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57)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57화(57/184)
57화 프리 시즌 연습 경기(1)
– 삑!
코치의 호루라기에 맞춰서 50명의 선수가 서서히 뛰기 시작했다.
보통의 요요 테스트보다도 4배나 긴 거리였다.
‘돌아버리겠네. 뭐 그래도 해보자고.’
대다수의 선수가 이 말도 안 되는 훈련을 받으며, 인상을 찡그렸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2주간의 정신 나간 피지컬 훈련이 자신들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당연하지만 신체 회복력이 매우 뛰어난 어린 선수들의 능력 향상이 훨씬 큰 법이었다.
아이다라는 자신의 옆에서 묵묵히 뛰고 있는 최준호를 보았다.
꼬맹이들 하는 경기에서 공 좀 찼다고 건방지게 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힘들다고 투덜댄 적도 없고, 정신 나갈 정도로 힘든 훈련에 단 한 번도 주저앉은 적도 없었다.
오히려 눈이 충혈될 정도로 이를 악물고 훈련을 수행하였다.
2주간은 한 번도 공을 차 본적이 없으므로 녀석이 얼마나 공을 잘 찰 지는 모르겠지만, 태도 하나만큼은 아이다라도 인정하였다.
‘그래도 체력으로는 날 이길 수 없지.’
저번 시즌 이미 리그에서 엄청난 하드 워커로 경기장을 누볐던 아이다라였다.
찢어질 듯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6년 동안 매일 같이 20km를 달려서 축구를 배웠고.
– 실력이 안 되면 체력으로 메워라. 후반 지친 상대의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도록!
엄청난 활동량을 요구하는 마르코 로제의 축구에서 체력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히 미드필더는 특별히 더 요구됐고.
10번 정도 반복하자, 선수들의 얼굴이 모두 일그러졌다.
더 빨리 200m를 달려야 했으니까.
앞선 선수의 입에서 튀어나온 침이 얼굴에 묻어도 훔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최대한 빨리 들어가 주어진 30초를 쉬어야 했으니까.
크사보 역시 하드워커형 타입의 미드필더였지만, 아이다라보다는 체력이 낮은 편이었다.
그걸 기술로 커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갈수록 아이다라보다 늦게 들어갔다.
늦게 들어가니 더 적게 쉴 수밖에 없었고.
차이가 점점 커졌다.
12번째부터는 주로 2군과 U-19에 있는 유망주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해 자동 탈락하거나 지쳐서 그라운드에 굴러다녔다.
하지만 1군의 선수들은 자신들의 관록을 보여주는 듯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었다.
체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주장 안드레아스 울머는 안타까운 눈초리로 쓰러진 선수들을 훑었다.
나름, 이번 프리시즌에서 감독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서 1군 선수단에 합류하고 싶다는 야망을 품은 선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15번째 반복이 될 때쯤에는 1군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살아남은 선수가 없었다.
그런데, 새 이적생 최준호가 자신과 동일선상에서 여전히 뛰고 있다는 사실에 울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녀석?’
그리고 20번째.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며 남아 있던 선수들 절반이 우르르 쓰러졌다.
최소한의 기준을 채운 것으로 만족한 건지, 그걸 자신들의 한계라고 여기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10명의 선수가 여전히 뛰고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미드필더들 – 최준호, 아이다라, 크사보, 베리샤 – 는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서로를 흘깃 보며 죽어라 달리고 있었는데, 누가 먼저 떨어져 나갈지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여기에 윙백으로 뛰고 있는 울머와 레이너, 그리고 엘링, 양희찬과 미나미노, 골키퍼 왈케… 응 골키퍼?
“왈케! 나와! 넌 안 뛰어도 돼.”
마르코 감독의 외침에 골키퍼 왈케는 아쉬운 표정으로 속도를 줄이며 호흡을 골랐다.
‘골키퍼만 차별이라니!’
드디어 9명의 선수.
모두가 숨넘어갈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호흡을 잃지 않았다.
‘…대단하네!’
이 운동장에서 가장 푸짐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르네는 포기할 만도 한데 계속 뛰는 선수들에게 경의를 보냈다.
‘가장 어린 초이가 저렇게 뛰니까, 경쟁 구도인 미드필더들도 숨넘어갈 때까지 뛰는 거고, 체력에 자신 있다고 말하는 울머는 쪽 팔리기 싫으니까 계속 뛰는 거고, 양희찬은 분위기에 끌려서 뛰는 것 같고. 미나미노는 병원에 실려 갈 인상인데, 어떻게 뛰는 거지? 엘링은 특유의 승리욕 때문에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어 보이고.’
르네는 팔짱을 끼고 조용히 말했다.
“묘하네. 모두가 한 명이 멈추길 바라는 것 같은데.”
24번째 휘슬이 불릴 무렵.
미나미노와 베리샤, 레이너까지 떨져 나갔다.
