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1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15화(115/300)
115화 창성 리차 드 뮈라 (2)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이 인류 최강의 사내라 불린 지도 어언 40년이다.
일찍이 검리(劍理)에 근접했으며, 젊어서부터 마땅한 적수를 찾기 힘들었다.
도전장을 내민 몇몇도 있었다. 그들은 몇 번의 싸움 끝에 결국엔 굴복했다. 검제는 타고난 천재였다.
그러나, 지고한 하늘 아래 절대적인 무쌍은 없는 법. 최강이라 불리는 검제에게도 맞수는 있는 것이다.
* * *
“…….”
검제와 창성은 타원형 원탁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본다. 둘이 뿜어내는 투기에 공기가 뜨겁게 들끓었다.
정수리를 노면에 심은 정객들. 식은땀이 등허리에서 역방향으로 흘러 머리카락을 적셨다.
검제가 칼자루를 탁 틀어쥐며 말했다. 검극을 창성을 날카롭게 겨눈 채.
“뮈라 네놈의 뇌가 우동사리라고는 하나, 이렇게까지 겁대가리를 상실했을 줄은 몰랐구나. 감히 내가 머무는 나라를, 그것도 관저를 습격하느냐!
“크하하하하하하하!”
검제의 노성에 창성은 재차 폭소했다. 쩌렁쩌렁한 웃음소리에 원탁이 들썩였다. 원산폭격 중인 이들의 몸도 같이.
“뮈라가(家)의 남아에게 ‘겁’을 운운하다니. 조금 전 ‘이참에 여자로 만들어 주마’도 그렇고, 아카데미에서 어린 치들이랑 뒤엉키니 농이 늘었구나, 니벨룽.”
“농담과 진담도 구분 못 할 정도로 무식할 줄이야.”
검제가 뇌까렸다. 우러나온 비아냥에 창성이 무장의 밑동으로 노면을 쾅! 내리찍었다.
“니벨룽, 이놈!”
창성의 바로 옆에 서 있던 게인즈의 귀에선 핏물이 흘러내렸다. 호통성 한 번에 고막이 찢어졌다. 게인즈는 아랫입술을 씹었다.
‘정녕, 이게 같은 인간이란 말인가.’
기술로써 정점에 달한 검제. 그런 그와 근력과 완력만으로 필적하는 남자가.
‘기술은 나약한 자들이나 쓰는 것’이라는 어귀를 내세우는 패도적인 남자가, 창성이다.
영장류 중에 순수한 ‘힘’으로 이 남자와 견줄 존재가 있을까? 게인즈가 아는 한에선 전무했다.
창성의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전신을 무장한 근육이 생명처럼 꿈틀거렸다.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한 사나운 기세. 하나, 창성은 의자에 도로 풀썩 앉았다. 착석과 동시에 노면이 진동했다.
창성이 턱을 괴며 말했다.
“말장난이나 하자고 이곳까지 온 게 아니다. 본론만 말하지. 사실대로만 말하면 내 조용히 돌아가겠소.”
“…….”
“마족 5군단장 아고르가 뒈졌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테니 넘어가고.”
““““!!””””
툭 내뱉은 한마디에 면면에 경악이 퍼졌다. 검제만이 말없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창성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야? 다들 몰랐던 건가? 영웅 협회에선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소문인데. 스위스는 중립국이라 그런지, 소식이 늦는 편이군그래.”
영웅 협회. 전 세계의 영웅들을 케어하는 기관.
기실은 곳곳에 요원을 풀어 정보를 긁어모은다. 유명 영웅들을 주시, 견제하려는 방편으로.
정보력의 첨단에 선 집단. 쉽게 비유하면, 냉전 시대의 CIA와 역할이 엇비슷했다.
그 음습함에 영웅 대부분이 협회를 꺼렸다. 자신들의 뒤나 캐는 집단을 기꺼워할 자가 있겠는가?
다만, 일부지만 친협회적 성향을 드러내는 영웅도 있으니.
그들의 필두가 바로 창성이었다. 그는 차기 영웅 협회장으로 유력했다.
게인즈의 동공에 지진이 났다.
‘5군단장이 죽었다고……?’
군단장급 마족이 강림은 1차 인마 협정의 위배다.
그들이 강림키 위해선, 마경과 인세의 통로를 뚫을 제물. 그리고 군단장이 빙의할 수육체가 필요하다.
그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기에, 인류와 마족 간의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 악마 놈이 죽었다고? 칠성 영웅 풀 멤버로 6군단장 바스몬도 겨우 토벌했다. 결과는 칠성 중 세 사람의 절명.
한데, 그보다 더한 아고르를 누가 토벌했단 말인가.
창성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뭐, 어차피 밝혀질 사실이었으니 이참에 깨달은 셈 치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창성이 날을 검제에게 치켜세웠다.
“아고르의 죽음에 네놈이 엮여 있다는 것까지는 알아냈는데 말이야,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다들 알다시피 영웅 단신으론 군단장을 이길 수 없는 게 상식. 아니, 순리 아닌가.”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검제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창성이 눈을 부릅 치뜨더니 한 이름을 입에 담았다.
