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87)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87화(87/184)
87화 황소와 늑대(2)
“세상에 우리 팀이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이라니!”
오스트리아의 작은 회사에 다니는 젊은 두 형제 아돌프와 아론은 큰맘을 먹고 월급의 20%나 되는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구매하였다.
25유로 정도면 오스트리아 리그 경기를 볼 수 있었지만, 이 티켓은 희소성 때문인지 가장 싼 것이 300유로나 했다.
거의 500유로에 가까운 값을 지불한 후에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경기에서 지면 진짜 엄청나게 실망할 거 같아.”
팀의 팬으로서 경기에서 지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에 영향을 주는데, 500유로라는 돈까지 쏟아부었으니 그 충격은 나름 클 수 있었다.
허름한 복장으로 가서 맥주 마시며 경기만 보다가 오던 두 형제는 일부 극성맞은 축구팬들처럼 물감으로 몸에 잘츠부르크의 상징인 황소를 그려 넣고는 경기장에 입장해서 상의를 탈의하였다.
펑퍼짐하고 배가 불룩 나온 몸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크게 쓰지 않는 것은 유럽인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엘링과 울머가 못 나온다는데, 괜히 비싼 돈 들였을까?”
다른 축구팬들처럼 소식에 민감하지 않던 그들은 잘츠부르크의 선발 명단을 보고는 큰 걱정에 잠겼다.
잘츠부르크에서 세 명의 핵심 선수를 말하라고 한다면, 거의 모든 팬들은 울머, 초이, 엘링 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저러면 수비랑 공격은 엉망이 되지 않아? 엘링 대신 누가 나온 거야?”
둘은 아무리 선발 명단을 보았지만, 공격수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소리아노는 왜 벤치에 앉아 있지? 베리샤가 최전방 공격수인가?”
하지만 둘의 예상을 깨고 중앙에서 최고의 활약을 해주었던 최준호가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섰다.
“단 한 번도 초이가 스트라이커 자리에 선 걸 본 적이 없는데?”
두 형제의 의문처럼 대다수의 잘츠부르크 팬들은 이 중요한 경기에 왜 최준호를 최전방에 놓았는지 의아해했다.
전반 3분경.
최전방 공격수인 에딘 제코는 웬만한 수비수들이 버거워할 정도로 훌륭한 피지컬과 운동 능력 그리고 몸싸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핵심 미드필더인 데 로시의 롱 크로스를 받은 에딘 제코가 절묘하게 공을 떨궜고, 나잉골란이 그 공을 끌고 들어가 골로 연결하였다.
순간적으로 침묵에 젖은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 스타디움!
예상치 못한 AS 로마의 비수에 팬들은 모두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였다.
하지만 잘츠부르크가 만회 골을 넣을 것이라고 팬들은 낙관적으로 생각했으며, 더 큰 소리로 응원을 시작했다.
그러나 전반 12분 무렵.
또다시 데 로시의 발에서 나온 롱 크로스.
찰레타 차르가 에딘 제코와의 몸싸움에서 또다시 밀렸고, 에딘 제코는 여유롭게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윈데르에게 떨궜다.
윈데르는 수비수를 피해 반대편으로 강한 땅볼 크로스를 올렸고, 나잉골란이 그 공을 바로 골대로 차 넣으면서 추가점을 얻어내었다.
나잉골란이 잘츠부르크 팬들을 향해 입 닥치라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며 달리기 시작하였다.
아돌프와 아론은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에 야유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감독이 명장 병이라도 걸린 거 아냐?”
**
“마르코.”
“알고 있어.”
마르코는 잠시 눈을 감았다.
에딘 제코의 파괴력이 예상을 넘어섰다.
두 명의 센터백이 그를 상대할 수 없다는 건 계속 이런 패턴으로 위협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이다라에게 더 내려가서 센터백들을 보호하라고 하고, 미나미노는 내려와서 중원을 맡으라고 해. 양희찬은 초이와 함께 투톱으로 서고. 초이에게는 프리롤을 부여할 테니, 저 망할 16번 좀 어떻게 하라고 전해줘.”
수세에 몰리자 5-3-2 형태의 전술로 바꾼 마르코.
최준호는 전술을 전달받고는 입술을 비틀며 16번을 단 다니엘레 데 로시를 노려보았다.
토티가 떠난 자리를 물려받은 데 로시.
AS 로마의 사령관이자 프린시페(황태자).
강력한 슈팅력, 엄청난 헤더 능력, 아크로바틱한 슈팅 모션, 여기에 정교한 패스와 찬스 메이킹 능력으로 AS 로마를 먹여 살리고 있는 핵심 선수였다.
또한 드리블 돌파 능력이 상당했고, 무엇보다 184cm에 82kg의 피지컬에 수비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가끔 센터백으로 서기도 했다.
‘장점만 있는 선수는 아니지. 다혈질이니까.’
최준호는 함께 투톱을 설 양희찬에게 이야기했다.
“형. 나 잠시 밑으로 내려갈게. 원톱 혼자 봐줄 수 있지?”