눈치 빠른 르네의 생각처럼, 점점 더 속도를 내면서 뛰어야 하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최준호에게 눈치를 보냈다.
– 얌마! 그만 뛰어!
– 그 정도만 하자! 좀!
– 으악 죽겠다고 멈추라고!
하지만 최준호의 의식은 이미 날아가 있었다.
아직 피지컬이 완성되어 있지 않은 16살에게는 가혹한 훈련이었으니까.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의 힘으로 거의 반사적으로 뛰고 있는 상황.
승부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절대 지고 싶지 않아.’
26번째 휘슬.
– 턱!
최준호는 더 빠르게 발을 놀리다가 모래 구덩이에 걸려 쓰러져 버렸고, 그것을 신호로 나머지 5명의 선수가 다 같이 모래사장에 엎어졌다.
“우에에엑!!!”
“으억…”
“끅…”
여기저기서 처절한 구토 소리가 들리는데, 최준호 쪽만 조용했다.
스텝 한 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얼른 달려와 최준호를 반듯이 뉘었다.
“드르렁…. 드르렁….”
작게 코를 고는 소리에 스텝은 안도감과 황당함이 깃든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넌 진정한 대장부다!”
그 피지컬 훈련을 끝으로 뜬금없는 미나미노의 인정을 받은 최준호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 쓰러진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으니까.
“뛰다가 기절한 녀석은 네가 처음인 거 같다.”
울머의 말에 최준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끝까지 남아 있던 9명 중에 가장 먼저 쓰러진 모양이었다.
‘역시 1군은 1군이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은 계속 좋아지겠지? 16살의 신체에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고.’
“아하하! 그런가. 기억이 나질 않아서.”
“경기 중에 기절하면 곤란하다?”
“하하하! 그럴 리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1년 중 가장 고된 시간이 끝났다는 안도감.
이제부터 공을 찰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어쩌면 1군 로테이션이 될 16살의 꼬마가 수많은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나고, 대단한 열정을 가졌다는 것 때문인지 그를 보는 선수들의 눈빛이 제법 따뜻해져 있었다.
“기절했다면서 어떻게 앞을 본 거야?”
“기…기절 안 했다니까!”
“팀닥터 말로는 그렇다는데?”
“뭘, 잘못 본 거겠지! 기절했는데, 어떻게 반복 러닝을 해! 안 그래?”
애써서 방어하는 모습에 다른 선수들은 그가 코를 골며 자는 모습을 떠올리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 편, 문 뒤에서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던 마르코 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20번만 해도 경기 풀타임을 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경기장에서는 더 적은 부하로 뛸 테니까.
하지만 그 이상을 했다는 건, 후반에 선수들이 더 높은 집중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고.
9명이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징조였다.
여기에.
16살의 최준호가 1군 선수들과 맞먹게 뛰었다는 사실에 마르코 로제는 그저 놀랄 뿐이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도, 승부욕이 없거나 게을러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선수들이 수천 명이었다.
최준호는 그런 천재적인 재능과 더불어 놀라운 승부욕과 그 승부욕을 뒷받침할 엄청난 열정과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저 녀석이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하지.’
마르코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떠들썩하던 전술 실 내부가 조용해졌다.
“고생했다. 살점으로 미어터질 듯 했던 너희들의 유니폼이 팔랑거리는 걸 보니 마음이 다 후련해졌다.”
돌려 말했지만 칭찬이었다.
선수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전술 훈련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주 주말에는 스페인 2부 리그 팀인 마요르카와 붙게 될 것이야. 그러니 오늘은 푹 쉬고, 오늘과 같은 자세로 내일 훈련에도 임해주길 바란다.”
**
마르코 로제 감독이 새로 가지고 나온 전술은 3-5-2 전술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스리백 전술이 아니었다.
수비 시에는 5-3-2에 가까웠고, 공격 시에는 4-3-1-2를 지향했다.
‘수비야 누가 되든 상관이 없는데, 미드필더 라인 중 한 명은 공미까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네?’
1군 로테이션 자원으로 오긴 했지만, 최준호는 주전으로 나서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과 경쟁하게 될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 중이었다.
1군에는 최준호를 제외하고 총 5명의 후보군이 있었는데, 일단 두 명은 나머지 3명과 실력 차이가 컸다.
‘아이다라는 공미 자원은 힘들어. 오히려 수미 자원에 가깝지. 크사보는 공미도 뛸 수 있지만, 그의 수비력과 활동량을 볼 때 후방에 있는 게 좋아 보여.’
세 자리의 중앙 미드필더 자리 중에 두 자리는 분명 아이다라, 크사보가 차지할 것으로 보였다.
엄청난 활동량을 기반으로 상대를 압박하는데 도가 튼 선수들이었다.
다만 전방으로 창의적인 패스를 찔러 주거나 2선 침투해서 슈팅하는 능력은 둘 다 약했다.
‘그럼 베리샤인가?’
