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98)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98화(98/184)
098화 전차 군단과 붉은 악마(2)
세계적인 골키퍼 노이어가 급하게 뛰쳐나왔지만, 박홍민의 스피드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공을 먼저 터치한 박홍민은 노이어가 방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드리블을 하며 그를 제쳐버렸다.
그리고는 가볍게 골문을 향해 공을 찼고, 독일의 그물이 철렁거렸다.
“···젠장! 아아아아악!!”
마누엘 노이어가 미친놈처럼 소리를 질렀고, 급기야 눈이 시뻘겋게 충혈까지 되었다.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승부욕 때문에 골을 먹으면 가끔 눈물을 터트리는 것은 어릴 적부터의 습관이었다.
그라운드에 터지는 엄청난 환호성과 아리랑 소리.
경기 시작 1분도 안 돼서 세계 최강팀 독일이 실점하고 말았다.
요하임 뢰브는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고 미간을 찡그린 채 의자에서 일어났다.
‘···?’
분노를 넘어서 당황한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 독일은 6명을 로테이션을 돌렸는데, 수비진도 1명이 바뀌었네요. 그간 경기에 나오지 않은 선수이니 감각이 떨어져 있을 수 있어요.
라인을 끌어올리는 팀은 항상 이 뒷방을 조심해야 하는데, 박홍민은 자신을 마크하는 니콜라스 죌레가 매우 느슨하다는 것을 바로 느꼈다.
195cm에 100kg이 넘어가는 체격을 가진 죌레는 대신 민첩성이나 스피드가 확연하게 떨어졌고, 돌아 뛰는 박홍민을 전혀 마크할 수가 없었다.
원래 죌레는 진신욱을 마크하러 나왔는데, 박홍민이 공을 몰며 영리하게 진신욱과 스위칭을 했기에 박홍민에게 달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마츠 훔멜스와 수비 스위칭을 하려던 찰나에 치명적인 공간 패스가 나온 것이었고.
풀백들이 급하게 도움을 주러 달려오긴 했지만, 이미 거리가 상당히 벌어진 터라 박홍민이 노이어를 제치고 슈팅을 때릴 때까지 그의 뒤통수만 보아야 했다.
박홍민은 너무 흥에 겨워 정신없이 달려가며 세레머니를 하다가 몸을 멈추고는 뛰어오는 최준호를 가리켰다.
최준호가 달려들자 박홍민이 부둥켜 안아주었다.
“이 자식 정말 최고네!”
이번 월드컵에서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VAR 판독이 들어갔지만, 박홍민이 죌레를 돌아 뛰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완벽한 온 사이드였다.
“독일 선수들이 굉장히 당황한 듯 보이는데요?”
민선아의 말에 양창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 누구도 예상 못 한 상황이야. 라인을 끌어 잔뜩 올려서 상대를 진영에 가두고 두들겨 패는 축구를 하는 독일로서는 상당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어.”
“제롬 보아탱이 퇴장으로 빠진 게 독일로서는 아쉽겠네요.”
“그렇지. 마츠 훔멜스와 호흡이 상당히 좋았으니까. 박홍민의 움직임도 너무 좋았지만, 정확하게 공간 패스를 떨궈 준 최준호도 굉장했어.”
“최준호의 등장이 박홍민의 특기를 살려주는 상황이군요.”
“그래. 그것만으로 한국팀은 쉽사리 넘볼 수 없는 팀이 되어 버린 거야.”
“독일이 라인을 다시 올릴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이런 상황에 한 두 번 벌어지면 웬만한 팀들은 민선아의 말처럼 라인을 내려서 자신들의 전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지만, 상대는 독일이었다.
그들은 축구의 교과서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기본에 충실한 축구를 한다.
남미처럼 화려한 개인기를 부리는 법도 없고, 각도 없는 곳에서 놀라운 골을 넣지도 않는다.
빠르고 정교한 패스 그리고 절대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지 않고 노마크찬스에 있는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축구를 하는데, 어떨 때는 너무 경기가 단조로워서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이 조직력은 세계 최상급이야.”
