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6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62화(62/184)
62화 개막 경기(2)
마르코 로제의 4-3-3 포메이션.
중앙 미드필더에는 아이다라 대신 베리샤와 크사보가 공격적으로 배치가 되었고, 최준호는 예상외로 그들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서 볼 배급을 하였다.
같은 전술을 사용하는 라피드 빈의 스테판 역시 최준호처럼 수비 미드필더 같은 역할을 하였는데, 덕분에 감독의 전술 지시처럼 최준호를 전담 마크할 수가 없었다.
최준호를 막겠다고 억지로 나갔다가는 진영이 흐트러져 버리는 상황.
그간 친선 경기에서 최준호는 거의 공미에 가까운 역할을 계속 수행하였기 때문에 공격적인 성향으로 나올 것으로 판단한 라피드 빈의 착오였다.
덕분에 174cm에 불과한 공격적인 미드필더 루이스 슈아브가 최준호를 마크해야만 했다.
경기 시작 공을 잡은 최준호는 빡빡하게 압박해 들어오는 루이스의 몸싸움 실력을 보기로 했다.
‘뭔… 돌덩이 같냐?’
뒤에서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안 하는 바위 같다는 느낌을 받은 루이스였다.
‘아, 이거 힘들겠는데?’
루이스가 억지로 발을 뻗어 공을 다루는 것을 방해하려고 했지만, 최준호는 노련하게 그의 발을 피해 가며 공을 제어했다.
‘역시 미스 매치인거지?’
최준호는 힐끔힐끔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스테판을 보았다.
축구는 결국 감독 놀음이라는 말이 아마도 이런 부분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마르코 로제의 예측이 맞아떨어졌고, 최준호는 슬쩍 웃음을 지었다.
양희찬과 홀란드가 양쪽으로 슬슬 뛰면서 가운데가 벌어지자, 스테판의 견제를 받던 베리샤가 순간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스테판이 6툴의 선수이긴 하지만, 베리샤는 스피드에 좀 더 치중된 선수였다.
최준호는 백패스를 하려는 척 발을 놀렸고, 수비 지능이 떨어지는 루이스는 더 압박하지 않고 잠시 떨어졌다.
그 사이에 최준호는 몸을 빠르게 돌리며 터닝 동작으로 전방에 크로스를 올렸다.
이번 라피드 빈을 상대하기 위해 반복 훈련된 상황이었고, 최준호는 라피드 빈의 뒷공간에 정확하게 공을 떨궈놓았다.
스테판은 순간적으로 자신을 앞서 달리는 베리샤에게 깜짝 놀라 사이드로 고개를 돌렸지만, 오프사이드가 아니었다.
‘젠장!!!’
스테판이 팔을 허우적거렸지만, 베리샤의 몸은 이미 튕기듯 나아가고 있었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저 녀석이 주는 패스가!’
어찌 보면 경기에서는 처음으로 같이 뛰는 것이었다.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예측이라도 한 듯 자신이 가고 싶은 공간에 공을 정확하게 떨궈주는 것에 베리샤는 살짝 전율을 느꼈다.
엘링이 수비수 2명을 달고 중앙으로 쇄도하자, 베리샤는 공을 트래핑한 후 자신에게 아주 익숙한 오른쪽 공간을 향해 드리블했다.
스피드가 좋은 선수라 스테판과 오른쪽 풀백 선수가 달려들긴 했지만, 사이드에서 크로스를 막을 수가 없었다.
– 툭!
라피드 빈의 골키퍼 리차드는 자신의 시야에 걸린 엘링을 보았다.
그는 저번 시즌 26경기에 21번 출장해서 37골을 때려 넣은 괴물이었다.
당연하지만 사이드로 내달린 베리샤가 크로스를 올려줄 거라 예측했고, 베리샤는 리차드의 예상처럼 크로스를 올렸다.
다만.
‘엇?’
그 방향이 골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리차드는 순간적으로 눈을 전방으로 돌렸고, 거기에 홀로 있는 21번 선수를 보았다.
공은 살짝 바운드 되면서 그에게 굴러갔다.
거리도 좀 있는 편이었기에 리차드는 최준호가 한 번 트래핑 후에 드리블을 칠 거라 예측을 했다.
그리고 눈치를 챈 수비수 중 하나가 뛰어나가려고 폼을 잡는 순간.
– 뻥!
최준호는 트래핑 없이 튀어 오른 공을 그대로 발리로 냅다 때려버렸다.
‘…!’
영상 분석을 통해 최준호의 중거리 슈팅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듣긴 들었지만, 이렇게 총알처럼 날아올 줄이야!
슈팅을 때리리라 예측도 못 한 스테판은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공이 그물을 가르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 철렁!
전반 시작 3분 12초 만에 터진 최준호의 선제골.
마르코 로제가 이른 시간에 터진 골에 환호성을 찌르며 공중으로 어퍼컷을 날리는 사이 벤치 기둥에 기대고 있던 르네 마리치는 팔짱을 끼며 미소를 지었다.
