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61)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61화(61/184)
61화 개막 경기(1)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연고로 하는 라피드 빈과 FK 아우스트리아 빈은 전통적인 강호였고, 오랫동안 우승을 나눠 먹는 사이였지만, 최근 급격하게 성장한 잘츠부르크에서 우승을 내주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저번 시즌 잘츠부르크는 라피드 빈과 2무, FK 아우스트리아 빈과는 1승 1패를 하였다.
전력상 세 팀이 비슷하다고 평가되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개막 경기인 잘츠부르크와 라피드 빈과의 경기 역시 무승부가 나올 것이라고 손꼽았다.
– 그들은 신흥 강자이지만, 우리는 전통적 강호다. 이번에 영입한 유서프 데미르가 미친 황소의 심장을 저격할 것이다.
레드불이 붉은 황소라는 이미지가 강력해서 그런지 라피드 빈 감독 디미트리는 은유적으로 자신감을 표현하였다.
– 이번 시즌 우리의 목표는 오스트리아 리그가 아니다. 라피드 빈은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며 이번 경기를 통해서 우리 팀이 절대로 넘볼 수 없는 강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르코 로제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을 하였다.
“음. 이벤트라고?”
기자 회견 후 구단이 꺼낸 이야기에 마르코 로제는 턱을 쓰다듬었다.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 레드불 사는 5개의 축구 클럽과 1개의 F1 팀을 소유하고 있었고, 도전에 미친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기업으로 꽤 많은 돈을 엉뚱한 곳(?)에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좋은 이벤트지 않나?”
레드불 잘츠부르크 구단은 소유주의 엉뚱한 제안으로 경기마다 난치병이나 큰 병을 앓고 있는 팬을 선택해 의료비 전액을 지원하기로 하는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
사실 이 이벤트는 레드불 기업이 지역 사회에 헌신적이어서 열린 것은 아니었다.
2년 전에 레드불의 태국 동업자 찰레오 유위다오의 손자인 오라윳이 술과 마약을 하고는 페라리를 끌다가 단속하던 경찰을 치어 죽인 후 뺑소니를 친 사건이 터졌는데, 이 최악의 사건을 검찰에서 아예 불기소하면서, 기업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으로 태국에서는 유전무죄 논란이 일었고, 군주제 개혁 시위까지 이어지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매 경기 전 우리는 난치병에 걸린 잘츠부르크 팬 중 한 명을 선정하게 될 거야. 그들의 구단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듣게 될 것이고, 선수들은 동기부여가 되겠지. 경기력에 영향을 줄 것이고, 승리하게 될 거야. 그러면 더 많은 팬이 찾게 되고 구단의 수입은 더 늘어나게 되겠지. 더 많은 수입이 생기면 선수들의 주급을 더 챙겨줄 수 있는 것이고.”
단장인 크리스토프 프로인트의 이야기에 마르코는 다시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팀이 승리한다는 조건으로 의료 지원을 한다는 거지?”
“그렇다고 봐야겠지. 승리하지 않아도 어떤 방식으로든 지원을 하겠지만.”
“어차피 할 거, 마케팅하겠다?”
“그게 우리가 움직이는 방식이지.”
“효과를 발휘하려면 패배해도 지원한다는 사실은 선수단에는 비밀로 해야겠군.”
프로인트는 마르코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야 나름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으니까.”
잘츠부르크의 경기력은 내부적인 보고에 따르면 두 경쟁자와 비교해서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좋았다.
동기부여를 잃은 강자의 여유로 인해서 팀이 말도 안 되는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감독과 단장은 선수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까에 대해 큰 고민을 했었고, 마침내 결과에 이르렀다.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도 진출해야 하니까.”
**
양창명은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이동하였다.
서로 인접한 나라에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에 독일에 있는 것만큼 편안했다.
–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여기는 잘츠부르크입니다.
양창명은 휴대폰으로 실시간 영상을 찍으며 잘츠부르크의 경관을 보여주었다.
– 우아. 부럽다.
– 나도 가고 싶다. 유럽.
– 아파트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네.
– 건물들이 다 오래전에 지어진 것 같아.
– 예쁘네.
