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99)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99화(99/184)
099화 전차 군단과 붉은 악마(3)
“전반전이 끝이 안 났는데, 세 명을 모두 교체하네요?”
민선아의 말에 양창명은 요하임 뢰브를 보았다.
“다급해진 거지. 이번 승부에 따라서 16강 진출이 확정되니까.”
“저러면 후반에 아무 카드도 쓸 수 없을 텐데요?”
“지금 요하임 뢰브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포메이션이야. 월드컵 예선전에서 한국을 얕잡아보고 절반이나 로테이션을 한 게 실수인 거지.”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들.
특히 유럽팀들은 우승 후 모두 징크스에 시달렸다.
자만심이라는 징크스.
독일은 특히 그게 더 강하였다.
하지만 지역 예선을 뚫고 올라온 32개의 나라 중에서 함부로 얕잡아볼 만한 약팀은 있을 수가 없었다.
‘···과연? 한국의 방패를 뚫을 수 있을까?’
활동량이 좋고 헌신적인 토마스 뮐러가 들어오면서 독일의 점유율은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180cm에 75kg이지만 약골이라고 놀림 받던 메수트 외질이 빠지면서 독일은 압도적인 피지컬로 거칠게 나오기 시작했고, 세계 최고 수준의 조직력을 기반으로 촘촘히 그물을 만들었다.
수비수가 공을 잡기만 하면 사방에서 달려들었기에 미드필더진에게 제대로 된 패스를 주기 힘들었다.
그러다니 보니 계속 터치라인 밖으로 공을 차내는 한국팀.
5분 동안 토마스 뮐러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2번이나 찾아왔지만, 곽현우가 신들린 선방으로 끊어내었다.
– 뭐야? 뮐친놈을 왜 자꾸 놓치는데?
– 결국 클래스 있는 선수가 나오니까 최준호도 안되네.
– 수비 겁나 못하네! 저러다가 멕시코처럼 역전당하는 거 아니야?
– 빛현우다! 골키퍼가 제일 잘하네.
– 느그동생 밑천 다 드러났냐?
– 갑자기 왜 저래?
···
“이거···위험한데요?”
민선아가 가슴을 졸이며 말했지만, 이동민은 오히려 차분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이 상황이 한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겁니다.”
민선아와 양창명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이동민을 보았다.
“토마스 뮐러 선수는 조연이 되었을 때 최고의 활약을 펼치지만, 주연이 되었을 때는 좋은 선수가 아니거든요. 바이에른 뮌헨에서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 프랭크 리베리, 아르엔 로벤과 같은 선수들이 전방에서 흔들어 주기 때문에 뮐러가 빛날 수 있는 거지, 저렇게 공격과 수비를 진두지휘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자신의 강점을 까먹을 수밖에 없어요.”
이동민의 이야기에 양창명은 다시 경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다른 선수들은 매우 타이트하게 마크가 되고 있는데, 유독 토마스 뮐러는 좀 헐렁이는 느낌이었다.
그를 마크하는 최준호가 몸싸움에서 밀리거나 실력의 차이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이동민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좀 더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로 토마스 뮐러에게 기회를 주는 건가요?”
양창명의 물음에 이동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연이 된 토마스 뮐러의 결정력은 형편없는 편입니다.”
통산 득점이 220골이 넘어가는 토마스 뮐러였는데, 결정력이 형편없다니?
양창명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그의 골 통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죠.”
또다시 토마스 뮐러에게 결정적 기회가 갔지만, 최준호는 강하게 압박하지 않았다.
그의 주발인 오른발 슈팅을 때릴 공간만 차단했고, 토마스 뮐러는 왼발로 슈팅을 때렸다.
정확하게 한국 골대 구석으로 향하는 공이었지만, 곽현우가 몸을 던져 다시 선방을 했다.
‘약발 슈팅을 유도하고 있어.’
코스는 정확하지만, 위력이 없는 슈팅.
“토마스 뮐러의 골 대부분이 2차 기회에서 생성된 것입니다. 앞에서 뛰어난 공격수들이 정신없이 상대를 몰아칠 때 토마스 뮐러는 그림자처럼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 골과 어시스트를 만들죠. 하지만 지금 독일 대표팀에선 토마스 뮐러가 주연이 되었습니다.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죠. 특히 최준호 선수가 아주 적절하게 수비를 하는 셈이죠.”
양창명은 이동민의 설명을 듣다가 짧게 탄성을 내었다.
‘뭐야? 이 사람?’
전반전 종료 13분 동안 독일은 한국을 완전히 가둬두고 공격했다.
슈팅 수만 10번.
그중에서 7번이 토마스 뮐러가 찬 슈팅이었다.
전부 다 유효슈팅이었는데 전부 다 왼발로 찬 슈팅이기도 했다.
