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8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82화(82/184)
82화 도르트문트 VS 잘츠부르크(4)
공격의 축이 되어 내내 자신의 진영을 누비던 최준호가 최종 수비 라인 끝으로 위치하자 율리안 바이글은 대단히 난감해졌다.
계속 최준호에게 붙어 다니기 위해서 최종 공격수만큼이나 올라가야 하는데, 그건 결코 익숙한 포지션이 아니었다.
결국 카가와 신지가 최준호를 맡게 되었고.
신지는 공격에 능하지, 수비에는 젬병인 선수였다.
잘츠부르크 선수들은 챔피언스 8강을 위해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도르트문트를 밀어붙였고, 도르트문트는 자신의 진영에 박힌 율리안 바이글이라는 존재 때문에 쉽사리 전진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 고작 2경기 출장인 바이글이 강한 압박 속에서 패스 실수가 지속해서 나왔고, 결정적인 위기까지 두어 번 나왔다.
하지만 로만 골키퍼가 엄청난 선방을 하며 도르트문트를 구해내었다.
후반 44분경.
바이글의 패스를 가로챈 양희찬이 침투하는 엘링에게 스루패스를 넣었지만, 바이글을 백업하던 마티아스 귄터가 그 스루패스를 가로채고는 바로 잘츠부르크의 뒷공간을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크리스천 풀리시치와 마르코 로이스가 악을 쓰며 속도를 냈고, 그들보다 다소 느린 센터백들이 기를 쓰고 뒤돌아서 달렸지만, 스피드에서 점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이를 직감한 골키퍼 왈케가 앞으로 튀어나왔고, 패널티 지역을 넘어서 마르코 로이스와 골 경합을 하였다.
하지만 손을 쓸 수 없는 골키퍼 왈케가 세계적인 공격수인 마르코 로이스를 당해내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격렬한 몸싸움 끝에 마르코 로이스가 균형을 잃으면서도 완전히 비어있는 골대를 향해 슈팅을 날렸다.
공이 느리게 골대로 흘렀고, 좀 늦긴 했지만 죽어라 뛰던 최준호가 슬라이딩하면서 골대 앞에서 공을 걷어내 버렸다.
“으악!”
이대로 끝을 낼 수 있는 상황에서 최준호가 한 번 더 방해하자 도르트문트 팬들은 모두 머리를 움켜쥐며 탄성을 쏟아내었다.
최준호가 걷어낸 공은 수비하러 압류한 윙백 울머에게 연결이 되었고, 울머는 드리블을 치기 시작했다.
‘역시 강하네. 도르트문트…’
최준호는 공을 걷어내자마자 즉시 몸을 일으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오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지만, 죽는 것보다 더 싫은 게 지는 것이었다.
‘차라리 뛰다가 기절하는 게 속 편하지.’
지친 도르트문트의 공격수들이 결정적인 공격 실패로 너털너털 걸어가는 틈으로 최준호가 빠르게 달려 나가자, 허리를 숙이며 숨을 고르던 카가와 신지는 허겁지겁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젠장! 저 녀석 체력은 도대체…’
하지만 이미 스피드가 붙을 대로 붙은 최준호를 따라잡기는 요원했다.
잘츠부르크의 역습이 다시 시작되었고, 최준호의 가세로 공격수가 숫자가 한 명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울머에게 패스를 받은 아이다라는 자신에게 붙은 율리안 바이글의 강한 압박을 견뎌내면서 전방으로 패스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 수비수들이 영리하게 오프사이트 트랩을 펼쳤고, 아이다라는 이를 악물고는 어쩔 수 없이 백패스를 해야만 했다.
베리샤가 공을 잡았지만, 마티아스 귄터의 강한 압박에 백 드리블을 쳤다.
이대로 역습이 무마될 것 같았는데, 베리샤는 이를 악물고 뜀박질을 하는 최준호를 보았다.
그가 자신을 스쳐 지나갈 무렵, 마티아스 귄터의 다리 사이로 패스를 넣었고, 그 공은 베리샤의 염원대로 최준호의 발에 닿았다.
– 툭.
가볍게 터치를 하자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던 고통이 짧게나마 사라졌다.
피로감 때문에 산만했던 집중력이 갑자기 돌아왔다.
“막아! 저 녀석 전진 못 하게 끊어!”
도르트문트 팬들의 야유 속에 묻어 나오는 토마스 투헬의 고함이 귓가에 들렸고, 자신의 뒤에서 힘든 표정을 지으며 쫓아오는 카가와 신지가 눈에 들어왔다.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려 빠져나오는 엘링과 양희찬이 눈에 들어왔고, 자신을 옆에서 튕겨낼 것처럼 율리안 바이글이 달려들고 있었다.
– 툭.
그 모든 정보가 머릿속에서 뒤섞였고, 최준호의 몸은 가볍게 공을 발바닥으로 건들며 턴을 하였다.