양창명의 이야기처럼 독일은 오른쪽 풀백으로 있는 키미히가 공격적인 움직임보다는 센터백들을 보호하는 움직임을 취하면서 박홍민의 라인 브레이킹을 대비하였다.
한국은 10백 전술, 공격수 1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수비하는 전술로 임하였는데 후방의 롱 크로스를 키미히가 센터백과 협력하여 잘 끊어내면서 독일은 라인을 완전히 위로 올렸다.
전반 11분이 된 시점부터는 한국은 수비만 하고 있었다.
압박 강도가 너무 세서 후방 빌드업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 퍽!
최준호와의 몸싸움에서 밀려 그라운드에 나동그라진 메수트 외질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심판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며 항의를 했지만, 이번 주심은 적당한 몸싸움은 인정해주는 편이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와서 세 명의 공격수에게 공을 뿌려줘야 하는 외질이 최준호에게 단단히 막혀서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키미히는 박홍민의 스피드 때문에 수비 지향적인 움직임을 펼치니 독일의 공격은 대부분 왼쪽으로 진행이 되었다.
물론 그쪽으로 한국 선수들이 잔뜩 쏠려 있기는 하지만 개개인의 능력 차이 때문에 돌파를 자주 당하고 말았다.
전반 31분.
패스 마스터 혹은 교수님이라는 별칭을 가진 토니 크로스의 날카로운 크로스가 골문으로 쇄도하는 티모 베르너의 머리에 걸렸다.
골문 앞에서 이런 헤더는 바로 골로 연결되는데, 곽현우가 정말 동물 같은 움직임으로 티모 베르너의 헤더 슛을 튕겨내 버렸다.
튕겨 나간 볼을 레온 고레츠카가 다이렉트 슈팅으로 연결하였지만, 강민재가 몸을 던져 블로킹하였고, 그 튕겨 나온 공은 외질과 최준호가 있는 곳으로 흘렀다.
외질이 먼저 어깨를 넣고 버티려고 했지만, 최준호의 몸싸움이 훨씬 더 능했다.
파울이 안될 정도로만 외질의 유니폼을 잡아당겨 그의 움직임을 제한시키고는 다리와 어깨를 동시에 넣어서 오히려 외질을 등진 최준호.
‘젠장!’
외질은 짜증이 잔뜩 일었지만, 동료들이 도움을 주러 오기 전까지 최준호를 잡아두려고 했다.
그가 몸을 돌리지 못하게 마크하고 있는데, 사실 메수트 외질의 천재적인 능력은 오직 공격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의 수비 능력은 젬병 중의 젬병이었다.
최준호가 몸을 흔들어 외질의 왼쪽을 파고들 것처럼 상체를 움직이자, 외질은 반사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이동시켰고, 최준호는 그때 벌어진 외질의 다리 틈 사이로 공을 넣고는 오히려 오른쪽으로 뛰어나갔다.
단 한 번의 상체 페이크에 메수트 외질이 떨어져 나가버렸다.
한 번 제쳐지자 메수트 외질은 포기한 듯이 따라붙지도 않았고.
많은 공격수가 보이는 이런 일반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넓은 공간이 생긴 최준호는 빠르게 시야를 돌렸다.
단 한 번의 스캔에 한국 선수와 독일 선수의 위치를 머릿속에 담은 최준호는 전방으로 뛰어나가는 박홍민이 아닌 오른쪽 사이드 공간을 향해 스루패스를 넣었다.
독일의 공격이 내내 한국의 오른쪽으로 전개되었고, 풀백인 헥토르는 거의 최전방까지 올라간 상황이었다.
늘 수비만 하느라 존재감이 없었던 강철이 역습 기회가 나자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고, 최준호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모두가 박홍민에게 공간 패스가 갈 것으로 생각해서 그가 있는 쪽으로 몰려갔기 때문에 독일의 왼쪽 공간은 그야말로 텅텅 비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패스 미쳤네.’
