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6)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6화(6/184)
6화 BVB 유소년 캠프(3)
“오후에는 간단한 연습 게임을 하겠다. 20분씩 전후반이다. 조 편성표는 이쪽에 있다. 10분간 시간을 줄테니 포지션을 상의하도록.”
이번 캠프의 책임 코치인 미하일의 말에 최준호는 조 편성표를 보고는 B팀으로 이동하였다.
모이는 녀석들을 보니 숙소별로 조를 편성한 것 같았다.
모인 아이들은 영어를 쓰는 부류, 독일어를 쓰는 부류로 나뉘어졌다.
“난 공격수가 좋아.”
“나도 공격수를 했어.”
“나도 이전 유스팀에서 공격수를 했었어.”
8명이 다들 공격수를 하겠다는 상황이었다.
준호는 토마스에게 물었다.
“토마스 넌?”
“난, 아무거나 다했어.”
“그럼 수비수할래?”
“알았어.”
일단 한 명은 수비수로 돌렸고.
아이들은 자기들이 공격수를 하겠다고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것도 영어권, 독일어권 두 부류로 나뉘어서.
“잠깐만. 얘들아.”
최준호는 독일어와 영어로 번갈아 가며 말했고, 바로 주목을 받았다.
“도르트문트 전술은 4-2-3-1 이야. 모두가 공격수는 할 수가 없다고. 4명은 수비수를 해야하고, 2명은 미드필더를 봐야 해.”
“하지만 난 공격수였다고.”
“나도 공격수로 뛰었어!”
제각각 또 떠들었다.
축구 게임에서 골을 넣으면 가장 쉽게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캠프에서 만약 저들의 눈에 든다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유소년 코칭 시스템을 갖춘 도르트문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공격수를 고집하지만, 축구에는 공격수만 있지 않았다.
“그럼 전후반 나눠서 역할을 바꾸는 건 어떨까?”
무조건적으로 너 공격수 해, 너 수비수 해 하는 건 오히려 반감을 사기 쉽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다들 납득할 것 같았다.
최준호의 이야기에 공격수를 고집하던 아이들은 얼마 후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도 공격수 할거야?”
누군가의 물음체 최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난 미드필더가 좋은데, 하고 싶은 사람 있어?”
어찌보면 가장 많이 뛰어다녀야 하고, 득점하기도 어려운 포지션이었다.
그 중에 가만히 있던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 하나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나.”
“다른 사람은?”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 왼발 잡이 있어?”
두 아이가 손을 들었다.
“너희들은 왼쪽의 윙어와 윙백 번갈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인사이드 포워드나 인버티드 윙백처럼 중앙으로 치고들어가는 롤을 맡으면 오른발을 쓰는 게 좋긴 하겠지만, 여기서 그런 세세한 전술을 짜는 건 힘든 일이었다.
대체적으로 왼발을 잘 쓴다면 왼쪽 포지션이 무난했다.
“알았어.”
“좋아. 여기 토마스가 수비수를 한다고 하니까, 골키퍼 한 명만 더 결정하자.”
“내가 할께.”
그런데 다행히도 지원자가 나타났다.
금발 머리의 독일어를 쓰는 아이였다.
토마스보다는 작지만, 여기서 두 번째로 키가 큰 녀석이었다.
“좋아. 그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포지션을 결정하자.”
어느새 아이들은 최준호를 구심점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미하일은 양 진영을 어슬렁어슬렁 다니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결정을 하는 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지원자가 공격수를 희망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별 관심이 없는 이벤트이기도 했고, 특이한 이력이 아니면 피지컬 정도만 보고 뽑았다.
그리고 이렇게 풀어놓고 알아서 하라는 건 그런 지원서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을 보기 위해서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적응할 지라던가, 리더쉽이라던가.
유스 때는 특출난 면이 있으면 금방 주목을 받지만, 프로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오히려 수치로 산출할 수 없는 정신적인 면모나 축구를 대하는 태도가 그들의 삶을 바꿔 놓는 걸 수시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서로 소리를 높이며 언쟁을 하는 A팀에 비해서, 금새 차분하게 포지션을 정하고 전술을 의논하는 B팀이 흥미로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최준호가 있었다.
영어와 독일어를 마치 현지인처럼 너무나 유창하게 구사하는 점과 그들을 이해시키고 양해를 얻는 장면에서 미하일에게 큰 점수를 땄다.
– 그 친구 괜찮던데?
