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91)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91화(91/184)
91화 출격 준비(2)
“자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우리 구단은 원대한 구상을 했다네.”
당시 동양인에 볼품없는 피지컬을 가진 최준호의 가능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았던 이들은 토마스 투헬과 그의 코치진이었다.
미하일 초르크를 비롯한 대부분의 구단 중역들은 토마스 투헬만큼 최준호의 가능성을 읽지 못했다.
그런데도 최준호가 풀리시치 만큼의 대우를 받고 프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토마스 투헬의 입김 때문이긴 했다.
이제는 도무지 믿기 힘들 만큼의 성장세를 보이며 빅 클럽들에 큰 관심을 받고 있으니 미하일 초르크는 최준호를 잡기 위해서는 간이라도 다 내줄 것처럼 이야기하였다.
“저를 위한 원대한 구상이라 너무 좋군요.”
최준호는 웃음을 지으면서 이야기는 했다.
‘원대한 구상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경험 없는 어린 선수라면 도르트문트의 전설인 미하일 초르크가 직접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하면 현혹될 게 분명했지만, 최준호에겐 통하지 않았다.
‘통하고 있는 건가?’
미하일 초르크는 매우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최준호를 보면서 긴가민가 헷갈렸다.
“그래서 어떤 대우를 해줄 생각인가요?”
최준호가 직접 장을 봐서 설탕 없이 만든 신선한 토마토 주스를 꿀꺽거리며 마시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주전급….”
미하일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최준호는 짧게 트림을 했다.
“…끄억.”
미하일은 최준호의 반응에 입을 꾹 닫아버렸다.
“단장님. 유명한 클럽들이 저를 원하고 있어요. 에이전트 말로는 몇 군데서는 이미 주전급 계약을 제시할 생각이라고 하던데요? 원대한 구상을 하고 계시는 거 맞아요?”
16살짜리 정도는 스스로 구워삶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웃으면서 가슴에 꽂는 최준호의 비수에 미하일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자네가 원하는 수준이라도 있나?”
“저는 다음 시즌에도 20-20을 할 생각인데요, 그 정도 스탯을 올리는 선수라면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할까요?”
“뭣? 20-20?”
미하일 초르크는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시즌 팀내 최다득점자는 아스날로 이적하는 피에르에머릭 오바메양으로 21골이었다.
최다 도움은 크리스천 풀리식, 마리오 괴체, 카가와 신지로 7개씩이었다.
다 큰 성인 선수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게 말이 되냐며 성질이라도 낼 텐데, 상대는 아직 어린 선수였다.
“설마 분데스리가를 오스트리아 수준으로 보는 건 아니지… 초이?”
오스트리아는 10개의 팀뿐이지만, 분데스리가는 18개 팀이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을 제외한다면 매 시즌 누가 상위권이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뒤치락거리는 리그였고.
“…에이, 선수를 너무 의심하신다.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돈 많이 주는 EPL도 갈 수 있다는 거 아시죠? 어디선가 저를 굉장히 원한다고 하던데…”
최근 공격적인 투자로 선수들의 몸값을 엄청나게 끌어올리고 있는 EPL이었다.
그들의 방식에 불만이 매우 많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직접 최준호를 찾아가 어린 그를 슬슬 꼬드겨 보려고 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웬만한 에이전트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였다.
최준호는 점점 굳어가는 미하일 초르크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월드컵 끝나기 전까지 거취를 결정할 생각은 없어요. 토마토 주스 한 잔 더 드릴까요?”
5분도 안 되는 짧은 대화였고, 최준호는 토마토 주스를 끝내며 더 이상 계약에 관련한 이야기는 하기 싫다는 뉘앙스를 뿜었다.
‘…’
아주 영리한 녀석이라 직접 만나면 끌려갈 수 있다는 수석 스카우트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 미하일 초르크였다.
“괜찮네. 아무래도 바빠질 것 같기도 하고 자네를 방해한 것 같기도 해서 일어날까 하네.”
“네, 기자들한테 엉뚱한 이야기 하지 마시고요.”
“…물론…이지.”
조금은 실망한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나는 미하일 초르크를 보며 최준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아직도 도르트문트와의 계약을 기대한다는 것만 해도 단장님께는 나쁘지 않은 상황 같은데요?”
그 말에 미하일 초르크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 그런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이 왔다 갔다 하자 미하일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사람을 가지고 노는 녀석이네.
**
– 2018 월드컵을 앞두고 태극 전사들 파주 훈련소에 입소!
– 토트넘을 2위로 이끈 박홍민 선수의 입소를 환영하는 팬들의 모습!
– 공자철 선수의 환한 미소!
– 차세대 한국 센터백 강민재의 엄청난 피지컬.
– 택시에서 내리는 대표팀의 어린 왕자 최준호! 축구 선수인가? 모델인가?