“물론이지.”
양희찬은 최준호의 주문에 순순히 응해주었다.
경기는 다시 시작이 되었고, 데 로시는 잘츠부르크의 중원에서 수적으로 밀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에 비교하면 가냘파 보이는 최준호가 상대하겠다고 나서자,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지었다.
“날 상대할 수 있겠냐?”
물론 이탈리아어였고, 최준호는 그가 들어먹지 못하는 독일어로 구시렁거렸다.
“더 이상 날뛰지 못한다. 돼지 새끼.”
데 로시가 독일어를 잘 못 하긴 하지만, 독일어를 쓰는 팀과 수도 없이 경기를 해봤던 베테랑이었다.
독일어로 자신을 욕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금세 얼굴을 붉혔다.
“덤벼봐.”
최준호는 그가 공을 잡자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하게 압박하였다.
‘제법이긴 하지만.’
거의 10kg이 차이가 나는 체중에서 생기는 몸싸움의 이점을 사용하며 최준호를 뿌리치고, 그를 돌파할 찰나 강렬한 통증이 종아리에 느껴졌다.
최준호의 태클에 걸려 넘어진 데 로시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리를 잡았다.
‘이 새끼가!’
최준호가 도발적인 눈빛으로 노려보자 데 로시의 성질이 점점 올라오기 시작했다.
데 로시는 심판이 아무런 카드도 꺼내지 않자 인상을 찌푸리며 항의하였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아까처럼 데 로시의 놀라운 패스가 사라진 것은.
두 선수는 공만 잡으면 상대에게 달라붙었고, 채이고 얻어터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자 심판이 두 명을 불렀다.
“이건 축구 게임이지. 격투기가 아니야. 둘 다 조심해.”
최준호는 인상을 잔뜩 구기며 데 로시를 노려보았고, 데 로시는 뭔가 터질 것처럼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빌어먹을 수염 새끼야! 아까 카드 줬으면 이런 일도 없었어!”
기어코 분을 참지 못한 데 로시가 심판에게 욕설하였고, 심판은 주저 없이 노란 카드를 꺼냈다.
AS 로마의 선수들이 달려와서 열을 받기 시작한 데 로시를 떼어놓고서야 상황이 잠잠해졌다.
열을 받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데 로시와 달리 최준호는 몸을 돌리고는 차가운 냉소를 지었다.
**
흥분한 데 로시가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할 수 없게 되자, AS 로마의 공격력은 굉장히 무뎌졌다.
그리고 두 선수의 분위기 때문인지, 다른 선수들도 플레이가 매우 거칠어졌다.
전반 37분경.
아이다라가 후방에서 날아오는 스루패스를 재빠르게 가로채고는 전방을 향해 공간 패스를 하였다.
스피드가 빠른 양희찬이 마눌라스보다 먼저 공을 터치한 순간 급했던 마눌라스가 그의 유니폼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태클을 걸었다.
– 삑!
심판은 마눌라스에게 바로 카드를 꺼냈다.
전반전 끝나기도 전인데 양 팀 모두 9장의 노란 카드를 수집하였고, 이 경기가 얼마나 거친지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괜찮아요?”
최준호는 프리킥 지점에서 쓰러진 양희찬에게 얼른 다가갔다.
“응. 잠시 숨 좀 고르자.”
“물론이죠.”
최준호는 얼른 팀닥터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초이, 유니폼 갈아입어. 뒤에 찢어졌다.”
최준호가 새 유니폼을 갈아입고, 양희찬이 의료진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자 잘츠부르크의 팬들은 환호성을 부르며 분위기를 점점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4번 차면 1번 골로 들어가는 최준호의 프리킥에 희망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AS 로마 역시 추격 골을 주지 않기 위해서 단단하게 벽을 세웠는데, AS 로마의 골키퍼 알리송은 여전히 성이 차질 않았다.
하필이면 왼발, 오른발 감아차기가 가능한 가장 까다로운 위치에서 프리킥이었다.
최준호는 공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문 전 앞에서 거칠게 몸싸움하는 양 팀의 선수들과는 뭔가 다른 차분함.
– 삑!
심판의 휘슬 소리에 최준호는 눈을 뜨고는 양희찬의 움직임을 가만히 보다가 뒤로 다섯 걸음 물러섰다.
– 탓탓탓…
천천히 도움닫기를 하며 최준호가 공을 차는 순간 벽을 세운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점프를 했다.
최준호가 오른발로 차는 것을 확인한 알리송도 대응을 하기 위해 움직였고.
하지만 최준호가 찬 공은 느리지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점프를 뛴 선수들 밑으로 흘러갔다.
그 공은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 있던 양희찬에게 연결이 되었고, 양희찬은 침착하게 공을 골대로 밀어 넣었다.
그야말로 AS 로마의 허를 찌르는 스루패스였다.
역동작에 걸린 알리송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골대 안에 들어가 있는 공을 보았다.
“젠장!”