잘츠부르크는 로마 시대 때부터 만들어진 유서 깊은 도시며 암염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잘츠라는 Salz 즉 소금을 뜻하는 이유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의 거장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고,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실제 촬영지였다.
그만큼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상당한 도시였다.
– 2시간 후면 잘츠부르크의 17/18 시즌 개막 경기가 열립니다. 상대는 라피드 빈. 저번 시즌 잘츠부르크에서 밀려 아슬아슬하게 2위를 한 오스트리아의 명문 구단이죠. 선발명단을 확인해 봤는데, 우리 최준호 선수가 그 명단에 있었습니다.
최준호가 골든볼을 수상하며 U-17 국가 대표팀을 우승시키면서 엄청난 관심을 끌었고, 꾸준하게 최준호의 경기를 리포팅 하던 양창명의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3천 명 선이었던 구독자가 벌써 20만 명이 넘은 것.
그만큼 축구팬들은 한국의 새로운 유망주 최준호에게 관심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 얼마 전 생일이었다고 하는데, 그럼 만 16세에 1군 리그에서 선발로 뛰는 건가?
– 미쳤다.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바로 선발이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 준호야 사랑해!
– 과연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가 오스트리아 1부 경기에서도 나올지 의문.
– 느그동생꺼져.
– 내가 유튜브로 오스트리아 리그까지 볼 줄이야!
양창명은 라피드 빈 선수를 태운 버스에서 선수들이 내리자, 그곳에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들 역시 프리시즌을 잘 보냈는지, 몸이 상당히 좋았고 다들 승리를 하겠다는 듯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었다.
– 이번 경기 잘츠부르크는 공격적인 4-3-3의 포메이션으로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최준호 선수의 1군 데뷔 첫 선발경기에서, 득점이나 어시스트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창명은 그렇게 말하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올라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도르트문트 유소년 캠프에서 그를 봤을 때는 상당한 유망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력이 향상되는 속도 자체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빨랐다.
마치 메시를 보는 느낌이랄까?
얼마 전 잘츠부르크 구단이 보내준 영상을 보고서는 그저 감탄의 감탄일 뿐이었다.
16살의 임대생이 잘츠부르크 중원에서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3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레드불 아레나 주변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고, 이 홈구장에서 터져 나올 팬들의 함성을 상상하니 벌써 심장이 두근거렸다.
– 자, 그럼 이제 경기장에 입장해보겠습니다.
**
– 멍!
푸키 때문에 몸을 벌떡 일으키자마자, 곧바로 챔피언스 리그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Ce sont les milleures equipes….
(그들은 최고의 팀이다.)
최준호는 손을 들어 푸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으아아아아!!! 아우 잘 잤다.”
눈을 떠보니 침대맡에 운동복이 놓여 있는 게 푸키가 가져다 놓은 게 분명했다.
“또 가져다 놓았냐? 요 똑똑한 녀석.”
일어났을 때 적막만 가득하던 공간 대신 누군가가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푸키가 가져다 놓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같이 나갈까?”
“멍!”
“가자.”
1시간 정도 근처 공원에서 가볍게 러닝과 스트레칭을 한 최준호는 푸키에게 사료를 주고는 씻고 구단 훈련장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최준호는 전술 실에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영상을 시청하였다.
– 안녕. 난 도리스 바우스트라고 해. 올해 16살이고 가족을 따라서 잘츠부르크의 팬이야. 주장인 안드레아스 울머를 가장 좋아해. 주말마다 축구장에서 소리 지르고 춤추는 게 유일한 취미인데, 2년 전부터 그럴 수가 없었어.
휠체어에 탄 채 느리게 몸을 움직이는 도리스.
– 급성으로 진행되는 파킨슨병이래.
떨림, 근육의 강직, 운동장애로 점점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고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난치병이었다.
–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방법이 있다고는 하는데, 시술 비용이 너무 비싸서 부모님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어. 그래도 난 부모님이 좋아. 가족의 도움으로 매주 경기장에 가고 있거든. 예전처럼 춤은 못 추지만, 소리는 지를 수 있거든.
도리스는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 근데 왜 이런 영상을 찍는지는 잘 모르겠어. 개막 경기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아. 개막 경기에 나도 갈 거야. 꼭 이겼으면 좋겠어! 화이팅!
