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80)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80화(80/184)
80화 도르트문트 VS 잘츠부르크(2)
“저 녀석 처음 봤을 때는 작고 삐쩍 말랐었는데.”
도르트문트의 코치인 미하일은 벤치의 한 기둥에 기대고는 과거 캠프에서 최준호와 함께했던 시간을 잠시 떠올렸다.
이제는 22명의 선수 중에 중간 정도의 키였고, 기형적으로 허벅지만 두꺼웠던 몸매는 탄탄한 상체와 함께 꽤 균형이 잡혀 보였다.
앳된 모습은 좀 희석되었고, 제법 남자처럼 보였다.
“그러게, 말이야. 많이 컸네.”
미하일 옆에 있던 필립이 대꾸하였다.
“저 녀석이 선택해서 간 것도 아닌데, 홈 팬들이 너무 야유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저번 겨울 이적 시즌에 복귀시키는 게 최고였는데.”
“언론이 투헬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겨울에 복귀했을 거야.”
둘의 시선이 토마스 투헬에게 향했다.
이번 경기에서 토마스 투헬은 4-2-3-1전술로 나왔지만, 마르코 로제는 3-5-2전술로 변형하였다.
마르코 로제가 먼저 전술에 변화를 준 셈이었는데, 수비적인 3-5-2가 아니라 공격적인 3-5-2 전술이었다.
어차피 여기서 3점 차 이상 넣지 못하면 챔피언스 리그 8강은 물 건너간 것이니까.
‘예상대로 나왔군.’
투헬은 잘츠부르크가 공격적으로 나올 거라는 걸 이미 예상하였다.
그래서 양 풀백도 다소 수비적인 성향이 강한 자원을 썼고, 기자 회견에 이야기한 것처럼 안드레 슐레를 스트라이커에 포진시켰다.
골 결정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주력과 순간 스피드가 매우 뛰어난 선수로 역습 시에 아주 유용한 자원이었다.
마르코 로이스와 크리스찬 풀리시치를 윙어로 두고, 공미에는 카가와 신지가 선발로 나섰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미드필더에서는 스벤 벤더가 누리 사힌 대신 나왔다.
스벤 벤더는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미드필더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자원인데, 활동량이 우수하고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하드 워커 기질도 있었으며 적극적인 압박을 좋아하는 선수였다.
다만 공격력이 떨어지고 패스 안정감과 시야가 불안해서 후방 빌드업에 단점을 가진 선수라 주로 교체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잘츠부르크의 공격은 최준호의 발끝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했고, 토마스 투헬은 최준호를 잠그기 위해서 스벤 벤더를 선발로 내보낸 것이었다.
‘많이 성장했지만, 스벤 벤더를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부분은 마르코 로제가 예측하지 못했다.
“스벤이라면 혹시 초이를 전담 마크할 생각일까?”
“아마도. 그것이 아니라면 저 자리에 넣을 이유가 없지.”
“그렇다면 도르트문트의 공격은 중앙이 아니라 양 날개에서 시작되겠군.”
“울머와 라이너에게 공격에 깊숙이 가담하지 말라고 하고, 크사보와 아이다라에게 수비 시에 양 사이드를 지원하라고 해.”
“알았어.”
르네가 몸을 움직였고, 마르코 로제는 굳은 얼굴로 토마스 투헬을 보았다.
토마스 투헬 역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마르코를 보았다.
그라운드에서는 선수들끼리 싸우겠지만, 벤치에서는 감독들끼리 머리싸움을 해야만 했다.
‘어쩔까? 투헬?”
‘아직 멀었어. 마르코.’
**
– 삑!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원정팀인 잘츠부르크의 공격으로 경기 시작되었다.
양희찬의 공을 받은 엘링 홀란드가 공을 뒤로 돌렸고, 그 공은 최준호에게 향했다.
카카와 신지가 아닌 스벤 벤더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는 최준호는 입술을 꾹 물었다.
자신의 모든 경기에 대해 보고받는 토마스 투헬이라면 카가와 신지로는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을 것이다.
186cm 80kg의 단단한 체격을 가진 스벤이 나올 줄은 최준호도 예상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면 중앙 공격은 포기한다는 뜻이 되니까.
예상을 못 했다고는 하나 최준호의 표정은 오히려 밝았다.
‘당신들이 모르는 게 있어.’
스벤은 선수 은퇴 이후 1860뮌헨에서 코치로 뛰었고, 최준호는 그의 코칭을 받았다.
코치로 선수를 가르치다 보니 현역 시절 자신이 무엇에 약했는지 이것저것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최준호는 그 기억을 머릿속에 살리고 있었다.
