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96)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96화(96/184)
96화 월드컵 32강(3)
진신욱은 근접 마크하고 있는 폰투스 얀손을 등졌지만, 굉장한 압박을 느꼈다.
하지만 진신욱은 조남일 코치에게 배운 대로 무게중심을 낮추고 엉덩이를 살짝 밀어 넣었다.
최준호의 크로스는 약간 앞쪽으로 떨어졌고, 진신욱은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내밀어 공을 살짝 뒤로 흘렸다.
그 공은 폰투스 얀손의 뒷공간으로 떨어졌고, 박홍민과 미카엘 루스티그가 두 선수를 스치듯 달려갔다.
미카엘은 박홍민과 2m 정도는 떨어졌기에 올센 골키퍼가 튕겨 나온 골을 처리하기 위해서 뛰어나왔다.
‘젠장 너무 빨라.’
하지만 자신이 공을 처리하기 전에 박홍민이 먼저 공을 터치할 것 같았다.
그리고 올센의 걱정처럼 박홍민이 먼저 공을 터치했고, 올센은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 촤르륵.
올센이 온 몸을 던져 공을 빼내기 위해 태클을 걸었고, 박홍민은 영리하게 공을 툭 차서 올센의 몸 위로 올렸다.
– 턱!
하지만 올센의 손이 몸을 타고 넘어가는 공을 건드렸고, 박홍민은 올센의 몸에 걸려 고꾸라져 버렸다.
– 삑!
심판이 휘슬을 불고는 주저 없이 레드카드를 꺼냈고, 올센은 허망한 표정으로 심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맙소사!”
스웨덴의 안데르손 감독은 올센 만큼이나 황망한 눈빛으로 그라운드를 보며 두 손으로 하얀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이건 반박할 여지가 없는 완벽한 레드카드 상황이었다.
골키퍼 올센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몇 번 고개를 휘젓더니 힘없이 몸을 돌려 터치라인 밖으로 향했다.
– 그렇죠. 결정적인 상황에서 골키퍼가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공을 손으로 건드렸어요. 이건 완벽한 퇴장입니다! 한국팀 이제 9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스웨덴 결정적인 위기입니다!
– 쟈···쨘슨데요! 끼횻!! 올센 선수!! 이건 퇴장입니다! 그렇죠!! 레드카듭니다!
– 올센 선수 축구 하기 싫은가요? 아니면 눈이 이상해진 건가요? 거기서 왜 손으로 공을 터치하는 거죠? 이건 완전히 땡큐인거죠.
– 끝났어요~~~~스웨덴!!! 끝났어요!!!
“괜찮아요?”
최준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럼. 이 정도 태클이야 자주 당하니까.”
박홍민이 최준호의 손을 잡고 일어나자 대한민국 서포터즈가 모두 일어나 손뼉을 쳐 주었다.
진신욱이 다가오자 박홍민은 엄지를 쳐들었다.
“둘 다 최고였어요. 이대로만 가자고요.”
박홍민의 칭찬에 진신욱의 표정이 밝게 변했다.
한편, 안데르손 감독은 더 이상 실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공격수를 보강해서 동점을 만들 생각을 했다.
그래서 4-4-1이 아니라 4-2-3의 포메이션을 선택했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기댈 방법은 롱 패스와 크로스뿐이었다.
스웨덴에는 백업 골키퍼가 나오고, 공격수가 한 명 더 들어왔다.
대신 오른쪽 미드필더였으며 오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빅토르 클라에손이 나왔다.
‘여기서 지면 희망이 없어.’
교체되어 나가는 선수들에게 일일이 지시하는 모습을 보던 정태용은 강철과 양희찬을 빼고 강주호와 김현수를 넣을 준비를 하였다.
“후방에서 롱 크로스가 자주 날아올 거야. 위험한 상황 만들지 마.”
양측 벤치에서 정신없이 선수 교체가 될 때 최준호는 공을 들고 스웨덴의 골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리는 28m 정도.
