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79)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79화(79/184)
79화 도르트문트 VS 잘츠부르크(1)
“안녕!”
보통 유소년들이 기거하는 합숙소에 있는 관계로 최준호는 어린 축구 유망주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처음 16세의 임대생이 잘츠부르크의 핵심 선수가 되는 것에 대해서 또래의 유소년들이 질투와 괄시를 했지만, 최준호가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활약 때문에 모두가 그를 닮고 싶어 했다.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나누면서 최준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나, 꿀팁을 얻으려고 했고 최준호는 그런 것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성공한 대부분의 어린 선수들이 기고만장해서 뭔가를 알려주기보다는 자랑질하느라 바쁜 것과는 달리, 정말 뭔가 알려주려는 진정한 꼰대질을 한 덕분에 유소년 사이에서도 인기 스타였다.
최준호는 익숙한 인상을 가진 검은 소년의 인사에 최준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많이 익숙한 얼굴.
“누구?”
“카림 아데예미야. 올해 16살. SpVgg 운터하힝에서 얼마 전 왔어.”
최준호는 잠시 놀라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박홍민이나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과 같은 엄청난 스피드와 가속도를 이용하여 라인브레이킹을 하는 전형적인 침투형 공격수로 최준호가 에버튼에서 캐리어가 부서지고 있을 때, 바르셀로나에서 핵심 공격수로 뛰며 명성을 날리던 녀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랑 나이가 같았네.’
하지만 행동에 약간 주저함이 있는 걸로 봐서는 쉽게 사람에게 다가가는 성격은 아닌 듯 싶었다.
“반가워.”
최준호가 손을 내밀며 반갑게 맞아주자 카림은 한숨을 길게 쉬고는 악수를 받았다.
“들어보니까, 여기서 잘 지내려면 사부한테 잘 보여야 한다고 해서.”
<사부>라는 말에 최준호는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군 선수 중에서 클럽 합숙소에 머무르고 있는 선수는 자신과 엘링 뿐이었다.
엘링은 훈련과 경기 이외에는 두문불출하는 성격이라 종일 숙소에 처박혀 있어서 유소년과 교류할 틈이 없었다.
최준호는 가끔 엘링과 함께 게임을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숙소 밖에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유소년들과 마주칠 시간이 많았고, 꽤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 한국에 대해서 공부했는지 최준호를 Sabu(사부) 라고 불렀고, 다들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그럼 사부한테 잘 보여야지.”
최준호의 대답에 카림은 씩 웃음을 지었다.
카림 아데예미는 6살에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에 합류했다.
그는 스피드 부문에서 상당한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이를 질투한 또래 동료들이 단체로 따돌림을 하자 카림은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였고, 그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에서 징계 방출이 되고 말았다.
다행스럽게 인내심이 많은 부모의 지원과 그의 자질을 눈여겨보던 SpVgg 운터하힝의 보살핌으로 이제는 제법 괜찮은 축구 선수로 성장하였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잘츠부르크는 350만 불의 이적료에, 재이적 시 이적료의 22.8%를 준다는 조건으로 그를 데려왔는데, 이 역시 르네 마리치가 발굴한 선수였다.
“르네 코치가 너랑 친하게 지내라고 했어.”
“르네가?”
“응, 시간 되면 같이 공도 차면서 호흡도 맞추라고 하더라.”
그 이야기는 지금은 유소년 소속이지만, 얼마든지 1군으로 올라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잘츠부르크의 스쿼드는 꽤 좋은 편이었다.
상당한 스피드를 갖춘 공격수라면 윙어로 뛸 가능성이 컸고, 아마도 양희찬의 백업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16살에 1군 데뷔할지도 모르는 녀석이네. 세상엔 역시 괴물들이 많아.’
최준호는 한 번 더 사는 인생이라 가능한 일이지만, 이런 녀석들은….
“시간이 나면 같이 공 차보자.”
최준호가 적극적으로 제안하자 카림의 표정이 밝아졌다.
“좋아.”
**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최준호는 <리트>와의 리그 경기에서 일단 제외되었다.
마르코 로제가 어린 선수가 너무 가혹한 일정을 소화한다며 휴식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최준호는 일주일 정도의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이후 23라운드 슈투틈 그라츠와의 경기 후반에 교체 출전한 최준호는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한 듯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다시 엔진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후 잘츠부르크는 25라운드에 강호 중 하나인 LASK를 홈으로 불러들여 4-0으로 대파하면서 아직 11경기나 남았음에도 오스트리아 리그 우승을 확정하였다.
