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65)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65화(65/184)
65화 마르코 로제(2)
– 삐익!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수비수의 발에 걸려 나동그라진 오스트리아 빈의 공격수 토니 피어틀은 주심이 자신에게 파울을 선언하자 정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내가 파울이라고? 미쳤어?”
“뭐라고?”
“내가 왜 파울이야? 눈깔 삐었어? 장님이야?”
주심 랄프는 바로 노란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마디만 더 하면 너 퇴장이야.”
“와, 진짜 미치겠네! 와!!!”
토니는 동료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분을 삭이지를 못했다.
FK 오스트리아 빈의 주장인 갈바오가 조용히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관중석에서 비난의 소리가 마구 쏟아졌다.
랄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뒤돌아서서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는 갈바오를 보며 식은땀이 새어 나오는 손을 꾹 쥐었다.
– 요구한 대로 해준다면 50만 유로를 주도록 하지.
– 하지만 외삼촌… 전 이 직업을 잃어버릴 겁니다.
– 걱정하지 마. 난 꽤 괜찮은 언론사를 소유한 사장이잖아? 축구 관련 기자로 일하는 건 어떨까?
– 법정에 간다면…
– 그냥 소문으로 끝날 거야. 물론 누군가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겠지만. 안 그래도 공동 창업자 손자가 벌인 사건으로 이미지가 잔뜩 추락한 상태인데, 그런 소문이 도는 것만으로 잘츠부르크 구단주는 부담스러워질 거야.
부심이 무전기로 뭐라고 뭐라고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젠 돌이킬 수가 없었다.
“몇 명 빠졌다고 경기력이 이렇게 엉망이 되다니.”
르네는 불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마르코를 보다가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저건 명백한 수비수 파울인데?’
10번 양보해도 수비수 파울이 분명했다.
드리블을 쳐서 빠져나가는 토니의 발을 분명히 걷어찼으니까.
한동안 벤치에 앉아 있는 마르코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고 나서 5분쯤 지나서였을까.
이번에는 FK 오스트리아 빈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파울이 났다.
골키퍼와 수비수 뒷공간으로 떨어진 공을 잡기 위해서 달려든 양희찬과 갈바오가 어깨싸움을 벌였는데,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서 양희찬이 균형을 잃고 넘어진 것이었다.
파울을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주심 랄프의 손은 이미 FK 오스트리아 빈의 진영을 찍고 있었다.
“이게 왜 파울이야? 정당한 몸싸움이었다고!”
“심판 오늘 미친 거 아냐?”
오스트리아 빈의 선수들이 달려들었지만, 랄프는 뒤로 물러서면서 그들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더 위협을 가하면 모조리 퇴장시킬 거야.”
랄프가 차가운 표정을 짓자, 오스트리아 빈의 주장이 흥분한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결국 페널티킥이 선언되었고, 양희찬이 킥커로 나서서 골을 집어넣었다.
“우우우우우우우!!!”
원색적인 비난의 소리가 엄청나게 쏟아졌고, 양희찬도 골을 넣긴 했지만 세레머니를 하진 않았다.
최준호는 그런 양희찬을 보면서 팔짱을 끼고는 발을 꼬았다.
‘오늘 심판 이상한데?’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갈 만한 파울들…모두 잘츠부르크에게 유리하게 판정되어지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엘링 홀란드가 최준호에게 조용히 말했다.
“심판 돈 먹은 거 아니야? 왜 저래? 너무 뻔하게 보이는 편파 판정을 하고 말이야?”
“글쎄. 모르겠네.”
문득 말릭과 슈바이처와 함께 앉아 있던 주심이 떠오르긴 했다.
그러나 말릭과 슈바이처 모두 마르코 로제를 증오하는 인물들이었고, 설마 마르코 로제가 승리하도록 손을 썼을 리는 없을 것이라…
‘음…?’
마르코 로제의 눈에는 신성한 경기가 망가져 가는 것이 보였다.
주심이 FK 오스트리아 빈의 편을 들었다면 분명 저쪽의 일이겠지만, 그는 신기하게도 잘츠부르크를 위해서 오심을 남발하고 있었다.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군.’
**
잘츠부르크는 후반 초반에 상대 팀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밖에서 석연치 않은 프리킥을 얻어내었고, 미나미노가 프리킥을 골로 연결하면서 추가 득점을 하였다.
이후에도 FK 오스트리아 빈의 공격은 주심 때문에 계속 맥없이 끊겼다.