왼쪽으로 치우쳐진 곳.
새로 심은 천연 잔디.
물기가 충분히 있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흙.
‘스리백 포메이션으로 가는 걸 보니 스웨덴이 뒤쪽에서 롱 크로스를 올릴 걸 대비하는 거네.’
스웨덴 선수 전원이 피지컬이 좋은 데다가 강민재를 제외한 다른 센터백의 수비력이 불안했기 때문에 최준호는 여기서 스웨덴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 초여름에 돌입하는 6월이었지만, 북방의 러시아답게 시원한 바람이 약하게 코끝을 스쳤다.
스웨덴 선수들이 문전 앞에서 벽을 세우자 최준호는 들고 있던 공을 잔디 위에 내려놓았다.
갑자기 불려 나온 스웨덴의 백업 골키퍼는 상당히 긴장한 표정으로 골대를 붙잡고 계속 수비수들의 위치를 조정해주고 있었다.
‘여기서 슈팅을 때리면 확률상 20% 정도. 쇄도하는 선수들의 머리를 맞추기에는 스웨덴의 높이가 너무 좋아서 불가.’
2-1로 앞서긴 했지만 좀 더 확실한 슈팅 루트가 필요했다.
최준호가 수신호를 주지 않자, 공자철이 가까이 다가왔다.
“준호야, 어떻게 할래?”
“형이 찰래요?”
공자철이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제가 차는 척하고 공을 가로질러서 중앙으로 갈게요. 그쪽으로 차 줄 수 있어요?”
공차절은 최준호의 말을 듣고는 스웨덴이 세운 벽을 보았다.
최준호의 말처럼 좀 더 오른쪽에서 슈팅을 할 수 있다면 빈틈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알았어.”
공자철과 최준호가 양편에 서자, 새로 나온 골키퍼 칼요한 욘손은 가볍게 뺨을 두들겼다.
‘정신 차려! 분명 저 21번이 찰 거야.’
하지만 아웃 포스트로 감아 찰지 니어 포스트쪽으로 찰진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가운데 서서 자신의 민첩성을 믿기로 한 칼요한.
– 삑!
심판의 휘슬이 끝나자 최준호가 천천히 도움닫기를 시작하였다.
최준호가 오른발을 디디고 차려고 하자 몇몇 스웨덴 선수들이 성급하게 점프를 뛰었다.
하지만 최준호는 공을 건들지 않고 횡으로 달려 나갔고, 공자철이 뒤따라와서는 공을 최준호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땅볼로 넘겨주었다.
아차 싶었던 스웨덴 선수들이 뛰어나왔다.
최준호는 왼발로 슈팅을 때릴 것처럼 모션을 취했고, 네 명의 스웨덴 선수들이 몸을 던져 슈팅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공을 꺾어 놓고는 아주 빠르게 오른발로 왼쪽 포스트를 향해 가볍게 공을 툭 올렸다.
‘뭣?’
최준호의 슈팅을 막기 위해서 너무 많은 스웨덴 선수가 튀어 나갔고, 오히려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은 한국 선수들이 더 많은 상황!
그 공은 진신욱에게 향했고, 진신욱은 골키퍼와 자신 사이 공간에 떨어지는 공을 향해 다이빙했다.
– 철렁!
진신욱은 고개를 살짝 들어 골문 안에 들어가 있는 공을 확인하고는 정말 기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으아아아아아!!!”
진신욱이 괴성을 지르며 펄쩍 뛰자, 공자철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손뼉을 쳤다.
‘나도 속았네. 거기서 크로스를 올릴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최준호의 슈팅 페이크에 스웨덴 선수 네 명이 바보가 되면서 완벽한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스웨덴 선수들이 단체로 심판에게 달려가서 오프사이드라고 주장을 하였고, 심판은 얼마 후 VAR 판독이 끝나자 스웨덴 골대를 찍었다.
온 사이드.
골 인정.
