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67)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67화(67/184)
67화 챔피언스 리그 예선전(2)
양창명은 유튜브를 통해서 잘츠부르크와 L. 모스크바의 경기를 입 중계하고 있었다.
– 기록을 찾아보니 1994년 네덜란드 리그의 안더흐르트의 셀레스타인 바바야로 선수가 16살 87일로 최연소 데뷔 기록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준호 선수는 오늘 16살 82일의 나이로 선발 출전을 하였습니다. 챔피언스 리그 최연소 데뷔 기록을 또 갈아치웠네요. 축구의 역사를 바꾸는 선수가 한국인 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유튜브 채팅창에는 꽤 악의적인 댓글이 가득했다.
– 근데 잘츠부르크 너무 밀리는 거 아냐? 경기 시작하자마자 내내 수비만 하는 것 같은데.
– 너그동생 몸싸움 밀려서 계속 공 뺏기는데, 완전 개거품이다.
– 맞아. 오늘 경기 끝나면 최준호 거품 꺼질 듯. 16살에 챔스라니!
– 챔스를 더럽힌 너그동생.
– 와우! 아쉽게도 L. 모스크바가 기회를 놓쳤네.
– 똥볼 아쉽.
– 이 자식들이 도대체 누굴 응원하는 거야?
– 일보노모새끼 꺼져.
하지만 양창명은 댓글을 그냥 눈으로만 훑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을 리 없고, 최준호를 보는 방식도 다 같을 리가 없으니까.
다만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 사람들이 자국을 깎아내리는 데 도가 좀 지나친 건 사실이긴 했다.
양창명은 다시 눈을 돌려 중계 영상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 만약 최준호 선수가 이 게임에서 득점하게 된다면 최연소 챔피언스 득점 기록도 당연히 깨집니다. 현재까지 최연소 득점자는 스파르트 프라하 출신의 선수 마틴 클라인이 가지고 있습니다. 17살 241일이죠. 최준호 선수가 이번 경기에서 득점한다면 아마 이 기록은 굉장히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창명의 <새벽의축구도사> 채널은 구독자 27만 명을 돌파하고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구독자 수는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최준호 선수의 소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 득점할 수 있겠어? 불곰 형님들의 몸싸움에 다치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
– 국뽕 자제 좀. 토할 거 같음.
– 국뽕 지랄하면서 보는 것들은 뭐야? 나가.
– 최준호 선수가 득점했으면 좋겠어요.
– 최준호 선수 화이팅. 분충들 꺼져.
– 근데 왜 정규 방송에서는 볼 수가 없는 거죠? 최준호 선수 정도면 영상 수입해서 중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느그동생이 뭐라고 정규 방송 지랄이야.
– 느그동생 공 또 뺏겼다. 느그동생 마크하고 있는 7번이 월드클래스네.
– 아우, 분충들 퇴출합시다!
그렇게 5분 정도가 흘렀을 때 양창명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엇!”
**
L. 모스크바의 평균 키는 187cm.
잘츠부르크의 평균 키는 179cm.
190cm가 넘는 선수들이 5명이나 있는 L. 모스크바는 철저하게 세트피스 상황을 만들거나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크로스를 올리는 전술을 썼다.
예상치 못하게 베리샤와 주전 경쟁을 하는 아이다라는 이번 경기에 큰 다짐이라도 하고 나왔는지 커다랗고 육중한 선수들 사이에서 결정적인 수비를 계속해냈다.
경기 시작 5분.
L. 모스크바의 9번 공격수가 구스타보를 등지고 날아온 공을 옆으로 떨궈놓았고, 그것을 11번 마뉴엘 페르난데스가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강력한 슈팅이었지만, 그 앞에서 막고 있던 아이다라가 뻗은 다리에 걸려서 튕겨 나갔다.
그 공은 수비하러 달려오던 크사보가 먼저 따내어, 원터치로 최준호에게 보냈다.
최준호는 5분 동안 드미트리와 여러 가지 드잡이질을 하면서 그의 운동 능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공을 많이 뺏기긴 했지만.
일단 아무리 무게 중심을 낮춰도 몸싸움은 전혀 상대가 되질 않았다.
주력도 자신과 비슷했다.
다만 대부분의 러시아 선수들이 그러하듯 드미트리도 민첩성이 많이 떨어지는지 동작이 꿈 떴다.
최준호는 크사보가 건네준 패스 경로를 머릿속에 그리며 자신에게 붙는 드미트리의 움직임을 같이 살폈다.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맞붙은 대부분의 선수는 최준호만큼이나 작고 민첩한 선수들인데다가 팀에서 가장 수비력이 좋은 선수들이 맨투맨 마크를 하였다.