잘츠부르크의 추격 골이 터지자, 숨죽였던 팬들의 환호성이 스타디움을 마구 흔들어댔고, 양희찬은 어시스트를 넣어준 최준호에게 달려가서 그를 안았다.
“우이씨! 최고다!”
디프란체스코는 붉은 넥타이를 휘날리며 번쩍 어퍼컷을 날린 마르코를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데 로시에게 진정하고 냉철하게 경기하라고 계속 주문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동점 골도 허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AS 로마의 황태자, 사령관 같은 존재인데 로시를 교체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디프란체스코의 주저함은 원치 않던 결과를 만들어냈다.
“노란 원숭이.”
“피이짜~”
“칭챙총”
“데이고!!”
“눈 째진 놈!”
“그리스볼.”
제일 듣기 싫었던 <그리스볼>이라는 욕을 들은 데 로시가 흥분해서 거친 태클을 하였고, 최준호는 공을 앞으로 툭 차 놓고는 높게 점프를 뛰었다.
순식간에 데 로시를 돌파한 최준호는 무서운 스피드로 공을 달고 드리블을 시작하였다. 주앙 제주스가 최준호를 막기 위해 튀어나왔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팬텀 드리블에 역동작이 걸려 버렸고.
양희찬을 쫓던 마눌라스는 영리하게 양희찬을 내버려 두고 최준호에게 달려들었다.
이 상황에서 패스가 들어가면 오프사이드일 테니.
잘츠부르크의 선수들은 이제야 중앙선을 넘어서 오는 중이었기 때문에, 마눌라스는 뒤에서 무서운 표정으로 달려오는 데 로시와 주앙 제주스가 도착할 때까지 최준호를 붙들어 두면 될 거라고 생각하였다.
달라붙었다가 그의 개인기에 돌파당하는 것보다 거리를 살짝 두고 견제하려고 하는 순간!
– 뻥!
최준호는 마눌라스의 다리 사이로 강력한 슈팅을 때렸다.
워낙 강력한 슈팅이라 마눌라스는 본능적으로 사타구니를 보호하기 위해서 펄쩍 뛰었고, 그 덕분에 골키퍼 알리송은 슈팅이 마눌라스의 머리 위로 올라오리라 예측했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왼쪽으로 예리하게 휘어지는 데다가 너무나 빠른 공에 알리송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공이 왼쪽 하단 그물을 흔드는 것을 가만히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얍!”
최준호가 펄쩍 뛰며 고함을 지르고는 두 손을 귀에 대고 뛰기 시작하자, 잘츠부르크의 팬들은 굉장한 목소리로 <초이>를 연신 외치기 시작했다.
동점 골이 터지자 디프란체스코 감독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 어린 녀석이 데 로시를 가지고 논다고?’
평소의 데 로시라면 저런 생각 없는 태클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수비수를 앞에 두고 저런 과감한 슈팅이라니!
저런 슈팅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디프란체스코는 뭔가 점점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
“드디어 동점 골입니다!”
8천 명이나 몰려 있는 라이브 입 중계 채널의 채팅창은 터져나갈 것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수행하지 않았지만, 양창명은 최준호가 스트라이커로서도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였다.
…
– 미쳤다! 와씨 존나 멋있네!
– 운 드럽게 좋네! 수비수 잡으려다가 골 넣음.
– 신이 돕는다
– 저게 말이 돼?
– 다음 시즌에는 귀신같이 컨디션 난조가 예상됨.
– 미쳤다.
– 리오넬 메시도 막아낸 알리송이 16살짜리 꼬마에게 당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 준호는 곧 17살 됨. 빨리 20살 되서 나랑 결혼하자.
– 미쳤음. 그냥 미쳤음.
– 저거 맞았으면 고자 됐을 듯.
– 과감하네.
– 수비수 빡친 거 같은데?
– 와!와!와!어쩔!와!와!
…
“데 로시가 엄청나게 큰 실수를 했습니다. 최준호 선수를 저렇게 놓치는 건 골을 넣어 달라고 하는 것이니까요. 그가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욱하는 성질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오늘이 그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슈팅은 야신이 와도 막기 힘들 코스였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마눌라스 선수가 고자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양창명은 잠시 말을 멈추고 여러 번 리플레이 되는 영상을 지켜보았다.
최준호의 다리 모습을 보니 마눌라스가 달라붙었을 때부터 슈팅을 때리려고 마음먹은 게 분명했다.
마눌라스가 팀을 위해서 사타구니를 희생할 수 있었다면 그의 몸에 맞고 나왔을 수도 있었고.
양 팀의 파울이 많이 나온 관계로 전반 연장 시간이 8분이나 주어졌지만 더 이상 골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반에 70%의 점유율을 가져갔던 AS 로마는 전반전 막바지에는 절반의 점유율조차 가져오질 못했다.
이 모든 게 흥분한 데 로시 때문이었고.
“분위기가 잘츠부르크로 넘어갔습니다. 과연 AS 로마의 감독은 후반전 어떤 전술적 선택을 할까요? 황태자 데 로시를 과연 교체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