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7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72화(72/184)
72화 휴가(1)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19라운드까지 잘츠부르크는 17승 2무로 리그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하고 있었다.
리그에서는 그들을 상대할 팀이 더 이상 없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었지만, 다음 시즌에는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확신을 하였다.
1월부터 열릴 겨울 이적 시장에서 잘츠부르크의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오퍼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진출한 이상 대부분의 선수가 이번 시즌까지는 팀에 잔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잘츠부르크 돌풍의 핵심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가 두 선수를 꼽았는데, 엘링 홀란드와 최준호였다.
엘링은 17경기 출전 28골 3어시스트를 하고 있었고, 최준호는 14경기 출전 12골 19어시스트를 하며 팀 득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경기 MOM을 대부분 두 선수가 나눠 가지는 형국이었고, 이달의 베스트 선수에 두 선수는 항상 뽑혔다.
–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잘츠부르크 돌풍의 핵심은 최준호 선수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는 매우 많은 역할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기에 잘츠부르크는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잃지 않거든요. 그의 임대가 끝나면 잘츠부르크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 라피드 빈과 FK 오스트리아 빈과 힘겹게 우승을 다투는 팀이 될 겁니다.
– 최준호 선수가 핵심이라고 보기는 어렵군요. 전방에서 엘링 홀란드가 아니었다면 잘츠부르크의 골 결정력은 그렇게 좋지 않았을 겁니다. 두세 명의 수비수가 에워싸는 상황에서도 그는 골을 만드니까요. 아무리 좋은 패스가 가도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면 잘츠부르크는 지금처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겁니다.
챔피언스 리그에는 한 팀이 매년 올라갔지만, 예선에서 바로 탈락하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였고, 오스트리아 팬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사는 더욱 높아졌다.
최준호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에서도 일부 회사들이 오스트리아 리그 중계권과 챔피언스 리그 중계권을 구하고자 애를 썼다.
월드컵을 대비하여 국가대표 1군들은 2018년도 1월 터키 안탈리아에서 2주간 전지훈련을 가질 예정이었는데 여기서 열릴 경기에 최준호를 테스트해봐야 한다고 축구 관계자들이 입을 모았다.
**
– 팅!
마르코 로제는 어느 날부터인가 최준호와 이야기를 나눌 때 시선을 정면으로 놓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선을 밑으로 내려야 했는데.
선수의 피지컬이 갑자기 변화하는 경우 적응할 만한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했고, 절대로 무리를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르코는 최준호의 정밀 피지컬 측정을 의뢰했었다.
– 181cm. 70kg.
신체 측정 기기에서 가벼운 소리와 함께 여러 가지 수치를 내놓았다.
최준호는 잘츠부르크에 온 후 5cm나 컸고 몸무게는 5kg이나 늘었다.
선수의 피지컬이 좋아지는 것은 아주 좋은 징조였고, 최준호 역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와 내가 180cm를 넘어갔네?’
아마도 더 커질 수 있는 유전자를 가졌지만, 과거에는 제대로 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해 성장이 멈추었던 게 분명했다.
과거에는 프로 구단에 들어간 후에… 그러니까 20살이 되었을 때부터 라면이나 즉석식품을 끊었었다.
지금은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철저하게 식단 관리하면서 좋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쩐지 후뱅 네베즈와의 몸싸움이 쉬웠던 이유가 있었네.’
이후 여러 가지 피지컬 테스트가 다시 이어졌다.
체지방율 : 11.3
체질량지수 : 21.8
V02Max : 84.1
순간 속도 : 33.4km.h
그중에서 몇 가지 수치가 프리 시즌보다 대폭 상향이 되었다.
처음 잘츠부르크에 왔을 때는 슬그머니 윤곽만 나왔던 근육들이 지금은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율도 상당히 좋았고, 누가 보면 모델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몸매였다.
물론 호리호리한 상체와는 달리 엄청난 크기의 허벅지는 예외지만.
이렇게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면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유연성, 민첩성 등이 떨어질 만도 한데, 최준호는 오히려 그런 능력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그가 얼마나 몸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아주 좋아.”
함께 피지컬 측정을 한 스프츠 과학자, 팀 닥터, 피지컬 코치도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함께 했던 르네 마리치도 마르코처럼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체질량 지수도 1 낮아졌고, V02 Max 도 최정상급 마라토너와 같은 수준이었다.
순간 속도도 1km/h나 빨라졌고.
이 정도 피지컬이면 5대 리그에서 미드필더로서는 준수한 수준의 피지컬이라고 봐야 했다.
르네 마리치가 많은 선수를 봐 온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어린 선수를 본 적이 없었다.
어린 선수들은 여전히 충동적이었고, 새로운 모험을 좋아했으며, 반항적이었다.
그래서 술을 먹고 마약을 하다가 망가진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망가지는 그런 선수 말고도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입에 달고 살다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끝마친 비운의 유망주도 여럿 있었고.
