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9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92화(92/184)
92화 출격 준비(3)
월드컵 대표팀들은 한국에서 온두라스 및 보스니아와 평가전을 가지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넘어가서 볼리비아와 세네갈과 마지막 친선 경기를 끝으로 러시아로 향할 예정이었다.
– 이번 온두라스전 선발 명단을 발표하겠습니다.
이제는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평가전이었다.
온두라스는 24년 동안 한국을 상대로 1승은커녕 1골도 넣지 못한 팀이었다.
더군다나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데다가 최정예 멤버 일부는 빠진 상태였기에 어렵지 않은 상태라고 판단을 하였다.
정태용 감독은 김범근 부위원장이 새로 꾸린 기술진의 도움을 받아서 포메이션의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의 4-4-2에서 3-4-3 형태의 포메이션이었다.
GK 곽현우
CB 조영권
SW 최준호
CB 강민재
LWB 강철
RWB 최용
CM 진성용
CM 공자철
FW 박홍민
FW 진신욱
FW 양희찬
포메이션 발표가 있고 나서 기자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다른 포지션은 다 이해가 가지만 최준호의 포지션이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 최준호 선수는 엄청난 공격력을 가진 선수이다. 그런 선수를 수비진에 기용하는 이유가 있는가?
진태용 감독은 사실 저 포지션에 진성용 선수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진성용은 가진 피지컬에 비해서 몸싸움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고, 수비 적극성도 떨어지는 편이었다.
활동량도 아주 적은 편이었고.
그에 비해 최준호는 팀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활동량을 가지고 있었고, 팀 내 최고 센터백인 강민재와의 몸싸움에서 그다지 밀리지도 않았다.
그의 스피드는 박홍민, 양희찬, 강철과 최용 다음으로 빨랐고, 태클 능력도 팀 내에서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공수 양면으로 이보다 완벽한 선수는 없을 듯 싶었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최약팀이다. 아마도 상대는 라인을 끌어올려 우리 진영에서부터 압박할 것이다. 그들의 압박을 풀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공격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골을 넣을 수가 없다. 이들의 압박을 버티고, 공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며, 우리는 그 역할에 최준호 선수가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 최준호 선수의 헤더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가 과연 제대로 공격수를 마크할 수 있는가?
또 다른 질문에 정태용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여러 팀의 스태프를 하면서 많은 선수를 봐왔지만, 최준호 같은 선수는 전혀 본 적이 없다. 그는 10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헤더 능력을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온두라스와의 경기에서 그의 모습을 보면 다들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사실 공격수였던 최준호가 헤더를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헤더를 할 때마다 매번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있었고, 착지 과정에서 부상이 뒤따를 수 있어서 무리하게 헤딩을 안 한 것뿐이었다.
이번 대표팀에서 조남일 코치의 빡빡한 훈련 코스를 소화하면서 잠시 덜 익숙해진 것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진태용 감독이 입에 침을 바르며 최준호를 칭찬하고 있을 무렵, 월드컵 선수단들은 온두라스와의 경기를 대비하여 전술 훈련을 거의 끝낼 무렵이었다.
“홍민이 형, 신욱이 형.”
땀에 쩔고, 흙먼지가 잔뜩 묻은 유니폼을 입은 최준호가 공을 가지고 오자 두 선수는 혀를 둘렀다.
‘이 녀석은 지치지도 않나…’
“오늘도 연습해야죠?”
이미 2022, 2026, 2030년…
세 번의 월드컵을 경험한 최준호의 생각에 최약팀인 한국이 지금 선수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롱패스 뿐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자신과 같은 수준의 실력이라면 티키타카를 하던 드리블 돌파를 하던 쉽게 상대를 이기겠지만, 모두가 자신과 같은 선수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최준호가 두 선수에게 제안한 것이 역습 패턴 플레이였다.
후방에서 정교한 패스가 보내지면, 진신욱이 상대 선수를 버티고 헤더로 뒷공간에 떨궈놓고 박홍민이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침투해서 골을 넣는 그런 패턴이었다.
팀 내에서도 이미 그런 전술을 연습하고 있었지만, 최준호는 더 많은 연습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 선수 중 하나였다.
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가 에너지 넘치게 조르자 두 선수는 지쳤음에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그래. 가자.”
**
“그런데요. 진짜 최준호 선수 여자친구가 있는 거 맞아요?”
“알아서 찾아보라고 했잖아.”
민선아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쳐다보아도 양창명은 부처님 얼굴처럼 표정 변화 없이 경기장에 눈을 돌렸다.
6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구 스타디움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K-리그가 열릴 때는 고작 2천 명이 오는 이 스타디움에.
그들은 대다수 박홍민의 플래카드를 걸고 있었다.
이따금 최준호를 응원하는 현수막도 걸리긴 했지만, 역시 박홍민이 압도적이긴 했다.
‘온두라스.’
월드컵 예선 전에 속해 있는 멕시코를 대비하여 갖는 경기였다.
한국은 그들과 붙어 2전 2승.
