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화(1/300)
1화 고수는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 (1)
게임에 던져진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기적의 가호 M’.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양산형 모바일 게임.
딱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전형적인 과금 모델에, 전형적인 자동 사냥 시스템. 스토어 순위 5위에서 10위 언저리에 있을 법한 그런 게임 말이다.
스토리랄 것도 딱히 없었다.
근데 왜 이 게임을 했냐고? 단순히 작중 여캐의 외모가 취향이었다. 그런데 간간이 콧구멍에 바람이나 넣을 겸 시작한 게임에 삼켜질 줄이야.
다회차를 한 것도, 과금을 지랄맞게 해 특전을 얻은 것도 아닌데, 내가 왜? 하며 투덜거리길 반년.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적응도 했고 나름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 게임 속 인물이 되었다.
지나가던 NPC만도 못한 배경 인물 A, 그게 딱 내 현주소다.
이곳에서 내 이름은 강검마.
어떤 이름 석 자가 뇌리에 스쳤는지 나도 알고 있다. ‘여자가… 말대꾸?’란 대사가 저절로 연상되는 이름.
나도 처음 들었을 때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칼 검(劍)자에 마귀 마(魔)자를 써서 강 검마.
닉네임 재설정하듯 바로 지워 버리고 싶었지만, 이쪽 세계의 아버지께서 큰돈을 들여 작명소에서 지어 왔단다. 이곳에선 이름의 격이 낮을수록 장수한다는 개똥 지론이 있었다. 그래도 아들한테 마귀는 좀 심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개명하고 싶은데,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쓸데없는 현실 고증이 있어서 적어도 성인까지는 이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
어쨌든, 이름의 자잘한 흠만 제외하면 어찌어찌 살 만했다.
중산층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부족함 없이 화목한 가정에, 천만다행으로 ‘기적의 가호 M’의 배경은 한국. 그 부분이 원래 살던 세계와 이곳의 괴리를 그나마 좁혀 줬다. 이름, 지명, 지리도 한두 글자 정도의 소소한 차이만 있었지, 거의 비슷했다.
그 덕에 그냥저냥 동수저 정도 물고 태어난 십 대 소년의 생을 대신 살아 주고 있었다.
지구에선 고등학교 때 집이 도산해 버려서, 어린 나이에 동네 일식집에서 설거지며 청소를 하며 지냈으니까. 삼시 세끼 따뜻한 찌개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복에 겨웠다.
그렇게 1년. 이곳이 게임인지조차 서서히 잊혀 갈 때쯤. ‘응, 현실 아니야.’라고 쐐기를 박는 듯한 종이 한 장이 집으로 날라왔다.
‘호아킨 아카데미’의 입학 통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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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격 통 지 서
수험번호 : 4982-가
성 명 : 강 검 마
위 사람은 2034년도 본 아카데미에 합격하였음을 알려 드리오니 다음( )에 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일 시 : 2034년 4월 17일 09시
2. 장 소 : 호아킨 아카데미 대강당
3. 준비물 : 본인의 무장(武裝) 및 소지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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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세상에! 이거 봐요, 여보!’
‘으하하하, 검마 너는 우리 서리 강 씨의 자랑이다! 역시 이름이 좋으니 복을 타고났구나. 장하다, 우리 아들!’
한껏 상기된 얼굴로 입학을 축하해 주시는 부모님. 서리 강 씨의 관향으로 내려가 돼지라도 한 마리 잡자는 것을 뜯어말렸다. 아니, 애초에 본관이 서리라니. 선조가 도둑 새낀가?
“…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내뱉어졌다. 입학일이 다가올수록 찌푸려지는 눈살은 어찌할 수 없었다.
동수저 집안에서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소박한 계획이 틀어졌다. 씨발.
‘강검마 이 새끼는 대체 어떻게 합격한 거지?’
사정은 이랬다. 내가 빙의하기 전, 강검마는 가호를 발현해 호아킨 아카데미의 수험 시험을 쳤고, 붙은 것.
가호는 대개 유전적이었다. 걸출한 영웅가(家)들은 사전에 혼약을 맺어 그들의 기득권을 견고히 하려 했고, 그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호아킨 아카데미’. 영웅가의 자제들끼리 서로를 재단하고 미래를 맺는 상류층만을 위한 학교.
물론 다른 아카데미 생도들은 주렁주렁 가호를 매달고 입학하는 판국에 내가 그리 특출날 건 없었다.
보통 영웅가(家) 출신이 아닌 이들은, ‘특진생’ 신분으로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에 의의를 뒀다.
솔직히 지금 짐을 싸는 이 시점까지도 강검마 이 녀석이 어떻게 합격했는지 의문이긴 하다.
