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0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06화(106/300)
106화 숙청의 밤 (5)
별안간에 등장한 중년 남성. 그가 자로 재단하고 뚫은 듯한 깔끔한 구멍에서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그 강렬한 등장에 암살자 두 사람은 잠깐 주춤했다. 그들도 짐짓 느낀 듯하다.
저자가 지금까지 베어 넘긴 어중이떠중이 빌런들과는 격이 달리한다는 것을.
얼굴에 놀람과 당혹감이 떠오른 두 사람. 흠칫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이유가 그들과는 달랐다. 내가 놀란 건, 저 사람의 정체였다.
‘가호학과 데미안 교수.’
축제 전날, 개인적인 상담까지 들어 줬던 인물이 흑막이라니.
아니, 그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점은.
표면상 ‘교수’라 불리는 줄 알았는데, 직분이 진짜 교수라는 점이었다.
그것도 매우 유능하고 유명한 인물. 어쩐지 일전에 러시아산 홍차를 권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 싶었다.
한데, 저자가 막후였을 줄이야.
‘그건 그렇고…….’
어째서 상담받았을 무렵에 데미안의 정체를 간파하지 못했던 걸까. 잠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까닭을 금세 떠올렸다.
그 당시에 난 깜빡하고 사시미를 챙기지 않았었다. 정말 이례적인 상황이었는데 그때가 하필 데미안과 독대하는 시간대였다니.
마치 누군가 의도한 듯한 엇갈림에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은 취소다.’
이런저런 잡념을 하는 사이 돌연 까무잡잡 빌런이 턱을 쳐들며 따지듯 소리쳤다.
“야, 교수! 왜 이제야 온 거야, 어!? 너만 금방 왔어도 판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젠장!”
“흠.”
교수는 뒷짐 지고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말의 감흥도 없는 시큰둥한 눈으로 훑고는, 대꾸했다.
“본인들이 약한 걸 가지고, 저한테 뭐라 하다뇨. 우둔하군요. 제가 가르치는 생도들보다 어리광이 심합니다.”
“뭐, 이 새끼야!?”
방금 전까지 이산가족 상봉한 듯한 얼굴을 하더니, 사소한 모욕에 바로 적의를 내비치는 사내.
빌런들을 보며 느끼는 거지만 참 본능에 충실한 족속이다. 약간 뇌가 필터를 안 거친다는 느낌?
가만 생각해 보면, 최설아가 빌런 중에선 가장 상식인 축에 드는 것 같았다.
적어도 최설아는 위급 시 사리 분별 정도는 하니까. 반해, 저 사내는 유일한 아군인 교수에게 바락바락 대든다.
‘병신인가?’
“얌마, 내 말 무시해!?”
“하아…….”
사내의 뻔뻔한 태도에 교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뗐다.
“…아무리 빈 깡통이 요란하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런 자와 같은 빌런이란 게 낯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뭐?!”
“웬만하면, 살려드리려 했는데 너무 시끄럽군요. 계도해드리겠습니다.”
“지-랄, 염-.”
사내의 입이 벌이지기 무섭게, 교수가 손을 튀겼다.
빡-, 하는 소음. 이어서 솟아오르는 선혈.
어깨 위에 있던 사내의 머리통이 비명도 못지르고 터졌다. 아니,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저, 저건.”
그 광경에 녹스가 입술을 떨었다. 속도가 장기인 그도 포착할 수 없었던 모양.
당주인 알’타이르의 표정도 일순 굳어버렸다. 백전노장의 자신감은 경험에서 나온다.
그러나 저 마법은 그로서도 처음 보는 것일 터. 그가 흠칫하는 것도 일견 이해가 됐다.
교수의 마법 한방에 바람이 반대로 불었다.
암살자 둘은 침음을 흘리며 칼자루를 말아쥐었다. 죽음을 각오한 손아귀에는 힘이 잔뜩 실려있었다.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것 같았기에, 나는 잠깐 대기하라고 눈짓으로 전달했다.
전력이 파악되지 않은 적이다. 무턱대고 나섰다간 개죽음만 당할 뿐이다.
알’타이르도, 녹스고 이의는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디가 환희에 찬 얼굴로 교수 쪽으로 엉금엉금 기었다.
“구, 구해주러 오셨군요!”
잔뜩 헤실헤실 비굴한 웃음을 머금은 클라디.
교수는 투명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말입니까? 왜요?”
“…예, 예? 그게 아니라면 제 별채로 빌런들을 소집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푸하하하하!”
교수가 돌연 폭소를 터뜨렸다.
