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59)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59화(59/184)
59화 프리 시즌 연습 경기(3)
해발고도 3,537m
볼리비아 행정 수도 라파스에 있는 에스타디오 에르난도 실레스 구장 근처의 운동장을 빌린 잘츠부르크 선수단들은 평범한 전술 훈련을 계속했다.
하지만 희박한 공기 탓에 선수들은 금방 지쳐 나갔으며, 공이 제대로 감기지 않는다던가, 공의 움직임이 평지와는 전혀 달라서 엄청난 애를 먹었다.
“허억…허억…”
체력이 좋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골키퍼 왈케조차 30분 정도 슈팅 방어 훈련에 가쁘게 호흡을 하였다.
그리고는 골대 그물을 한창 흔들고 있는 공을 보았다.
‘저 녀석 슈팅이 갑자기 세진 건 아닐 테고.’
마요르카에 있을 때도 막기 힘들었던 최준호의 슈팅이 이곳에서는 위력이 훨씬 세져서 막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희박한 공기로 인한 저항이 적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왈케의 눈에 골대 뒤에서 어슬렁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녀석으로 선수들은 하얀색 강아지에게 <푸키>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푸키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는 걸 본 왈케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를 않았다.
‘힘드네. 힘들어.’
그건 대다수의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고지대에 와서 2주간 훈련을 한다고 해서 선수들의 능력이 갑자기 향상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온 이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 일단 볼리비아 대표팀에서 대전료로 상당히 좋은 금액을 제시했다는 것과 선수들의 정신 무장을 위해서 이곳을 선택했다.
‘한계에 몰리는 상황을 자주 경험하다 보면, 그 고통을 버틸 수 있는 내성이 강해지지.’
고통에 대한 내성이 강해진다면, 피로로 인한 기량 하락을 막을 수 있고, 그건 강팀과의 경기에서 아주 큰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었다.
마르코 로제는 자신의 철학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선수들의 훈련을 독려하였다.
1시간의 훈련 세션이 끝난 후에 선수들은 삼삼오오 몰려서 운동장에 누워서 거칠게 숨을 쉬었다.
정말 평범한 훈련인데, 특별한 피지컬 훈련을 받는 것처럼 너무 고통스러웠다.
중간중간 휴식 시간을 주지만 훈련이 끝나는 오후 5시쯤이 되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다들 녹초가 되었다.
그건 최준호도 마찬가지였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엘링, 넌 어떻게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어떻게 공을 그렇게 잘 지킬 수 있는 거야?”
최준호의 말에 엘링도 굉장히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팔을 잘 쓰면 돼.”
“팔?”
“응. 먼저 팔을 길게 쭉 내밀고 있으면, 수비하는 녀석들이 쉽게 달라붙지 못하거든. 붙은 선수를 밀어내는 게 아니니까 파울도 아니고. 수비하는 녀석들은 내 팔을 피해서 붙느라 시간이 걸리고. 그 찰나의 시간을 유리하게 가져가는 거지.”
“아하! 넌 팔이 길어서 가능하겠구나. 엄청나게 연구하는 거야?”
“후후.”
최준호는 잔디 위에 누워서 팔을 쭉 뻗어보았다.
사실 팔을 잘 쓰는 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애들이긴 했다.
많은 남미 선수가 유럽에 진출하면서 유럽 선수들도 팔을 쓰는 법을 서서히 알아갔고.
“아버지가 알려준 거야.”
엘링의 말에 최준호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곳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저 녀석 또 오네?”
첫날 운동장 근처의 구덩이에서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푸키를 최준호가 빼내 주었다.
그 이후로는 줄곧 잘츠부르크 대표팀을 따라다녔다.
훈련할 때는 한쪽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고, 훈련이 끝난 것 같으면 이렇게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자기를 구해준 걸 아는지 푸키가 최준호 옆으로 왔다.
품종은 알 수는 없었고, 하얀색 털을 가졌다.
얼굴에 귀여운 티가 있는 걸 봤을 때 아직 어린 모양이었다.
최준호와 1m 떨어진 지점에서 머리와 몸을 잔디에 바싹 붙이고는 최준호를 가만히 보고 있는 푸키.
가까이 와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는 중이었다.
“이 녀석 되게 똑똑한 것 같지?”
“그니까. 분명 가족들이 있을텐데.”
최준호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그러자 꼬리를 흔들며 벌떡 일어나더니 최준의 손 밑에 몸을 쓱 넣는 푸키.
“너무 정들지 마라. 곧 떠나야 하니까.”
엘링의 말에 최준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잘츠부르크와 볼리비아 대표팀과의 경기.
하지만 이곳은 원정팀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볼리비아.
