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70)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70화(70/184)
70화 포르투(2)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두고 한국은 아시아 예선전에서 탈락의 고비를 맞이했다.
특히 조 최하위인 카타르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맞이하면서 감독 슈틸리케가 경질되었고, 슈틸리케 밑에서 수석 코치를 하던 정태용이 임시 감독 자리를 맡았다.
이후 가까스로 조 2위 자리를 사수하며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아시아 예선에서 보여주었던 최악의 경기력 때문에 많은 변화가 요구되고 있었다.
–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 하지만 잘츠부르크에서 양희찬과 좋은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 윤강인 선수, 황승우 선수, 주백호 선수 등 미드필더 자원에 더 좋은 선수들이 있습니다.
– 축구를 나이로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는 최약체 팀이었던 U-17을 우승으로 이끈 선수입니다. 더욱이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축협과 감독단은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결국 대표팀 슈틸리케 밑에서 오랫동안 대표팀을 훈련했던 토니 그란데 수석 코치를 직접 보내기로 했다.
요새 잔뜩 물이 오르기 시작한 양희찬의 경기력도 확인할 겸.
혈연, 지연, 학연 영향을 받지 않고 객관적인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포르투 쪽 몸이 무겁네.”
전반적으로 포르투 선수들이 터치가 길고, 패스 실수를 많이 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잘츠부르크 선수들은 아주 가벼운 몸놀림을 하였다.
물론 토니의 관심사는 양희찬과 최준호였던 지라 다시 눈을 돌려 그들의 오프 볼 움직임을 보았다.
양희찬의 오프 볼 움직임은 그렇게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수비 가담 능력도 떨어졌고.
하지만 역습 시 굉장히 위협적인 돌파를 보여주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선수였다.
최준호는 중원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공이 있는 지역에서 계속 수적 우위를 만들어 주었다.
수비도 매우 적극적이어서 끊임없이 공 잡은 포르투 선수들을 압박하였다.
덕분에 포르투가 경기를 우세하게 끌어간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오히려 잘츠부르크가 중원에서 점유율을 계속 높여가고 있었다.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선수 후뱅 네베즈와의 몸싸움은 피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투 터치 안에 빠르게 패스를 돌리고 있었는데 그 정확도가 매우 높았다.
덕분에 포르투가 아무리 강하게 압박해도 공을 뺏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린 선수가 많은 경험이 없을 텐데?’
사실 대표팀의 대부분의 미드필더 문제점이 패스 능력은 훌륭하지만, 수비 능력이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김성용이나 공자철, 윤재성 같은 선수들은 수비 기여도 굉장히 떨어졌다.
더군다나 강한 압박을 당하면 패스 실수를 자주 하던 터라 사실상 수비진을 보호해줄 만한 선수가 없었다.
전반 11분경.
‘이 자식이?’
거의 원터치로 공을 주고받으며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최준호를 쫓아다니다가 짜증이 난 후뱅 네베스는 공이 다시 최준호에게 올 것을 예측하고는 강하게 그를 압박하였다.
최준호가 무게 중심을 낮추고 등지고 서자 네베스는 마치 콘크리트 벽을 밀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당황했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최준호는 네베스의 힘없는 압박에 오히려 의문을 품었다.
‘뭐야?’
EPL에서 느꼈던 그런 압박감이 아니었다.
당연하지만, 네베스보다 발기술이나 롱패스, 플레이메이킹은 한참 떨어지겠지만, 순수하게 힘과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오스트리아 리그의 선수들과 경합했던 최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미 성장한 상황이었다.
네베스가 안 되겠는지 압박을 멈추고 앞으로 끼어들어 공을 자르려고 했지만, 최준호의 손에 막혀 버렸다.
그 사이 공을 받은 최준호가 자연스러운 턴 동작으로 네베스가 움직이려 했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빠르게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따돌려진 네베스.
네베스는 급하게 몸을 돌려 쫓아가려고 했지만, 최준호와 점점 멀어졌다.
그 모습에 토니는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며 숨을 참았다.
‘후뱅 네베스면 포르투갈 국가대표인데, 저 선수의 압박을 저렇게 쉽게 풀어버린다고?’
놀라운 일이었다.
심지어 스피드에서도 그보다 좀 더 앞선 느낌이었다.
그간의 경기 영상을 확인했을 때는 이렇게 빠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는데.
수비를 보호해야 하는 수비 미드필더 네베스가 뚫려버리고, 최준호가 빠르게 공을 드리블하자, 포르투의 수비는 앞서서 압박을 가하지 않고 오히려 뒤로 물러서며 천천히 라인을 형성하였다.
침투하려는 전방 공격수 양희찬과 엘링 홀란드에게 뿌려질 스루패스를 경계하는 듯 보였다.