…
해외파들이 대거 참전한 3월 평가전 때 너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극성인 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전문가는 5~6월 평가전도 별 볼 일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 우리는 월드컵에서 최약팀이다. 약팀인 나라가 월드컵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 약팀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강팀보다 더 뛸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고, 어려움에 부닥친 동료와 팀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승부욕과 강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내부 경쟁을 통해서 선발 명단을 추려낼 생각이다.
–
정태용 호의 기본적인 포메이션은 4-4-2 였다.
최종 공격수로는 박홍민과 진신욱, 양희찬이 거의 확정적이었고, 수비진과 골키퍼들도 거의 변동이 없어 보였다.
다만 미드필더진에는 공자철과 진성용, 박승우, 백청용, 장우영, 김요한, 문재성과 같은 좋은 자원이 잔뜩 포진한 가운데 최준호까지 끼어들었으니, 선발 경쟁이 매우 심화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 포지션이 확정된 선수가 있는가?
– 없다. 태극 마크를 달기 위해서는 매일 펼쳐질 팀 미니게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 박홍민 선수는 예외가 아닌가?
– 예외인 선수는 없다.
파주 훈련소 입구에서부터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은 최준호는 훈련소 건물 로비에 있는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았다.
최준호가 과거에 첫 월드컵 무대를 밟았을 때가 2022년도 카타르 월드컵이었으니까, 2018 러시아 월드컵은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한 번씩 호흡을 맞춰보았던 선수들이었기에 다들 굉장히 눈에 익었다.
‘휘유. 많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서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선가 반가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준호야!”
공자철이었다.
최준호도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준호>라는 단어가 크게 울려 퍼지자 로비 안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최준호에게 쏠렸다.
– 저 녀석이야?
– 제법 큰데?
– 17살도 안 돼서 대표팀 명단이라니.
– 축구 할 것 같지 않은 면상이야. 정환이 형이 떠오른다.
다가오는 공자철의 옆에는 꽤 익숙한 인물들이 같이 걸어왔다.
진성용과 백청용 선수.
홍의조 선수와 이야기하는 박홍민 선수.
“왔나?”
“왔구나!”
다른 선수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진신욱과 강민재.
“이 녀석이야?”
마치 구경거리가 된 듯한 최준호는 멈칫거리는 다른 선수들을 보다가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나한테는 참 반가운 얼굴들인데, 아직은 날 모르겠지?’
하지만 최준호는 그들을 보며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최준호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구단의 모든 선수들이 월드컵과 휴가를 위해서 떠났고, 마르코 로제는 르네 마리치와 함께 도르트문트의 구장 지그날 이두나 파크를 가볍게 걸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구장이야.”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디움이니까.”
마르코 로제는 도르트문트와 계약함과 동시에 수석 코치로 르네 마리치를 데려왔다.
“저곳에 쥐트리뷰네지?”
르네 마리치가 남쪽 스탠드를 가리키자 마르코 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덟 개의 노란 철탑과 함께 베스트펠렌슈타디온의 상징이자 이 경기장에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는 이유가 바로 저기에 있었다.
열정이라는 것 하나만 따지면 유럽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도르트문트의 서포터들이 늘 차지하고 있는 자리인데, 그들은 90분 내내 서서 90분 내내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하기로 유명했다.
누군가 소음을 측정한 결과 전 세계의 구단 중에서 쥐트리뷰네의 소음이 가장 높다는 것을 확인할 정도였고.
남쪽 스탠드에서 벌어지는 온갖 것의 퍼포먼스는 엄청나게 화려했으며, 최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타임지가 극찬을 할 정도였다.
“자네 도르트문트 서포터한테 꽤 미움받던데?”
르네의 말에 마르코는 씩 웃었다.
“감독에게는 최고의 찬사지. 이제 그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할 때가 온 거야.”
“아직 시즌 시작도 안 했는데, 미하일 초르크가 무슨 일로 자네를 호출한 걸까?”
“가봐야 알겠지. 급한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부를 일도 없을 테니까.”
그들은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돈 다음 미하일 초르크 단장을 찾았다.
“…초이의 거취가 불분명하다고?”
그 말에 마르코 로제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직접 데리고 와서 자신의 손에 의해 스타로 만들어진 엘링 홀란드의 이적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최준호와 엘링 홀란드를 붙여 놓으면 그만한 시너지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였고, 마르코 로제는 18/19 시즌 이 둘을 중심으로 팀을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약서에 바이아웃이 설정되어 있어.”
“…맙소사!”
“초이가 없어도 자네가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만큼 분데스리가는 몹시 어려운 리그지. 재계약을 하면 될 것을 왜 고민을 하지?”
“도르트문트에는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진 선수들이 꽤 있고, 나름의 주급 체계를 가지고 있지. 어쩌면 팀에 불화가 생길 수가 있어.”
마르코는 등을 의자 깊숙이 묻고서 미하일 초르크를 가만히 보았다.