“예상치 못한. 그러나 아름다운 발리슛이군.”
경기 시작 얼마 되지 않아 터진 환상적인 골.
홈 팬들은 짜릿한 느낌에 모두가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친선 경기 때도 많은 득점을 하더니, 개막 경기 경쟁자 라피드 빈을 상대로 이렇게 쉽게 골을 터트릴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초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그 이름을 함께 연호하며 즐거워했다.
최준호는 양손을 귀에 대고 그라운드를 지그재그로 돌면서 즐거워했고, 코너킥을 차는 부근까지 달려서는 번쩍 점프를 뛰며 허공을 향해 주먹을 치켜올렸다.
동료들이 달려와 최준호를 껴안았다.
역시 축구를 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고, 정식 리그에서 골을 넣는 건 그 무엇보다 행복한 사건이었다.
도리스는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아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소리만 질렀다.
‘와! 저 녀석 정말 굉장하잖아?’
**
“와 드디어 최준호 선수가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첫 경기 3분 12초 만에 첫 골을 터트렸습니다. 이로써 최준호 선수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최연소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많은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양창명은 정말 신나는 표정으로 마음껏 포효하였다.
비록 유럽의 5대 리그에 비교하면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수준 낮은 리그였지만, 이곳에서 최준호가 많은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이 마치 자기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라피드 빈의 감독 드미트리는 입술을 굳게 닫고 인상을 찡그렸다.
’21번을 저런 식으로도 쓸 수 있는 건가? 완벽한 미스 매치로군.’
그는 스텝들과 포옹하는 마르코 로제를 노려보았다.
라피드 빈에서 8년째 감독을 하는 자신과는 달리 마르코 로제는 잘츠부르크에서 유소년팀을 맞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1군 팀을 맡게 되었다.
그를 상대로 전술 싸움에 밀렸다는 생각에 그의 얼굴은 빨갛게 익기 시작했다.
그렇더라도 그는 오랜 기간 감독을 했던 관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21번의 수비력은?’
정말 예상도 못 한 중거리 발리킥에 첫 골을 빼앗긴 라피드 빈은 눈에 불을 켜고 공격을 시작하였다.
그 공격은 팀 내에서 가장 개인기가 좋은 루이스를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왜 그를 적극적으로 따라가서 수비하지 않았느냐는 감독의 질책을 받은 터라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루이스였다.
최준호가 자세를 잡고 무게 중심을 낮추자 루이스는 그를 제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 최준호 앞에서 헛다리를 짚기 시작한 루이스.
‘흠…장난하냐?’
그가 과거에는 수비할 줄 모르는 공격수였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많은 경기를 하면서 쌓인 경험이 있었다.
도르트문트에서부터 꾸준하게 개인 훈련으로 수비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하는 중이었고.
그런데 귀엽게 생긴 녀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헛다리 짚기를 하니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올 수밖에.
‘공격 템포 다 잡아먹고 있네. 마음껏 해봐라.’
하지만 생각보다 발이 빠른 선수라 뚫리게 되면 뒷공간을 털릴 게 분명했기 때문에 최준호도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루이스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향하는 사이.
최준호는 그의 상체를 보았다.
오른쪽으로 살짝 중심 이동하는 것을 보고는 빠르게 오른쪽을 향해 다리를 쑥 넣었다.
– 툭.
시선으로 페이크를 주려는 것도 실패했고, 덤으로 공까지 완벽하게 빼앗긴 루이스.
최준호는 지체하지 않고 공을 앞으로 툭툭 치며 드리블을 시작했다.
공을 빼앗긴 루이스가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지만, 최준호는 그가 붙기도 전에 왼쪽 깊숙한 공간을 향해 스루패스를 뿌렸다.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던 양희찬이 저돌적이고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로 달라붙은 수비수를 떨구고는 먼저 공을 터치했다.
그리고 그 스피드를 살리며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치고 들어갔는데, 당황한 표정으로 뛰어나온 중앙수비수마저 발기술로 제치고는 골대를 향해 슈팅을 때렸다.
– 뻥!
하지만 라피드 빈의 골키퍼가 슈팅 각도를 줄인 상황에서 손을 뻗어 선방하였는데, 운이 없게도 뒤에서 세컨드 볼이 달려드는 엘링의 머리에 걸리고 말았다.
– 철썩!
혀를 내밀며 코너킥 사이드로 달려간 엘링이 그의 시그니처 세레머니인 요가 자세를 취하자, 관중석은 또다시 난리가 났다.
전반 24분 만에 강팀 라피드 빈을 상대로 2골을 터트려 버린 잘츠부르크.
디미트리 감독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루이스 슈아브는 라피드 빈 공격의 핵심 선수였기 때문에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골치 아프군.’
엘링의 득점력은 이미 저번 시즌 검증이 되었고, 공격의 한 축을 담당하는 양희찬이 저돌적인 돌파도 저번 시즌 충분히 맛을 보았다.