베리샤는 미드필더, 공미, 윙어, 스트라이커 까지 커버가 가능한 자원이었다.
저번 시즌 여러 포지션으로 뛰었고, 제법 증명까지 하였다.
창의적인 패스도 가능은 했지만, 활동량이 적고 기복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좀 더 빨리!!”
스텝의 외침에 최준호는 순번을 대기하면서 전방을 살폈다.
베리샤의 전방 패스가 아무래도 타이밍이 맞지 않는지, 여러 번 반복하였다.
최준호는 눈을 돌려 엘링 홀란드의 움직임에 주목하였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세계에서 가장 거칠다는 EPL을 부숴버린 노르웨이산 공격수.
그 앞에서는 항상 오징어가 되었던 최준호는 이제 그와 함께 경기한다는 생각에 살짝 흥분하였다.
물론 지금의 엘링의 실력은 최준호가 경험했던 그런 괴물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싸움이 너무 좋아.’
두 명의 수비수가 엘링에게 달라붙어서 밀고 당겨도 꿋꿋이 버텨서 결국 공을 따내었다.
‘점프도 높고. 민첩하고, 순간 속도도 빠르고, 달리기도 장난이 아니고!’
순간 최준호는 오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콧구멍을 잠시 쑤셨다.
엘링의 피지컬은 당연했다.
EPL 리즈에서 오랫동안 뛰었던 축구 선수 아버지와 육상 7종 경기 선수였던 어머니의 DNA를 타고났으니까.
‘음. 타고나는 걸 바꿀 수는 없잖아? 이길 생각을 하지 말고 일단 이용할 생각을 하자.’
예측력도 좋았고, 골 터치도 커다란 키와 비교하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최준호 그리곤 고개를 양희찬에게 돌렸다.
‘양희찬 선배는….’
어떻게 움직일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왼쪽 윙어가 주 포지션이지만, 오른쪽, 스트라이커 까지 볼 수 있으며 2선 침투 능력이 굉장한 선수였다.
‘그러고 보니 경쟁이 나한테 꽤 유리한데?’
그리고 얼마 후 최준호의 순서가 왔다.
최준호는 공을 받고서 수비가 붙기도 전에 엘링의 움직임을 보고 과감하게 반박자 빠르게 패스를 찔렀다.
수비수가 그를 막으려고 유니폼을 잡아당겼지만, 어린 나이에도 엄청난 피지컬을 가진 엘링을 막아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툭.
오프사이드 트랩도 깨진데다가 엘링이 수비수를 떨친 후 빠르게 들어오는 공을 트래핑하고는 슈팅을 때렸다.
“좋아!!”
코치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뼉을 쳤고, 엘링도 고개를 돌리고는 최준호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최준호도 같이 엄지를 세워주자, 엘링이 씩 웃었다.
저녁마다 같이 게임을 하지, 승수 쌓아주지, 승급도 시켜주지.
이런저런 대화도 하지.
‘역시 친해지면 축구하기 좋다니까.’
그 모습을 보던 수석 코치 르네가 말했다.
“찔러 주는 패스는 저 녀석이 가장 좋네. 그냥 압도적이야. 마치 엘링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서 주는 것 같아.”
“…음…”
마르코는 턱을 문지르면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일단은 핵심 공격수인 엘링 홀란드와 가장 합이 좋은 선수가 우선이었고, 최준호는 영리하게 그런 모습을 전술 훈련 시간에 자주 보여주고 있었다.
**
사흘 후.
전술 훈련이 끝나고서 마르코 감독은 내일 있을 마요르카전을 대비하여 선발명단을 공개했다.
GK 왈케
LWB 안드레아스 울머(주장)
CB 칼레타 카르
CB 루이스 구스타보
CB 안드레 하말류
RWB 라이너
MF 베리샤
MF 크사보 쉴라거
MF 아이다라 아마두
FW 양희찬
FW 엘링 홀란드.
모두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명단이었다.
루이스 구스타보를 빼고는 저번 시즌 잘츠부르크에서 뛰며 팀을 우승시킨 선수들이었으니까.
단 두 선수를 빼고는!
베리샤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피지컬 훈련이나 전술 훈련에서 자신보다 두 살 어린 최준호에게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감독님이 나를 믿고 있었던 거야.’
최준호는 베리샤의 뒤에서 뒤통수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승부욕이 또다시 작용은 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누군가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밀렸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는데. 선수 위상을 보고 뽑은 건가?’
구단에서는 핵심 선수, 인기 선수, 주전 선수, 로테이션 선수, 후보 선수와 같이 위상 분류를 해놓는 편이었다.
베리샤가 주전 선수 위상이니 아마도 먼저 기용했을 수도 있었다.
‘너무 안심하지 마라.’
프리시즌 연습 경기이기 때문에 감독은 아마도 로테이션을 풀로 가동할 것이다.
‘나… 이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