– 저 녀석은 경건한 수도승처럼 자기 관리를 해. 항상 5시에 일어나서 10시에 자. 가끔 엘링과 어울려 게임을 할 때를 빼면.
– 연애도 안 하는 것 같고. 연애를 안 하니 섹스도 안 할 테고 몸이 축날 이유도 없지.
– 어떨 때는 클럽 영양 관리사가 짜증이 날 정도로 많은 것을 물어본대. 특히 자기가 모르는 음식이 나오면.
– 구단 관리자 클랑이 그러는데, 이번 시즌에 아침에 출근하면 녀석이 항상 운동하는 걸 봤다는 거야. 원정 가는 날 빼고는 매일같이.
– 클럽에서 큰돈을 들여 설치한 얼음찜질기는 온전히 그 녀석 소유라고 하더군. 이용하는 녀석이 초이 그 녀석뿐이라더군.
정말 온전하게 축구만 할 생각인지는 몰라도,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라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도 더 완벽하게 자기 삶을 제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누군가의 의문처럼 정말 16살일까?
르네 마리치는 머릿속에 테스트 결과를 종합하고서는 최준호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계속 경기에 나가도 괜찮을 것 같아. 따로 적응할 시간은 필요 없을 것 같아.”
최종 피지컬 테스트 결과를 받은 최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영국 사람들이 주말에 2시간의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서 한 주를 살아가듯이 최준호 역시 매주에 한 번 열리는 경기를 뛰기 위해서 일주일을 버티는데, 그걸 못한다면 정말 재미없는 삶이 될 것 같았다.
“고마워.”
최준호가 나가자 르네 마리치가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저 녀석 여기 있을 때 열심히 사인들 받아둬.”
스태프들은 르네 마리치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할 일을 찾았다.
르네는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역사상 유례없는 전무후무한 선수가 될 것 같으니까.
**
“내가 자네의 지지자라는 건 알고 있겠지?”
단장 미하일 초르크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였다.
투헬은 늘 그렇듯 퉁명한 눈빛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구단 이사회는 자네의 인터뷰에 대해서 불만이 많아.”
“멍텅구리 같은 질문에 비슷한 수준의 답변을 했을 뿐이야.”
투헬은 기자가 던졌던 질문을 다시 생각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뇌에서 피가 뿜는 것 같아.”
“자네도 알겠지만, 최준호는 얼마 전 16.5세를 넘겼어. 좀 있으면 겨울 휴가이고, 이적 시장이 열리지. 그를 복귀 시킬 수 있는 순간이 온 거야. 그러면 자네의 소원처럼 그 녀석을 우리 1군 선수단에 넣을 수 있어.”
“그러니까 나더러 그런 치사한 선택을 하라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
“마치 그 녀석이 아니면 내 팀이 질 거라는 그런 소리?”
“헤이. 이봐. 좀 더 현명하게 생각하자고.”
투헬은 자존심이 세고, 전술이나 선수 관리에 있어서는 구단의 터치를 당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미하일 초르크 단장 역시 그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매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최근 잘츠부르크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돌풍이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었고, 도르트문트는 그 점이 부담되었다.
다음 단계에 진출하냐 못 하냐에 엄청난 돈이 걸린 점도 있었고.
“물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구단에서 그 녀석을 복귀시킬 수 있겠지?”
투헬의 말에 초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 대신 내 사직서를 받아야 할 거야.”
사직서라는 말에 초르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토마스 투헬은 원래부터 농담이나 빈말을 안 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저 말은 확정적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
“너희들은 내 자존심을 건드렸어.”
투헬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휙 돌려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미하일 초르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될 걸 뻔히 알면서도 구단주의 말을 전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짜증이 났다.
‘망할.’
그렇다고 지금 당장 투헬이 사표를 던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는 위르겐 클롭, 펩 과르디올라와 함께 세계 3대 전술 명장이었다.
위르겐 클롭이 따듯한 인간적 면모와 선수들을 아우르는 특유의 포용력을 가진 덕장이라면, 펩 과르디올라는 사람 자체가 차갑고, 가까이하기 어렵지만, 선을 넘은 적이 없어 선수들이 많이 따르는 편이었다.
토마스 투헬은 엉망으로 무너진 팀을 전술 하나로만 리그 상위권으로 도약시키는… 전술적 역량으로 보면 세 감독 중에 첫 손에 꼽히는 감독이지만, 괴팍한 성격에 기행을 일삼아서 선수들과 보드진의 지지를 전혀 받지를 못했다.
위르겐 클롭이 떠난 도르트문트의 사령관 자리를 토마스 투헬이 완벽하게 메웠고, 영원한 경쟁자 바이에른 뮌헨과 승점 1점 차로 비등비등하게 만들어 놓은 데다가, 폭탄 테러를 겪으면서도 선수단을 강하게 추슬러 결국 챔피언스 리그 16강까지 진출시켰다.