스핀을 잔뜩 먹였는지 경기장 위에서 커브를 틀며 정확하게 자신이 뛰어갈 위치에 도달한 공은 순한 양처럼 핑그르르 돌며 느려졌다.
강철이 스피드를 죽이지 않고 공을 툭툭 차며 드리블을 치면서 중앙으로 들어갔지만, 독일의 수비수들은 강철을 마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전방에 나간 공격수들의 복귀가 느렸기 때문에 크로스 정도는 허용할 생각이었다.
한국에 진신욱이라는 장신의 공격수가 있긴 하지만 니콜라스 죌레와의 경합에서 전혀 이기지를 못하고 있었으니까.
대신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선수.
박홍민에게 수비수들의 신경이 전부 가 있었다.
강철이 공을 드리블 치며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진입하자 마츠 훔멜스와 박홍민을 견제하던 케디라가 뛰어나왔고, 강철은 자신의 슈팅이 아주 형편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때리면 노골일 텐데.’
그런 강철의 눈에 구원자가 보였다.
토니 크로스를 달고 뛰는 최준호가 보였고, 강철은 주저 없이 컷백을 해주었다.
그 패스는 살짝 부정확했고, 토니 크로스가 태클로 끊어내려고 다리를 쑥 내밀었다.
하지만 영리한 최준호가 그 움직임을 예상하고 같이 다리를 내밀었다.
– 턱!
토니 크루스의 스터드에 걸린 최준호는 몸을 붕 띄우면서 최대한 비명을 짜내어 질렀다.
“아아아악!!”
공중에 크게 뜬 최준호가 그라운드를 몇 바퀴 구르자 심판의 휘슬소리가 울렸다.
‘뭐···. 뭐지?’
토니 크루스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짝 건든 정도였는데, 왜 저렇게 발작적으로···
하지만 심판에게 옐로카드를 받자 토니 크루스의 얼굴에 당황함이 가득했다.
“야, 일어나. 그 정도 아니잖아?”
토니 크루스가 쓰러져 있는 최준호에게 말을 걸며 다가가자 근처에 있던 진신욱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토니 크루스를 밀쳤다.
두 당사자 이외의 눈에는 매우 위험한 태클로 보였으니까.
“새끼야! 저리 안 가!”
안 그래도 황당한 상황인지라 진신욱이 화를 내는 듯 소리를 지르자 토니 크루스의 얼굴도 험악하게 구겨졌다.
토니 크루스가 잠시 정신을 잃고 주먹을 꽉 움켜쥐는데, 누군가 그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챘다.
“흥분하지 마.”
급하게 다가온 마르코 로이스의 말에 토니 크루스는 정신을 차리고 침을 꾹 삼켰다.
클럽에서는 꽤 거칠게 플레이하는 독일 선수들은 희한하게 국가 대표로 나서기만 하면 모범생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변칙적이고 거친 반칙을 쉴새 없이 하는 이탈리아의 국밥 신세였고.
‘아쉽다. 아주 끝내 버릴 기회였는데.’
최준호는 팀닥터들의 가벼운 처치를 받고는 몸을 일으켰다.
“잘 부탁해.”
공자철이 공을 넘겨주면서 말하자 최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앞에서의 첫 프리킥 찬스였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소중한 기회였다.
다만 요새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마누엘 노이어였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첫손가락으로 꼽는 골키퍼.
독일의 벽은 매우 단단해 보였고, 공 하나 뚫고 들어갈 틈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노이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최준호는 공을 땅에 내려놓으면서 찬찬히 생각을 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를 상대로 머리를 써서 골을 넣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차야 할 곳을 정하고, 그대로 차자.’
최준호는 의식이라도 치르듯 공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여러 번 굴리더니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 삑!
마누엘 노이어는 장갑을 팡팡 치면서 무릎을 살짝 굽히고 공을 노려보았다.
