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1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11화(111/300)
111화 새 출발 (2)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버스 안.
뒤에서 세 번째 두 좌석, 젊은 남녀 한 쌍이 앉아 있다.
강검마와 아벨이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힐끔힐끔 두 사람을 쳐다봤다.
머리색이 검은 생도도 이질적이긴 하지만, 그보다 아벨의 존재가 너무 도드라졌다.
“…와, 실물이 더 예쁘네.”
아벨을 힐긋하던 남자 한 명이 작게 감탄하자, 옆에 앉은 여인이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악!”
“여자 친구 두고 그게 할 소리야? 그리고 예쁘긴 뭐가 예뻐 딱 봐도⎯”
그러곤 치뜬 고리 눈을 아벨에게 둔 순간.
“…허.
작게 불타던 적개심이 바로 사그라들었다.
‘미친.’
같은 여자로서도 아벨의 외모는 비현실 그 자체. 남자들이 자못 자지러질 만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검은 머리와 아벨, 둘 사이에서 흐르는 냉랭한 바람.
아벨의 옆자리라면 쾌재를 내질러도 모자랄 판에, 검은 머리 소년은 싱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벨은 오른쪽으로 눈만 살짝 돌렸다. 창틀에 팔을 괴고서 말없이 풍경만 바라보는 강검마.
칠흑빛 홍채는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키 힘들었다.
아벨은 말이라도 붙여 볼까 하다 이내 관두었다.
‘…검마, 얘랑은 좀 어색하니까.’
불명예스러웠던 첫 만남. 그리고 아발론 섬에서의 두 번째 만남. 강검마와 동선이 겹칠 때마다 그는 말수가 점점 줄어 갔다.
과묵함이 더해져 가는 그에게 아벨은 내심 섭섭함을 느꼈다.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이유를 묻고 싶었다. 응어리진 의문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참아 냈다.
그리고 얘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 하잖아? 그런 사람한테 굳이 말을 붙일 성의는 없었다. 먼저 입을 열기엔 자존심도 상하고…….
“…….”
“…….”
입술은 달싹거리고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이 한없는 정적이 몹시 불편했다.
근데 얘 다른 애들이랑은 사이좋게 지내지 않았나?
돌연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들.
클로이와 레이첼, 사키 료조.
이렇게 세 명.
‘…….’
버스에 타기 전, 경박한 선배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눈살이 찌푸려져 반사적으로 입이 열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검마 얘가 다른 여자애들과 추문이 많은 건 맞을 수도……?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세 달. 매주 여자가 바뀌진 않아도, 매달 한 명씩 생겨났다.
잠깐이지만 괜히 변호를 해 줬나 하는 후회가 일었다.
‘…으,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네.’
아벨은 반사적으로 이마를 짚었다. 현기증이 미약하게 올라왔다.
‘멀미 때문인가?’
생각해 보면 버스를 타 본 게 몇 년 만이었지. 어렸을 적, 부모님과 영국 여행 때문에 버스를 탔던 게 마지막이었다.
차멀미에 고생하는 그녀를 위해 등을 쓸어내려 주시던 어머니. 곧 도착이라며 자상한 미소로 귀밑에 멀미약을 붙여 주시던 아버지.
그 스티커 약이 이름이 뭐였더라. 한국 제품이었던 것 같은데…….
멀미약이 무엇이었는지 되뇌려 하니, 도리어 멀미가 올라왔다. 아벨은 시트에 등을 좀 묻고서 속눈썹을 닫았다.
‘10년 정도 됐구나.’
이제는 아련한 얼굴들.
철이 들기 전, 아벨은 잊지 않기 위해 틈틈이 사진첩을 들척였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슬픔, 그리움이 덧쌓여 갔다.
그렇기에 아벨은 더 이상 낡은 사진첩을 꺼내지 않았다.
슬퍼한다고 그들이 돌아오지도 않을뿐더러, 정성스레 자신을 돌봐주시는 할아버지께도 못 할 짓이었다.
가족의 죽음.
그 절망과 슬픔은 아벨만이 오롯이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부모를 여의었지만, 할아버지는 자식 내외를 잃은 것이니.
“…….”
아벨의 얼굴에 침울함이 번졌다. 정말 오랜만의 귀향길인데.
한 조각의 기억으로 인해 가슴이 아리기만 하다.
“아벨.”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벨의 눈이 번쩍 떠졌다. 화들짝 놀라 그녀는 어깨까지 떨었다.
“으, 응?”
“멀미 심하면 이거 써 봐.”
강검마가 손톱만 한 종이를 내밀었다. 아벨의 눈이 한차례 그의 눈과 손을 번갈아 봤다.
“이게 뭐야?”
“멀미약.”
그 말에 아벨은 진한 기시감을 느꼈다. 금색 동공이 좀 더 휘둥그레 커졌다.