<리그 21경기 출전 19골 21도움>
매 경기 1.90 공격 포인트를 생산하는 최준호는 24경기 출전 41골을 넣은 엘링 홀란드와 더불어 리그에서 가장 위험한 선수로 꼽혔다.
이미 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잘츠부르크와 달리 강팀이 즐비한 분데스리가의 도르트문트는 샬케04와의 원정 경기에서 2-1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엄청난 손실을 보고 말았다.
안 그래도 부상 선수들이 많은데, 핵심 공격수인 오바메양이 상대의 강력한 태클에 걸려 발목이 뒤틀어졌고, 마리오 괴체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 3일 후, 잘츠부르크와의 홈 경기이다. 그들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있는가?
– 우리는 안드레 쉴러라는 공격수가 있고, 카카와 신지라는 옵션이 있다. 잘츠부르크는 절대 우리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토마스 투헬은 자신감을 피력했지만, 기자들은 도르트문트가 꽤 힘겨운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지난번 잘츠부르크 원정에서는 핵심 선수인 초이가 없었다. 잘츠부르크는 초이가 있고 없고에 따라 경기력 차이가 극명하다. 그를 상대할 전술이 있는가?
–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게임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상대로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을 획득할 것이다.
토마스 투헬은 이번 인터뷰에서 승리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쉴러는 윙 자원이지 스트라이커 자원이 아니었고, 카가와 신지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경기를 거의 뛰지 못했기 때문에 실전 감각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전술적으로 제자인 마르코 로제를 압도하더라도, 그것을 수행할 선수들의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도르트문트의 핵심 수비자원은 여전히 생생했기에 잘츠부르크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내리라 생각했다.
토마스 투헬의 인터뷰가 나간 후에 한국 해외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한일전이 벌어졌다며 난리가 났다.
4-2-3-1 전술을 사용하는 도르트문트와 4-3-3 전술을 사용하는 잘츠부르크의 전술상 카가와 신지와 최준호가 서로 대결할 수밖에 없는 구도였기 때문이었다.
<새벽의축구도사> 라이브 방송을 연 양창명은 이 흥미로운 게임에 대해서 분석했다.
– 만약 둘이 붙는다면 제 생각에는 최준호 선수가 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선수는 상당히 비슷한 유형의 플레이를 펼치고 있는데, 일단 신체적인 부분에서 최준호 선수가 우위에 있거든요. 더군다나 저번 방송에도 이야기해드렸다시피, 최준호 선수는 진신욱 선수와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데 카가와 신지 선수가 과연 그런 몸싸움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최준호 선수의 플레이를 본다면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분명 두 선수의 대결이 성사된다면 최준호가 좀 더 유리하겠지만, 양창명 역시 잘츠부르크의 승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 도르트문트의 허리선에는 마르코 로이스와 누리 사힌, 크리스찬 풀리시치가 여전히 건재하고, 수비진은 핵심 멤버 그대로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잘츠부르크가 주도권을 가져오겠지만, 결국 8강에 진출하는 것은 도르트문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구독자 30만 명이 넘어가는 대형 채널이 되었고, 라이브 방송을 켜면 동시 접속자가 5천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댓글이 주르륵 쏟아지는 가운데, 양창명의 눈가에 띄는 아이디가 있었다.
FD_Idl : 그럼 좋은 방법이 있나요?
누군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최준호와 굉장히 가까운 사람이 분명했다.
메펜 시절부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소식을 전해오곤 했으니까.
–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그에서도 평균 득점 2.5점 평균 실점 0.9점으로 상당히 수비력이 좋은 팀입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떨어지는 잘츠부르크가 3점 이상의 점수 차이로 이기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엄청난 변수가 없다면 결과를 뒤집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좀 더 좋은 조언을 해주고는 싶은데,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는 양창명이었다.
–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올라간 챔피언스 리그에서 16강 진출을 한 것만으로도 잘츠부르크에는 대단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최준호는 숙소에서 나와 공으로 리프팅을 하며 잠시 몸을 풀었다.
‘엄청난 변수.’
그 역시 동의하고 있었다.
잘츠부르크의 전력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챔피언스 리그 예선전에서는 상대의 허점을 찔러 승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에 경기에 대해서는 매일 같이 보고를 받는 투헬이었고,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세울 것이 분명했다.
또한 엘링 홀란드는 아직 완전체 공격수가 아니었다.
공을 다루는 게 여전히 서툴렀고, 오프 더 볼 움직임도 개선을 해야 했다.
헤더 능력도 좀 보강해야 하고, 몸싸움을 싫어하는 부분도 고쳐야 하고.