한국 vs 스웨덴 3 : 1
진신욱은 벤치로 달려들어 정태용 감독을 부둥켜안고 포효를 하였다.
– 끄악!
– ㅅㅅ!!
– 미쳤다!
– 미친!
– 들어갈 줄 알았어!
– 오늘 최준호 폼 미침.
– 맥주가 달달하네.
– 아, 행복해.
– 이게 축구다!
···
후반 28분 경에 터진 골에 한국의 모든 축구 사이트들은 쉴새 없이 댓글들이 올라갔고, 경기장의 모든 카메라들은 진신욱의 모습을 가볍게 담고는 일제히 최준호를 비췄다.
벤치를 보면서 빙긋 웃고는 박수를 치는 모습···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자신의 진영으로 뛰어가는 모습들이 잡혔다.
– 개간지임.
– 와 빛이 난다. 빛준호!
– 국가대표의 위상은 최준호의 등장 전후로 나뉠 거 같아.
– 캐스터들도 다 속았음. 모두 슛이라고 외치던데.
– 드디어 마지막 퍼즐을 찾았음.
– 진짜 전율이다. 수비 강팀 스웨덴을 상대로 3골이라니.
– 이러다 진짜 우승까지 가는 거 아냐?
– 핡핡핡.
이후 스웨덴은 뻥 축구를 하며 어떻게든 만회 골을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골을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오히려 후반 진신욱 대신 투입된 백의조의 중거리 포에 얻어맞아 실점하면서 스웨덴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최준호
1골 2도움.
패스 성공률 91% (184/202)
키 패스 6회
드리블 5회(성공률 80% 4/5)
경합 상황 7번(성공 57% 4/7)
···
Sofa 스코어 9.2점.
양팀 통틀어 최고의 평점임과 동시에 MOM.
경기 직후 최준호는 모여 있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의 스포라이트를 받으며 인터뷰를 했다.
– 오늘 경기 소감은?
– 승리해서 기쁘다.
– 오늘 놀라운 경기력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 개인적으로 반드시 이기고 싶었고, 밤늦게까지 경기를 보는 모든 분에게 기분 좋은 소식을 주고 싶었다.
– 16강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 물론이다. 우리는 반드시 다음 단계로 갈 것이며 매 경기 집중해야만 한다.
월드컵은 10억에 가까운 축구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최준호의 인터뷰는 매우 무난하게 진행되었으며, 그의 이야기는 세계에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하지만 한국은 4일 후 펼쳐진 멕시코와 경기에서 3-4로 아깝게 지고 말았다.
두 팀은 모두 4-3-3 포메이션으로 나왔는데, 경기 초반 최준호의 스루패스를 받은 박홍민이 이른 시간에 골을 터트렸고, 진신욱이 떨군 공을 양희찬이 골로 연결하면서 경기는 한국에게로 기우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한국의 풀백들이 개인기가 좋은 멕시코의 윙어들에게 털리면서 전반에 2골을 헌납하여 2:2로 마무리되었다.
후반전에 세트피스 상황에서 최준호의 중거리포가 멕시코의 그물을 갈라 다시 3:2로 점수 차를 벌였지만, 한국의 풀백들이 계속 멕시코 윙어들에게 털리면서 결국 후반 35분경에 3:3 동점, 막판에 페널티 킥을 주면서 3:4로 지고 말았다.
한 편, 독일은 수비의 핵심인 골키퍼 올센이 1경기 출장 정지를 받은 스웨덴을 3-0으로 부수면서 1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
F조.
1위 멕시코 승점 6점 득점 6점 실점 3점
2위 한국 승점 3점 득점 7점 실점 5점
3위 독일 승점 3점 득점 3점 실점 2점.
4위 스웨덴 승점 0점 득점 1점 실점 7점
멕시코가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상황이었고, 스웨덴은 탈락한 상황이었다.
나머지 하나의 카드는 한국과 독일의 경기 결과에 달려 있었다.