‘이 녀석이 다음 시즌에 팀에 합류할 녀석이라고? 실력 좀 볼까?’
스벤은 이번 시즌이 끝나면 형이 있는 레버쿠젠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분명 다시 붙게 될 일이 생길 테니, 이번에 그를 제대로 공략해볼 생각이었다.
최준호가 공을 받자마자 스벤은 뒤에서 그를 강력하게 압박했다.
보통은 불을 끌지 않고 빠르게 패스를 준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몸싸움이 제법인데?’
자신보다 키도 작고 날렵한 체구를 가지고서 이렇게 버티는 건 몸을 쓰는 기술이 좋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를 돌아서지 못하게 뒤에서 압박하다가 기다란 다리를 넣어서 공을 뺏는 태클에 특화된 스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스벤이 다리를 넣어 공을 탈취할 찰나, 최준호는 오히려 힐킥으로 스벤의 다리 사이로 공을 툭 밀어 넣고는 오른쪽으로 몸을 휙 돌렸다.
‘엇?’
하필이면 다리를 넣은 쪽이라 스벤은 몸을 틀 수도 없었다.
최준호가 빠져나가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거라는 생각에 거의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유니폼을 강하게 잡아당겼고, 최준호는 마치 맥 빠진 사람처럼 그대로 땅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 삑!
‘큰일…!’
스벤은 파울로 최준호를 끊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심판이 꺼낸 노란 카드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이게 왜 카드야?”
황당한 표정으로 항의를 하는 스벤이었다.
최준호는 스벤이 게임 시작하자마자 노란 카드를 받은 걸 슬며시 보고는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심판 성향을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네?’
8만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는 정말 엄청난 야유 소리가 쏟아졌다.
그 소리 때문인지 투헬의 표정이 흔들린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마르코는 최준호의 영리한 움직임에 가볍게 손뼉을 쳤다.
‘변수가 없다면 스스로 변수를 만들겠다는 건가?’
**
경기 시작 10초도 안 되어, 센터 서클 부근에서 얻은 프리킥.
보통은 그냥 공을 돌리며 경기를 시작하겠지만, 잘츠부르크는 단 한 번의 기회도 아주 영리하게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최준호가 프리킥을 찰 준비를 하자 잘츠부르크의 센터백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진하였다.
‘난 1,500cc 엔진을 가진 차로 레이싱을 하다가, 2,500cc 엔진을 탑재한 차로 갈아탄 거야.’
궁핍한 사정 때문에 성장기에 제대로 먹지 못해 177cm가 고작이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181cm나 되었고, 몸무게도 70kg이나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모르는 일이었고.
철저한 식단 관리와 몸 관리, 그리고 마르코 로제 감독의 일정 조율로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2,500cc 엔진을 탑재한 차를 타고 1,500cc 처럼 운용하려고 했지.’
그것을 깨달은 최준호는 어제 아이다라를 상대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고, 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내었다.
‘똑같은 2,500cc 챠량이라고 하더라도 퍼포먼스가 다르지.’
그것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법.
최준호의 정신적 능력과 기술적 능력은 EPL에서 이미 검증된 것이었다.
아이다라보다 피지컬 적으로 한참 떨어지지만 그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였다.
최준호의 눈은 상대 센터백과 비슷한 위치에 서 있는 엘링과 양희찬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양손을 들어 가볍게 수신호를 하고는 뒤로 한참 물러났다.
– 삑!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단번에 페널티 지역까지 올라갈 크로스를 예상하면서 주춤주춤 밑으로 내려갔다.
그들의 시선이 모두 허공으로 향한 사이.
최준호는 도움닫기를 하고는 오른발로 강하게 공을 찼다.
– 뻥!
그런데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공이 낮게 깔려서 잔디를 쓸며 지나갔다.
다들 높은 크로스를 예상했기 때문에 빠르고 강력한 땅볼 스루패스에 대처하는 것이 늦고 말았고.
더군다나 키가 큰 엘링 홀란드 주변에 선수들이 모여 있었는데, 공은 엘링이 아닌 양희찬에게 연결이 되었다.
‘뭐야!’
당황한 도르트문트 수비수들이 양희찬을 마크하려고 몸을 돌렸지만, 양희찬은 골키퍼의 동작을 보고는 반 박자 빠르게 공을 강하게 깔아 찼다.
– 철렁!
역동작에 걸린 로만 골키퍼는 공이 그물을 흔드는 것을 보고는 팔을 크게 휘두르며 고함을 터트렸다.
“젠장!! 빌어먹을! 다들 뭐 하고 있는 거야!!!”