“이기고 싶은데, 챔스 8강 가고 싶은데.”
중얼거리던 최준호는 어느 순간 몸을 멈추고는 가만히 축구공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엘링의 단점만 주구장창 생각하던, 최준호는 한 번도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엄청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건 과거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과연 지금의 자신이 과거보다 더 나아진 것이 있는 건가?
물론 피지컬의 상향이 있었고, 수비를 좀 더 할 줄 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때랑 비교해서 그다지 나아진 부분이 없었다.
‘왜지?’
최준호는 멍하게 서서 지금까지 자신이 뛰어온 경기들을 머릿속으로 훑었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게임이 언제인지 기억 속에 나질 않았다.
대부분 상황에 맞춰서 여유 있게 게임을 하고,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 반복을 했을 뿐.
그런 플레이가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저돌적이고, 모험적인 플레이를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확장해 나갈 시기인데.
‘내가…너무 안주했구나.’
최준호는 다시 리프팅을 하며 꽤 늦은 저녁까지 그라운드를 빙빙 돌았다.
**
챔피언스 리그 16강.
도르트문트와의 2차전을 앞둔 마르코 로제는 독일로 떠나기 전날 간단한 미니 게임을 실시하였다.
“초이의 움직임이 좀 다른데?”
간결하고 빠른 패스로 공격과 수비의 가교 구실을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기회가 나면 수비수와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벌이며 드리블을 하기 시작한 최준호였다.
심지어 피지컬 능력이 상당히 좋은 아마두 아이다라와 경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물론 공을 뺏기고 역습을 당해 실점까지 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마르코 로제로서는 최준호가 지금까지 해주던 역할만 잘했으면 하는 생각이었기에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생각이지?”
“글쎄?”
한 편, 아이다라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평상시 미니 게임에서는 자신이 달라붙으면 빠르게 공을 패스하던 녀석이 아주 저돌적으로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운동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위에 있던 아이다라는 손쉽게 최준호의 무리한 돌파를 저지했지만, 이상하게도 게임이 진행되면 될수록 힘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뭐지? 이 자식?’
드리블 방향을 계속 바꾼다거나, 드리블 치는 발을 바꿔서 덤빈다던가, 자신의 왼쪽, 혹은 오른쪽을 골고루 공략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상대하기 껄끄러운 식으로 덤비고 있었다.
‘아니 왜 나만 괴롭히냐고!’
아이다라가 이를 악물고는 끈질기게 덤벼드는 최준호를 상대했다.
“…아이다라가 저렇게 밀리나?”
초반에 손쉽게 공을 뺏던 아이다라의 표정이 아니었다.
꽤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반칙이 제법 많아지고 있었으니까.
“저 녀석 혹시?”
르네 마리치의 말에 마르코 로제도 묘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 불만이 가득했던 눈초리도 이미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거로군.”
“그렇지?”
“가능할까?”
많은 전문가의 이야기처럼 마르코 로제도 도르트문트 원정을 가서 3점 이상의 점수 차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녀석이 있다면, 가능할지도.”
**
2018년 3월 5일.
BVB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대 레드불 잘츠부르크.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8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그날 이두나 파크는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이미 가득 차 있었다.
도르트문트는 사흘 전 샬케04를 2-1로 꺾으면서 레버쿠젠에 일격을 당한 바이에른 뮌헨을 밀어내고 리그 1위로 올라섰다.
1차 원정에서 돌풍의 잘츠부르크 상대로 3-1로 이겼기 때문에, 감독과 선수단의 불화가 있던 말던 도르트문트 팬들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내고 경기장을 찾았다.
16강 진출은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많은 선수가 부상으로 출전할 수 없었지만, 꿀벌이 괜히 꿀벌인가?
또 다른 일벌들이 대체해 줄테니.
– 우우우우우우!!!
최준호가 스타디움에 모습을 드러내자,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야유 소리가 그라운드를 가득 메웠다.
‘아우 시끄러워! 나 지금 미움받는 거야?’
눈을 돌려보니 조잡하게 만들어진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 Choi! Verräter! Geh Weg!>
한국어로 번역하면 <초이! 이 배신자 새끼! 꺼져버려!> 라는 뜻이었다.
사실 도르트문트 소속으로 잘츠부르크에서 뛰는 게 조금은 마음에 걸린 최준호였는데, 그 문구를 보고는 마음이 상당히 편해졌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엄청난 야유 소리가 들림에도 최준호는 미소를 살짝 지었다.
‘그럼 마음 놓고 그렇게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