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55)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55화(55/184)
55화 잘츠부르크(2)
프리시즌.
새 시즌이 열리기 전 프로 선수들은 체력 훈련을 받는다.
시즌 종료 후에 한 달 정도 휴식기를 갖는데, 대다수의 선수가 이때 몸이 망가져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평균적으로 3.0kg 정도 체중을 늘려서 오는데, 선수마다 편차가 큰 편이었다.
양희찬은 한 달의 휴식기 내내 집중적인 개인 훈련에 매진하여 오히려 몸무게를 더 줄이고 체지방량을 줄여왔다.
엘링 홀란드는 무려 5kg이나 체중이 불었는데, 키도 4cm나 커 왔다.
18살에 194cm 88kg.
그러나 그 역시 지방률이 늘어난 건 아니었다.
노르웨이에서 가족들과 매일 등산과 낚시를 해서 그런지 좋아 보였다.
“우라라라라라!!!”
1군 로테이션 멤버인 미나미노는 로커에 들어서자마자 특유의 외침을 펼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렸다.
“저 또라이 녀석. 1살 더 먹고도 여전하네.”
그들은 미나미노와 한번씩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시선을 모았다.
“그 녀석이 온다며?”
잘츠부르크의 특성상 주전급 선수 영입은 거의 없지만, 부족한 미드필더 자원 때문에 꽤 많은 선수와 연결 뉴스가 있었다.
결국 도르트문트의 소속이자 U-17 대회에서 골든볼을 수상한 16살의 한 동양인 선수를 임대로 데려온다는 소식에 잠시 이야기꽃이 피었다.
“베리샤 녀석보다 더 어리다며?”
왼발을 쓰는 스트라이커 겸 미드필더인 머르김 베리샤는 저번 시즌 16세 177일 만에 SV 마테르스부르크 전에 교체 출장하면서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최연소 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거기에 출장한 지 50초 만에 데뷔골까지 터트리며 최연소 골 기록까지 갈아치워 버렸다.
“젠장. 그 녀석만 아니었으면 우리 국가가 결승전에 갔을 거야.”
아마두 아이다라가 구시렁거렸다.
말리 출신인 아이다라는 오른발을 쓰는 미드필더로 18살이었으며, 베리샤처럼 저번 시즌에 복귀해서 리그에 뛰기 시작했다.
저번 시즌 둘은 좋은 활약을 펼쳤고, 이번 시즌 거의 확실한 주전들이었다.
다만 역대급 재능이라는 소리가 언론을 통해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선발 경쟁을 할지 몰랐다.
최준호가 양발을 모두 잘 쓰는 선수였기 때문에 둘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경기 하이라이트 좀 봤는데, 그 녀석 장난 아니던데?”
오스트리아 출신 19살의 크사보 슐라거 역시 미드필더였다.
그가 가지고 있던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최연소 출전 기록은 베리샤에게 깨졌지만, 16/17 시즌부터 핵심 미드필더 자원으로 뛰고 있었다.
슐라거와 아이다라 모두 엄청난 활동량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하드워커형 미드필더였다.
아이다라는 투박하지만, 직선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고, 크사보는 좋은 테크닉을 가지고서 탈압박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아이다라는 연계 능력이 떨어지고, 크사보는 의욕은 넘치나 수비 스킬이 좋지를 않아서 카드 수집이 빨라 못 뛰는 경기가 많았다.
크사보의 생각에 U-17 월드컵에서 보여준 최준호의 경기력은 단점이 거의 없어 보였다.
다만 최준호에 비해서 주변 선수들의 실력이 많이 떨어져 고생한 것 같긴 하지만.
“양!”
크사보는 시끄러운 로커 안에서 홀로 조용히 있는 양희찬을 불렀다.
양희찬은 사교적인 인물은 아니어서 로커에게서는 굉장히 겉도는 편이었다.
다만 자기 관리 능력이 너무 뛰어나고, 기량의 기복이 적은 데다가 빠른 발과 돌파력을 활용하여 많은 골을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의 팀 동료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왜?”
“너, 초이에 대해 알고 있어?”
“물론.”
라커룸에서 삼삼오오 몰려 있던 선수들의 시선이 양희찬에게 쏠렸다.
한 번에 모두의 관심사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자, 양희찬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자신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어떤 녀석이야?”
“음….”
양희찬은 한참 동안 공자철과 어울렸던 상황을 떠올렸다.
“…괜찮은 녀석?”
크사보는 그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을 원했지만, 양희찬의 대답은 항상 단답형이었다.
독일어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
독일에 가는 길에 산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낀 최준호는 팔마 데 마요르카 국제공항을 빠져나왔다.
차가운 비행기에 있다가 28도의 따뜻한 공기와 구름 한 점 없는 햇살에 노출된 최준호는 살짝 닭살이 돌았다.
“좋다!”
7, 8월의 마요르카섬은 매우 뜨겁지만, 6월은 적당히 따뜻한 편이었다.
