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0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08화(108/300)
108화 1학기의 끝 (1)
“끄아아아아아아악”
목청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는 클라디. 아니, 정확히는 벌써 성대가 나갔는지 울컥울컥 피를 쏟아 냈다.
클라디는 완전히 피죽이 된 상태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흐릿한 눈동자, 하나씩 잘려 나간 팔과 다리.
그를 심문하는 알’타이르, 녹스 두 사람의 작품이었다. 천성이 암살자라 그런지 고문을 가하는 솜씨가 대단했다. 멀찍이서 보는 내가 섬뜩할 정도로.
“제, 제, 제발 죽여 줘.”
클라디는 조금 잘린 혀를 움직였다. 조금 전, 턱뼈를 후들거리다 제 이빨로 씹어서 저리됐다.
허허 한번 웃음 짓던 알’타이르가 표정을 반색하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케인 소드의 검날이 하나 남았던 클라디의 손등을 훑고 지났다. 썩둑-, 파육음에 이어 선혈이 솟구쳤다.
클라디는 다시 절규성을 터뜨렸다.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우렁찬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녹스가 눈살을 찡그렸다. 바로 앞에서 심문하는 만큼 귀가 아픈 모양. 그는 한 손으로 클라디의 턱뼈를 덥석 움켜잡았다.
“으윽, 으읍!”
클라디는 비명을 토해 내지 못하고 입 안에 머금었다. 돌연 알’타이르가 얼굴을 그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이러기 싫네. 비록 예전부터 자네를 몹시 싫어했네만, 나라고 좋아서 이러겠나? 하지만 배신자의 말로가 곱다면 질서가 바로 서지 않는 법이야. 무엇보다 클라디 자네는 인류를 배신하지 않았나. 모름지기 매국노에 대한 처분은 다소 잔혹할 필요가 있지.”
알’타이르가 손수건을 꺼내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클라디는 반만 남은 몸을 떨며 항변하려 했다. 하지만 녹스의 손에 입이 틀어막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한쪽의 일방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클라디의 눈동자에선 생기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포기했군.’
숙인 고개의 각도가 점점 내려갔다. 한평생 우대받고 살아온 원로의 끝이라기엔, 한없이 초라하고 비참했다.
뭐, 저 새끼가 한 짓거리들을 생각하면 딱 걸맞긴 하다.
아카데미의 생도를 해하려 했으며, 인류를 배신하고 마족에게 빌어 붙었다.
살인 사주에 매국이라니.
곰곰이 되짚어 보니 두 번 죽여도 모자랄 판이다. 알’타이르 말마따나 과할지라도 저렇게 해 두어야 싹이 자라나지 않을 터다.
‘아, 맞다.’
생각해 보니 클라디에게 묻고 싶었던 게 있었다. 더 캐낼 게 있을까 싶지만 마른 수건도 다시 짜면 물방울이라도 나오는 법이다.
나는 그들이 있는 쪽으로 발을 뗐다.
검날에 묻은 피를 완전히 털어 낸 알’타이르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인자한 미소로 내게 말을 건넸다.
“어, 금방 끝나네. 잠시만 기다리게나. 이런 건 우리 전문이네. 외부인에게 보이기에 민망한 장면이기도 하고 말이지.”
“잠깐 저 자식에게 물어볼 게 생각나서요.”
내 말에 알’타이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게, 눈만 뻐끔거리는 클라디가 무엇을 말할까 싶겠지. 하물며 삶을 포기한 녀석이 말이다.
그러나 알’타이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녹스에게 봉쇄된 입 구멍을 열어 주라 눈짓했다.
“꺼어, 꺼억.”
그제야 가냘프게 호흡하는 클라디. 상흔의 곳곳에서 핏물이 즙처럼 배어 나왔다. 나는 그 앞에 무릎을 쪼그렸다.
“야.”
클라디는 목에 힘이 풀렸는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만, 눈만 살짝 올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회백색 막이 드리운 동공을 마주 보고서 다시 입을 뗐다.
“죽기 전에 이거 하나만 묻자. 원로 중에, 아니 귀족 중에 너한테 동조한 놈들이 누구야.”
“…….”
“너야 여기 현장도 그렇고 증거가 충분하지만, 녀석들은 없을 거 아니야. 네가 실토하면 바로 보내 달라고 말해 볼게.”
그 말에 클라디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본인도 알 것이다, 이미 살기는 글렀다는 걸.