필기 시험을 얼마나 잘 본 걸까. 덕분에 난 팔자에도 없던 먹물 냄새를 맡게 생겼다.
“가호라…….”
머릿속으로 짧게 ‘가호’라고 외치자, 망막에 상태창 하나가 떠올랐다.
== ==
[무통(無痛)의 가호]통증이 싹 가십니다.
[※ 발동 시간 : 30초, 재사용 대기시간 : 12시간]== ==
강검마가 발현했다는 가호를 보고 있자니 침울함이 감돌았다. 능력 자체는 참 매력적인 가호처럼 보였다.
문제는 발동 시간은 고작 30초인 주제에 쿨타임이 12시간이라는 점. 하루 중 딱 1분이 허락된 발동 시간이었다.
코웃음치며 눈동자를 굴리던 중, 시선이 상태창 귀퉁이에 멈추어 섰다.
‘맞네, 이게 있었지.’
강검마가 아닌 내가 이곳에 와서 새롭게 부여받은 가호.
== ==
[검신(劍神)의 가호]베면 잘릴 것입니다.
[※ 날의 길이가 30센티 이하, 폭은 5센티 미만의 검일 때만 가호가 발동됩니다.]== ==
이름은 검마(劍魔)면서 가호는 검신(劍神)이란다.
컨셉도 이런 컨셉이 없다.
장황한 네이밍과 상반되는 너무나 심플한 내용은 오히려 묘연하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조건이 가장 눈에 띄었다.
칼날 길이 30센티 이하, 5센티 미만의 폭. 애초에 검이라 표기하기도 안쓰러운 사이즈.
규격이 영락없이 한평생 잡았던 회칼의 그것이었다. 여기서마저 회나 뜨라는 건가 싶었다.
물론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새롭게 부여된 삶은 뭔가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텐가, 시스템의 억제력이 내게 날붙이를 들이미는데. 규격이 과도가 아닌 것에 만족했다.
…참 인생이라는 게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
“후.”
짧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 슬슬 짐 싸기를 마치려는 순간.
“아, 맞다. 무장을 안 챙겼네.”
그러고 보니 작중 캐릭터들의 가문의 비보라든지, 무장들이 얼핏 떠올랐다.
최하급인 E 랭크의 무장도 몇천만 원, 평균 수준인 C 랭크는 수억 원대. A급이나 S급의 무장들은 존재 자체로 보배였다.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범한 중산층 정도인 우리 집안에 억 소리 나게 비싼 그런 무장들을 마련해 줄 만한 경제적인 여유는 없었다.
등록금만 해도 우리 집 기준에는 살인적인 수준인 아카데미였다. 등 떠밀려 하는 입학인 와중에 쓸데없는 소비를 늘리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떡하니 준비물이라고 적어 놨는데, 지참하지 않으면 괜히 첫날부터 눈도장 찍힐 것 같았기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몸을 일으켜 지갑을 챙겼다.
“다이쏘(DAIXO)나 가자.”
‘고수는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
백만 원짜리 일제 회칼만 고집하시던 첫 스승님의 입버릇이었다.
* * *
“…입학생. 정말 이게 무기입니까?”
“예.”
입학식 당일,
교관은 검은 머리의 입학생과 무장 심사대를 번갈아 보았다.
‘지금 장난합니까!’라고 표정을 구기며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너무도 태연한 태도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생도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다시 시선이 아래로 떨궜다.
심사대 위에 올려진 포장도 안 뜯긴 꾸러미. ‘30% 세일’이라고 적힌 형광 스티커와 다이쏘 상표가 두드러졌다. 심지어 한 자루도 아니고 열 묶음이다.
교관 인생 10년, 이런 무장은 듣도 보도 못했다. 솔직히 무장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교관은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선 표정을 굳혔다.
“입학생, 아카데미가 장난 같습니까? 오늘 있을 입학 시험에 사용할 무장이 이런 과도(果刀) 따위라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래, 장난이라면 한 번은 넘어가 줄 생각이다. 상류층의 자제들이 다니는 세계 최고의 아카데미인 만큼, 철없이 자란 짓궂은 인성의 학생들은 종종 있었다. 교직원 머리 위에 한번 앉아 보겠다는 지극히 사춘기적 심리.
입학 첫날부터 이런 장난을 친다는 게 적잖은 충격이었지만, 초장에 기강을 잡아 놔야 한다. 이런 부류의 생도에게 가장 효용성 있는 처세술은 기선 제압이다.
교관의 눈매가 겹겹이 늘어졌다. 입학생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게 제 무장 맞습니다.”