그래서 돌파보다는 패스 위주로 게임을 펼쳤고.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6경기의 단순 기록만 보면, 최준호는 평균 경기 3.4번의 드리블, 1.8번의 돌파뿐이었기 때문에 주로 패스워크를 통해서 플레이 메이킹을 하는 선수라고 착각하기 쉬웠다.
득점도 대부분이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에 드미트리는 최준호가 쉽사리 패스를 못 하도록 뒤에서 압박하려고만 하였다.
– 툭
최준호는 자신에게 오는 공의 밑동을 툭 찍고는 드미트리가 아직 커버하지 못한 공간을 향해 재빠르게 몸을 돌려 뛰어나갔다.
‘뭐…?’
공은 머리 위로 넘어가고, 자신이 커버할 수 없는 공간으로 최준호가 뛰쳐나가자, 드미트리는 다급하게 몸을 돌렸지만, 굼뜬 동작 때문에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지고 말았다.
뻗은 기다란 손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완벽한 탈압박…
그리고.
“역습!!!”
최준호는 크게 외치면서 드리블하기 시작했고, 이미 기다렸다는 듯이 투 톱인 양희찬과 엘링 홀란드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L. 모스크바는 수비진을 상당히 끌어 올린 상황.
세 명의 수비수들은 잘츠부르크 선수를 상대로 주력에서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닫고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최준호가 그런 움직임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렇게 굼뜬 몸으로 오프사이드 트랩이라니. 감독에게 욕 좀 먹겠어?’
드리블 치려던 발을 좀 더 깊숙하게 넣어 공을 밀어 찼고, 세 명의 사이 공간을 가르는 스루패스가 나왔다.
엘링 홀란드는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지만, 양희찬은 수비수보다 살짝 뒤에 있었고, 최준호의 패스는 양희찬을 향했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속도를 줄이려던 수비수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애를 썼지만, 확 줄은 스피드가 늘지도 않거니와 잘츠부르크 팀 내에서 주력이 가장 빠른 양희찬과 엘링 홀란드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준호 녀석.’
양희찬은 부심의 깃발이 올라가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공을 가볍게 터치하며 페널티 영역으로 돌입했다.
엘링 홀란드 역시 반대편 위치에서 달리고 있었고.
홀로 두 명의 공격수를 막아야 하는 골키퍼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느끼며 양희찬의 슈팅 각도를 줄이기 위해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양희찬은 슈팅을 때리는 대신 엘링 홀란드에게 빠르게 땅볼 패스를 하였고, 엘링은 텅 빈 골대로 가볍게 공을 넣으며 선취 득점을 가져갔다.
승리의 응원가가 흐르던 관중석은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그들은 화가 난 표정으로 경기장에 앉아서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요가 자세를 취하는 엘링 홀란드를 째려보았다.
“이얍!!!”
마르코 로제가 커다란 고함을 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요 며칠간 마음고생한 것을 한 번에 털어내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전술이 완벽하게 수행되어 졌고, 골까지 얻어냈으니 그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잘츠부르크 구단의 최초 UEFA 챔피언스컵 대회.
아직 5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스텝들과 교체 선수들도 모두 일어나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르네 마리치 역시 스텝과 부둥켜안고 펄쩍 뛰었다.
‘조짐이 아주 좋아!’
**
“이런 병신 같은 것들!”
이고르 감독은 공격을 잘 진행하다가 어이없게 역습 골을 먹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욕설을 퍼부었다.
거기서 왜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려고 했는지 세 명의 스리백을 향해서 주먹을 한 대씩 날리고 싶었다.
거기다가 최준호를 잘 틀어막던 드미트리가 저렇게 쉽게 선수를 놓친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저런 개인기는 예상치 못할 수도 있지.’
드미트리는 이고르가 가장 신뢰하는 선수였다.
능력을 떠나서 경기력의 기복이 거의 없는 선수였고, 자신의 주문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였다.
‘우연일 거야? 우연이어야 돼.’
운이 좋아 드미트리를 제쳐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고르였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당장 최준호의 리그 기록만 봐도 돌파를 자주 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방금과 같이 미친 패스를 뿌리는 스타일이라고 자꾸 되뇌면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을 억지로 눌러버렸다.
이고르 감독은 정말 조용한 스타디움을 떠나가게 할 정도로 기쁨의 환호성을 내는 잘츠부르크의 벤치를 보며 인상을 더욱 굳혔다.
‘약점을 드러냈을 때 끝내야 해. 더 이상 기를 살리면 곤란해.’
그렇게 생각을 마친 그는 터치라인으로 이동해서 선수들에게 더 강력한 공격을 주문하였다.