유스팀 기록분석가를 맡다가 이번 이벤트에 차출이 된 필립이 미하일에게 이미 귀띔을 해놓은 상태였다.
악취 때문에 모두가 싫어하는 토마스와 스스로 메이트가 된다고 나선 점도 리더쉽의 한 영역이었다.
모두가 좋은 것을 하고 싶고, 싫은 것을 피하고 싶을 때, 그 싫은 것을 스스로 맡겠다고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특히 어린 아이들이.
미하일은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판을 들여다보았다.
’21번 최준호라.’
**
“자자 카메라 빨리 설치 해.”
나영중은 함께 온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첫 날에 바로 미니 게임이라니. 그건 마음에 드네.’
사실 훈련하는 장면은 재밌을 리가 없었다.
똑같은 걸 계속 반복하는 것이니까.
“김우영 선수 중심으로 촬영해.”
하지만 같은 편 학생과 멱살을 잡는 모습이 눈에 띄자 나영중은 눈살을 찌푸렸다.
‘날 좀 도와줘라. 이 녀석아. 좋은 모습 좀 보여주란 말이야.’
속으로 궁시렁거리던 나영중은 시선을 돌렸다.
김우영이 있는 팀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B팀을 보고 있자니, 최준호라는 한국인 학생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지?’
김우영 특집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 프로그램을 맡은 책임자였다.
“카메라 C.”
“네. 감독님.”
“반대편에 있는 한국인 선수를 중점으로 촬영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다만 운동장에 모여 있는 22명의 학생 중에서 키가 가장 작고, 몸도 왜소한 편에 속해 있었다.
어렸을 때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피지컬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르트문트의 특성 상 그가 유스 클럽에 뽑힐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재능이 괜찮다면 한국에서는 통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삐익!
미하일 코치가 심판이 되어서 두 팀의 경기가 바로 시작되었다.
선공은 A 팀.
‘역시나.’
공을 보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동네 축구에 미하일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포지션에 대한 개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너무 엉망이었다.
‘너무 큰 기대였나?’
그런 상황이다보니 독특한 움직임을 하는 한 명이 눈에 확 들어왔다.
“16번 자리를 지켜!!!”
“8번 왼쪽으로 가!!!”
“토마스 왼쪽 조심해!!!”
최준호였다.
무질서하고 엉망인 경기를 그나마 축구 경기로 만들어 주는 유일한 아이였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지시를 내리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었다.
다만 아이들은 그런 지시에 시큰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타이밍이 늦었지만 하려는 아이들도 보였다.
‘경기를 보는 눈은 있네.’
거기에 수시로 고개를 한 곳에 고정하지 않고 계속 상황 파악하는 모습을 보니 호기심이 저절로 갔다.
‘좋은 습관이야.’
“16번 달려!!!”
경기가 10분쯤 지나고 지루한 경기가 진행될 무렵, 16번을 단 학생이 최준호의 지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최준호의 지시대로 아이들이 움직이자 B팀의 경기는 점점 짜임새를 갖춰갔고, 아이들도 그걸 아는 듯 16번은 왼쪽에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 뻥
그 순간 최준호가 발밑에 공을 오른발로 길게 차 내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이 A팀 수비수 뒷공간으로 떨어졌고, 16번은 자신에게 따라붙은 수비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따돌리고 공을 따내었다.
‘거기서는 크로스를 올려야지?’
미하일의 생각과 동시에 최준호가 소리쳤다.
“크로스!”
하지만 공을 잡은 16번은 크로스가 아니라 개인기로 자신에게 붙은 수비수를 떨쳐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커다란 덩치가 밀고들어오는 몸싸움에 16번은 당해낼 수가 없었다.
16번이 공을 받는 순간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했던 4명의 B팀 선수들이 고함을 치며 힐난했다.
“왜 크로스 안올려!”
“거기서 왜 개인기를 부리냐고!”
짜증나는 소리 뒤로 최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잘 했어. 다음에 또 그런 기회가 오면 크로스를 올리면 돼! 수비하자!”
몸싸움에 밀려 땅에 넘어졌던 16번은 머리를 긁적이며 수비하러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미하일이 손을 올려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미하일의 눈은 경기 내용 자체보다 최준호의 발 밑에 가 있었다.
‘2번 이상 터치를 하지 않는다?’
A팀도 위기를 느꼈는지 양 사이드로 좋은 롱 패스가 연달아 들어가자 최준호에게 붙기 시작했는데, 공을 거의 뺏기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할 개인기도 보여주지 않았고, 피지컬 적으로도 유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하일은 그 이유를 최준호의 터치에서 찾았다.