그들은 피지컬 좋은 수비수로 어떻게든 막겠는데, 뒤에서 얄밉게 위험한 패스를 보내는 최준호는 어떻게 막아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는 생각.
‘저 녀석 진짜 16살 맞아?’
**
이후 라피드 빈은 득점을 만회하기 위해서 계속 공격을 가했고, 잘츠부르크는 적당히 받아치면서 역습을 노렸다.
전반 40분이 거의 다 흘러갈 무렵 라피드 빈은 12번의 슈팅을 날렸지만, 골문으로 향하는 슈팅은 고작 2번이었고, 잘츠부르크 역시 14번의 슈팅을 날렸는데, 8번이 유효슈팅이었다.
정말 오늘 야신의 기운을 받은 것처럼 미친 듯이 리차드는 미친 듯이 선방을 해내었는데, 2 골로 막아낸 것이 기적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이번 시즌 잘츠부르크의 경기력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 삑!
베리샤가 공을 끌고 드리블을 치다가 상대 태클에 넘어졌고, 페널티 에어리에서 잘츠부르크는 매우 좋은 세트피스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선수들은 공을 땅에 내려놓고 모두 페널티 에어리어로 향했고, 베리샤에게 결정적 패스를 찔러 주었던 최준호가 공 앞으로 왔다.
이미 팀 내에서 최고의 키커로 인정받은 최준호.
관중석에 앉아 있던 미켈 아르테타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 굉장한데?”
옆에 앉아 있던 티에리 앙리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둘은 예전 동료의 부친상을 치르고 하루 머물렀다가 각각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미켈은 작년에 아스날에서 선수 은퇴한 이후 아르센 뱅거 감독의 권유로 U-16 코치를 맡을 예정이었고, 티에리 앙리는 2012년 은퇴 이후 지금은 벨기에 대표팀 코치를 맡는 중이었다.
운이 좋게도 쉬는 날 빅 매치가 열린다는 이야기에 둘은 함께 경기를 관람하러 왔다.
“그렇지?”
“전성기의 널 보는 것 같아.”
티에리 앙리의 말에 아르테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가 보여주는 플레이는 전성기의 나보다 훨씬 좋아.”
“…진심이야?”
“지도자 과정을 밟으면서 눈이 좀 뜨였는데. 지금 저 선수는 경기를 지배하고 있어. 그의 발끝에서 모든 공격이 시도되고 있고, 라피드 빈의 핵심 공격수를 가지고 놀고 있거든.”
“16살이라는 걸 염두에 두지 않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그가 앞으로 메시나 호날두 같은 선수가 될 자질이 있다는 소리지.”
“리오넬 메시? 너무 나가는 거 아냐?”
아르테타는 경기에 집중하며 말했다.
“…그런 거 있잖아? 저 녀석 골을 또 넣을 거라는 직감?”
– 삐익!
24.5m
꽤 가까운 거리였고, 골대 중앙이었다.
심판의 휘슬에 최준호는 무서운 눈빛으로 골대를 한 번 노려보고는 천천히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양발을 모두 잘 쓰기 때문에 리차드는 예측하는 대신 자신의 눈과 민첩성을 믿기로 했다.
‘왼발 슈팅!’
중앙에 서 있던 리차드는 공의 궤적을 보자마자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최준호의 왼쪽 아웃프런트에 걸린 킥.
그것도 잔뜩 감아진 데다가 톱스핀까지 걸린 공은 리차드의 예상처럼 오른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말도 안 되게 왼쪽으로 휘어져 골대를 갈라버렸다.
오늘 야신의 기운을 받던 리차드는 역동작에 걸려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준호가 메펜에 있을 때 처음 나왔던 그 이상한 UFO 킥이었다.
리차드는 멍한 눈빛으로 골대 안에 있는 공을 보았다.
‘…이게 뭐야? 도대체 이게 뭐야?!!’
“우아아아아아아!!!!”
또다시 터진 놀라운 환상적인 골에 관중석은 난리가 났고, 그들은 일제히 <초이>를 외치기 시작했고, 아르테타는 그 골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번쩍 일으켰다.
‘운일까? 노리고 찬 걸까?’
노리고 찼다면 정말 발목 힘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야만 했다.
저 어린 나이에 그런 발목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타고났다고 할 수밖에!
“이야…!”
티에리 앙리 역시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최준호는 이번에는 도리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손가락 2개를 펼쳤고, 도리스는 그것을 보고는 두 눈이 붉어졌다.
아까 자신을 위해 이기겠다고 말하면서 세 손가락을 펼쳤는데, 그것이 아마도 골 수인 모양이었다.
저렇게 엄청난 선수가 자신을 위해서 경기를 펼친다는 게….
엄청나게 감동할 수밖에!
팀 동료들에게 둘러싸이는 최준호를 보고는 도리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였다.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것.
“초!!!!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