“강검마.”
“……!”
“사시미 검성이라 불리는 그놈. 협회에선 아고르의 죽음과 그 어린놈이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데 자네 생각은 어떻나?”
이름의 언급. 그 하나만으로, 칼자루를 틀어쥔 검제의 아귀에 힘이 실렸다.
화르륵.
해록색의 기운이 검날을 태운다. 오라였다.
검제가 피워 낸 검기가 한순간에 창성의 투기를 밀어냈다.
‘니벨룽 이놈은 정녕 팔을 잃어 온 놈이 맞는 거냐?!’
창성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팔 없는 검제보다는 자신이 우위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눈앞에 녀석은 더더욱 건재해진 모습이지 않은가.
어이없기도 잠시. 창성은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사납게 웃었다.
‘니벨룽 자네. 또 한 층 성장했군.’
검제는 항상 창성을 기껍지 않아 했다. 툭하면 대련 신청에 야만인에 가까운 창성과 엮이면 수명이 줄어 가는 걸 느꼈기에.
하지만 정반대로 창성은 그를 높게 평가했다. 자존심보다도 남자로서의 경외감. 타성에 젖지 않는 올곧음.
과연 자신을 누르고 ‘인류 최강’이란 타이틀을 거머쥔 사내 중의 사내.
후우우웅.
실내임에도 인위적인 바람이 일었다. 원산폭격 중이던 장정들이 일거에 픽픽 쓰러졌다.
“거, 검제님!”
게인즈가 목소리를 떨었다. 검제가 창성을 향해 오라를 피워 냈다. 명명백백한 적개심을 드러내며.
칠성 중 두 사람의 싸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명료하다.
스위스, 프랑스 양국 간의 전쟁.
지금 이 현장은 그 서막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반면, 창성은 입매를 높이 끌어 올렸다. 그가 창대를 치들고 거세게 바닥을 찍었다.
쩌저적- 금이 가는 노면. 지축이 들썩이고 바람이 역류했다. 창성이 소리 내어 웃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자네, 사내대장부가 다 되었군!”
“내 모국에 와서 민폐를 끼쳤으니 그 혀는 잘라 가겠다.”
검제는 몸을 쏘아 낼 자세를 취했다. 이것이 과잉 처사임은 그 역시 알고 있었다.
국제적인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나, 저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온 이상 앞뒤 잴 상황이 아니었다.
검제는 강검마의 존재 가치를 인류의 희망으로 여겼다. 그가 협회의 표적이 될 바엔, 이 자리에서 창성을 벤다.
죽일 생각은 없고, 죽일 수도 없었다. 팔이 두 짝이었을 당시에도, 창성은 호적수였다.
하물며, 외팔이인 지금엔 저놈의 발을 묶어 두는 게 최선이었다. 목을 때리진 못해도, 오라를 부린다면 발목은 노릴 만했다.
검제가 발을 구르려던 찰나, 돌연 창성이 창대를 놓았다.
―째쟁!
창날이 바닥에 부딪히자 굉음이 일었다.
……!
그 탁음에 순식간에 격화된 공기가 소강됐다. 창성이 양손을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나이가 들더니 냉정을 잃었군. 화끈해진 건 좋은데, 자네답지 못해.”
창성이 피식 웃으며 이어 말했다.
“그리 과민하게 나오는 걸 보면, 어지간히 그 어린놈을 아끼는 모양이군. 뭐, 자네가 이렇게까지 나온 걸 보니, 더 이상 추궁하고 싶은 생각은 없네.”
그리 말한 창성은 무장을 주웠다. 이어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이윽고 창성은 검제의 어깨 옆에 멈춰 섰다. 그가 수더분하게 말했다.
“솔직히 강검마란 녀석이 궁금하긴 하네. 자네가 이리 감싸는 것이나, 내 조카 레이첼이 푹 빠진 것이나 필시 이유가 있겠지.”
“…….”
“만약 강검마가 내 조카사위가 된다면, 니벨룽 자네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기도 하군.”
“자네 지금 뭐라는 건가?!”
“크하하하하, 아무튼 감세! 메디아랑 그 쌍둥이 언니한테 안부도 전해 주고!”
창성은 뒤돌지도 않은 채 손만 휘휘 저었다.
검제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을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게인즈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검제님, 괜찮으십니까?”
“이거 추태를 보였군.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검제님이 아니었다면, 저희 장관들이나 의원들은 진즉에 원형 탈모가 왔을 겁니다.”
게인즈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 덕에 고조된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검제가 옅게 웃었다.
“게인즈, 자네도 꽤 성격에 의리가 깃들었군.”
“하하, 불혹을 넘기니 조금은 담이 생긴 모양입니다.”
멋쩍게 뒷머리를 긁는 게인즈. 검제는 그를 빤히 응시했다.
게인즈는 실리를 쫓는 정치인이다. 그가 창성에게 실토하지 않은 건, 순수한 의리 따위가 아닐 터.
그가 입을 다문 이유는 검제가 아닌, 강검마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함임을.
검제는 대번에 알아봤다.
‘…이제 늙은이들의 시대는 갔다 이건가.’