세계 최강이라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도 모두 여기서 4점 이상의 점수 차로 대패를 하였다.
몸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이 안 되니 움직임이 굼뜨고, 집중력이 저하되어 세밀하게 공을 통제할 수 없었고, 여기서 태어나 자란 선수들만큼 뛸 수가 없었으니까.
최준호는 이번 경기 역시 교체 명단이었다.
그리고 8일 정도의 적응 시간을 가졌음에도 잘츠부르크의 선수들은 전반 20분이 지나자 뛰는 걸 매우 힘겨워했다.
공을 다루는데 있어서 실력 차이가 확실히 남에도 체력적 부담 때문에 점점 밀리더니 30분쯤에 선제골과 추가 골을 연속으로 내주고 전반전 막판에 또 실점하면서 0-3으로 끌려갔다.
골키퍼 왈케가 6번의 선방을 하지 않았다면, 5점 차 이상으로 끌려갈 뻔했다.
이곳이 엄청난 고도의 지역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요르카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에 선수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전반전을 뛰었음에도 마치 풀 경기를 뛴 것처럼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보던 마르코 로제는 딱 1명만 교체하였다.
“초이. 후반전에 나간다. 베리샤 수고했다.”
이번 친선 경기에서 정말 최악의 경기력을 보인 베리샤가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떨궜다.
마르코는 교체 지시를 하고는 선수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이번 경기 실력이 떨어지는 상대로 이렇게 무력하게 지지 않겠지?”
몇몇 선수들이 이런 곳에서 어떻게 뛰냐고 불만을 표하자 마르코가 대답했다.
“수많은 국가로 원정을 떠나야 하는 챔피언스 리그다. 너희들 스스로 어떻게 이길지 생각할 수 없다면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
마르코는 선수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지시를 내릴 수 있었지만,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수없이 일어나는 경기에선 감독이 다 커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몇몇 경기는 선수들에게 아예 맡길 생각이었다.
‘스스로 어떻게 이길지 생각하라는 뜻이지?’
희박한 산소로 인한 체력적인 불리함은 무조건 안고 가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덜 뛰면서 골을 먹지 않고, 골을 넣어야 하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인 방어가 아닌 지역 수비를 해야 했고, 세트피스 상황을 많이 만들어야 했다.
스프린트보다는 패스 게임을 하면서 공을 앞으로 전진시켜야 했고.
무엇보다 최준호는 경기장에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이긴다!’
**
볼리비아 국가 대표 선수들이라고 해서 이런 환경에서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 적응했기 때문에 숨이 차오르는 고통을 꾹 누르고, 한 발 더 뛸 수 있었을 뿐.
잘츠부르크 선수들도 고통스러웠지만, 볼리바르 선수들 역시 고통스러워하였다.
상대 선수들이 후반에 투입된 최준호에게 공을 계속 보내면서, 디에고는 더 많이 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붙으려고 하면 잽싸게 패스를 돌려버리는 통에 짜증이 잔뜩 밀려왔다.
‘망할 녀석. 힘들어 죽겠는데!’
전반전에 붙었던 녀석은 어떻게든 자신을 돌파하려고 애를 썼는데, 이번에 상대해야 할 녀석은 플레이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것 같았다.
최준호는 자신에게 붙었다가 다시 수비하러 돌아가는 디에고를 보았다.
‘지쳤네. 호흡이 거칠어. 힘든 건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소리네? 기술도 그다지 좋지 않고, 이 동네는 순전히 누가 먼저 지치냐로 승리를 논한 게 아닐까?’
문제는 최준호가 공을 잡았음에도 전방에서 양희찬이나 엘링이 침투하려는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 역시 지쳤다는 뜻이었고.
마요르카전에서 최준호의 실력을 알아본 선수들은 기회만 나면 최준호에게 공을 연결했고, 덕분에 최준호는 경기 템포를 조율할 수가 있었다.
3점을 만회하기 급격하게 공격을 전개하기보다는 사방으로 패스를 뿌리며 조금씩 진영을 전진시키고 있었다.
‘…저 녀석. 알고 있는 건가?’
르네 마리치는 이 경기에 승리할 수 있는 해법이 있음에도 마르코가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은 이유를 대충 알고 있었다.
마르코는 잘 뛰고, 공을 잘 차는 것 이상으로 경기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진 선수를 원했다.
그를 통해서 지시가 내려가야 자신이 원했던 전술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가 그것을 하고 있었다.
“패스워크를 통해서 라인을 점점 끌어 올리고 있어.”
“응. 그렇군.”
“마치 냄비의 개구리처럼, 볼리비아 선수들은 자신들이 점점 수세로 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야?”