그렇다면 최대한 이 고통의 연쇄를 끊어 내고 싶을 터. 단칼에 죽여 준다는 이 제안마저 달콤한 유혹처럼 느껴지겠지.
박쥐 같은 녀석의 성정이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게다가 이런 고문 현장에 익숙지 않은지라, 이만하면 됐다는 심정도 있었다.
자비심을 베푸는 건 아니고, 그냥 잠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았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암살자 두 명에게 의사를 물었다. 답변은 당연히 예스.
도리어 알’타이르는 그게 맞는 것 같다며 기껍게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디가 입을 뻐끔거렸다. 명치 근처의 자상에서 핏줄기가 솟았다. 허파가 찔려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이다.
녹스가 신속하게 그 부분만 천을 감아 지혈했다. 그제야 클라디의 잇새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정말인가.”
진득한 핏물이 실타래처럼 그의 윗니 아랫니 사이를 이었다. 나는 고개를 까딱여 대답했다.
“네가 두 번 씹어먹어도 모자란 놈이란 건 알아. 그래도 마지막으로 속죄할 기회를 줄게. 있는 대로 전부 털어놔 봐.”
“…….”
장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욱했던 흙먼지도 잦아들고, 구름에 가려졌던 달빛이 칠흑을 걷어 냈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곧 죽을 것 같은 녀석이 생각을 고르다니, 조금만 지체하면 숨소리가 멎을 것 같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추궁하려던 순간에.
“푸하하하하하하하하!”
뜬금없이 클라디가 광소를 터뜨렸다.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이라도 짜냈는지 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면면들에 금이 갔다. 다 죽어 가던 녀석이 다짜고짜 미치도록 웃어 대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녹스가 반사적으로 홍륜도를 들어 올렸다. 알’타이르가 손을 뻗어 제지했다.
나는 쪼그렸던 무릎을 피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차갑게 눈을 깔았다.
클라디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아무리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한들, 내가 네 따위 천한 놈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나? 턱도 없군. 그리고 어차피 난 금방 죽을 몸이야. 그런데 나에게 협박한다? 그것도 천하디천한 특진생이? 어이가 없군그래!”
어이가 없어 실소가 삐져나왔다. 꼴에 악당이라고 곤조는 있다는 건가. 저 정신머리라면 애초에 인류는 왜 배신했단 말인가?
게다가 와중에도 선민사상까지 읊어 주신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역시 오늘도 또 한 번 선현의 가르침을 받는 나였다.
“내가 죽은 후엔 원로들이, 아니 귀족 전부가! 네 새끼랑 아디토레를 가만둘 거 같나!? 그때는 오히려 강검마 네가 죽음을 구걸하게 될 거야!”
이골이 난다는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 기껏 선심을 부려 줬건만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깨문다더니.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발로 클라디의 하나 남은 발목을 지그시 눌렀다.
“이제는 통각도 없어져서 아픔도 안 느껴지는군! 어디 더 해 보거라!”
클라디는 입술까지 깨물어 가며 애써 힘찬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전이의 가호]와 [재생의 가호]를 발현했다.
원래는 팔을 뻗으려 했으나 이런 벌레 새끼를 잡는 건 비위가 상했다.
스스스스-
곧바로 순백의 기운이 내 발끝을 타고 클라디의 몸에 스몄다.
이곳저곳 부서지고 찢긴 상처들에서 수포가 올라오더니 절단면이 아물었다.
“……!”
느닷없는 치료에 클라디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옆에 서 있던 암살자 두 사람도 황당한 기색으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탁해져 가던 동공에 얼추 생기가 깃들자 나는 가호 발현을 끊어 냈다. 나를 올려다보는 클라디의 눈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나는 곧 차갑게 목소리를 뱉었다.
“어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 봐.”
순간 새파랗게 죽어 버린 클라디의 안색. 뇌 정지가 왔는지 눈빛과 입이 따로 놀았다.
나는 시선을 홱 돌려 알’타이르와 녹스에게 일러두었다.
“얼추 눈에 보이는 상처들은 살이 돋았을 겁니다. 말할 생각 없다니까 개의치 말고 지지고 볶는 건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듯이, 싹은 미리미리 잘라 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겠네.”
그리 말하고 발걸음을 꺾자 바로 등판에 목소리가 내다 꽂혔다.
“자, 잠깐만!”
애타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클라디. 나는 고개를 반만 틀어 곁눈질했다.
날이 상해 톱처럼 보이는 단검을 꺼내는 알’타이르와 녹스. 그들의 발치에서 아등바등 도망치려는 클라디.