전반 5분 만에 득점한 이후로도 잘츠부르크는 계속 수비 진영을 유지했고, L. 모스크바는 만회점을 얻기 위해 맹공을 펼쳤다.
그리고 전반 12분경.
잘츠부르크의 파울로 얻은 프리킥 기회.
L. 모스크바는 장신을 활용하여 골대 앞에서 헤더로 드디어 만회점을 얻어내었다.
1-1
아무리 발기술이 더 좋고 민첩해도, 평균 8cm나 차이가 나는 높이를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스타디움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감독 이고르는 기합을 지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내 전술이 틀리지 않았어. 한 골 더 넣은 다음 잠근다!’
마르코 감독은 얼굴만 굳히고 팔짱을 낀 채 벤치 기둥에 등을 기대었다.
수비수들은 상대 선수를 놓치지 않았고, 모두 헤더를 방해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도 골을 먹은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의 높이 축구는 역시 만만치 않아. 하지만, 저 골로 확신을 얻은 L. 모스크바는 더 공격적으로 나오겠지.’
마르코의 예상대로 만회 골을 넣은 L. 모스크바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많은 기회가 나지 않았는데, 잘츠부르크의 수비진들이 오프사이드 트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였다.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2선 침투를 하는 마뉴엘을 뺀다면 L. 모스크바의 공격수들은 모두 190cm가 넘는 거구들이었고, 민첩하게 트랩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전반 37분이 될 때까지 계속 공방전이 오가는데, 이고르는 벤치에 앉아 있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뭔가 잘못되고 있어!’
잘츠부르크의 수비진이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었고, 잘츠부르크의 선수들 사이 간격이 굉장히 촘촘해졌다.
당연하지만 이 좁은 공간에서 L. 모스크바 선수들의 패스는 점점 더 힘겨워지고 있었고, 패스 실수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가 전술판을 찾는 순간!
전방으로 보내지는 스루패스를 최준호가 차단해버렸다.
최준호는 민첩하게 공을 터치하면서 몸을 돌렸다.
항상 질척하게 붙어 있던 드미트리가 멀리서 황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공간이 생겼다는 것.
L. 모스크바 선수들도 30분 가까이 뛰면서 어리게 보이는 최준호가 얼마나 위험한 선수인지 알아챘기 때문에 그가 무얼 할지 시선이 본능적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드미트리가 수비 합류에 늦어지자 주변에 있던 선수들이 달려들었다.
최준호의 패스 능력과 탈압박 능력을 잘 알고 있는 크사보와 아이다라가 순식간에 프리가 되면서 전방으로 뛰기 시작했고, 최후방 수비수들은 우르르 밀려오는 잘츠부르크 선수들을 보며 누구를 마크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듯해 보였다.
“패스 잘라!”
“반칙으로 끊어!”
러시아로 중얼거렸기 때문에 최준호는 이해를 못 했지만, 대충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짐작했다.
자신에게 두 선수가 달려들었는데, 한 명은 경기 내내 위협적인 스프린트와 돌파를 하던 양희찬에게 공이 가지 못하도록 왼발 경로를 틀어막으려고 했고, 한 명은 오른쪽에서 달려들었다.
– 툭!
아주 짧게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감아 차는 최준호.
트리 벨라!
최준호는 패스를 넣자마자 오른족에서 달려든 마뉴엘의 몸통 박치기에 멀리 날아가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공은 공중으로 떴고, 양희찬에게 갈 것처럼 보였다.
선수들이 모두 오버래핑하는 양희찬에게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공은 기묘하게 휘어지면서 수비수 한 명을 달고 달리는 엘링 홀란드 앞쪽 공간에 떨어졌고, 심판은 파울을 불지 않고 어드밴티지를 선언하였다.
엘링에게 달라붙은 수비수와 비교해서 좀 얇아 보이긴 해도 그는 굉장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바이킹의 후예였다.
결국 수비수와 몸싸움에서 이긴 엘링은 뛰어나온 골키퍼를 보고 차분하게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 철렁!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던 그라운드는 또다시 조용한 서리가 내렸고, 이고르 감독은 들고 있던 전술판을 땅에 던지고 말았다.
‘망할 21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패스 한 방에 실점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짜증이 났다.
경기장에 쓰러진 채 거칠게 호흡하는 최준호.
잘츠부르크 벤치에서 팀닥터들이 달려 나가자, 이고르는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그대로 실려 나가서 경기장에서 아예 사라져 줬으면 좋겠군.’
그만큼 정말 골치 아픈 선수였다.
하지만 최준호와 부딪힌 L. 모스크바 공격의 핵심인 마뉴엘 역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심판이 벤치에 팀닥터 들어오라고 요청하자 이고르는 불안한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