과거에 1860 뮌헨에 있을 때도 전지훈련으로 자주 오던 곳이었다.
독일인들의 마요르카 사랑은 유별하다고 할까나?
지리적으로 시차가 없고, 쓰는 화폐도 같고, 독일 대다수의 소도시 공항에서도 마요르카로 가는 직행 비행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문화적, 언어적 지리적으로 비슷한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긴 했다.
모든 것이 원고지의 네모칸 만큼이나 반듯한 독일 특유의 건물과는 달리 제각각의 매력적인 형태로 서 있는 건물들을 구경하는 것은 여전히 즐거운 일이었다.
비키니 차림으로 걸어가는 여러 세뇨리타들을 차창으로 구경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었고.
“여기야.”
잘츠부르크 구단에서 보낸 차량에서 내린 곳은 인적이 거의 없는 해변이었다.
물론 잘츠부르크 유니폼을 입은 한 사람을 제외하곤.
“잘츠부르크에 온 걸 환영해. 초이.”
르네 마리치였다.
그는 가볍게 최준호를 안아주며 반겼다.
“오랜만이에요.”
“그래. 임대가 아니라 우리 선수로 왔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최준호가 대답 없이 웃기만 하자, 르네는 최준호의 짐가방 하나를 대신 들어주었다.
“그리고 U-17 골든볼 축하해.”
“고마워요.”
“그 대회에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지만, 너만 한 재능은 확실히 없었던 것 같다. 골든볼을 받을만한 경기력이었어.”
르네 마리치는 U-17 월드컵의 모든 경기를 꽤 꼼꼼하게 분석하였다.
눈에 띄는 재능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 누구를 한국팀에 넣어도 우승은 불가능해 보였다.
포덴은 윙백, 윙어, 미드필더까지 가능한 모두가 손꼽는 최고의 재능이었지만, 퇴장당한 걸 보면 아직 성격적으로 여물지를 못했다.
포덴이 가지고 있지 못한 프로페셔널한 정신과 리더쉽을 최준호가 가지고 있기에 팀을 영광의 길로 끌었으리라 생각했다.
턱 밑에 솜털이 나 있는 어린 선수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정신적으로 너무나 단단한 선수였다.
“더 칭찬하면 부끄러워서 얼굴 보고 이야기를 못 할 것 같아요.”
최준호가 말하자, 르네는 피식 웃었다.
그런 말과는 상관없이 더 칭찬해주라고 최준호의 눈빛이 강렬하게 요구하는 것 같았으니까.
“선수단에 합류하기 전에 약간의 테스트가 있을 거야. 그 수치를 보고 이번 프리시즌 준비 기간에 운동량과 훈련 코스를 설정할 거고.”
“몸에 문제 있는지 메디컬 테스트도 겸할 것이고요?”
르네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여러 가지의 테스트들이 있긴 하지만, 프리시즌 중에 스텝들이 중요시 보는 수치들이 있었다.
일단 체지방률.
이상적인 축구 선수의 체지방률은 8-11% 수준이다.
체지방이 너무 낮으면 골다공증이 일어나 경기 중에 골절과 같은 부상을 입기 쉬웠다.
피부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주름이 많아져 노화가 촉진되는 것은 기본이고.
너무 높으면 움직임이 둔해지고, 파워가 떨어져서 경기력이 나오질 않는다.
최준호의 체지방률은 13.5% 수준이었다.
‘역시.’
도르트문트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메펜으로 떠나기 전 그의 체지방률은 14.9% 수준이었다.
그런 체지방을 가지고서도 놀라운 활약을 펼친 셈이었다.
계속 경기를 뛰면서 체지방률이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상적인 수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좀 더 민첩해질 수 있었고, 좀 더 파워를 가질 수 있으며,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최근 스피드가 빨라진 건 이런 이유였군.’
르네 마리치는 직접 테스트 현장에서 수치를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테스트는 지구력 능력과 관련된 VO2max 였다.
러닝머신과 가스분석기를 사용하여 측정되는 값인데 높을수록 더 높은 강도에서 더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남자 성인의 VO2max 값은 44 정도이다.
평균적인 엘리트 축구 선수의 VO2max 값은 68 정도인데, 최준호의 VO2max 값은 83에 육박했다.
이 정도면 평균적인 엘리트 마라토너 선수들의 수치였다.
‘놀라울 수준이야? 저 수준의 VO2max라면….’
최준호의 몸은 예상외로 굉장한 강점이 있었다.
정신력과 기술에 의존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피지컬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반복 스프린트 능력에서도 굉장히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젖산 분해 속도가 굉장히 탁월한 것으로 보여.”
“피로감을 쉽게 느낄 수 없다는 건 신의 축복이긴 해. 큰 부상만 없으면 축구 선수로서 꽤 장수할 피지컬이네.”
회복력(YYIRT) 역시 놀라운 수준이었다.