“알고는 있겠지. 하지만 중앙에서 나가는 패스가 너무 좋아. 초이를 압박하려고 붙지만, 한 박자 빠르게 패스를 넣고 있고. 다른 녀석들도 이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대충 눈치를 챈 것 같아.”
“확실히. 선수들의 표정이 전반전보다는 좋아 보이네.”
어느 순간 디에고는 자신이 상당히 밑으로 내려와서 수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거 위험한데?’
공이 다시 최준호에게 왔고, 디에고는 헐떡이며 달려들었다.
볼리비아 선수들 역시 위기를 인식했는지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선수들에게 동시에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전방에서 움직임이 거의 없던 엘링이 순간적으로 자신을 마크하던 수비수를 돌며 뛰기 시작했고, 최준호의 예리한 안테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165cm의 신장을 가진 디에고는 자신보다 훨씬 큰 최준호를 상대하기 위해서 몸의 중심을 극도로 낮추었는데, 그 방법의 하나가 다리를 넓게 벌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최준호가 디에고의 다리 사이로 공을 강하게 밀어 찼다.
“엇!”
공이 디에고의 다리 사이로 그것도 굉장히 빠르게 굴렀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커버를 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마크하던 수비수를 완전히 제친 엘링은 자신이 뛰는 공간으로 굴러오는 공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정말 멋진 패스야. 황홀하네. 오프사이드는 아니겠지?’
골키퍼가 튀어나왔지만, 엘링은 차분하게 골키퍼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며 슈팅을 때렸다.
공이 볼리비아의 골대 오른쪽 구석을 흔들었고, 드디어 잘츠부르크의 첫 골이 터졌다.
엘링은 뛰는 대신 요가를 하는 듯한 제스처로 세레머니를 대체하였고, 다른 선수들도 엘링에게 뛰어가는 대신 손뼉만 쳐 주었다.
그만큼 다들 체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디에고는 자신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날카로운 패스를 넣어주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되돌아가는 최준호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위험해. 위험해.’
**
볼리비아 국가 대표의 공격은 투박하기 그지없었는데, 전반전의 골 대부분이 문전 앞에서 우당탕 골이었다.
“뺏어서 공격 전개하려고 하지 마! 터치 라인 밖으로 공을 처리해!”
잘츠부르크의 베테랑이자 주장인 울머 역시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수비해야 할지 파악했고, 선수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격려하였다.
전반전에는 역습을 전개하려고 무리하게 스프린트를 하다가 체력이 떨어져 당했지만, 후반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확실하게 수비한 다음에 천천히 공격을 전개하였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최준호 때문이었다.
후반 16분경.
디에고는 최준호가 자기 다리 사이를 힐끗 보는 것을 파악하고는 이번에도 다리 사이로 패스를 넣을 거라 판단을 하였다.
그래서 최준호가 공을 받을 때 디에고는 다리를 넓게 벌리지 않고 대비했다.
덕분에 압박도 느슨해졌고.
‘넌 눈치가 빨라서 너무너무 좋아.’
최준호는 자신에게 온 패스를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툭 쳐서 디에고의 뒷공간으로 떨어트려 놓고는 왼쪽으로 잽싸게 치고 나갔다.
그간 거의 걸어 다니면서 게임을 하였기 때문에 최준호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릴만한 체력이 있었다.
“으악!”
전혀 예상치 못한 돌파에 디에고는 최준호를 놓치고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최준호는 공을 몇 번 툭툭 치면서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볼리비아 수비수들이 달라붙어서 괴롭히는 바람에 제대로 쇄도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하였다.
‘여긴 공기 저항이 적지?’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최준호는 골대를 무섭게 노려보며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 뻥!
정상적인 경기장이었다면 아무리 강슛이라도 골키퍼가 처리할 수 있겠지만, 여긴 공기가 희박한 에스타디오 에르난도 실레스 구장이었다.
공기가 희박하니 저항이 적었고, 공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더군다나 저 거리에서 중거리 슈팅을 때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골키퍼였다.
다만 거리가 있다 보니 궤적을 예측해서 몸을 날렸는데, 그 공에 톱스핀이 걸려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골대 앞에서 뚝 떨어지는 공은 골키퍼의 손을 피해 그대로 그물 안쪽에 꽂혀 버렸다.
– 철렁!
그리고 한참 동안 그물을 흔드는 강력한 중거리 슈팅.
르네가 그 장면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는 소리를 질렀다.
“와우!!!”
르네의 고함에 깜짝 놀란 마르코는 다시 무표정한 모습으로 턱을 만졌다.
‘중거리 슈팅 하나만큼은…확실히 세계 탑 클래스야. 저 나이에 말이지?’
마르코의 머릿속에 선발명단이 점점 그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