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1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16화(116/300)
116화 어색한 사이 (1)
“아벨, 근데 시내까지 어떻게 갈 거야?”
목적지인 제네바 시내까지는 멀다. 캐슬 시구르드로 올 당시의 기억으론, 차로 3시간 남짓. 두 발로는 어림잡아 이틀을 걸어야 하는 거리다.
또한, 여기는 알프스의 산등성이. 험준하기 이를 데 없는 비탈길이 버티고 있다. 길목도 잘 안 닦여 있어 오는 버스도 없을 것이다.
애당초 니벨룽가의 부지인지라, 외부 버스 출입도 안 될 터고.
내 질문에 아벨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어떻게 가긴. 차 타고 가야지.”
“차……? 설마 아벨, 너 면허 있어?”
“아니, 없는데?”
“…그럼 무면허 운전?”
하기야 이 장소 전부가 니벨룽의 영지, 나라다.
로마에는 로마법이 있듯이, 이곳에선 면허가 필요치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검제 지크프리트는 이 나라의 왕. 법규 그 자체.
그의 손녀가 무면허로 핸들을 잡아도, 전혀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야!”
―라고 상념이 이어진 즈음. 아벨의 목소리가 생각을 끊어 냈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면허가 없으니 무면허 운전이다. 어떻게 이렇게 연결될 수 있지? 보통은 남이 태워다 줄 거로 생각하지 않아?”
“아-.”
듣고 보니 그렇네. 아무래도 신분제가 만연한 이 세계에 너무 녹아든 모양.
어느덧 내 사고 회로가 맛이 가 버렸다.
‘기적의 가호 M’의 세계관은 내 상상보단 상식적이었다.
“어휴, 하여간 검마 넌 너무 특이해. 뭐… 내가 네 사고방식을 어떻게 따라가겠냐마는.”
아벨이 쓰게 중얼거렸다. 나는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그녀는 새침하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샤일이 태워다 주기로 했어.”
―아, 맞네. 이 집 고용인들이 있었지.
워낙 존재감이 옅어서 두 사람의 존재를 잊곤 한다.
“걱정할까 봐 말하는데. 샤일 운전 잘해. 할아버지나 나나 시내 갈 때마다 샤일이 태워다 주는 거거든. 반면, 카론 아저씨는 방향치라 운전을 못 하셔.”
…이건 좀 의외였다.
앳된 외모의 메이드가 베스트 드라이버고, 백 핸들링 할 것 같은 집사장이 운전치 속성이라. 캐릭터성이 꽤 반전이다.
그때, 차 한 대가 돌연 시야에 나타났다.
우람한 차체의 사륜구동. 산길을 타는 데 특화된 차종이다.
―끼이익.
타이어가 흙을 끌었다. 소리는 거칠지만, 코너링은 매끄럽다. 심상치 않은 운전 솜씨다.
벌컥― 샤일이 차 문을 열고 나온다. 그녀는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아가씨, 강검마 님. 제네바까지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바쁠 텐데 오늘도 고마워, 샤일.”
아벨이 부드럽게 웃었다. 샤일도 마주 미소 지었다.
“저야말로 오랜만에 아가씨를 모실 수 있어 기쁩니다.”
샤일이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익숙하게 승차하는 아벨. 나는 샤일을 슬쩍 곁눈질하고서 뒤따라 탑승했다.
샤일이 운전석에 궁둥이를 붙였다. 시트가 조금 가라앉았다. 샤일이 핸들에 손바닥을 살포시 얹으며 말했다.
“오늘은 검마 님도 계시니, 평소보단 천천히 운행하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샤일 네 운전이라면 언제든 안심이야.”
아벨이 미소로 화답했다.
“대략 30분쯤 걸릴 테니 그동안 두 분 다 눈 좀 붙이셔도 됩니다.”
“……?”
잘못 들은 건가? 30분? 위에서 말했듯, 제네바까진 못해도 세 시간이다. 하물며 가는 길목도 굽잇길이지 않은가.
숙달된 운전자라도 시간을 장담키 힘들 것이다. F1(포뮬러 원) 선수 정도면 모를까. 100킬로만 밟아도 자칫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다.
‘진짜 뭐지?’
의아함이 떠오르기 무섭게, 샤일이 룸미러(room mirror)의 방향을 조정한다. 거울에 반사된 그녀의 눈빛이 맹금처럼 가늘었다.
부우우우우우웅―
차량이 거센 배기음을 토해 낸다. 산골짜기를 가로지를 차에서 나올 소음이 아니었다.
위기감을 느낀 내 입술이 벌어지려던 차, 샤일이 선수를 쳤다.
“안전띠 꽉 매십시오, 검마 님.”