다만 주력과 순발력, 그리고 민첩성 부분에서는 팀 내 주전 미드필더와 비교하여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말리 전에서 한 선수가 퇴장하기 전까지 최준호의 공격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이유도 분명해졌다.
더 민첩하고, 더 빠르고, 더 잘 달리는 선수를 만나게 되면 그 역시 곤란을 느낀다는 걸.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는 독일의 3부 리가보다는 훨씬 수준 높은 리그였고, 잘츠부르크에는 야심만만한 재능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1~2년 정도 여기서 성장한 이후에 영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리그로 이적을 하였고.
‘프리시즌에서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냐가 관건이겠군.’
**
“우…우엑!!!”
노르웨이의 특급 공격수 엘링 홀란드는 가장 먼저 해변 한구석으로 달려가 나무를 잡고 토하기 시작했다.
150m 반복 스프린트 훈련이었는데 전력 질주로 150m를 뛴 후에 30초를 쉬고 다시 150m를 달리는 훈련이었다.
총 30회, 총거리 4.5km를 뛰고 나서야 끝나는 훈련이었다.
“우엑!! 우엑!!”
얼마 뒤 많은 선수들이 하나씩 훈련을 끝내고는 해변에 뒹굴었다.
‘가장 빠른 녀석은 엘링 홀란드군.’
감독 마르코 로제는 예리한 눈빛으로 선수들을 하나씩 관찰하였다.
이런 상황을 이미 예견했다는 듯 스텝들이 하나둘씩 붙어서 그들을 보살펴주었다.
대부분의 선수가 ‘문란한 생활(?)’ 때문인지 살이 잔뜩 불어왔고, 프리시즌 중에 그 망할 살들을 제거해야 하는 게 마르코 로제의 임무였다.
두 번째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양희찬은 꿋꿋하게 구토를 하지 않고, 모래사장에 벌러덩 누워서 호흡하고 있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녀석.’
그 뒤로 미나미노가 들어왔다.
그는 구토하면서 계속 뛰었는데, 해변에 쓰러지자마자 주먹을 들고 모래를 치면서 계속 다이죠부! 다이죠부! 라고 크게 외쳤다.
‘여전히 미친 녀석.’
그 뒤로 크사보와 아이다와가 들어왔다.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곧 죽을 것 같은 비명을 지르며 토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최근 유명한 클럽의 스카우트들이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18살에 대단한 재능들이었다.
당장 퍼포먼스가 나오진 않지만, 모두가 1~2년 안에 재능이 만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상위 리그로 이적할 가능성이 매우 컸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기회는 1~2년 정도겠군.’
마르코 로제는 이번 시즌 확실히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들이 떠나고 나면 당분간은 자국 리그에서나 왕 노릇을 할 뿐이지, 유럽 대항전에서는 힘을 발휘 못 할 선수단이 될 예정이었다.
프리시즌 첫날 훈련이 끝날 무렵, 마르코 로제 감독은 해변에서 거친 숨을 쉬며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을 한 곳에 불렀다.
그리고는 21번 번호가 달린 잘츠부르크 유니폼을 입은 최준호를 그들에게 소개하였다.
“이번 전지훈련 마지막 멤버이다. 아는 녀석들을 알겠지만, 이번 U-17 월드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골든볼을 받은 최준호다.”
대부분의 선수가 영혼 없는 눈빛으로 최준호를 보았다.
‘아 …프리시즌 피지컬 훈련.’
1년을 통틀어 축구 선수에겐 가장 힘든 시기였다.
수면 장애도 일어나고, 섭식 장애도 일어나고, 새 시즌을 위한 경쟁을 위해서 모든 힘을 짜내어야 하고….
저들의 표정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반가워. 최준호야. 초이라고 불러줘.”
격식 이상의 의미는 없는 듯 가벼운 박수 소리만 나왔다.
최준호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이런 말 저런 말 주절거리면서, 주전 경쟁을 해야 할 선수들을 하나씩 눈여겨보았다.
딱 두 선수가 눈에 걸렸다.
구단주인 레드불이 키우는 또 하나의 구단 RB 라이프치히에서 매우 좋은 활약을 하다가 EPL로 넘어간 크사보와 아이다라가 눈에 띄었다.
에버튼 시절 베테랑이 된 두 선수와 EPL에서 맞붙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근데 지금은 같은 팀이란 말이지?’
그들과 눈빛이 마주치자 마치 번개라도 치듯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최준호는 가볍게 눈빛을 흘리며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한국에서는 마인 부우, 외국에서는 디카프리오라는 별명을 가진 엘링 홀란드.
5년 후부터는 EPL을 부숴버리는 괴물 중의 괴물이 될 녀석.
주전 자리는 결국 저 녀석에게 얼마나 많은 어시스트를 해줄 수 있냐에 의해 결정이 날 게 분명했다.
이참에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고.
“앞으로 잘 부탁해. 내 목표는 일단 챔스 우승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