“난 멀미 안 하긴 하는데. 비행기 타는 건 처음이라 혹시 몰라 챙겨 왔다. 어제 약국에서 상비약으로 사 둔 건데, 멀미 심하면 써 봐. 효과 좋으니까.”
얼결에 조그마한 종이를 건네받은 아벨. 강검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쓰는 법을 모르나? 하긴, 한국에서 개발한 거니까.”
“아니……! 아, 알고 있어!”
아벨이 손사래를 쳤다. 그녀는 평소에 안 더듬던 말까지 더듬었다. 그 반응에 강검마는 도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벨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건네받은 종이를 내려다봤다.
⌜귀미태⌟
10년 만에 알게 된 약품명은 너무나 직관적이었다.
아벨이 설핏 웃는가 싶더니,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아발론 섬에서도 지금이랑…….’
강검마는 항상 이런 식이다. 무심한 듯, 작은 선의를 툭툭 내뱉는다.
과장되지도 않고, 어떤 의도도 없어 보이는 사소한 행동들.
그 부분이 진실돼 보여, 묘한 설득력을 자아낸다.
어쩌면 그 심드렁한 성격의 사키가 랑 클래스까지 내려간 까닭은, 이런 점 때문이지 않을까?
아벨은 한참을 그 스티커 종이를 조물조물하다 이내 조심스레 품 안에 갈무리했다.
뻥 뚫린 가도와 청명한 하늘 사이를 달리는 버스.
아벨은 가슴의 밑바닥에서 불쾌하게 맴돌던 감정들도, 멀미도 좀 멎은 기분에.
다시 눈을 감고 시트에 등을 묻었다.
* * *
[승객 여러분, 저희 버스는 지금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차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버스가 완전히 정차할 때까지 이동을 자제해 주시고…….]도착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장장 세 시간 만에 공항에 도착한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스트레칭하는 승객들. 좌우로 움직이던 시선은 곧 이쪽으로 꽂혔다.
그리고 장정 몇몇이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야야, 저기 봐. 아벨이 쟤 어깨에 기대서 자고 있어.”
“젠장, 운 좋은 새끼. 전생에 얼마나 큰 덕을 쌓았길래…….”
횟집 사장이요.
“아서라, 아서. 쟤 사시미 검성이잖아. 결국 강한 자가 미인을 쟁취하는 거지. 꼬우면 쟤보다 강하든가.”
“큭.”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퇴장하는 남자. 고개를 저으며 그의 어깨를 다독여 주는 일행.
그들의 뒷모습에 백색의 그늘이 드리웠다.
“…….”
부러움 깃든 눈총은 이 세계에 와서 처음이 아닌가 싶다. 다만 상황이 이런 게 다소 아이러니하다.
미인에게 한쪽 어깨 정돈 내어 줄 수 있지만, 대상이 아벨인지라 쏠리는 시선이 너무 많다.
‘깨워야겠네.’
왼쪽 어깨를 들썩였다. 윤기 나는 파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으응.”
졸음기 가득한 눈을 깜빡거리는 아벨. 눈꺼풀이 매우 무거워 보였다.
“도착했어, 일어나.”
“……!”
아벨의 얼굴 확 붉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퍼뜩 일어나 말없이 짐을 챙겼다.
‘침 흘린 건 비밀로 해 주자.’
짐칸에서 캐리어 가방을 꺼내고 공항에 들어섰다.
* * *
“오.”
인천 공항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더니. 타국 공항에 가 본 적 없지만, 이 정도면 으뜸이라 칠 만했다.
오히려 지구의 인천 공항보다 위압이 넘친다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서 한국은 미국과 대립이 성사되는 유일한 국가였지.
‘기적의 가호 게임사가 이런 건 참 마음에 들어.’
나와는 달리 공항 지리에 익숙한 듯, 앞서 나가는 아벨.
버스에서 내린 후, 나와 그녀 사이엔 단 한마디의 말도 안 오갔다.
그래도 그녀는 의식적으로 잘 쫓아오는지 확인했다. 번쩍거리는 공항 내부를 두리번거리면 살짝 발걸음을 늦춰 주는 배려까지.
‘보면 볼수록 은근히 반전 있는 성격이란 말이지.’
속 깊은 성격. 그와 별개로 눈에 너무 띄는 외모라 문제지.
그렇게 몇 분 움직이자, 수두룩 빽빽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한 인물이 보였다.
“NBC에서 나왔습니다! 검제님, 은퇴 후 계획에 관해 한 말씀 해 주실 수 없습니까?”
“WTN 소속 윤필성입니다! 차기 칠성 자리에 내정된 이가 있다던데, 누구인지 알려 주십쇼!”
“클라디 원로님의 서거와 연관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으신 건지 말씀해 주십쇼!”
“검제님의 업적을 멧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로 촬영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질문과 카메라 불빛 세례들.
경호나 고용인은 없는지, 검제는 단신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검제는 눈썹을 잔뜩 좁히며 입을 다물었다. 딱 봐도 기껍지 않아 하는 기색.