오늘 컨디션 좋은 곽현우는 토마스 뮐러의 슈팅을 모두 다 잡아내면서 전반전을 2-0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
당연하지만 전반 막판의 경기력 때문에 양 팀의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이야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분명 스코어도 앞서가고 있고, 수비도 잘 해내고 있었다.
선수들은 로커에 들어왔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을 정도로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분위기를 깨는 게 팀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알 수 없었던 정태용은 최준호만 따로 불렀다.
정태용은 최준호가 토마스 뮐러를 너무 느슨하게 수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였다.
그로 인해 너무 많은 슈팅을 주었고, 위험한 상황에 노출이 되었으니까.
“무슨 말씀하실지 잘 알고 있어요.”
호출된 최준호가 먼저 말을 꺼내자 정태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 무지막지한 독일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가장 슈팅 못 하는 선수에게 기회를 몰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으로 움직인 거냐?”
“물론이죠. 현우 형도 동의를 해줬고요.”
“네 생각이니?”
“···음, 다들 이해해줬어요.”
그 말에 정태용은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경험이 많은 노련한 선수들은 감독이 커버할 수 없는 세부적인 전술을 선수들에게 요구하곤 했다.
‘플레잉 코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정태용은 다시 한번 여전히 어려 보이는 최준호의 얼굴을 보았다.
‘모르겠다. 이 녀석이 정말 어떤 녀석인지.’
독일을 포함하여 최근 3경기에서 최준호의 영향력은 이미 박홍민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벌써 3골 6도움이었고, 거의 모든 골에 관여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녀석을 팀원들이 전부 믿어주고 있다면, 더 이상 터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 정태용은 담담하게 웃음을 지었다.
“좋아. 결과를 만들어봐라.”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편, 독일 대표팀의 감독 요하임 뢰브는 찜찜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선수 교체 이후 팀이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여주었지만, 골이라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수들 스스로 후반에는 역전하자고 의기투합하는 상황이라 끼어들기도 힘들었다.
토마스 뮐러에게 압도적인 기회가 찾아오는 것도 좀 수상했지만, 교체 카드를 모두 써 버린 마당이라 저들의 손에 맡겨야 하는 처지였다.
요하임 뢰브는 전반전에 경기장에서 메수트 외질을 지워버리고, 엄청난 활약을 한 최준호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선수 생활을 할 당시 한국 출신의 김범근에게 밀려서 매번 그의 백업을 해야 했으니까.
32강에 올라온 국가 중 내전 중인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축구 관중 수도 꼴찌, 관심도도 꼴찌인 나라 한국.
‘그런 나라에서 왜 자꾸 저런 인재들이 나오는 거지?’
엄청난 돈을 퍼부어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만든 독일이 그런 나라에 지는 건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
후반전이 시작하였고, 경기 양상은 전반 막판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은 크게 밀렸고, 독일은 최종 수비수마저 중앙선을 넘어와서 공격에 가담했다.
조직력의 독일답게 독일은 최종 수비수와 최종 공격수와의 거리가 20m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라인을 촘촘하게 만들었고, 뤼디거와 마츠 훔멜스는 교묘하게 움직여 역습하려는 박홍민을 계속 오프사이드 트랩으로 멈춰 세웠다.
여전히 토마스 뮐러에게는 많은 기회가 났고, 뮐러는 기회가 날 때마다 슈팅을 때렸지만, 여전히 골을 넣지를 못했다.
공격을 퍼붓지만, 독일 선수들의 표정에 패색이 짙어가던 후반 20분경이 지났을 무렵.
토마스 뮐러는 토니 크루스를 몸으로 밀어붙이며 적극적으로 수비하는 최준호를 보고는 뭔가를 깨달았다.
‘이거, 이거··· 아주 나쁜 놈이었네.’
토마스 뮐러는 괴이한 표정을 지으며 꺽꺽 웃고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후반 22분.
토마스 뮐러에게 패스가 올 것 같자, 최준호는 슬그머니 반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자, 열심히 때리라고.’
강민재도 눈치 빠르게 슈팅 공간 일부를 가렸고, 곽현우도 그에 맞춰서 몸을 움직였다.
토마스 뮐러가 슈팅을 때릴 수 있는 공간을 아예 한정시켜버린 것이었다.
토마스 뮐러는 공을 받고는 골대를 보면서 히죽 웃었다.
– 툭.
하지만 슈팅이 아니라 페널티 에어리어로 살짝 올려주는 짧은 크로스였다.
“???”
최준호가 급하게 점프했지만,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고 넘어가는 공.