인내심이 많은 오스트리아 빈의 주장 갈바오가 참지 못해 거친 항의를 하다가 노란 카드 2개를 받고 퇴장당해 수세에 몰리면서 상대 팀은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흥분한 FK 오스트리아 빈의 선수들이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수 없었고, 마르코 로제는 휴식을 주고 있는 주전 선수들의 투입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교체 직전 양희찬의 중거리 슈팅이 오스트리아 빈의 골문을 갈랐고, 결국 경기는 3-0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번 경기는 주심이 망쳤다. 오스트리아 축구 연맹에 반드시 제소하겠다!”
FK 오스트리아 빈의 감독 슈미트는 분노가 가득한 한 마디를 끝으로 인터뷰장 문을 발로 차고 나갔다.
“노 코멘트!”
마르코 로제는 인터뷰를 거절한 채 선수단을 끌고 잘츠부르크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한 언론사 1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 잘츠부르크 FK 오스트리아 빈과의 경기에서 심판을 매수했다!
이 기사는 주요 언론사에서 받아서 주 관심사로 올라왔고, 오스트리아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버리고 말았다.
챔피언스 리그 준비를 위해서 로테이션을 가동한 마르코 로제 감독이 FK 오스트리아 빈과의 경기에 부담감을 느껴 심판을 매수했다는 뉴스였다.
당시 주심을 맡았던 랄프가 잘츠부르크 쪽에서 회유가 있었다며, 후회한다는 녹취록까지 나오면서 그 파급은 점점 커졌다.
안 그래도 레드불 공동 소유주의 손자가 벌인 일 때문에 레드불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이 되었는데, 뜻밖의 심판 매수 건 때문에 언론의 뭇매를 맞자, 결국 마르코 로제 감독은 구단주 주관의 긴급회의에 소환되고 말았다.
**
“어쩐지 이상하더라. 어제 경기 다들 이상했지?”
저녁에 러시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감독은 여전히 그라운드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말릭 바그너는 선수들을 모아 저번 경기가 얼마나 이상했는지 온종일 입을 털고 다니며 선수들을 혼란케 만들었다.
“계속 심판을 매수해서 승리한 거 아니야?”
혼란스러워하는 선수들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짓던 말릭 바그너의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우리 연승 행진이 그런 치졸한 짓 때문에 할 수 있었다는 소리야?”
말릭 바그너는 몸을 돌렸다.
굉장히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최준호가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최준호가 임대로 오면서 팀에서 완전 쓸모없어진 선수가 되어 버린 말릭 바그너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뒤틀었다.
“형편없는 피지컬을 가진 16살짜리 동양인 꼬마가 성스러운 오스트리아 리그를 씹어먹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하지.”
최준호는 음식점의 일을 꺼내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중요한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팀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챔피언스 리그를 경험해 본 적이 없던 최준호에겐 흥분과 기대감이 가득했는데, 몇몇 미꾸라지 새끼들 때문에 그 기분이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분노가 가득한 싸늘한 눈빛으로 말릭을 한참 동안 노려보기만 하는 최준호.
그 모습을 보던 말릭이 소리쳤다.
“이거 봐봐! 말 많은 이 자식이 벙어리가 되었잖아? 분명 감독이랑 뭔가 커넥션이 있을 거야. 이 자식도 조사해야 해!”
최준호는 이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서는 휴대폰을 들었다.
– 네. 양창명 기자입니다.
– 양 기자님. 저 최준호입니다.
– …응? 어? 최준호 선수? 아, 이 번호였구나! 반가워요.
– 네, 저도 반가워요. 혹시 이쪽 뉴스 보셨어요?
– 당연하죠. 중요한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두고 그게 무슨 해괴한 일인지….
– 저, 양 기자님 부탁이 하나 있어요.
– 부탁이요?
– 네.
– 얼마든지 말해봐요.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이던지 돕도록 할게요.
– 감사합니다. 몇 사람을 좀 조사해 주시면 좋겠어요.
– 조사요? 하하. 나 기자입니다. 그런 거 아주 좋아하지요. 누구를 조사할까요?
최준호는 저 멀리서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말릭 바그너를 노려보다가 입술을 미묘하게 비틀었다.
– 8월 27일 저녁 7시 10분 경. 잘츠부르크 도심에 있는 이카루스 레스토랑에 네 명의 남자가 있었어요. 한 명은 말릭 바그너. 잘츠부르크의 선수죠. 또 한 명은 슈바이쳐 슈바인… 팀의 수석 코치 중 한 명이에요. 그리고 또 한 명은 문제가 된 경기에서 주심을 맡았던 사람이에요. 또 다른 한 명이 있었는데. 이들 신원 좀 조사해 주시겠어요?