복도에 쩌렁쩌렁 메아리치는 사악한 웃음소리. 클라디는 넋 나간 표정으로 얼을 탔다.
“아이고, 원로님이 농을 쳐주신 덕에 오래간만에 이렇게 웃어봅니다. 근데 말입니다. 제가 뭐가 좋자고, 원로님을 구해 드리겠습니까? 터럭만큼의 가치도 없이, 이리저리 박쥐처럼 빌붙는 당신을요?”
“…….”
“벌레, 병신, 쓰레기, 오물 그 어떠한 단어로도 당신을 표현할 수 없겠군요. 지옥 구렁에 떨어진 당신의 아버지가 통곡할 겁니다.”
교수는 클라디에게 말로 사정없이 난도질을 가했다. 선 넘은 패드립을 빼고는 대부분이 팩트였다.
클라디의 눈썹이 한번 꿈틀, 두 번 꿈틀하더니 이윽고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비, 빌런인 네놈이 할 말이더냐!?”
꼴에 남은 자존심은 있는지, 클라디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번 농담은 웃기지도 않는군요. 그런 저희에게 빌어먹는 원로 당신은 뭡니까. 줏대도 없고, 사리 분별할 지성도 없는 당신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내리깔린 교수의 눈동자는 서늘했다.
“그리고 제가 빌런들을 이곳으로 소집한 이유. 알려 드리지요.”
“…….”
“당신은 일종의 미끼였습니다. 저들 세력을 찢어 놓을 미끼. 아무리 저라도 검제, 학원장, 아디토레가 합심한다면 적수조차 되지 못하니까요. 제 목적은 당신 같은 ‘미물’이 아니라.”
그리 말하며 교수는 돌연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여느 때와 같은 인자한 미소로 내게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생도 강검마. 그간 잘 지냈나요?”
“…….”
“제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 궁금한 눈치군요. 이유를 알려 줄 테니, 너무 노여워 말아요.”
교수는 사근사근한 음성으로 이어 말했다.
“최설아 양이 배신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뿐입니다. 강검마 생도도 알다시피 그녀가 워낙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잖습니까, 비굴할 정도로 말입니다. 위급할 땐 강검마 생도한테 붙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반박할 수 없는 팩트긴 하다.
“그래서 그녀 몰래 도청 마법을 걸어 뒀습니다. 제 보잘것없는 재주 중 하나지요.”
“…….”
미친 변태 새끼.
어쩐지, 타이밍 좋게 빌런들이 있다고 했더니 저 새끼의 물밑 작업 때문이었나.
내가 눈살을 찡그리자 교수가 손을 내저었다.
“제게 그런 악취미는 없으니, 오해는 안 해 줬으면 좋겠군요. 그저 그녀의 성정이야 일찍이 파악해 뒀기에, 예방 차원에서 마법을 걸어 뒀던 겁니다.”
범죄를 저리 뻔뻔하게 말하는 것에 어이가 없어졌다.
…뭐, 빌런인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범죄자이니 더 말을 붙여서 뭐 하겠나.
나쁜 놈이 나쁜 짓을 저질렀을 뿐이다.
다만 감청당한 줄도 모른 채, 희희낙락 지냈을 최설아가 살짝 측은했다.
‘최설아한테 이 사실을 알리면 혀 깨물 수도 있겠네.’
교수는 도로 시선을 클라디에게 두었다. 내게 지어 보이던 미소는 깔끔하게 지운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빌런들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당신이 지레 겁먹고 도망치지 못하게끔 붙잡기 위함이었습니다. 클라디, 당신은 언제나 그러지 않습니까. 겁나면 도망부터 치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또라이 새끼!”
“학술자로서 종종 듣는 말입니다만, 그게 원로님의 마지막 유언이라니 참 유감입니다.”
데미안 교수는 오른팔을 살포시 들어 올렸다. 엄지와 중지를 붙인 손 모양새를 보이며.
“……!”
그 손동작에 클라디가 경련하듯 몸을 떨어 댔다.
녀석은 직감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제 죽음을.
결국 압도적인 탈력감을 느꼈는지 클라디는 풀썩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뱉을 괴성이나 짜낼 애원도 없는 듯, 허무만이 그의 동공에 맴돌았다.
“…씨발.”
상황을 보고 있자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클라디의 목을 베고자 친히 왔더니, 저 교수 새끼가 막타를 치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클라디의 명줄만큼은 넘겨줄 수 없다. 내 손으로 직접 족쳐 놔야 잠자리가 편할 테니.
게다가 한국에는 막타를 빼앗으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도 있다. 한마디로 데미안은 지금 선을 세게 넘으려는 것이다.