나는 곧 참상이 연출 될 그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선택한 거다.”
그러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먼젓번보다, 비명이 길게 늘어졌다.
10분 정도가 지나고,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메아리가 사그라들었다.
* * *
검제와 학원장이 현장에 도착한 건, 클라디가 죽고 30분이 지났을 때였다.
빌런 다섯을 도륙 냈던 공터보다 진한 피비린내가 그들을 반겼다. 두 사람은 약속했다는 듯 침음성을 흘렸다.
“…허.”
지옥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듯한 참혹한 광경. 숱한 전선을 누벼 온 칠성 영웅에게마저 얼얼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이런 소요는 흔치 않았다.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검제에게 알’타이르가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검제님.”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설명할 게 있겠습니까, 보시는 대로입니다. 경비병 쉰 명에 빌런 총 열다섯 그리고 클라디까지. 전부 처리했습니다. 물론… 저희 쪽 인원도 더러 죽었습니다만…….”
알’타이르의 얼굴에 일순 침통함이 번졌다. 메디아는 이해가 안 간다는 기색으로 말에 끼어들었다.
“아디토레 최정예가 당했다는 게 말이 돼? 아니, 애초에 왜 이곳에 빌런이 열다섯 명이나 있는 건데!?”
그는 숨을 한번 고르고서 말을 이었다.
“학내에 잠입했던 빌런 중 우두머리로 보이던 교수란 작자가 총 전력을 이쪽으로 보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그자의 얕은꾀에 놀아난 듯합니다.”
“아니, 이런 미친.”
메디아는 단말마의 욕을 내뱉으며 골을 싸맸다. 화가 나기는커녕, 도리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알’타이르가 일전에 관해 설명하고, 검제와 학원장이 허탈한 표정을 짓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몇 분가량 세 사람 사이에 오가던 대화가 끝이 났다.
“미쳤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메디아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사실 아직 머리가 그 내용을 전부 인지하지 못해, 뒷골이 지끈거렸다.
그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알’타이르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충격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니까.
설명을 축약하자면, 강검마의 원맨쇼.
이 짧은 문장으로 정리된다.
돌연 출몰한 빌런들을 사실상 그 혼자 학살했다는 내용. 그리고 그 증거가 바닥을 구르는 이 수십의 주검들이었다.
검제가 시선을 조심스레 강검마 쪽으로 옮겼다.
그의 눈가에선 섬뜩한 안광이 흐르고 있었다. 완연히 식어 버린 권태로운 눈. 진득한 혈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저 태도.
검제는 스산한 현기증이 전신을 저미는 것을 느꼈다.
강검마의 모습은 마치 지옥도를 거느리는 악마처럼 보였다.
‘…자네는 무어란 말인가.’
그의 실력 행사야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애당초 아발론 섬에서 아고르를 베지 않았던가.
강검마의 몸체에 불가해한 무언가가 깃들었다는 걸 검제는 확신했다.
하지만 이 폭력 사태는 다른 의미로 그를 경악케 했다.
불현듯, 검제가 사시미에 베인 듯한 시체들을 훑어보았다.
막힘과 걸림이 전혀 느끼지 않은 절단면과 검상들.
어떻게 이토록 생명을 해하고 베는 것에 주저가 없단 말인가. 아무리 검리에 도달한 자라도 감정이 녹아 있기 마련이거늘.
강검마에게 향해 있던 의문과 시름이 더욱 깊어졌다.
선악의 구별이 없는 원초적인 존재를 마주하는 듯한 기분.
길게 이어진 침묵 속에서 알’타이르가 검제에게 조심스레 말을 뱉었다.
“강검마 저 친구, 참 뛰어난 인재이지 않습니까.”
알’타이르는 직설을 살짝 피해 돌려 말했다.
“그런 재원일수록 그에 걸맞은 참된 스승이 필요한 법이지요. 하물며 검제 님은 저자의 스승을 자처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칠성을 마침 은퇴하신 참이니, 정신이 없어 가르침을 하달하시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잠자코 듣던 검제가 천천히 옆으로 고개 돌렸다.
알’타이르가 그 자신을 똑바르게 응시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마침 방학이지 다가오지 않습니까. 그 기간에 강검마를 들이시는 게 어떨는지요……. 잘만 이끌어 주신다면, 장차 저 아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니벨룽가에 대대로 이어져 온―”
알’타이르가 짧은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