저돌적으로 몸을 들이밀었던 율리안 바이글이 최준호의 마르세유 턴에 속아 나동그라졌다.
그사이에 힘겹게 올라온 엘링 홀란드는 최준호가 무서운 눈매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는 본능적으로 여기서 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뻥.
엘링 홀란드가 몸을 돌리는 사이 최준호는 센터백인 마르크 비르트라와 소크라티스 사이 공간으로 톱 스핀이 걸린 스루패스를 강하게 넣었다.
엘링이 놓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빠르게 굴러갔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두 수비수 사이를 가른 공은 백스핀이 걸려 점점 느려졌고, 결국 엘링의 발에 닿았다.
‘좋았어!’
엘링은 각도를 줄이려는 로만 골키퍼를 보며 강하게 슈팅을 때렸다.
로만도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렸고, 가까스로 그의 슈팅을 펀칭해낼 수가 있었다.
‘됐어! 잡았어! 이 경기!’
페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날아가는 공.
엘링은 허무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고, 로만의 가슴이 벅차지는 그 순간!
– 뻥!
공이 낙하하는 지점을 예측한 최준호는 무서운 눈매로 골대를 훑고는 주저 없이 발리슛을 때렸다.
30m가 넘는 거리에서 터진 최준호의 초장거리 포.
그를 힘겹게 따라온 율리안 바이글이 몸을 던져 막으려고 했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공을 쳐 내느라 쓰러진 로만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지만, 일으킨 몸을 던지기도 전에 공은 이미 그물을 출렁이고 있었다.
그만큼 빠르고 강력한 슈팅!
최준호는 슈팅을 날리고는 골 세레머니도 못하고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자신을 지배했던 짧은 순간의 집중력이 깨지는 순간 탈진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표정을 하며 최준호에게 달려들은 선수들은 최준호의 상태를 보고 팀닥터를 바로 호출했다.
결국 팀닥터가 들어왔고, 최준호는 그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터치라인 밖으로 이동했다.
워낙 충격적인 상황에 도르트문트 팬들은 야유소리를 내는 것조차 잊고 있었고, 마치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그라운드 안은 조용해졌다.
팀닥터가 뛸 수 없다는 사인을 보내자, 마르코는 마지막 교체 카드를 썼다.
“한 점을 지켜! 모두 수비로 들어와!”
마르코가 쉼 없이 고함을 치며 선수들을 독려하였고, 화가 잔뜩 난 토마스 투헬도 공격을 하라고 소리를 쳤다.
경기장에서 가장 큰 두 사람의 목소리는 마르코와 투헬이었다.
연장 시간 4분을 포함해서 도르트문트는 그야말로 모든 힘을 짜내어 맹공을 펼쳤지만, 모든 선수가 수비하러 들어온 잘츠부르크의 골문을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삑! 삑! 삐이익!
얄궂은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터지자, 도르트문트 팬들은 나라가 망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허망한 소리를 내었고, 토마스 투헬은 마르코 로제와 악수도 없이 바로 로커로 들어가 버렸다.
1차전 1-3
2차전 4-2
합쳐서 5-5이지만, 원정 득점이 많은 잘츠부르크가 결국 도르트문트를 깨고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권을 획득하였다.
**
오늘의 경기 MOM은 단연 최준호였다.
강팀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2골 2어시스트의 괴랄한 성적을 냈을 뿐 아니라, 팀의 8강 진출을 확정 짓는 결승 골까지 터트렸으니까.
교체되어 벤치에 앉아서 고열량 사탕과 음료수를 잔뜩 씹어먹으며 기운을 차린 그는 도르트문트 기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오늘 기분이 어떠신가요?”
“승리해서 좋습니다.”
“친정팀을 부순 소감은 어떠시죠?”
최준호는 사나운 표정으로 자신을 상대하는 기자들을 보면서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축구 선수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잘츠부르크에서 뛰었습니다. 저는 선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경기에선 이겼고, 지금은 그 승리를 즐기고 있습니다. 도르트문트로 돌아가도 저는 여전히 지금처럼 승리를 위해서 경기를 뛸 것입니다.”
뭐라고 반격할 수 없는 답변이었고, 기자들의 표정은 모두 포근하게 변했다.
비록 경기는 패배했지만, 정말 엄청난 재능이 다음 시즌에는 도르트문트로 복귀할 테니까.
“후반 골을 터트리고 교체되셨던데, 부상이신가요?”
“아닙니다. 탈진했을 뿐입니다. 지금은 사탕과 음료수를 잔뜩 먹어서 문제없습니다.”
탈진이라는 말에 기자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웅성웅성 오갔다.
“어떻게 탈진할 때까지 뛸 수 있던 건가요?”