그러나 기자들은 괘념치 않고 스마트 폰을 들이밀었다.
검제의 손짓 한 번에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새삼 기자들의 담력에 혀가 내둘러졌다. 저들도 어찌 보면 종군 기자였다.
“쯧, 쟤네들은 또 저러네.”
혀를 차며 아벨은 클러치 백에서 모자, 마스크, 선글라스를 꺼냈다. 연예인 착장의 기본이 되는 세트였다.
그때.
“““““““!””””””””
기자들의 이목이 이쪽으로 향했다. 동시에 그들이 안광이 반짝였다. 마치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이리 같은 눈빛.
아벨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니벨룽가의 차기 당주, 엄청난 미모. 온갖 화제성을 갖춘 그녀였다.
달리 말하면 기삿감에 허덕이는 저들에겐 제격의 먹잇감이란 뜻이다.
자리를 피해 보려 하는 아벨. 하나, 캐리어에 발이 묶여 도망칠 틈도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고성능 카메라를 움켜잡은 기자들이 일제히 몰렸다.
그들은 동그란 진을 형성해 우리를 빙 둘러쌌다. 아벨은 재빨리 모자, 마스크, 색안경을 장착했다.
이윽고 기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강검마 님, NBC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사시미 검성’이라 불리시며 화제 몰이 중이신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저는 FBS의 윤병선 기자입니다! 얼마 전, 중국의 마오 랑을 꺾으셨는데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영국 언론사 CCB의 마이클 조펀입니다!”
“미국 DEF에서 온 얼론 마스크입니다!”
기자들의 카메라 렌즈는 아벨이 아닌 내 쪽에 쏠려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벨이 멈칫했다. 코에 걸린 색안경이 한쪽으로 치우쳤다.
아벨의 동공에 황당함이 돌았다. 기자들은 그녀에게 터럭만큼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완전히 투명 인간 취급이었다.
다만, 아벨 못지않게 나도 당황했다. 흉기처럼 쑥 들이미는 핸드폰들. 액정 너머엔 녹음 앱이 작동 중이었다.
‘…이게 뭔 상황이야.’
이들의 눈에는 탐욕이 차 있었다. 기삿감 없인 절대 물러나지 않으리란 결의가 깃든 눈동자.
‘아, 젠장.’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마음 같아선 밀치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일이 복잡해진다.
“오늘 공항에 방문하신 목적이 뭡니까?”
바싹 다가온 여기자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다른 기자들도 같은 것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난처하다. 내 존재감은 공공연할지언정, 방학 동안의 거취는 불분명해야 한다.
검제를 따라간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골치 아파진다.
여기서 무시하고 지나가면 검제와 나를 엮는 추측성 기사들이 살포될 것이다.
그럴 바엔, 아무 말이라도 던져 어그로를 확 다른 곳으로 틀어 버리자.
내가 가는 곳이 유럽이니, 그 정반대에 있는 대륙으로.
“미국에 갑니다.”
새빨간 거짓말. 당연히 죄책감 따윈 없었다.
이들의 시선을 돌릴 수만 있다면 남극이라도 말할 수도 있다.
“미국이라…….”
질의했던 여기자가 그 낱말을 곱씹었다. 이어 전류라도 통했는지 눈이 번뜩였다.
“…설마! 철각의 마오 랑을 이긴 거로는 모자라, 미국의 올 뮤트에게까지 도전장을 내민 겁니까?! 지져스 크라이스트!”
“…….”
앙칼지게 내지르는 경악성. 그녀의 감정이 주변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맞아, 안 그러면 갑자기 미국에 갈 리가 없잖아.”
“에이, 아무리 그래도 올 뮤트는 안 되지……. 그 사람은 마오 랑이랑 좀 다르잖아. 아무리 천재라도…….”
“야, 사실이 중요해? 지금 떡밥을 던져 준 거잖아. 알아서 판단하라고. 강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언론 다루는 능력까지. 역시 난놈은 다르네.”
“듣고 보니……. 이거 검제 취재하러 왔다가, 뜻하지 않은 월척인데?!”
분위기가 산만해졌다. 나는 그 틈을 노려 아벨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지금이야, 가자.”
“어?!”
혼란이 번진 기자 진형을 뚫고 지나갔다. 중간중간의 가림막은 어깨에 힘을 주면 허물어졌다.
“앗! 이 사람이 나 밀쳤어! 밀쳤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기자들은 각자 노트북을 열었다. 곧이어 그들의 손끝이 자판을 거침없이 두드렸다.
비행기에서 그들이 작성한 기사를 확인했을 때. 나는 한마디만 던지고 빠져나온 걸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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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도(覇道)를 걷는 사시미 검성. ‘올 뮤트 나-와!’』
『중국은 이제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아메리카의 초신성, 올 뮤트만이 유일한 호적수.』
『젊은 패기일지, 치기일지.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여.』
『사시미 검성, 강검마. 기자 폭행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