무엇이든 보여주려고 드리블을 치든 공을 잡고 끌든 간에 오랫동안 자신의 발 밑에 공을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최준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투 터치 이상을 하지 않았다.
확실했고, 간결했으며 민첩했기에 상대 수비수가 뺏을 만한 시간 자체를 주지 않았다.
그냥 프로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건 상상 외인데? 일부러 투 터치를 하는 건가? 아니면 본능적으로 공을 발 밑에 두는 걸 싫어하는 것일까?’
그런 것 치고는 패스 성공률이 95%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 엉망인 상황에서도.
특히 양 사이드로 뿌려지는 롱 패스 성공률도 90%를 넘었다.
패스 정확도는 이곳 지원자와는 아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미하일은 가지고 있는 종이판에 연필로 뭔가를 끄적이고는 고개를 돌려 B팀의 최장신 수비수였던 토마스 시아카를 보았다.
A팀과 B팀의 평균적인 개인 실력을 봤을 때는 분명 A팀이 좀 더 우세하였다.
그런데 A팀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B팀은 제법 팀웍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경기는 오히려 A팀과 호각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개인기와 발밑 기술이 좋은 A팀이 슈팅을 더 많이 가져갔다.
분명이 골이 될 법한 슈팅도 있었는데, B팀의 수비수 토마스가 그걸 온 몸으로 다 막아내면서 득점에는 실패했다.
‘근데 발 밑이 너무 안좋아.’
이 캠프에 참여한 지원자 중에서 토마스 시아카의 발재간이 최악이었다.
그건 분명 축구화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축구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
대신 압도적인 피지컬로 본능적으로 수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가 보여준 민첩성, 순발력, 스피드, 유연성, 균형감은 여기 지원자들과 비교도 못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초반의 동네 아이들 게임 같았던 미니 게임에 무척 실망했던 미하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루하지는 않겠군.’
미하일이 호루라기를 불러서 지원자를 모두 불렀다.
그리곤 B팀처럼 제대로 된 팀웍이 이루어지지 않는 A팀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다.
이름 하나 하나를 부르며 포지션과 역할을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1번 김우영. 스트라이커 역할.”
전반전에 이미 스트라이커 역할을 한 김우영이었다.
A팀 선수들의 불만이 얼굴에 금방 드리워졌지만 미하일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김우영은 준수한 피지컬과 스피드, 순속을 가졌고 몸싸움도 수준급이었다.
더군다나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았는지 발밑 기술이 A팀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문전 앞에서 좀 더 침착할 수만 있다면 괜찮은 공격수가 될 타입이었다.
“B팀은….”
미하일은 B팀의 포지션도 정해주려다가 최준호를 보고는 생각을 바꿨다.
“이전에 했던 것처럼 포지션을 정할 것. 15분간 휴식 후 후반전을 시작한다.”
미하일의 지시가 끝나자 B팀 아이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최준호 주의로 모여들었다.
“코치가 A팀만 너무 편애하는 것 아니야?”
어디서 불만 섞인 소리가 흘렀다.
“저기 카메라 보여? 한국 방송국에서 왔다는데, A팀 1번을 위해서 왔다는 소문이 있어.”
“뭐야? 그럼 나머지는 들러리야?”
최준호도 그 말에 눈을 돌려 그라운드에 설치된 여러 개의 카메라를 보았다.
가까이 있는 카메라 옆에 <…슛돌이 프로젝트> 라고 쓰여 있었다.
‘아. 그거였어?’
얼핏 기억이 떠오른 최준호였다.
저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정말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윤강인 선수가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종영되고 나서는 이런저런 나쁜 소문이 떠돌긴 했었는데.
‘어쩌면 이 이벤트가 저 프로그램 때문에 시작했는 지 모르겠네? 뭐, 어때? 덕분에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까.’
최준호는 다시 시선을 돌려 쉬고 있는 A팀에게 시선을 돌렸다.
역시 유명 구단의 코치답게 적절한 포지션에 적절한 선수를 배치했다.
거기다가 역할까지 부여했으니 후반전에는 좀 힘들어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전에 공격에 나섰던 선수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형편이 없었지만, 그들의 자리를 대체할 만한 선수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토마스. 너 공격수 안해 볼래?”
분명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아본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녀석의 피지컬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하, 할 수 있을까?”
“응. 해봐.”
공격 포인트를 올리고 싶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