그가 떠나면 당장 수준 높은 감독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리그 우승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 보드 진에서도 토마스 투헬의 의견을 배제하고 최준호를 복귀시킬 리는 없겠지만.
“이번 시즌이 끝나면 투헬이 떠나겠군. 차기 감독을 물색해봐야 하겠어.”
자존심이 상했다는 투헬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미하일 초르크 단장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초르크 단장의 생각이었고, 구단주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그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
“어려운 게임이야.”
마르코 로제의 관심사는 오직 챔피언스 리그였다.
물론 지금은 2017년도 12월이었고, 챔피언스 16강은 2018년도 2월에 열렸기 때문에 과할 정도로
D조 1위로 올라갔기 때문에 좀 더 약한 팀과 맞붙길 원했지만, 하필이면 가장 피하고 싶은 도르트문트와 승부를 가르게 생겼다.
왜냐하면 마르코 로제는 토마스 투헬 밑에 있으며 그의 전술을 배우며 성장한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술적인 역량으로는 도저히 그를 앞서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지.”
바로 최준호의 거취 문제였다.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 도르트문트가 최준호의 복귀를 요청할 수도 있다는 첩보에 잘츠부르크 구단 전체가 예민해져 있었다.
잠재적 가능성을 보고 영입을 하려고 했던 어린 선수가 팀의 핵심 선수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감독과 선수단의 불화로 비벼볼 곳이 있긴 하지만, 그건 최준호라는 걸출한 미드필더가 중원을 뒷받침해줘야 가능한 일이기에.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르네 마리치의 말에 마르코가 선을 그었다.
“그렇긴 하지. 일단 토마스 투헬이 어떤 포메이션을 들고나올지는 예측할 수가 없어. 4-3-3, 4-2-3-1, 5-3-2, 3-4-1-2, 3-4-3… 이미 분데스리가에서 12개에 가까운 포메이션을 사용했으니까.”
“문제는 대부분의 전술이 적중해서 승리했다는 거고. DFB 포칼 컵에서 바에이른 뮌헨을 무너트린 것도 투헬의 전술 덕이었지.”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도르트문트가 우리보다 한참을 앞서기 때문에 전술에서 그의 뒤통수를 때리지 않는 이상 이기기가 힘들어.”
“상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우리가 뒤통수를 때려도, 투헬은 바로 전술 수정을 해서 우리 뒤통수를 다시 치려고 할 거야.”
“…엄청나게 바빠지겠네. 머리가 터져 나갈 정도로.”
그들이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 한참 이야기를 나눌 때쯤이었다.
마르코의 휴대폰이 울렸고, 마르코는 휴대폰을 보았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 누굽니까?
– 반가워. 난 도르트문트 단장 미하일 초르크일세.
미하일 초르크라는 말에 마르코 로제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잠시 휴대폰을 귀에서 떼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마도….
“누군데, 그래?”
“아니야. 잠시만 기다려. 통화 좀 하고 올게.”
마르코 로제는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르네 마리치는 눈을 가늘 게 뜨고 문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마르코가 날 피해서 전화를 받는 건 참 오랜만인데?’
**
나흘 후.
2주간의 겨울 휴가에 돌입하기 전 마지막 경기.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20라운드.
잘츠부르크는 약팀 알타흐를 홈으로 불러들여 6-1로 부숴버렸고, 1골 3어시스트를 한 최준호가 경기 MOM이 되었다.
이로써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12월의 선수로 뽑혔다.
엘링이 8월 10월 11월의 선수라면 최준호는 9월과 12월의 선수가 되었고, 이 둘은 묘하게 경쟁 구도로 치닫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언론에서도 그렇기 기사를 만들어 내보내기 시작하였고.
“야, 준비됐냐?”
휴가를 맞이해서 최준호와 양희찬은 한국으로 넘어갈 계획이었고, 이른 아침 준비를 끝낸 양희찬이 최준호를 불렀다.
“예! 예! 곧 나갑니다.”
양희찬은 커다란 선글라스에 평소와는 다르게 머리 손질까지 한 최준호를 보았다.
금목걸이도 걸고 뭔가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게 축구 선수가 아니라 무슨 양아치처럼 보였다.
“야, 복장이 왜 그러냐?”
“정보에 의하면 우리가 한국에 도착하는 시간이 공개됐다고 하네요.”
“…그래서?”
“멋 좀 내봤어요.”
“……”
양희찬은 먼저 냅다 걸으며 말했다.
“공항에 도착하면 내 옆에 있지 마.”
한편, 엉겁결에 푸키를 떠맡게 된 엘링은 푸키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푸키가 인상을 쓰며 으르렁거렸다.
“내가 왜 싫은 거야? 도대체 이유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