포르투의 수비수 펠리페와 이반에게 가로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고, 발 빠른 윙백들이 달려와 최준호에게 덤벼들었다.
“끊어!”
최준호의 중거리 슈팅까지 막아야 하기에는 전방의 공간이 너무 많았기에 라윤은 파울을 각오하고 그를 강하게 밀어붙이려고 했다.
– 툭!
하지만 오른쪽 힐로 옆으로 툭 밀어주고는 최준호가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죽이는 바람에 태클하려던 라윤의 몸은 허공에서 균형을 잃고 그라운드에 넘어졌다.
최준호가 굴린 패스는 뒤에서 빠르게 달려온 베리샤에게 연결이 되었고, 그는 최준호보다 더 빠르게 공을 몰았다.
베리샤는 전방에 있는 공격수에게 패스하고 싶었지만, 수비수에게 철저하게 막혀 있어서 그대로 중거리 슈팅을 때렸고, 예측하던 카시야스가 펀칭으로 튕겨냈다.
슈팅을 방어했다는 기쁨도 잠시 공이 하필이면 뒤에서 달려들던 최준호에게 향했다는 걸 확인한 카시야스 급하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 뻥!!
‘젠장! 너무 빨라!’
한때 세계적인 골키퍼였던 노장 카시야스는 슈팅의 경로를 읽었지만, 공이 지나간 뒤에야 손을 뻗을 수가 있었다.
– 철렁!
최준호는 관중들을 보며 입술을 한 손가락으로 가리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좀 조용히 하라고.’
여느 원정 경기의 스타디움과 마찬가지로 정적의 쓰나미가 관중석을 휩쓸고 지나갔다.
토니는 몇 번이고 눈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는 공을 가진 선수가 아닌 최준호만 계속 보고 있었다.
자신이 잘 못 본 게 아니라면 최준호는 공이 어디로 떨어질지 예측한 게 분명했다.
왼쪽으로 뛰어가던 최준호는 동료가 슈팅을 때리는 순간 갑자기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버렸으니까.
‘저게 가능한 일인가?’
그가 리그에서 세컨드 찬스로 골을 그렇게 많이 주워 먹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영상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저런 머엉청이.”
다닐루 페레이라가 이번 실점의 기점이 된 후뱅 네베스를 가리키며 시끄럽게 지껄였고, 세르지오 감독은 힐난 가득한 눈빛으로 다닐루를 노려보다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잘츠부르크의 선수들이 몸이 가벼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심하게 경기가 밀리는 양상이었다.
‘선취점 후에 수비로 돌아설 건가?’
세르지오는 검은 양복에 붉은 넥타이를 맨 채 공중으로 연신 어퍼컷을 날리는 마르코 로제를 보았다.
**
세르지오의 생각과 달리 마르코 로제는 수세를 취할 생각이 없었다.
분명 명성이나 선수들의 클래스를 보자면 객관적으로 포르투가 한 수 위였다.
하지만 경기를 보니 포르투가 체력적인 부담이 매우 크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좋아도 그걸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잘츠부르크 선수들은 프리 시즌에 초고강도의 체력 훈련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기도 했으니까.
더욱이 상대의 공격을 분쇄해 버렸던 다닐루 페레이아가 없었고, 선발로 나온 후뱅 네베스가 최준호에게 계속 뚫리면서 포르투의 수비라인은 더 이상 보호를 받지를 못했다.
“변화는 없다.”
마르코 로제의 지시는 간단했고, 잘츠부르크는 실점으로 마음이 급해진 포르투의 선수들을 깊숙이 끌어들였다.
그렇게 20여 분이 흘러갔을 때쯤.
‘끄응! 젠장!’
후뱅 네베스는 반대로 최준호의 강력한 압박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그의 발에서 전환 롱 크로스가 나와야, 주력과 드리블이 좋은 윙어들이 파고들 텐데, 최준호는 단 한 번의 결정적 패스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가 찬 공이 최준호의 발에 걸려 다시 옆줄로 나가자 네베스는 짜증이 가득한 소리로 외쳤다.
“돌아버리겠네. 망할 거머리 같은 녀석!”
최준호는 그 말에 약을 올리듯 웃음을 지었고, 그 모습에 네베스는 이성의 끈을 잡는 게 좀 어려워 보이는 듯 거칠게 욕설을 퍼부었다.
‘응 맘대로 욕 해. 난 못 알아먹으니까. 넌 어차피 오른발로만 차잖아?’
한편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던 토니는 네베스를 향해 동정 섞인 눈빛을 보냈다.
‘그래. 내가 봐도 그렇네.’