마르코는 영상을 끄고는 강단 앞에 섰다.
난치병에 걸린 잘츠부르크의 팬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한 명도 빠짐없이 마르코에게 집중하는 선수들.
이미 라피드 빈과의 경기를 대비해서 많은 준비를 했기 때문에 전술적인 지시는 더 필요 없는 상황.
“구단에서 재미있는 딜을 해왔다. 만약 이번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저 소녀의 치료를 도울 것이라더군.”
선수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자, 경기에서 승리하고, 울머를 좋아한다는 잘츠부르크 팬 도리스도 돕도록 하자. 울머? 3점 차로 이길 수 있지?”
“절대 실망하게 할 수 없지.”
마르코 로제는 눈에 힘이 팍 들어간 선수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꽤 좋은 방법인데?’
**
레드불 아레나.
잘츠부르크 vs 라피드 빈 개막 경기.
저번 시즌 우승팀과 준우승팀의 경기라 그런지 스타디움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 찼다.
흰색 유니폼을 입고 온 라피드 빈 팬들도 5천 명이나 있었다.
“저 녀석인가?”
라피드 빈의 미드필더 스테판 쉬밥은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경기장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검은 색 머리카락의 동양인 최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웬만해서는 누굴 막으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는 감독의 특명을 받았기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했다.
– 21번. 이 녀석이 잘츠부르크의 핵심이다. 경기장에서 지워버려!
185cm, 78kg의 탄탄한 피지컬은 기본이었고, 수비, 패스, 창의성, 골 결정력 골고루 갖춘 6툴 선수였다.
라피드 빈 중앙의 핵심이었고, 라피드 빈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 중 하나였다.
“작네.”
스테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 하나였다.
물론 최준호보다 작은 선수도 많긴 하지만, 일단 피지컬에서 압도한다는 것에 안도했다.
감독이 그렇게 경계하는 선수치고는 잘츠부르크 팬들은 최준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호기심을 가지고 보긴 하지만, 아무래도 정식 경기에서 보여준 게 없어서일까?
최준호는 그라운드 옆에 있는 트랙을 거닐면서 눈을 돌려 관중석을 보았다.
이따금 휘파람이 나오긴 하지만, 열렬히 환영해주는 이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뭐, 당연하지. 오히려 의심하겠지. 저렇게 어린 선수를 선발로 쓴다는 게. 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다들 자신을 보며 열광할 것이라고 최준호는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간혹 자신과 눈이 마주친 팬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던 최준호는 가장 가까운 관중석에서 꽤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양 기자님이네?’
양창명은 최준호를 보자 큰 소리로 환호했고, 최준호도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휴대폰 카메라를 이쪽으로 하는 걸 보니 아마도 실시간 방송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좀 더 웃음을 지어주었다.
좀 더 걷다 보니 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오늘 아침에 영상으로 보았던 그 소녀였다.
‘도리스던가?’
여러 방식의 스포츠 마케팅을 경험했던 최준호였기 때문에 다른 어린 선수들처럼 갑자기 승부욕에 불타오르진 않았다.
원래부터 승부욕이라는 괴물에게 먹혀버렸으니까.
최준호는 방향을 틀어 도리스가 있는 관중석 쪽으로 향했다.
약간은 돌발행동이었기 때문에, 카메라들이 최준호 쪽을 비추었다.
“도리스?”
도리스는 이번 시즌 혜성처럼 등장한 어린 선수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랐다.
“…응?”
최준호는 세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길게. 널 위해서.”
너무나 간결한 메시지만 남기고 다시 락커로 향하는 최준호.
도리스는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홍시처럼 빨갛게 변하고 말았다.
‘…뭐? 뭐지!’
그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는 줄도 모르고.
**
오스트리아의 국가가 제창되고, 선수들은 그라운드 중앙에 있다가 양쪽 진영으로 흩어졌다.
잘츠부르크의 응원가가 관중석에서 흘러나왔고, 심판은 긴장한 표정으로 양쪽을 보고는 휘슬을 물었다.
최상위권 팀들 간의 대결.
그 한마디로 이 경기를 함축할 수 있었다.
– 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