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94)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94화(94/184)
94화 월드컵 32강(1)
스웨덴의 안데르손 감독은 월드컵 예선전에서 강호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격파하고 올라와 꽤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굉장히 냉소적인 자국 언론 때문에 짜증이 잔뜩 난 상태였다.
한국은 꺾겠지만, 독일과 멕시코에게는 대패할 것이라며 32강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거의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웨덴 국가 대표팀 중에서 유명한 선수라고는 왼쪽 미드필더를 맡고있는 포르스베리 뿐인데, 이 선수가 최근 RB 라이프치히에서 실망적인 모습을 보인 데다가 중원의 미드필더가 수준 이하라고 비아냥거렸다.
‘망할 새끼들. 도와주고 싶으면 입이나 닥치고 있지.’
그에 비해 한국에는 꽤 눈에 띄는 선수들이 있었다.
토트넘의 박홍민과 잘츠부르크 돌풍의 주역 최준호였다.
박홍민은 정말 무시무시한 스피드와 골 결정력을 가지고 있어서 돌파당하면 거의 골과 다름이 없었다.
최준호는 매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월드 클래스 수준의 슈팅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두 선수 모두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라인을 완전히 내려서 간을 좀 볼 생각이었다.
– 삐익!
경기 시작하고 스웨덴이 완전히 라인을 내리자 한국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라인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웨덴 선수들이 매우 거칠게 수비를 하면서 공이 한국의 수비진에서만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슬금슬금 밑으로 내려가는 최준호.
공이 최준호에게 향하자 최전방에 있던 마르쿠스 베리가 달려들었다.
최준호가 그를 등지기 위해서 몸을 낮추는 순간 마르쿠스 베리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최준호의 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으익!”
최준호가 비명을 지르면서 엎어졌고, 심판은 휘슬을 불어 반칙만 선언할 뿐이었다.
‘뭐야? 고의적으로 걷어찼는데, 카드를 안 줘?’
최준호는 종아리에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을 삭히면서 심판을 째려봤지만, 얼른 일어나라는 신호만 줄 뿐이었다.
경합 과정에서 부딪힌 걸로 인식했던가 아니면, 카드에 매우 관대한 심판이던가 둘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프리킥.
뒤에서 조영권이 킥을 올렸지만 한국 선수들은 키가 크며 몸싸움이 좋은 스웨덴 선수들과 싸움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최준호가 공을 잡았다 하면 근처에 있는 스웨덴 공격수들이 달려들어 다리를 걷어차던, 팔을 써서 유니폼을 잡아당기던, 목을 잡아채던 간에 한국의 최종 수비 근처에서 모두 끊어내버렸다.
서너 번 당하고 나자 최준호는 스웨덴이 후방에서 나오는 자신의 크로스를 경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필이면 카드에 아주 관대한 심판이었고.
최준호는 땅에 박힌 얼굴을 때며 순간적으로 피식 웃었다.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
“아주 작정하고 최준호 선수를 괴롭히는데요? 심판은 왜 저렇게 카드에 인색하죠?”
민선아의 말에 양창명은 바로 앞에서 입술을 꾹 물며 주먹을 쥐고 일어나는 최준호의 표정을 보았다.
“저런 플레이에 흥분하면 곤란한데.”
아마도 스웨덴 진영 측에서는 최준호가 어린 선수다 보니 저렇게 다루다 보면 흥분해서 실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꽤 통하는 모양새였다.
“으악!”
최준호가 굴러오는 공을 받으려는 마르쿠스의 베리의 다리를 둔탁한 소리가 날 정도로 걷어찼고, 마르쿠스 베리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두 발을 잡고는 그라운드를 뒹굴었다.
주심이 달려왔지만 카드는 꺼내지 않았다.
“너 조심해. 다 보고 있어?”
최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고, 스웨덴 응원석에서 야유 소리가 흘러나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박홍민이 달려왔다.
“괜찮아?”
“네.”
평소와는 다르게 짧은 대답에 박홍민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 녀석 흥분한 거 같은데?’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녀석이 이성을 잃으면 엄청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준호야.”
한국 팀의 주장인 박홍민이 최준호에게 한참 무언가를 말하는 모습을 보던 스웨덴의 감독 안데르송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지가 아무리 잘나도 아직 17살의 소년이었다.
정신적으로는 전혀 성숙할 수 없는 나이였고, 당연히 흥분해야 했다.
흥분하게 되면 자기 실력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고.
저렇게 하다가 실수하면 결정적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카드라도 하나 받으면 위축될 게 뻔했다.
‘잘하고 있어.’
안데르손이 박수를 쳤고, 윤태용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저럴 녀석이 아닌데…. 무슨 생각인 거냐?’
스웨덴 팀의 발기술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특출난 몸싸움을 이용해서 그 부족한 발기술을 메우고 있었다.
한국 진영에서 우당탕하며 선수들이 부딪히고 공이 이리저리 구르다가 하필이면 페널티 박스 안으로 달려가는 포르스베리에게 연결이 되었다.