‘저 개새끼가.’
데미안 교수가 클라디를 향해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그간 배부르게 오래 사셨으니, 삶에 여한은 없을 걸로 압니다.”
타―악―!
말을 마친 교수가 손가락을 세차게 튀겼다.
그와 동시에 난 심상의 영역을 전개했다.
[무통의 가호] 잔여 시간은, 5초 남짓.고통 경감률을 따져 봐도, [검신의 가호]의 지속 시간은 길게 잡아도 10초다.
확실하지 않으면 당하는 쪽은 도리어 우리다.
그렇기에 십상의 영역을 운용해, 해답을 찾아내야만 한다.
⎯⎯⎯⎯스스스⎯⎯⎯⎯
시간이 잘게 쪼개짐을 느꼈다.
처음엔 0.1초… 0.01초… 0.0001초… 0.000001초.
이윽고 세상이 굼떠 보일 만큼 늘어진 시간의 흐름 안에서.
돌연 전방에서 공기가 너울거리며 응축된다. 물리 법칙은 진작 넘어선 시각이 인위적인 현상을 눈에 담아냈다.
‘찾았다.’
그간 마력을 다루는 여러 적을 베어 온 덕일까.
눈에 들어오자 저 마법의 요체가 한순간에 파악된다. 마력으로 대기를 폭탄처럼 뭉쳐 터뜨리는 것.
공(空) 속성 마법.
형상도, 질량도, 매개 그 어느 것도 없이 발동되는 사기적인 성능.
말 그대로 무결. 약점이 없는 일방적인 공격을 가능케 하는 마법이다.
그리고 저 교수 새끼의 엄지와 중지 틈새에서 뻗어 나온 반투명한 실.
요컨대, 저 선이 무형의 폭탄과 마법 시전자를 잇는 심지일 터.
다만, 저 실조차 형태도 뭣도 없으니 끊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그 얇디얇은 실선에 그어진 또 다른 붉은 선이 망막에 떠올랐다.
⎯⎯⎯⎯뚝⎯⎯⎯⎯
심상의 영역이 거둬짐과 동시에, 나는 곧장 노끈을 꽉 붙들고서 무라사메를 쏘아 냈다.
시식!
빛살이 교수와 클라디의 간극을 가로질렀다.
교수가 손가락 튀기는 소음이 들린 건 그다음 순간이었다.
파―앙―!
파공음.
공기 폭탄이 허공에서 터졌다.
“……!”
교수가 선 채로 굳어 버렸다. 그는 목을 뻣뻣하게 움직이며 나를 바라봤다.
“…뭐, 무슨 짓을.”
조금 전까지 자신만만함은 온데간데없고 말을 더듬는 교수. 그의 동공은 불안함으로 지진이 났다.
나는 관자놀이를 톡톡 건드렸다.
“전에 네가 말했잖아, 나 머리 좋다고.”
“…….”
교수뿐 아니라 알’타이르, 녹스, 눈을 앙다물고 있던 클라디.
그들 역시 할 말을 잃은 듯, 눈만 깜빡였다.
특히나 알’타이르가 설명을 바라는 눈치였지만, 지체할 틈이 없었기에 시선을 무시했다.
휘릭!
나는 노끈을 잡아 끌어 무라사메를 회수했다. 곧장 손바닥에 착 안착하는 칼자루.
천성이 칼잡이라 그런지 투척보단 잡고 써는 게 제일이다.
눈을 들어 올려 교수의 동공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원래 가방끈이 길수록 불가해한 현상에 더 동요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무색무취의 마법, 공 속성 마법의 묘리를 간파당했으니 돌처럼 굳은 저 반응도 일견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솔직히 다른 빌런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데미안이지만, 내 눈엔 그놈이 그놈이다.
애당초 까무잡잡 빌런의 머리를 터뜨린 것부터 교수도 결국 빌런이라는 방증이다.
자신에게 도취해 유일한 아군을 제 손으로 죽였으니 말이다.
솔직한 말로, 저 새끼가 최설아보다 멍청해 보였다.
적어도 최설아는 제 살길은 귀신같이 찾으니까.
나는 한 걸음 크게 내디뎠다.
“데미안.”
교수가 주춤 발을 뒤로 뺐다. 그러곤 그는 곧바로 마력을 긁어모은다.
‘남은 시간은 대략 8초.’
시간보다도 찰나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하지만 이 지리멸렬한 상황을 매듭짓기에는 ̄
씹어 뱉듯 데미안에게 선언했다.
“베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