“……!”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짓밟히는 액셀, 차창 너머의 풍경이 흙먼지로 뒤덮인다.
“자, 잠깐만!”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샤일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출발하겠습니다.”
샤일이 기어를 휘어 꺾었다. 예사롭지 않은 스냅이다.
곧바로 차체가 어마어마한 속력을 뿜으며 튀어 나갔다.
우아아아앙.
차량이 산길을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계기판 바늘은 숫자 180과 200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 * *
“후우.”
검제가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는 유독 길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창성과의 조우는 30분이었지만 뒷일을 처리하는 데 꼬박 하루가 더 걸렸다.
리차 드 뮈라. 그 자식의 불시 기습 때문에 외교적 파란이 일 뻔했다. 그래도 수습 범위 안이었기에 검제는 발로 뛰어 마무리했다.
‘그 근육 돼지 놈.’
마음 같아선 당장 창성에게 칼침을 놓고 싶었다.
그러나 그랬다간 그 무식한 녀석과 같아진다. 노인의 품격은 차분함에서 나오는 법이다.
검제는 재차 한숨을 늘어뜨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 혈압이 치솟아 건강을 해친다.
‘십 년은 늙은 것 같군.’
일흔 줄인 그로선 섬찟한 표현이었다. 노인은 십 년이란 세월을 장담하지 못한다. 검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옆에 서 있던 집사 카론이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검제님.”
“아닐세, 카론.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왕왕 있는 거 아니겠나. 물론 창성 그놈이 또 이런 개짓거리를 한다면, 그땐 가만히 있지 않겠지만 말이야.”
“…수고하셨습니다.”
쪼르륵.
카론이 검제의 찻잔을 채웠다. 서재에 홍차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검제가 화한 미소로 잔을 입가에 대었다. 다도는 그의 몇 안 되는 취미였다.
홀짝.
“하하하, 역시 카론 자네가 우려내는 차는 일품이야. 아카데미에 있을 때도 이 맛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메디아도 이젠 차 좀 끓이긴 하네만, 역시 자네에겐 안 되는군. 이에 비하면 메디아가 우려낸 홍차는 사약이었군, 그래!”
“…….”
카론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메디아의 권역 밖이라 하나, 카론은 그녀의 참모습을 알고 있었다.
폭군 메디아. 말 한번 잘못해 그녀에게 덜미를 붙잡힐 경우……. 상상만으로도 남은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카론은 그저 주전자를 기울여 찻잔을 데웠다. 과묵 끝에 명줄은 길어진다. 다년간의 집사 생활로 터득한 긴요한 눈썰미였다.
“그건 그렇고, 검마 군은 오늘 오전 수련은 했나?”
“네, 이젠 감시 없이도 혼자 알아서 하시더군요.”
“그렇군.”
검제는 끄덕이며 차를 홀짝였다. 찻잔을 뗀 노인의 입가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확실히 인내심이 뛰어난 소년이야.’
재능이 있으면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숱한 인재들이 그로 인해 자멸했다. 검제 역시 그런 시절을 겪었다.
‘하지만 강검마 그 소년은 분명 달라.’
태도도 능글맞다. 앓는 소리도 잦다.
하지만 주어진 바는 책임감 있게 수행한다.
불세출의 천재가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어느 경지까지 도달할 것인가.
검제는 그 끝을 꼭 눈에 담아 두고 싶었다.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 한다. 묵혀 둔 혈압약도 재복용하고 스트레스도 최소화할 것이다.
‘이대로 한 달이면 그 시련도 무리는 아닐 것이야.’
검제의 동공에 빛이 맴돌았다. 그가 힐끔 카론을 돌아봤다. 마침 카론도 잔을 채우려던 차였기에 시선이 마주쳤다.
검제가 낮게 웃으며 운을 뗐다.
“근데 애들은 어디 있나? 검마나 아벨이나 오늘 도통 안 보여서 말이지. 생각해 보니 샤일도 안 보이는군.”
“아, 두 분은 오후에 제네바 시내로 나가셨습니다. 샤일은 두 분을 바래다 주러 갔―.”
웃음소리가 그쳤다.
쨍그랑―!
찻잔이 깨졌다. 아니, 정확히는 터졌다. 찻잔의 걸이 부분만이 손가락에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
곧이어 검제의 눈자위에 실핏줄이 맺혔다.
“…카론,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독기 서린 목소리가 카론의 뺨을 두드렸다. 따끔따금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추궁은 지금부터였다.
“자네는 왜 두 사람을 그냥 보냈는지 잘 설명해야 할 게야. 이건 갑질이 아닌, 엄연히 설명을 부탁하는 거니 오해는 말게.”
“아…….”
