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0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00화(100/300)
100화 결심 (3)
날이 밝기 한 시간쯤 전.
나는 어두컴컴한 기숙사 책상 앞에 팔짱을 낀 채 우두커니 앉아 있다.
인공 조명보다 어슴푸레한 동녘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더 도움이 됐기에, 굳이 방을 밝히지 않았다.
나는 팔짱을 풀고서 책상에 놓인 종이 한 장을 집었다.
웨폰이 출력해 준 빌런으로 의심되는 자들의 인적 사항이 기재된 서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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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적 사항
① 허벌 쟝 – 2학년 성 클래스 보조 교관.
② 킬가메쉬 – 행정실 비품 담당.
③ 에비야 시로 – 호아킨 아카데미 8구의 정원사.
④ 채서인 – 3학년 범 클래스 보조 교관.
⑤ 링 샤오 – 기숙사 D동의 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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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다섯이군.”
각처에 포진되어 있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렇게 직책이 다양할 줄이야.
교관, 직원부터 시작해 정원사와 사감까지.
꼴랑 다섯이지만 호아킨 아카데미의 테두리 안에 두루 녹아들 수 있는 신분들이다.
‘눈에 띄지 않고, 행동반경이 넓은 직업을 선호하는 건가?’
한데, 최설아가 말했던 ‘교수’라는 인물은 없었다.
그녀피셜, 2군단장 쿠아른 종마인 괴인.
전에 말했듯, 1군단장이 봉인된 지금 마족에서 제일 위세가 높은 마인은 쿠아른이다. 물론 마왕이란 최종 보스가 떡하니 있는 세계지만.
세간에서 마왕의 존재에 의문을 품을 정도로, 밝혀진 것 없는 불가지의 존재다. 하여, 작금의 인류에 있어 가장 위협적이고.
마족 측에서도 2군단장을 기실 우두머리로 여기는 듯했다.
그런 쿠아른의 종마인 그 교수란 놈이 학내 빌런들의 중추이자 심장일 터. 놈만 잡아낸다면 아카데미 곳곳에 깔린 빌런 새끼들도 줄줄 엮여 들어올 것이다.
나는 턱을 괸 채 손톱으로 종이를 톡톡 두드렸다.
“이 쓰레기 중 하나였으면 좋겠는데…….”
물론 위장 신분의 가변성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바뀔 수 있겠다만.
그리고 그 작자는 교수직임을 무척이나 강조하는 변태 새끼라고 했으니……. 이들 중엔 없을 확률이 높다.
‘짜증 나네.’
나는 종이를 덮어 버리곤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그리고서 시선을 창문 쪽으로 옮겼다. 산등성이를 타고 동녘이 떠오르고 있었다.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부산스럽던 상념들이 차츰차츰 희미해졌다.
나는 한참 동안을 갓 태어난 햇살을 쳐다보다 벽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7시. 웨폰과 학원장실을 가기로 했던 약속 시간까지 두 시간 남았다.
몇 시간 전, 병원에서 나와 같이 학원장실을 가자 했을 때, 웨폰의 반응은 정말…….
연미복이라도 차려입고 가야 하냐며 묻는 그에게 난 편하게 오라 일축했다.
하기야, 나야 심심찮게 메디아가 찾아오지만, 통상적으로 일개 생도가 학원장과 독대할 기회는 적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근데 그런 걸 감안해도, 웨폰의 리액션은 투머치했다. 주접이 과해도 병이다.
원래 계획은 나 혼자 메디아에게 가는 것이었다만, 소폭 수정해 웨폰과 동행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입 잘 털기로 소문난 웨폰이 나 대신 설명해 줄 테니까.
그리고 료조가 입원해 있는 동안, 빌런 색출 조사의 브레인 역할을 한 그였다. 내막도 우리 중에 가장 잘 알고 있고, 설명충이다. 웨폰만 한 적임자가 또 있을까?
‘…뭐, 웨폰 데리고 가는 게 그 이유뿐만은 아니지…….’
병원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굳혔던 결심이 있다.
찬연하게 빛나는 달 때문에 빛이 바래 나지막이 깜빡거리던 별들.
작달막한 조명에는 날벌레들이 끊임없이 꼬인다. 하나, 그것들은 감히 태양에게 달려들지 못한다.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감히 전의를 태우지 못하는 건 어느 생물이나 마찬가지다. 왜냐면 그게 생존을 위한 본능이니까.
입지와 힘이 어중간할수록 같잖은 사건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하나만 있어선 안 된다. 둘 다 갖춰져야 한다는 걸, 난 한 인물을 통해 느꼈다.
‘검제 지크프리트.’
여태껏 위태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난 경험과 기지에 의존해 상황을 타개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주변 사람들이 엮이기 시작했다.