현재 축구팬들 사이에 축신급으로 추앙받는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7살 때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리오넬 메시는 분명 16살에 바르셀로나 주전 수비수인 푸욜과 튀랑을 1:1로 박살을 내며 기술적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그의 정신적 능력은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햄버거 좋아하고, 콜라 좋아하고, 게임 좋아하고, 다른 선수들과 거의 소통이 없으며 리더쉽도 없는 그런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의 수많은 관계자는 리오넬 메시가 그렇게 클 줄 몰랐다고 말하곤 하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매우 이기적이며, 헤딩을 못 하고, 수비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고 소속팀 감독에게조차 악평을 들었다.
그럼 최준호는?
그의 기술적 능력은 이미 선례가 있어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가 보여주는 정신적 능력과 성숙도는 앞서 이야기한 선수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두 선수가 아주 뛰어난 팀에서 골을 넣는 롤을 맡고 있어서 그렇지 만약 잘츠부르크에 왔다면 최준호만큼이나 공수 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까?
“초르크.”
마르코는 아주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미하일에게 말했다.
“팀에서 그 녀석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으로 대우해줘. 따르는 불화는 내가 알아서 책임질게. 다음 시즌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진출이라는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녀석이 있어야 해.”
**
“…더 컸네?”
4개월 전에 181cm에 70kg 언저리였던 최준호는 184cm에 75kg의 몸으로 바뀌어 있었다.
체지방율 : 10.2
체질량 지수 : 22.4
V02Max : 84.3
순간 속도 34.0km/h
…
미드필더로서 가장 중요한 신체적 능력에도 약간의 향상이 있었다.
체지방율도 1.0이나 내려갔고, 체질량 지수도 향상이 되었다.
V02Max 는 계속 유지 중이었고, 무엇보다 스피드가 0.7km/h 정도가 또 상승했다.
비시즌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최준호의 몸 상태는 지금 리그 시즌 중인 K-리그 선수와 맞먹을 정도로 매우 좋은 상태였다.
정태용 감독은 최준호의 피지컬 테스트 리포트를 보면서 감탄을 터트렸다.
‘자기 관리 능력이 엄청나군.’
키와 몸무게가 올라갔음에도 유연성이나 민첩성 그리고 순간 속도 부분은 오히려 더 나아졌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이 정도 피지컬이면 세계 그 어떤 클럽에 가져다 놔도 크게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분명 대한민국 대표팀에 좋은 소식이기도 했다.
‘…이 자식 뭐지?’
5 vs 5 미니게임에서 최준호를 상대하게 된 진성용.
189cm에 80kg의 피지컬을 가진 진성용은 최준호가 자신을 등지고 무게 중심을 낮추자 막막함을 느꼈다.
물론 진성용의 수비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건 마치 벽을 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최준호의 헤더 능력이 떨어져서 원하는 곳에 공을 떨궈주지 못해 위험한 상황을 벗어났지만, 그 묵직함은 도무지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저 녀석은 다 잘하는데, 헤더가 문제입니다. 저렇게 등지고 딱 떨궈주면 결정적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텐데요.”
조남일 코치의 말에 정태용이 피식 웃었다.
조남일이 말하는 것은 타겟형 공격수에게 요구되는 능력이었는데, 그걸 플레이 메이킹 미드필더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긴 했다.
“처음에 저 녀석 대표팀으로 뽑았을 때는 그런 플레이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
“뭐, 그렇지요. 삐쩍 말라서 몸싸움에 날아갈까 걱정했던 게 얼마 전이었던 거 같은데.”
“그런 녀석이 피지컬이 저렇게 좋아졌으니 웬만한 선수들은 막기가 힘들 거야. 성용이가 엄청나게 버거워하는군.”
“하긴, 저 녀석과 함께 훈련하는 것은 아마 처음일 테니까요.”
최준호와의 몸싸움에서 밀려 나동그라진 진성용이 주먹을 꾹 움켜쥐고 이를 악무는 표정이 그들 눈에 들어왔다.
굉장히 분한 표정이었는데, 더욱더 적극적으로 경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성용이 녀석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조남일 코치의 말에 정태용이 빙긋 웃었다.
“저 녀석도 알겠지. 최준호와 자신이 주전 경쟁을 한다는 것을. 경쟁적인 상황은 선수를 망치기도 하지만, 발전시키기도 하지. 저 녀석은 아마 더 열심히 해야 할 거야. 자네도 엉뚱한 이야기하지 말고, 훈련에 집중하게끔 도와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준호 녀석 말이야. 헤더 능력을 좀 키울 필요가 있겠어.”
정태용의 말에 조남일이 씩 웃었다.
진신욱도 완전히 바꿔 놓은 조남일이었다.
“그건 제 전문입니다.”
“월드컵 무대에서 우리를 상대할 놈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자고.”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