포르스베리가 예리하게 땅볼 크로스를 연결했고, 반대편에서 들어오는 올라 토이보넨이 뛰어 들어 슈팅을 날렸다.
– 뻥!
하지만 바로 앞에서 두 팔을 번쩍 든 조현우의 손에 맞아 튕겨 나왔다.
정말로 엄청난 선방!
튕겨 나간 공은 위치를 잘 선정한 최준호의 발밑에 놓였고, 스웨덴의 미드필더 세바스티안 라르손이 달려들었다.
최준호가 등을 지려는 모양새를 하였다.
‘그래. 흥분하면 플레이가 그렇게 단순해지는 법이야. 좀 더 맘마 먹고 큰 다음에 월드컵에 나와라. 꼬마야.’
라르손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최준호의 다리를 걷어찰 심산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등을 지려던 최준호가 공을 터치 없이 갑자기 몸을 휙 틀었다.
“엇!”
굴러오는 공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 최준호.
라르손이 태클에 실패해서 혼자 허둥거렸고, 후방에 있던 스웨덴 선수들은 박홍민과 양희찬이 빠르게 스피드를 올리자 다급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순간적으로 생긴 넓은 공간.
– 타타탓!
최준호는 주저함 없이 공을 드리블하며 스피드를 올렸다.
“백업해! 빨리 백업해!”
다만 침투를 하려던 박홍민과 양희찬이 수비수와의 몸싸움을 버티지 못하고 그라운드에 쓰러져 버렸다.
둘 다 파울 아니냐고 손을 들었지만, 심판은 파울을 불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최준호는 패스를 줄 곳이 사라지자 어쩔 수 없이 공을 끌고 올라가다가 세 명의 수비수가 달라붙기도 전에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 뻥!
정말 놀라운 속도로 날아가는 공이었지만, 골대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빠르게 몸을 날린 스웨덴의 골키퍼 로빈 올센이 공을 가슴에 안고서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뭐냐?’
선방을 하긴 했지만,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어도 골대로 빨려 들어갈 뻔한 슈팅이었다.
더군다나 공이 얼마나 무거운지 가슴팍이 얼얼했다.
올센의 등골이 살짝 서늘해졌다.
‘이거 위험한데?’
**
“아우! 아까워라!”
민선아가 아쉬움을 토로했고, 대부분의 한국 서포터들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양창명은 턱을 괴고는 최준호를 가만히 보았다.
수비수를 속이고 돌아서는 장면을 볼 때는 분명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 먼 거리에서 중거리 슈팅은 좀 애매한 선택이었다.
최준호가 가진 개인기를 썼더라면 돌파하거나 파울이라도 얻어냈을 텐데.
‘흥분한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팽팽하던 이 분위기는 진신욱이 노란 카드를 받으면서 변해버렸다.
계속 괴롭힘을 당하던 진신욱이 헤더 경합 시 고의적으로 팔꿈치를 썼기 때문이었다.
코피가 터진 스웨덴의 센터백 폰투스 얀손이 간단한 처치를 받고 경기장에 들어오면서 한국팀은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노란 카드를 받아 위축된 진신욱의 수비 가담이 뜸해지면서,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조직력이 뛰어난 스웨덴이 점점 라인을 끌어올리며 한국을 압박하였고, 거의 하프 게임 수준이 되던 전반 37분경.
– 뎅!
중원에서 공을 돌리던 최준호의 발끝에서 터진 장거리 슈팅이 스웨덴의 골대를 강타했다.
‘이건 진짜 위험해.’
골키퍼 올센은 설마 거기서 슈팅을 때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역동작에 걸려 날아오는 공을 그대로 보고 있어야만 했다.
골대를 맞은 공은 그대로 골라인 아웃이 되었고, 올센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팔을 크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저 망할 놈이 슈팅 때리게 그냥 두지 마! 위험하잖아!”
쉽지 않은 기회를 중거리 슈팅으로 끝내버리는 최준호를 보면서 정태용의 안색은 심하게 굳었다.
‘왜 그런 플레이를 하는 거지? 준호야?’
자신이 구상한 그림대로 전술이 굴러가질 않았다.
한 편, 스웨덴 감독 안데르손은 올센이 역동작에 걸려 움직이지 못할 때 가슴이 철렁거렸지만, 얼른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리한 스루패스, 정교한 중거리 슈팅을 가진 최준호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흥분해서 제대로 된 플레이를 못하고 있군. 우리에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어.’
관중석에 앉아 있던 이동민은 어슴프레 웃음을 지었다.
‘대단한 선수네. 우리가 이야기한 것을 진짜로 실행하고 있어.’
**
최준호의 슈팅에 스웨덴이 살짝 움츠러진 사이.
이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지 못한다면 16강은 거의 물건너 간 것과 마찬가지였고, 군 면제가 걸린 선수들이 악바리처럼 뛰기 시작하면서 한국이 다시 기세를 잡고 스웨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공이 가는 곳마다 거친 몸싸움이 일어났고, 스웨덴이 다시 압박하려는 찰나.