맹랑하면서 왠지 모르게 예의가 서려 있는 소년의 어조에 교관은 자신도 모르게 구겨진 이맛살이 펴졌다. 눈치를 살피던 소년은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했다.
“교관님, 저는 평범한 가정 출신인 특진생인지라 비싼 무장을 챙겨 올 여유가 없습니다. 등록금만으로도 부모님께 큰 부담을 끼쳤을 텐데, 저 하나 좋자고 비싼 무장을 맞춰 달라니. 자식 된 도리로 어떻게 그런 불효를 저지르겠습니까.”
“…….”
똑 부러지는 어조에 총기가 깃든 눈빛.
사정을 들은 교관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확실히 상류층이 아닌 특진생들에게는 아카데미의 학비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웠을 터.
평등한 학업의 장이 되어야 할 아카데미에 소속된 사람이 선입견에 사로잡혀 이런 속 깊은 효자를 몰아세우다니.
30%의 세일은 최대한 부담을 절감시키겠다는 눈앞의 입학생의 배려였으리라. 교관의 눈가가 붉게 상기됐다.
그치지 않고 소년은 쐐기를 박듯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장비 탓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합니다.”
흠칫 놀라는 교관. 사춘기 남짓한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올 만한 대사는 아니지 싶었다. 마치 한 분야의 정점을 찍어 본 듯, 말에 관록이 진하게 묻어 있다.
‘고수는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
사뭇 의미심장한 기분에 어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다 이내 소년의 기치에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 그 굳센 곤조에 이유 없이 한 표 던져 주고 싶었다.
“본 생도의 무장, 소지 허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이런 아들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생도,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강검마입니다.”
강검마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칼 묶음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옆에서 줄지어 서 있던 다른 입학생들이 그를 향해 너도 나도 비소를 흘렸다. 그 모습을 보자 교관의 관자놀이에 굵은 혈관이 맺혔다.
“입학생들! 조용히 하고 빨리빨리, 조속히 움직입니다!”
“…….”
조롱을 뒤로한 채로 강검마는 대수롭지 않게 남은 짐을 챙겨 발걸음을 옮겼다.
“본 교관은 여러분의 행동에 따라 천사가 될 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어쭈, 목소리가 작다. 알겠습니까!”
“네!”
교관이 목에 핏대를 세워 고함치자 음충맞던 표정들이 일변했다.
“강검마라…….”
교관은 작게 소년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깊은 인상을 심어 준 뒷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칼 하나는 기똥차게 쓸 것 같은 이름이었다.
* * *
아카데미 교직원 휴게실,
“휴…….”
생도들의 인솔을 끝마친 남자 교관이 피곤한 기색으로 문을 열었다. 칼 단발의 여인이 방긋 웃으며 그에게 손짓했다.
“수고하셨어요, 선배.”
“그래, 고맙다. 어휴 씨, 이 짓도 연중행사라 다행이지, 아직 30대 초반인데 벌써 폭삭 늙어 버린 것 같다.”
검정 교직원 외투를 벗어 던진 교관이 풀썩 소파에 몸을 기댔다. 뭉친 어깨를 손에 압을 주어 살살 마사지했다.
“걱정 마요, 선배. 원래 겉늙으면 나중에 젊게 산다잖아요?”
“콱, 씨.”
“헤헤, 그건 그렇고 올해 생도들 명단 보셨어요? 한 기수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애들이 열댓 명은 왔던데?”
“그렇군.”
교관이 뚱한 표정으로 받아치자 후배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선배는 무장 심사하면서 인상 깊었던 생도 있어요?”
“음, 글쎄.”
턱을 쓸며 잠시 고민하던 교관. 불현듯 한 입학생의 얼굴이 뇌리에 스쳤다.
“어, 한 명 있긴 해.”
“오, 정말요? 누군데요? 창성(槍聖)의 조카? 절궁(浙弓)의 딸도 있고… 아니면 역시 검제의 손녀딸? 걔죠!? ”
“아니, 걔네들 말고 특진생 하나 있어. 눈빛이 똘망똘망하니 마음에 들더라. 철이 들었어, 아주.”
“헤- 여태껏 선배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애는 없었던 것 같은데. 궁금한데 누군지 알려 줘요!”
후배가 눈을 반짝였다. 남자 교관은 낮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먼저 말해 주면 재미없잖아. 이따 봐 봐. 딱 보면 알 거야.”
“특진생이면 가호는 좀 그럴 거고… 혹시 무장이 A급? 아니면 설마 S급이에요!? 무장 정도만 뭐 쓰는지 알려 줘요. 이따 입학 시험 때 주의 깊게 보게.”
교관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이내 한쪽 입매를 올리며 대답했다.
“다이쏘 사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