다만 16강에서 붙을 E조 1위가 브라질로 확정이 되었고, 2위 자리를 스위스와 세르비아가 다투는 형국이었다.
F조에 올라가는 팀들은 되도록 우승 후보 중 하나인 브라질과 붙기를 원치 않았는데, 독일은 한국과의 경기에서 다 득점을 한 후에 멕시코와 스웨덴의 경기를 지켜본다는 입장이었다.
4년 전 2014 월드컵에서 독일을 우승시킨 요하임 뢰브는 꽤 많은 비판을 받는 중이었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엄청나게 큰 공을 세운 리로이 자네를 대표팀으로 기용하지 않았으며, 2014 월드컵의 주역 마리오 괴체도 제외되었다.
더군다나.
– 한국이요? 그게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입니까? 중국이나 일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터뷰까지 하며 한국을 깎아내렸다.
– 16강이요? 당연히 우리가 올라갑니다.
– 최준호요? 요새 좀 주목받는 선수라는 건 알지만, 고작 16살의 소년입니다. 세계 축구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을 좀 할 필요가 있어요. 이번에 제대로 훈육하겠습니다.
– 한국의 약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하하하. 뭐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수비를 정말 못하더군요.
최준호는 호텔에 있는 TV에서 요하임 뢰브의 인터뷰를 보았다.
“뭐 그럴 만도 하지. 4년 전에 독일을 우승시켰으니까···.”
물론 입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최준호의 미간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꼴값 떨고 자빠졌네. 내일 그 망할 입이 쑥 들어가도록 제대로 먹여주지.’
옆에 앉아 있던 진신욱이 최준호를 보면서 말했다.
“넌 참 착한 거 같다. 저런 말을 듣고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하하하. 제가 착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최준호가 씩 웃으며 대답하자,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던 공자철이 힐긋 최준호를 보았다.
“신욱이 형. 그 녀석 착하지 않아.”
“응?”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지만 속으로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고 있을걸?”
“그래?”
“하하하. 서···설마요!”
공자철이 진신욱 가까이에 앉아서 과거 이야기를 꺼내었다.
“메펜이었던가? 독일에서 저 녀석을 만나려고 하는데···”
최준호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서 휴대폰을 들었다.
– 요새 아주 날아다니던데?
엘링 홀란드의 문자 메시지였다.
– 부럽냐?
– 당연하지. 망할 독일만 아니었으면 노르웨이도 월드컵에 나갔을 텐데.
지역 예선에서 독일과 함께 C조였던 노르웨이는 원정 경기에서 0-6으로 박살이 나면서 조 4위로 떨어져 월드컵에 나가질 못했다.
– 그런데 말이야. 아주 놀라운 소식이 있어.
– 뭔데?
최준호는 엘링 홀란드의 문자에 호기심을 가졌다.
– 나 지금 게임 하고 있는데, 누구랑 하는지 알아?
– 내가 어떻게 아냐?
– 레온 고레츠카. 마티아스 귄터 그리고 티모 베르너.
– 응?
– 이 새끼들 웃긴 게 나랑 밤새도록 게임을 했어. 월드컵 기간에 정신 나간 것들 아니야?
최준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 진짜?
– 독일 놈들 때문에 노르웨이가 월드컵에 못 나가서 말해주는 건 아니야.
– 물론. 잘 알지.
– 도르트문트에서 함께 뛸 친구를 위해서 해주는 조언이야.
– 응?
– 다음 시즌에 보자고. 나 다시 게임하러 간다.
최준호는 엘링 홀란드와 나눈 문자를 다시 보았다.
‘도르트문트와 최종 합의가 끝났구나. 그나저나···’
물론 과거에도 한국이 독일을 이기긴 했었다.
곽현우의 미친 선방이 없었다면 불가능하긴 했었지만.
하지만 내일 선발로 뛰어야 할 녀석들이 밤새도록 게임을 했다는 건 꽤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렇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