검제가 쓰게 웃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치인이 앞날을 재단하고, 계산에 밝다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검제님, 혹시 다음 주에 시간 되실는지요. 전에 말씀하신 저녁 식사를 꼭 같이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검제는 물끄러미 게인즈를 쳐다봤다. 그가 바라는 건 ‘강검마’와의 만남.
이야기가 막 끝난 참인데, 참 노골적이다 싶었다.
검제는 썩 기껍지 않은 기색으로 말을 뱉었다.
“그날은 내가 시간이 안 될 것 같군.”
“…무슨 요일인지 말 안 했는데요?”
“다음 주 내리 바쁘네.”
“저, 저기!”
게인즈가 팔을 뻗었다. 검제는 뒤돌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뒤끝이 느는 법이었다.
* * *
이튿날.
아벨과의 약속 시간까지 20분.
뭐를 입을지 옷가지를 들척이다 이내 아카데미 추리닝을 집었다.
짐을 최소한으로 싼 탓에, 옷 가짓수가 몇 개 없었다. 딱히 격식을 차려야 할 필요도 없고.
‘…그건 그렇고, 갑자기 어딜 가자는 거지?’
대뜸 건넨 제안에 일단은 고개를 까딱였다. 다만, 그 목적이 아리송했다.
아벨과는 어색한 사이다. 저녁은 그저 구실이고, 의중은 따로 있을 터.
안 그래도 아발론 섬에서 그녀와 레온의 사이에 훼방을 둔 것 같아 내심 찜찜했는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다 곧 머리를 흔들었다.
“뭐, 앞으로 몇 주간 같이 살 텐데 사이좋게 지내면 좋지.”
무엇보다 이번 기회로 그녀와 좋은 교분을 쌓고 싶었다.
굳이 반목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 때문도 있었다.
‘언데드 던전.’
알프스 산맥 지대 언저리에 있는 던전.
난이도는 최하급인 D급. 예의 버팔로 던전보다도 낮았다.
하여, 최소 입장 조건에도 차이가 있었다.
통상 던전은 네 명이 최소 인원이지만, D급은 셋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언데드 던전은 낮은 난이도에 비해 인기가 낮았다. 아니, 정확히는 찾는 영웅이 없었다.
출몰 마수가 걸어 다니는 시체, 리치(Lich)라는 점이 가장 컸으며 클리어 보상도 박했다.
영 쓸모없어 보이는 허접한 던전이다. 하지만, 그 안엔 재앙이라 일컬어지는 S급 마수가 영면하고 있다.
리치 킹, 드라우그.
불사의 군세를 거느리는 리치들의 왕. 게임 시절엔, 드라우그 자체보다 그가 다루는 마장이 특히나 유명했다.
‘명칭이 리퍼의 완드였나?’
직역하면 사신의 지팡이. 유저들은 줄여서 ‘싸•지’라 불렀다.
군대의 싸지방이 연상되는 네이밍의 마장. 맞다. 노린 거다.
참고로 S급 마수들은 마장(魔仗)을 다룬다는데…….
너무 후반부에 등장하는 재앙들인지라, 이 역시 정보가 부족하다.
그나마 싸지가 입에 착 달라붙고, 유명해 알 뿐이지.
…이쯤 되니 끈덕지게 ‘기적의 가호 M’을 붙잡고 있지 않았던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그때 눈 딱 감고 계속했으면, 내 이세계 생활이 좀 더 순탄했을 것이다.
아니, 애당초 그 빌어먹을 게임을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기적의 가호 M도 첫 스승님. 그 양반이 스리슬쩍 권해서 시작하지 않았었나? 그러곤 당사자는 잽싸게 접었던 것 같은데.
‘제기랄.’
아무튼 언데드 던전을 입장키 위해선, 팀원을 꾸려야 한다.
물론 리치 킹은 나 홀로 맞설 생각이나, 그전까진 기로를 뚫어 줄 든든한 아군이 있어야 한다.
그 아군이 정사대로면 ‘수석’이었을, 아벨이라면 더더욱 좋다. 유저였던 나이기에, 그녀의 능력과 재능은 깊이 신뢰한다.
잡념에 잠겨 있다 보니 어느덧 시계가 4시 정각에 근접했다.
그제야 나는 침대를 박찼다. 이어 신발을 선별했다.
슬리퍼를 신을까 하다, 관두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줄이 세 개 그어진 러닝화를 신었다.
추리닝에 러닝화. 마실 산책으론 더없이 만족스러운 차림이다.
그렇게 방에서 빠져나와 정문으로 향했다.
약속 시간 5분 전임에도, 아벨은 먼저 나와 있었다.
저벅,
다가갈수록 아벨의 윤곽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와-.”
테니스 스커트를 두르고, 얇게 바른 색조 화장.
스위스의 절경과 어우러지니 한 점의 화폭이다.
꾸밈없이도 빼어난데, 조금 갖춰 입으니 여신이 따로 없었다.
망연히 바라보는 와중에, 아벨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바로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너, 설마 그 차림으로 나온 거야?”
무어라 답할 말이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옷이 이거밖에 없어서.”
“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