“승리에 대한 열망은 때론 저를 한계까지 밀어붙이게 만듭니다.”
“어떤 심정으로 마지막 슈팅을 때렸나요?”
“지는 것이 싫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요?”
“계속 지지 않다 보면, 결국 우승 아닐까요?”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최준호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무언가에 맞아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것은 아주 달콤하고 끈적끈적한 냄새를 내고 있었는데, 손으로 그것을 만져보고는 무엇인지 곧 깨달았다.
망할 케이크!
“우리 팀의 막내이자 구세주! 초이를 위하여!”
그리고 분명 그들의 손에 들린 건 알콜 1.8%가 함유된 샴페인일 것이다.
얼굴에 제대로 달라붙은 케이크를 떼어내어 입에 넣은 최준호는 눈을 뜰 수 없음에도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임대생 신분으로 이렇게 환대를 받기는 아주 어려웠으니까.
그만큼 동료들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
– 초이의 첫인상은 그저 그랬다. 특출나게 빠르지도 않았고, 화려한 플레이를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투박한 경기를 하였는데 그 플레이가 운명을 갈라놓았다. 스벤 벤더가 경기 시작하자마자 카드를 받은 게 문제였다. 스벤은 위축되었고, 초이는 그를 가지고 놀았다. 이후 잃어버린 골을 얻기 위해서 우리 선수들은 모두 열심히 뛰었다. 다만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가장 깊었던 플레이어는 초이였다. 그는 기력이 다해 쓰러질 때까지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것이 우리가 패배한 진짜 이유이다. 우리 팀의 플레이어들도 초이처럼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강해야만 한다.
양창명은 <새벽의축구도사> 채널을 열어 새벽에 열렸던 도르트문트와 잘츠부르크 경기를 분석하였다.
“해당 내용은 투헬 감독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그는 패배의 원인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활약을 하였던 스벤 벤더가 최준호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것이 이번 경기 결과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골과 두 번째 골의 원인을 제공했고, 이후에도 스벤은 최준호를 효과적으로 마크하지 못했습니다. 도르트문트가 전술을 변경하기 전까지 잘츠부르크에 내내 두들겨 맞으면서 제대로 된 공격을 전개하지 못했죠.”
– 진짜 미친 경기였음!
– 올해 봤던 경기 중에 가장 재밌던 경기!
– 졸려서 못 봤는데.
– 당신 패자임.
– 우리 준호야 사랑해.
– 16살짜리가 너무 미친 거 아님?
–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메시 같은 선수가 나올지도!
– 마지막 골 넣고 너무 지쳐서 툭 쓰러지는 거 보고 나 울어버렸음.
– 축구 보고 우는 새끼도 있네?
…
양창명은 우리나라에 메시 같은 선수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댓글을 보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박홍민처럼 엄청난 속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엘링 홀란드처럼 뛰어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최준호는 변화를 만들어 내고 승리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항상.
“그리고 오늘 경기는 전술적으로 참 재미있는 경기였습니다. 두 감독이 마치 체스를 두 듯 상대 전술을 카운터 치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토마스 투헬은 이미 전술적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감독입니다. 그런 감독을 상대로 이런 전술을 선보였다는 건 마르코 로제 감독의 능력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진짜 도사님 설명 듣다 보니까 양 팀의 감독이 얼마나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음.
– 나도! 축구가 이렇게 복잡한 스포츠라는 걸 처음 알았다.
– 투헬은 명불허전임.
– 다후드를 5분 만에 교체하는 거 보고 투헬이 미친놈이라는 걸 깨달음.
– 축구를 위해서는 뭐든지 희생할 수 있는 사이코.
– 다후드가 뭔 죄임?
– 마르코 로제 떠오르는 신예 감독! ㅅㅅ!
– 잘츠부르크의 다음 상대인 AFC 아약스는 어떤 팀이에요?
양창명은 아약스라는 단어가 채팅창에 도배가 되자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올라온 팀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가장 유명한 팀 중 하나죠. 특히 이번 시즌에 많은 선수의 잠재력이 나타나면서 무서운 상승세를 올리는 팀입니다. 두샨 타디치, 하킴 지예흐, 프랭키 더용, 마테이스 더 리흐트, 안드레 오나나 같은 젊은 선수들이 엄청난 활약 중이죠. 잘츠부르크 만큼이나 돌풍을 일으킬 팀으로 보입니다. 도르트문트만큼이나 대단히 어려운 경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최준호는 라이브 방송은 아니지만, 양창명이 올려놓은 영상을 보면서 침대에 누웠다.
얼마 후.
하품을 길게 하던 최준호가 휴대폰을 가슴 위에 두고 잠에 빠졌고.
푸키가 침대에 올라와 최준호의 냄새를 맡더니, 가슴 위에 올려진 휴대폰을 물고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집에서 웅크리고 앉아서 달콤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