3월 북아일랜드와 폴란드를 상대로 보여준 엄청난 졸전 때문에 과연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을 갈 수나 있겠냐는 전문가들의 강한 회의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양창명은 16강은 진출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경기 초반 수세로 임할 거라는 생각과 달리 온두라스는 초반부터 강한 압박으로 경기에 임했다.
북아일랜드와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최전방에서 시작되는 강한 압박에 맥을 못 추는 경기를 보고서 맞춤 전술로 나왔는데, 잘 통하는 듯 보였다.
뛰어난 선방 능력을 갖췄지만, 발밑이 좋지 않은 곽현우 선수의 실책으로 골을 먹을 뻔했었고, 조영권 선수의 안일한 골 처리로 상대에게 골을 뺏겨 골대에 맞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경기 시작 전에 대한민국을 엄청나게 응원하는 팬들의 입은 점점 닫혀가고 있을 전반 11분 무렵.
– 로만 카스티요 선수! 단독 돌파하나요!
‘누굴 제치려고 하냐?’
최준호는 강하게 몸싸움을 걸며 기회를 보다가 카스티요의 발밑에서 공만 빼내었다.
그리고 압박이 들어오기 전에 전방을 향해 롱 패스를 날렸고, 그 패스는 진신욱에게 연결이 되었다.
1월 평가전 이후로 몸싸움에 큰 발전을 한 진신욱은 두꺼운 몸으로 비벼대는 에베르를 등지고는 날아오는 공을 헤더로 돌려놓았다.
– 파바밧!!
정말 놀라운 속도로 박홍민이 공을 쫓아 침투하였고, 그를 마크하던 선수는 죽어라 따라갔지만,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뒤이은 박홍민과 골키퍼의 1:1 찬스.
박홍민이 온두라스의 골대를 흔들고 나자 잠잠하던 대구 스타디움에서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
양창명은 서로 얼싸안으며 좋아하는 한국 선수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잘 만들어진 득점 루트였고, 앞으로 한국이 훨씬 더 예리하게 다듬어야 할 전술이었다.
박홍민의 스피드와 돌파력은 세계 최정상급이었기 때문에 강팀이라고 해도 쉽사리 라인을 끌어올리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을 테니까.
상대가 라인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압박의 효과가 줄어서 중원의 숨통이 트이고, 설사 라인을 끌어올린다면 저렇게 골을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괜찮네.’
하지만 여전히 온두라스는 전방에서 강한 압박을 걸었는데, 최준호와 호흡을 맞추지 않았던 조영권과 강철, 최용이 적극적으로 그에게 공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후방에서 한국의 빌드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최준호 선수는 수비라기보다는… 리베로에 가깝네요.”
Libero 이탈리아어로 자유로운이라는 뜻의 단어였다.
포지션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으며, 공격과 수비를 연결하는 축이 되는 동시에 공격과 수비에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현대에서는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스리백을 기반하는 팀들은 여전히 간간이 사용하고 있었다.
최준호가 마르세유 턴으로 그를 압박하던 로만 카스티요를 벗겨내자 엄청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맨투맨으로 적극적으로 압박 수비하는 온두라스 전술의 치명적인 단점이었고, 최준호는 빠르게 공을 끌고 올라갔다.
민선아의 감탄에 양창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는 뼈밖에 없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마르고 작은 선수였는데, 1년 6개월 만에 저런 피지컬로 둔갑을 해버렸으니까.
수많은 경기에 뛰면서 최준호의 수비 실력이 급상승하는 것도 직접 목격했고.
“어쩌면 그 포지션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일 지도 모르겠어.”
약팀이었던 서독을 월드컵 결승전까지 이끈 베켄바워를 떠올리는 양창명이었다.
– 아앗! 최준호 선수 개인기로 온두라스 두 선수를 벗겨냅니다! 정말 신기에 가까운 기술입니다!
센터백 포지션의 선수가 빠른 스피드로 올라오자 놀란 로저 로하스가 양희찬을 버려두고 달려들었지만, 최준호의 팬텀 드리블에 나가떨어졌고, 그를 백업하는 선수도 곧 이어진 최준호의 전환 드리블에 나가떨어지자, 한국의 공격수 숫자가 온두라스보다 2명이나 많은 상황이 펼쳐졌다.
– 와!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선수가 있었나요!
최준호에게 두 선수가 벗겨지자 온두라스 수비는 완전히 무너졌고, 최준호는 트리 벨라 기술로 왼쪽에서 단독 침투하는 양희찬을 향해 공간 패스를 하였다.
‘좋아!’
양희찬은 뛰어들며 다이렉트로 발리슛을 때렸고, 온두라스의 골문이 다시 출렁였다.
“와, 이 자식!”
양희찬은 달려오는 최준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다.
같이 뛰면 뛸수록 정말 양파처럼 플레이 폭이 다양하게 늘어나는 녀석이었다.
이대로 성장하면 얼마 있지 않아 세계적인 선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까?
한 편, 온두라스의 감독 카를로스 라몬 타보라는 팔짱을 끼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한 선수가 팀을 완전히 바꿔 놓았군.’
카를로스는 다음 북중미 컵을 위해서 온두라스의 전술을 다듬고 있었다.