공자철과 알빈 엑달이 몸싸움을 벌이던 중 튕겨 나간 공이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 있던 최준호에게 향했다.
최준호가 바로 슈팅 모드로 들어가자, 놀란 스웨덴 수비수 2명이 동시에 뛰어나왔다.
‘…걸렸네.’
최준호의 입가에 살짝 비치는 차가운 미소.
발을 크게 휘저어 슈팅을 때리려던 최준호의 스윙은 강한 임팩트가 아니었다.
가볍게 오른발 인사이드로 공을 앞으로 툭 밀었다.
그들 사이를 뚫고 굴러가는 공은 박홍민에게 연결이 되었고, 박홍민은 오른발로 공을 한 번 접어서 자신에게 달라붙은 수비를 벗겨낸 다음 왼발로 반 박자 빠르게 슈팅을 때렸다.
– 철렁!
올센 골키퍼의 타이밍을 뺏은 박홍민의 절묘한 슈팅이 스웨덴의 골대를 갈라버렸다.
내내 자신감 넘치던 표정을 짓던 안데르손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양손으로 잡았고, 내내 끌려가서 답답해 죽으려던 정태용 감독은 펄쩍 뛰며 괴성을 질렀다.
“좋았어!!!”
한국의 서포터들 쪽에서도 서로 껴안으며 환호성을 질렀고, 반대편 관중석에 있는 스웨덴 팬들은 우울한 표정으로 멍하게 그라운드를 보기만 했다.
박홍민은 그라운드를 뛰면서 여러 번 어퍼컷을 날리고는 달려오는 최준호를 얼싸안았다.
“잘했어! 준호야.”
“멋진 슈팅이었어요.”
박홍민의 찰칵 세레머니가 펼쳐진 사이.
어쩌다 보니 서로 부둥켜안고서 소리를 지르던 민선아와 양창명이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흐흠.”
“으음.”
“이…이렇게 되면 한국에게 이제 경기가 유리하게 진행이 될까요?”
양창명은 붉게 물든 얼굴을 수습하느라 여러 번 긴 호흡을 하였다.
“F조에서 독일과 멕시코는 강팀이기 때문에 스웨덴이나 한국은 이번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야 16강 진출의 희망을 볼 수가 있어. 스웨덴은 이제 공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
스웨덴의 수비 조직력이 매우 뛰어난 것이지, 그들의 공격력이 좋은 건 아니었다.
특히 좋은 기회가 나도 스웨덴의 두 공격수의 골 결정력이 형편 없었기 때문에 양창명은 이 경기가 한국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스웨덴이 잘하는 수비를 포기하고 공격으로 나온다면, 역습에 능한 한국에게도 좋은 기회가 생기겠군요?”
“그렇지.”
이동민은 눈을 돌려 자신의 밑에서 부둥켜안고 좋아하다가 갑자기 축구 이야기를 하는 남녀를 보았다.
‘참…좋을 때다. 그리고 제법 경기 보는 눈이 있네.’
28년간 수많은 축구 경기 비디오를 봤던 이동민이었다.
수많은… 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돌아다니는 거의 모든 축구 경기를 다 보았던 그는 최준호가 정말로 특별한 선수가 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두 명의 스웨덴 수비수가 튀어나온 것.’
그건 최준호가 슈팅을 때린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장면이었다.
한 명이 슈팅 경로를 막고, 다른 한 명이 빈공간으로 굴러올 패스를 차단하는 것이 수비의 정석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것은 오늘 최준호의 플레이는 평소에 그가 보여준 것과는 달리 매우 투박하고 성급했다는 것이었다.
다만 박홍민에게 스루패스를 넣어줄 때는 평소 최준호의 아우라가 보였다.
‘그래…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다 속여 버린 거야.’
…저 어린 선수가.
이동민은 자신도 모르게 또르르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쓱 닦아냈다.
최준호를 통해 대리만족을 했던 이동민은 알 수 없는 감정에 당혹스러워졌다.
**
1-0
한국이 앞서가는 얼마 남지 않은 전반전.
스웨덴이 라인을 끌어올리며 공격을 감행하였다.
물론 그들은 공격이 하고 싶었지만, 스웨덴 선수들의 발기술은 전반적으로 매우 투박한 편이었다.
골을 넣어 사기가 오른 한국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압박을 시작하자, 제대로 된 패스를 할 수가 없었다.
진성용의 강한 압박에 힘겨워하며 횡으로 공을 패스하던 빅토르는 놀란 듯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 파바밧!
누군가 순식간에 뛰어나와 횡패스를 가로채 버렸으니까.
최준호가 스피드를 그대로 살려 공을 툭 치며 튀어나왔고, 라인을 끌어올려 맹공을 펼치던 스웨덴 선수들이 다급하게 자신의 진영으로 뛰기 시작했다.
‘니네 이제 다 읽혔어. 전반전에 날 그렇게 다룬 대가를 치를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