어린 한국의 축구 소년이 포르투갈 대표를 농락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고, 직접 경기를 보니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의 연속이었다.
‘저 선수가 진짜 16살이야?’
경기에서 선수가 흥분하게 되면 몸에 힘이 더 들어간다.
섬세한 발기술로 공을 다뤄야 하는 축구에서는 힘이 들어가게 되면 절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법이었다.
흥분한 네베스의 터치는 점점 거칠어졌다.
그러니 그가 뿌리는 패스의 퀄리티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이 자식이 내가 만만하게 보이나?’
안 그래도 다닐루 페레이라에게 맨날 멍청하다는 말을 듣던 후뱅 네베즈는 비웃는 듯한 최준호의 눈빛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베즈는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하고 싶었고, 눈앞의 어린 동양인 선수를 따돌리기 위해서 개인기를 부렸다.
하지만 흥분한 네베즈는 경기 내내 최준호가 자신을 분석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또 오른쪽이지?’
후뱅 네베즈는 헛다리 짚기를 하다가 오른쪽으로 치고 나갔고, 최준호는 마치 갈고리 같은 움직임으로 다리를 뻗어 공만 빼어내 버렸다.
최준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공을 치고 달렸다.
이전의 실점 장면과 똑같은 상황.
다만 이번에는 양희찬과 엘링 홀란드가 중앙을 향해 뛰는 게 아니라 서로 거리를 벌려 달리고 있었다.
최준호가 공을 더 끌고 올 수 있도록 공간을 주려는 의도였고, 최준호는 지체하지 않고 계속 드리블을 쳤다.
“젠장! 막아!”
최준호가 공을 몰고 순식간에 센터 서클 27m 앞까지 도달했고, 불안한 카시야스가 고함을 질렀다.
양희찬을 막고 있던 이반이 최준호를 향해 뛰어갔고, 그는 최준호가 슬쩍 양희찬 쪽을 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스루패스?’
이런 식으로 수비수를 끌어낸 후 프리가 된 공격수에게 결정적 패스를 주는 장면을 영상으로 여러 번 보았던 지라 이반은 최준호에게 붙는 척하면서 양희찬에게 들어갈 스루패스를 방어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 뻥!
최준호는 이반의 생각과 달리 그대로 벼락같은 슈팅을 때렸다.
이반은 그 슈팅을 방해하지 못했고.
‘빌어먹을!’
카시야스가 경로를 예측하고 몸을 던졌지만, 공은 그의 손끝에 닿지 못했다.
공은 골대 상단 밑동을 때리고는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와, 이 미친 자식!!”
엘링 홀란드가 달려와 최준호의 등판을 두들겨 댔다.
“오늘 이 자식 뭔가 되는 날이네.”
다른 선수들도 달려와 등판을 후려갈기려고 했고, 최준호는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
전방의 공격수들은 최준호가 중거리 슈팅을 때리도록 오프 볼 움직임을 가져갔고, 전반전 4번의 중거리 슈팅을 때려 2골을 집어넣은 최준호.
4번의 슈팅이 모두 유효 슈팅이라 골키퍼의 선방이 없었다면 다 들어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강력한 것들이었다.
‘…굉장한 녀석이잖아?’
연신 감탄을 터트리는 토니와 마찬가지로 맨유의 스카우트 알론소도 입을 쩍 벌렸다.
얼마나 더 성장할지 모르는 16살의 어린 선수가 별들의 전쟁이라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이런 수준의 활약을 펼친다는 건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축구의 신이라는 메시조차도 17살에 바르셀로나에서 1군 데뷔를 하였다.
그가 메시라는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 시켰던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주전을 꿰찬 19살 때였고.
그것을 생각한다면 저 21번 선수는 모든 것이 빨라도 너무 빠른 선수였다.
‘그런데 왜 우리가 저런 선수를 몰랐던 거지?’
메시는 어릴 적부터 굉장히 유명한 선수였기에 그의 활약상이 충분히 예상되었지만, 최준호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나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된다면.”
엘링 홀란드가 기록한 챔피언스 리그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조차 물갈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반전 2-0으로 잘츠부르크가 앞선 상황.
포르투의 감독 세르지오 콘시상도 그 기록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그 망할 기록의 제물이 될 수는 없지.’
후뱅 네베스는 정신이 완전히 나간 모습이었고, 세르지오는 어쩔 수 없이 술 냄새 나는 다닐루 페레이라를 후반에 투입하기로 했다.
다만 다닐루 페레이라는 공수 양면으로 능력을 갖춘 후뱅 네베스와는 달리 수비와 완전히 특화된 박스 투 박스형 미드필더였다.
’21번을 다닐루가 잡을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실점이 없다면, 라인을 끌어올려 어떻게든 게임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는 세르지오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