료조가 다친 것도, 레온이 빌런들에게 노려지는 것도 내가 했던 행동들로부터 유발된 것일 터다.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당시에 난 살기 위해서, 정사의 뒤틀림을 방지코자 움직였던 것뿐이니.
그런 일 하나하나에 자책한다면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높게 떠오른 태양이 얼굴에 드리웠다. 내리쬐는 햇살은 누군가의 시선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태양을 마주 바라봤다. 직사광에 안구가 아렸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묘한 호승심이 동공에서 타올랐다.
‘무력만 있어선 부족하다.’
그것을 뒤받쳐 줄 바탕이 필요했다.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새삼 어처구니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정사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별 미친 지랄을 다 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입에서 작은 실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미 멈출 수 없고, 결심을 굳힌 참이다. 나아가려면 책임과 리스크는 피할 수 없다.
나는 씻기 위해 샤워실로 향했다. 벽시계의 시침이 어느새 숫자 8을 찌르고 있었다.
* * *
학원장 집무실 안.
널찍한 탁상을 중앙에 두고서 세 거인(巨人)이 둘러싸고 앉아 있다.
창문을 등지고 앉은 현자 메디아를 중심으로.
오른편엔 검제 지크프리트, 왼편엔 아디토레의 당주 알’타이르가 자리하고 있었다.
착석만 하고 있음에도, 세 사람의 존재만으로 공기가 물리적으로 무거웠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짐짓 숨이 막힐 정도로 분위기가 엄중했다.
살얼음판 같은 침묵 속에서 메디아가 입을 열었다. 차갑게 갈무리된 눈을 알’타이르에게 고정한 채.
“…그러니까 알, 네 말은 원로 중 클라디 그 새끼가 발단이라 이거지?”
“네, 맞습니다. 그자가 원로단을 설득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중간고사에서 마인이 출몰한 것 역시 그자의 소행입니다.”
“…그럼 이번 기말고사 건도 관련 있는 거야?”
“착수한 지 이틀이 안 되어 아직 조사 중입니다.”
알’타이르는 공대로 대답했다. 산의 노인이라 불리는 그지만, 메디아보다 두 살 후배였다. 알’타이르는 설명을 덧붙였다.
“원로 클라디의 지출 명세서도 살펴보니, 살인 청부업자 언더테이커들을 고용했던 적도 있더군요.”
“언더테이커? 그 쓰레기 처리반 인간 백정 새끼들?”
“추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가 아발론 섬 인근에 있던 항만이었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아발론 섬까지…….”
메디아의 얼굴에 분노가 짙어졌다. 탁상 위의 찻잔들이 진동하고, 질식할 것 같은 살기가 그녀에게서 피어올랐다.
쨍―!
급기야 찻잔이 검제의 손에 들린 채 깨졌다. 검제는 멍하니 찻잔이 있었던 허공을 응시하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메디아, 조금은 차분해지게.”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뭐, 너처럼 느긋하게 차나 마시라고? 난 교육자야. 이 아카데미를 다니는 모든 생도를 안전하게 돌봐야 할 책무가 있는 사람이라고. 근데 학원 내부 인물이, 그것도 원로‘씩’이나 되는 개새끼들이.”
장난기가 말끔하게 도려내진 음성. 그녀의 안광은 분노로 끓다 못해 차갑게 가라앉았다.
공기가 한계까지 늘려진 고무줄처럼 팽팽했다. 검제는 찻잔의 손잡이 조각을 내려놓았다.
탁- 하는 소음과 동시에 검제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화가 나는 건 자네만이 아니야. 내 손녀 또한 아카데미의 생도인 것을 잊었나. 그리고―”
검제는 잠깐 말을 끊고서 메디아에게 향해 눈짓했다.
시선이 가리킨 곳에서 알’타이르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메디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그의 손녀인 클로이도 이곳,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 더구나 중간고사에서 몸을 다친 직접적인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렇다. 이 셋 중에 부아가 치미는 건 메디아 그녀 하나만이 아니었다. 학부모인 두 사람 역시 드글드글 끓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설명을 듣기 전인 방금까지. 초인적인 자제력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검제가 알’타이르에게 물었다.
“증거는 충분한가.”
“아디토레의 힘으로 두 달 동안 모으고 여러 번의 검수를 끝마쳤습니다. 즉시 척결해도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마무리 지어 놨습니다.”
“…그렇군.”
찰나에 침묵이 일더니 곧바로 검제의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벽장의 책들이 격렬하게 떨리더니 일거에 바닥에 떨어졌다.
“오늘 밤…….”