잠시 후 휴대폰에서 조심스러운 양창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설마, 그들이 뭔가 일을 꾸몄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요.
– 왜죠?
– 말릭 바그너는 마르코 감독이 데려온 저 때문에 경쟁에서 밀려서 챔피언스 리그 명단에서 탈락했고요, 마르코 로제 감독은 유력한 감독 후보였던 슈바이쳐 슈바인 대신 임명되었으니까요. 두 사람이 마르코 로제를 아주 싫어할 거에요.
– 흐음. 그들이 모의해서 마르코 로제를 쳐내려고 했다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군요. 알았어요. 이쪽에 기자 친구들이 많으니 한 번 찾아볼게요.
– 감사합니다.
– 근데 설마 부탁만 하고 끝인 건 아니죠?
최준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휴대폰을 보았다.
– 원하시는 것이 있나요?
– 말이 통해서 좋군요. 언젠가 한 번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는 건 어때요?
– …이번 건이 잘 해결되면 그렇게 하지요.
– 약속한 거예요?
– 그럼요.
– 좋아요. 그럼 나도 전력으로 조사해봐야겠군요.
– 최대한 빨리해주세요.
– 알았어요.
**
굳은 표정으로 마르코 로제가 들어오자, 내내 기다리고 있던 르네 마리치가 몸을 일으켰다.
“알아봤어?”
마르코는 기사가 나오고 난 후 오스트리아 출신인 르네에게 해당 사항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주심 쪽과는 연결이 닿지를 않고, 첫 기사를 낸 기자도 만남을 거절한 상황이야. 언론사에는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고. 좀 더 시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시간이라는 말에 마르코는 표정을 더욱 굳혔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르네가 물었다.
“…뭐래?”
마르코 로제는 한참 굳은 표정으로 책상을 보았다.
“난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계속 주장했지.”
“당연하잖아? 난 자네를 믿어. 자네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결코 아니야.”
“하지만, 그들은 이 일이 빨리 해결되길 원하고 있어.”
“빨리?”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와의 원정 경기 전까지 완벽한 해명을 못 하면 품위 관련 계약 사항을 이용하여 계약 해지를 하겠다더군.”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 그리고 우린 오늘 저녁 모스코바로 떠나야 하고. 뭘 어쩌라는 거지?”
“결국 해고하겠다는 뜻이지 뭐야.”
“미쳤군! 그 일을 전부 자네에게 책임 지우고 구단은 모른 척하겠다는 건가?”
마르코 로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이봐. 그러면 자네….”
마르코 로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지를 못했다.
누가 무엇 때문에 벌인 일인지도.
심지어 그 랄프라는 주심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은 없었…
아니 경기장에서 봤을 수는 있어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일을 해결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없군. 제대로 함정에 걸린 것 같은데.’
의심 가는 이들이 있었지만, 당장 오늘 저녁 러시아로 떠나야만 했다.
이 연결고리를 찾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대로 구단에서 퇴출당하면, 나중에 진실이 어떻게 밝혀지던지 자신의 지도자 경력은 끝장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젠장…”
르네 마리치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아 입을 다물 때였다.
–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마르코 로제는 거울을 보며 표정을 한 번 다듬고는 말했다.
“누구야?”
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준호입니다.”
“무슨 일이지?”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
양창명은 오랫동안 독일에 있으면서 만든 인맥을 활용하여 잘츠부르크에 있는 이카루스의 음식점의 CCTV를 확보하였다.
최준호가 이야기한 것처럼, 말릭 바그너 선수와 슈바이쳐 슈바인, 랄프 스타이거는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거대한 덩치의 사내는 양창명의 눈에 매우 익은 인물이었다.
‘로우린 사의 로우린 바그너 아닌가?’
잘츠부르크에서 꽤 잘 나가는 스포츠 일간지를 운영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릭 바그너? 로우린 바그너?’
바그너라는 성은 중세에 바퀴와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운송, 교통기관 종사자, 수레바퀴와 관련 있는 목수 등등.
그렇기에 서로 연관이 없는 사람일 지도 모르지만, 공교롭게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건….
외국인들을 가리켜 개인주의의 끝판왕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사실 유럽의 상류층들은 한국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집안을 따지고, 집안사람을 훨씬 더 챙겼다.
말릭이 바그너와 인척 관계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두 사람의 길고 긴 정식 이름을 살피던 양창명이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