고, 최준호는 묘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그 자만심이 언젠가 독이 될 거다.’
2017 U-17 인도 월드컵 결승전.
한국 VS 영국, 영국 VS 한국.
주심의 휘슬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 삐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