똑- 똑-
검제의 입이 열린 순간,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원장님, 급한 용무 때문에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격화됐던 분위기에 일순 찬물이 끼얹어졌기에, 세 사람은 머릿속이 일순 하얘졌다.
그들의 정신을 깨우듯,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강검마입니다.”
* * *
강검마가 신원을 밝히자 학원장실의 문이 열렸다.
문틈 새로 시리도록 차가운 기운이 훅 밀려 나오면서 웨폰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안 그래도 긴장으로 몸동작이 굳었는데 이젠 숨이 막히는 걸 느꼈다. 웨폰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사이, 강검마는 대수롭지 않게 턱짓하며 말했다.
“뭐 해, 들어가자.”
“어, 어…….”
강검마는 사나운 기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웨폰도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곤 그 뒤를 따랐다.
집무실의 경관이 보임과 동시에 웨폰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너저분하게 바닥을 구르고 있는 서적들, 벽면과 바닥에는 갓 생긴 듯한 실금이 나 있었다.
무엇보다 웨폰이 경악한 것은, 소파에 앉아 있는 면면 때문이었다.
메디아는 학원장이기에 당연하다지만, 검제 지크프리트도 자리하고 있었다.
검제를 마주하고 있는 노인 역시, 짐짓 형용하기 힘든 분위기를 뿜고 있었다. 메디아가 민망과 당황이 번진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검마! 웨, 웬일이야!?”
“마침 여유가 생겨서, 기말시험 때 일과 더불어 전해 드릴 말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아아, 그거. 맞다. 음, 그리고 옆에 친구는… 스피드 웨폰이었나!? 우리 여행 동아리 부원인!”
“저, 제 이름을 아세요? 학원장님이?”
웨폰은 화들짝 놀라, 말을 어버버 했다. 메디아가 생글 웃었다.
“틈틈이 아카데미 생도 이름을 다 외워 두는 게 취미거든. 얼굴은 거의 못 봐도, 일단 나 학원장이잖니? 삼 년 동안 같이 있는데, 이름도 모르고 보내면 교육자로서 면이 안 서잖아! 물론, 간혹 깜빡깜빡할 때는 있긴 하지만.”
“…그건 메디아, 자네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일세.”
기다렸다는 듯, 검제가 그녀의 말을 걸고넘어졌다.
“얌마, 지크! 애 앞에서 그게 할 소리야!?”
“자네도 전에 생도들 앞에서 망신 줬잖은가.”
“와-! 이 새끼, 이거 뒤끝 긴 건 어떻게 머리가 허옇게 세도 어쩜 그렇게 똑같니!?”
검제와 학원장이 설전을 벌이는 동안, 강검마가 알’타이르에게 툭 말을 던졌다.
“시칠리아로 돌아가셨던 거 아닙니까.”
“메디아 님이 급히 부르셔서 말이야, 어제 급하게 전용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네.”
“…아디토레는 전용기도 있습니까?”
“당연한 소리를. 설마 자네는 없는 건가?”
“…….”
강검마는 대꾸 없이 쯧, 혀를 찼다. 알’타이르는 껄껄 웃고는 돌연 눈을 반짝였다.
“그건 그렇고, 며칠 사이에 더 괜찮은 눈빛을 하고 있구먼. 역시 자네는 날이 갈수록 우리 과란 말이지.”
“…모욕적이네요.”
“하하하, 칭찬일세, 칭찬!”
강검마와 알’타이르 사이에 살가운 담화가 오갔고, 웨폰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저 수더분한 노인이 아디토레의 당주, 알’타이르라고?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웨폰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름도 잠시, 불안감이 시간 차를 두고 치솟았다. 본인 대신 설명을 해 달란 강검마의 부탁 때문이었다.
설명충인 데다 학원장님의 눈부신 외모를 가까이서 볼 몇 없는 기회기에 대번에 승낙했는데…….
올스타 멤버에 가까운 이들 앞에서 브리핑한다니, 턱이 떨려 혀나 안 씹으면 다행일 것이다.
웨폰의 동공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어떡하지? 그냥 못 하겠다고 말해 버릴까? 상념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런 그를 강검마가 흘깃했다. 그러곤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해, 웨폰.”
요동치던 웨폰의 눈동자가 제자리를 되찾았다. 쿵쿵거리던 심장 소리도 점차 약해졌다.
“부장, 네가 그렇게 말해 준다면야.”
결연한 대답에 강검마가 씩 웃은 뒤, 크게 헛기침했다.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모였다.
“여기 있는 친구가, 저 대신 상세히 말해 줄 겁니다.”
그 말에 웨폰은 고개를 주억이면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는 침을 한 번 삼켜 목청을 가다듬고, 혀를 풀었다.
웨폰은 크게 숨을 집어삼킨 뒤, 토해 내듯이.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쏟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