티모 베르너가 조영권과의 몸싸움에서 이겨내고는 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곽현우도 팔다리를 뻗으며 헤더 슛을 막으려고 했지만, 티모의 머리에 맞은 공은 이미 골대 안을 휘젓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흥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요하임 뢰브가 펄쩍 뛰며 포효했고, 정태용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1-2
토마스 뮐러가 한국의 골대에서 공을 들고는 성큼성큼 뛰어갔다.
도중에 인상을 찡그린 최준호와 시선이 부딪히자 토마스 뮐러는 혀를 길게 내밀었다.
‘···읽혔네.’
최준호는 토마스 뮐러의 등판을 노려보았다.
‘근데 아직 기뻐하기에는 일러. 너희들 교체 카드 다 사용했지?’
골을 넣은 티모 베르너가 쥐가 났는지 골 세레머니도 못하고 그라운드에 누워서 동료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최준호는 그가 엘링 홀란드와 밤새도록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며 눈빛을 반짝였다.
경기는 바로 시작이 되었고, 최준호는 더 이상 토마스 뮐러를 자유롭게 둘 수가 없었다.
예상 밖의 엄청난 압박에 토마스 뮐러는 그를 등지고는 혀를 둘렀다.
‘외질 녀석이 지워질 만 했네.’
지금까지 최준호가 보여준 공격력도 엄청난데, 웬만한 선수는 버티기 힘들 정도의 수비력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에 토마스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어린 녀석이 너무 사기 아니야?’
하지만 뮐러는 월드클래스의 베테랑 선수이었다.
이 정도의 압박이라면 분데스리가에서 얼마든지 느꼈던 것이었다.
후반 38분경.
토마스 뮐러는 최준호의 압박을 버티며 뛰어 들어가는 토니 크루스에게 기가 막힌 스루패스를 넣었다.
토니 크루스는 슈팅을 때리는 척하며 강민재를 끌어내고는 공간 침투하는 마르코 로이스에게 공을 연결했고, 마르코 로이스는 가볍게 슈팅을 때려 한국의 골문을 흔들어 버렸다.
스타디움 관중석 절반을 차지한 독일 관중석에서는 굉음에 가까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요하임 뢰브는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었고, 한국의 벤치는 선수 교체로 분주해졌다.
토니 크루스를 대인 마크하던 장우영이 그라운드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온 힘을 짜내어 독일의 윙백들을 마크하던 강철과 최용이 발에 쥐가 났는지 그라운드에 누워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그건 한국 선수뿐만이 아니었다.
티모 베르너는 쥐가 나서 제대로 뛰지 못하고 있었고, 윙백인 마티아스 귄터도 종아리를 붙들고 퍼져 버렸다.
장우영과 힘겹게 경기 내내 몸싸움을 벌이던 토니 크루스도 그라운드에 앉아서 다리를 쭉 뻗는 것이 쥐가 올라오는 것 같았고.
이미 시즌을 다 치르고, 쉬어야 할 시간에 월드컵에 나와서 나흘마다 힘든 경기를 하고 있으니 선수들 체력 상태가 말이 아니긴 했다.
다만 한국 선수들은 지금이 리그 중간이라 그들보다는 몸 상태가 좋은 편이었고.
이런 상황을 빠르게 눈치챈 토마스 뮐러는 팀이 골을 넣었음에도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골 득실에서 밀리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그와 시선을 마주친 최준호는 팀이 골을 먹었는데도 오히려 담담하게 웃고 있었고.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야?’
최준호는 보란 듯이 씩 웃었다.
이번에는 최준호가 혀를 길게 내밀며 토마스 뮐러를 놀렸다.
“거기는 교체 카드도 없죠?”
토마스 뮐러가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벌렸다.
“뭐라는 거야!”
**
정신없이 선수 교체를 하며, 전술 설명을 하는데 조남일 코치가 다가왔다.
“스웨덴이 멕시코를 3-0으로 앞서고 있다는데요?”
코치의 말에 정태용 감독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사실 스웨덴은 약팀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를 무너트리고 올라온 팀을 약팀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점수에 정태용의 머릿속 계산기가 굴러갔다.
스웨덴과 멕시코의 경기가 저 점수로 끝나고 만약 한국이 이 경기에서 이긴다면 조 1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조 1위로 올라간다는 건 브라질과 맞붙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고.
그렇다면 월드컵 토너먼트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이었다.
“···교체되어 들어가는 선수들에게 전달해줘.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8강에 가까워진다고.”
힘들고 지친 선수들에겐 군 면제만큼이나 동기 부여할 수 있는 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한국 선수들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이기자!’
‘이기자.’
‘1등으로 올라가자.’
최준호 역시 정신 없이 수비를 하다 보니 숨이 넘어갈 정도로 지치긴 했다.
하지만 그는 선수들을 보며 투지가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 세상에서 지는 게 가장 싫어요. 비기는 건 두 번째로 싫어합니다. 경기장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이길 겁니다. 자, 이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