자신의 전술대로라면 못해도 비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선수가 자신이 만든 전술을 다 부숴버리고 있었다.
분명 3월의 한국팀은 저렇게 놀라운 개인기를 쓰면서 탈압박을 하는 선수가 없었다.
패스로 공을 돌리면서 상대 수비수를 끌어낸 후에 발 빠른 윙백이나 윙어에게 공을 전달하는 식의 공격을 전개했으니까.
전방에서 강한 압박을 가하면 패스력이 무뎌지고 팀이 쉽사리 무너졌었는데, 지금 카를로스가 상대하는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팀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후방에 박혀 있는 저 선수를 수비력이 좋은 수비수들이 마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지금의 최준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수비력이 좋은 공격수를 써야 한다는 소리였는데, 온두라스에는 그런 자원이 없었다.
‘수비력이 좋은 공격수라니…그런 선수들이 있긴 하나?’
카를로스는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자 가볍게 중얼거렸다.
“제길. 그렇다고 지역 방어로 돌릴 수도 없고.”
전술 실험을 해야 했으니까.
**
전반전 온두라스를 2-0으로 압도한 대한민국.
아무리 강한 압박이 들어가도 최준호에게 공을 줄 수 있다면 그가 어떻게든 풀어준다는 신뢰가 생기면서 후반전에 더 좋은 경기력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후반 8분경.
– 최준호 선수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기회입니다.
– 저 선수의 프리킥은 굉장히 놀랍죠.
– 그렇습니다. 차는 힘도 엄청나고, 정확도 대단하며 공을 차는 기술이 아주 세련됐습니다.
–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저런 프리킥을 공으로 날리면 안 됩니다.
전반에 세 번의 프리킥 기회를 얻었고, 진성용이 찼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하여 이번에는 최준호에게 기회가 부여되었다.
공을 앞에 두고 잠시 하늘을 보는 최준호.
“꺄아아아”
그 모습이 대구 스타디움 전광판에 나오자 여성 팬들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내려 골대를 가만히 노려보던 최준호가 도움닫기를 시작하자, 스타디움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축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의 기질이 다분한 선수.
최준호는 오른발로 감아차기를 시도했고, 그 공은 온두라스 선수를 넘어 골키퍼가 예측할 수 없었던 곳으로 뚝 떨어지면서 그물을 흔들어 버렸다.
또다시 6만 명의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졌고, 여기저기서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 최준호 선수! 골!골!골!!! 골입니다!!!
3월에 보여준 최악의 경기력을 떠올린 캐스터가 울먹이는지 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 아, 정말 오늘 대한민국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너무나 잘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세 번째 골이 들어갔을 때부터 온두라스 선수들의 사기가 심하게 떨어졌다.
여전히 전방에서 강한 압박을 하고는 있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이 뛰고 있다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어수선한 모습을 보였다.
후반 24분경.
– 앗! 조영권 선수 공을 뺏깁니다.
– 공을 저렇게 끌어서는 안 되죠!
– 아, 하지만 최준호 선수가 태클로 가로채기를 합니다. 어, 곧바로 올려주는데요?
박홍민은 정말 놀라운 스피드로 자신을 강하게 마크하는 수비수를 돌아 뛰면서 생각했다.
‘…마치 내 플레이를 다 읽고 있는 느낌이야.’
공을 가로채기하면 자신이 어떤 움직임을 가져갈지, 어디로 향할지를 모두 계산하고 패스를 주는 것 같았다.
낮고 강하게 날아가지만, 톱스핀이 걸린 공은 박홍민의 앞 공간에 떨어지자마자 속도가 확 죽으면서 낮게 튕겨 올랐다.
‘희찬이가 말한 것처럼 정말 미친 택배 크로스네.’
박홍민은 퍼스트 터치하게 좋게 떨어진 공을 툭 차며 스피드를 계속 끌어올렸다.
최고 속도를 유지하는 박홍민을 따라올 수 있는 온두라스 수비수는 단연코 있을 수 없었다.
– 박홍민 선수! 골입니다! 두 번째 골! 우아! 온두라스가 수비 라인을 내리지 않으면 계속 저렇게 당할 겁니다!
신이 난 방송국 캐스터가 환호성을 질러대며 말을 했다.
– 아, 오늘 최준호 선수 자신의 클래스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잘츠부르크를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올려놓은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 1골 2어시스트죠?
– 그렇습니다. 방금도 절묘한 공간 패스였습니다. 아니, 도대체 어린 선수가 어떻게 저렇게 잘할 수 있는 거죠?
– 박홍민 선수가 달려와서 안아주는군요!
– 이야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이 골을 기점으로 최준호 선수는 장우영 선수와 교체가 되었고, 대한민국은 기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경기를 지배했고, 후반 막판에 진신욱의 헤더 골로 온두라스를 5-0으로 격파해버렸다.
경기 MOM은 공수 양면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던 최준호가 뽑혔다.
암울했던 3월 평가전.
대한민국 대표팀에 희망의 빛줄기가 드리운 온두라스의 평가전.
“오늘 MOM이 되신 소감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