8만 명에 달하는 도르트문트 팬들은 모두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침묵하고 말았다.
조용해진 스타디움.
“으아아아아!!!”
양희찬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그 정적을 찢어버렸다.
그가 팔을 빙빙 돌리면서 달려나가자, 잘츠부르크 선수들은 모두 환한 표정으로 양희찬을 향해 달려갔다.
“좋았어!!!”
심지어 경기 내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마르코 로제마저 거의 광분하듯 토마스 투헬 근처에서 펄쩍펄쩍 뛰었고.
그 모습을 본 토마스 투헬은 심기가 불편한 듯 한쪽 눈을 찡그리면서 마르코를 노려보았다.
‘설마 이런 게 저 자식 전술일 리는 없을 거고.’
마르코 로제를 너무나 잘 아는 투헬이었다.
투헬의 시선은 곧 천천히 자신의 진영으로 뛰어가는 최준호에게 걸렸다.
‘예상치 못한 플레이…’
**
경기 시작하자마자 잘츠부르크에 일격을 당한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투헬 감독의 지시와는 조금 다르게 움직였다.
철저하게 상대 공격을 분쇄하고 천천히 밀고 올라가는 계획과는 다르게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젠장! 차분하게 게임 해! 차분하게 하란 말이야!”
투헬이 고함을 마구 질렀지만, 선수단과 사이가 좋지 않은 투헬의 영향력은 잘 먹히지 않았다.
수비하라고 선발한 선수들이 흥분하여 공격을 나가기 시작하면서 도르트문트의 수비 조직력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스벤이었다.
‘이건… 뭔가 이상하잖아!’
지금까지 계속 패스워크 게임을 하던 최준호였다.
스벤 역시 분석된 영상을 보면서 최준호의 플레이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상황이었는데, 오늘 최준호는 패스보다는 자신을 돌파하려는 움직임을 계속 가져갔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받은 노란 카드 때문에 움직임이 제한되었고.
마치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듯, 가장 부담스러운 방향으로 계속 돌파를 하는 것에 등짝에는 식은땀이 흥건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1-0으로 팽팽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전반 22분경.
‘또?’
도르트문트의 공격이 실패로 끝나고, 잘츠부르크 진영에서 돌던 공이 최준호에게 향했다.
최준호는 다시 저돌적으로 덤벼들었고, 스벤은 그가 또 자신의 약점인 오른쪽을 공략할 거라고 예상한 나머지 최준호가 움직이기도 전에 먼저 움직이고 말았다.
– 툭.
하지만 그런 스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최준호는 그의 왼쪽을 뚫어 버렸다.
4-2-3-1 전술에서 최종 수비를 보호해야 하는 수비 미드필더 롤을 부여받은 스벤은 본능적으로 팔을 쓰려다가 가까스로 멈추었다.
노란 카드를 한 장 더 받아 퇴장이라도 당한다면,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 재앙이 펼쳐질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최준호를 막지 못한 결과 역시 참혹했다.
빠르게 공을 몰고 드리블 질주하는 최준호의 앞은 무인지경이었다.
양희찬과 엘링이 각각 센터백을 달고 양옆으로 벌어졌기에!
그 벌어진 공간으로 최준호가 달려들었고.
‘빌어먹을! 오늘 왜 이래!’
로만 골키퍼는 최준호가 중거리 슈팅을 때릴 거라고 예측하였기 때문에 골대 앞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중거리 슈팅이 아니라 스피드를 줄이지 않고 한 번 치고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근접하자 로만은 다급하게 슛 각도를 줄이기 위해 뛰어나갔고, 최준호는 주저 없이 공의 밑동을 툭 찼다.
로만 골키퍼를 살짝 넘기는 로빙슛!
– 출렁!
또다시 흔들리는 도르트문트의 골 그물!
하지만 최준호는 별다른 세레머니 없이 < Choi! Verräter! Geh Weg!> 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그렇게 해준다고 했지?’
추가 골에 신이 난 선수들이 이내 최준호를 덮쳤고, 된서리라도 맞은 듯 하얗게 질려버린 정적의 스타디움에는 잘츠부르크 선수들의 환호성만 울렸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경기가 잘 풀려나가자 마르코 로제는 르네 마리치를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초이는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
토마스 투헬은 한숨을 가볍게 쉬고는 쓰고 있는 야구 모자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더니 벤치로 들어가서 가만히 앉았다.
그리고는 턱을 괴고는 커다란 눈으로 최준호를 보았다.
전반전 23분 만에 잘츠부르크는 도르트문트를 2점 차로 앞서가기 시작했고.
챔피언스 리그 8강엔 누가 진출할지 안갯속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