이번 시즌 회자 되는 많은 환상적인 골들이 최준호의 발끝에서 생산되었다는 걸 노이어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슈팅 패턴, 움직임, 버릇 등등···
개인적으로 분석가를 고용해서 자료도 이미 머릿속에 넣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최준호라는 선수는 알면 알수록 알 수가 없는 선수였다.
‘어차피 내 본능적인 직감을 따라야 해. 예측하지 말자.’
여기서 더 골을 먹었다가는 역사상 최초로 16강 탈락이라는 오명을 쓸지도 몰랐다.
최준호가 서서히 움직였고, 마누엘은 자세를 더 낮추었다.
– 뻥!
‘왼발!’
마누엘은 니어 포스트 쪽으로 한 발자국 움직이다가 동공이 흔들렸다.
보통은 벽을 넘기는 슈팅을 때리는데, 지금은 세워진 벽 사이 틈으로 공이 뚫고 왔기 때문이었다.
워낙 강력한 킥이었고, 공은 눈 깜짝할 사이에 골대 앞으로 와 있었다.
몸의 균형이 왼쪽으로 쏠린 노이어는 반사적으로 손을 오른쪽으로 내밀었다.
그 공이 오른쪽에 걸리는 걸 느낀 마누엘은 필사적으로 몸을 더 오른쪽으로 욱여넣고 싶었다.
‘됐나!?’
하지만 어찌나 강한 슈팅인지 손가락을 밀어낸 공이 그물 안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이얍!”
최준호가 주먹을 꾹 움켜쥐고, 공중으로 어퍼컷을 날렸고 한국 선수들이 희열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최준호에게 다가왔다.
노이어를 상대로 골대 중앙 그물을 흔들어 버린 최준호의 프리킥!
– 미쳤다. 이게 말이 되냐?
– 아니 저걸 선방 못 한다고? 승부 조작하냐?
– 축알못들. 저건 예상치 못한 코스야. 누가 저 벽 사이로 공을 차냐?
– 삑사리 난 거겠지? 설마 노리고 찬 거겠어?
– 미친! 정말 독일 꺾는 거야?
– 독일 왜 이렇게 망가졌냐?
– 무슨 소리! 지금 골 점유율이 80대20이야. 독일이 가둬서 패는 중이라고.
– 씨발! 16살이면 나랑 동갑인데. 난 뭐 하고 있는 거야.
– 하앜! 미쳤다!
– ㅅㅅ!
– 씨발 축신 등장이네.
– 독일 박살나는 중!
– 꿈을 꾸는 거 같아.
– 미쳤다.
– 카잔 대첩! 가즈아!
독일 대표팀의 감독 요하임 뢰브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빼 버렸다.
양복 상의도 탈의하고, 넥타이도 거칠게 벗고는 셔츠 앞 단추와 소매 단추를 모두 풀었다.
분명 게임은 독일의 의도대로 풀리고 있는데, 골을 넣지 못하고 오히려 골을 먹고 있었다.
“뮐러. 귄도간, 뤼디거 준비해.”
전반에서는 웬만하면 교체를 거의 하지 않는 독일이 이른 시간에 교체를 단행하였다.
심지어 교체 카드 3장을 모두 다 썼다.
최준호에게 내내 잡아 먹힌 메수트 외질과 오늘 활동량이 저조한 레온 고레츠카, 스피드가 느린 죌레를 빼었다.
한국 선수들이 모여서 골 세레머니를 할 때 교체되어 나오면서 주장 완장을 받은 토마스 뮐러가 독일 선수들을 모았다.
“토니가 공미로 올라가고, 나와 케디라가 중원을 맡는다. 공격할 때는 4-2-3-1 수비할 때는 4-4-2와 4-5-1을 혼용하고. 알지? 예선전에서 우리가 했던 방식?”
똘아이 기질도 있지만 리더쉽도 뛰어난 토마스 뮐러가 선수들의 분위기를 다시 휘어잡았다.
“아직 끝난 거 아니야. 저놈들 멕시코전에서도 2골 앞서가다가 결국 역전당했어. 저 망할 꼬맹이는 내가 맡을 테니까 차분하게 경기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