집사 카론은 침묵의 중요성을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
* * *
제네바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렸다.
“하아- 하아-”
심장이 아직도 벌렁벌렁 뛴다.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안 보였다. 나는 눈만 살짝 들어 샤일을 바라봤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쯧- 혀를 찼다.
목적지까지 소요된 시간이 성에 차지 않은 듯한 기색이다.
‘저 메이드는 미쳤어.’
세 시간 거리를 31분에 주파했다. 직선 도로도 아니고 굽잇길을 말이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코너의 연속이었다. 길이 안 닦여 돌부리도 많았다. 그런데도 계기판의 숫자는 200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벨에게 물었다.
“평소에도 시내 나올 때 이래?”
“응, 그렇지. 그래도 오늘은 샤일이 속도 좀 늦춘 거야. 원래 같았으면 30분 안 걸려.”
“아니……. 됐고, 너 공항버스에선 멀미했잖아. 지금은 왜 멀쩡하지?”
“아, 난 느리면 멀미하는 체질이거든. 빠른 건 상관없어.”
아벨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더 말해서 무엇 하겠나.
“네 시간 후인, 8시 반에 마중 오겠습니다. 그럼 모쪼록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그 말을 끝으로 샤일은 차키를 꼽고 비틀었다. 악셀을 지르밟는 발길질이 매서웠다.
새로운 기록이라도 세우려는 듯, 사나운 기세였다. 그렇게 샤일이 모는 차는 쾌속으로 시야에서 멀어졌다.
‘앳된 얼굴에 알맹이는 폭주족…….’
덥썩.
“야, 멍하니 뭐 해. 저녁 먹고 싶다며, 예약 시간까지 10분 남았어.”
우두커니 서 있는 나의 팔목을 아벨이 움켜잡았다. 실상은 그녀가 나를 잡아끄는 거지만 겉보기엔 팔짱이었다.
일순간에 시선이 모여들었다. 남정네들의 표정에 부러움이 차올랐다.
아벨은 언제 어디서나 주목받는다.
전문 용어로 걸어 다니는 군중 제어기, CC기다.
그리고 그 주목은 옆에 있는 내게도 쏟아지고 있다.
“야, 아벨. 이거 좀 떨어져서 가. 사람들 쳐다보는 거 안 보여?”
“유럽은 한국과 달리 길거리가 오래돼서 안내 없이는 길 잃기 십상이야. 표지판도 없거든. 그리고 저 사람들이 쳐다보는 건, 네 머리색이 눈에 튀어서 그런 거니까 무시해.”
“…….”
순진한 거라고 생각하자. 그게 아니면 아벨에 대한 환상이 깨질 것 같았다. 기적의 가호 M에 과금한 이유가 그녀였는데.
‘…그리고 머리색이 특이하다고 쳐다본다면 그거 인종차별 아닌가?’
거리를 걷는 동안 무수한 눈총을 받아 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떠오르는 ‘?’ 갈고리들. 이어 화들짝 놀라 저들끼리 쑥덕인다.
‘이거 무조건 이상한 소문 돌 것 같은데.’
제발 클로이 귀에만 안 들어갔으면.
우리는 아벨이 예약한 식당에 도착했다. 라클레트(Raclette)란 요리를 파는 곳이었다.
라클레트. 고기나 소세지에 녹인 치즈를 끼얹어 먹는단다. 퐁듀와 더불어 스위스를 대표하는 요리라는데…….
듣기만 해도 김치가 절실해진다.
‘…초밥 먹는 대신 이 집에 온 거니까.’
게다가 아벨에게 부탁도 해야 한다. 언데드 던전 파티 합류를 제안하는 것. 그 단초가 이 식사 자리다.
식당에 들어섰다.
실내는 생각보다 소탈하고 아늑했다.
물론 구경할 새 없이 아벨의 터프한 에스코트가 이어졌다.
예약석에 앉았다. 아벨은 메뉴판도 안 보고 주문했다.
“늘 먹던 거로 주세요.”
자주 와 본 듯한 말투였다. 시선을 느낀 아벨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랑 종종 왔던 곳이거든.”
그녀의 눈동자에 아련함이 스쳤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라…….’
두 단어가 입안에 꺼끌꺼끌하게 씹힌다. 아벨의 가정사가 어떤진 모른다. 솔직히 궁금하긴 하나 물어볼 생각은 없다.
가렵다고 긁으면 흉이 진다. 무심한 질문에도 가슴에 스크레치가 생길 수 있다. 전생도, 현생도 순탄찮은 가정을 겪은 나이기에 잘 알고 있다.
‘이럴 땐 가만히 있는 게 맞아.’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고기, 소시지, 베이컨. 채소는 없었다.
뒤이어 주방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치즈를 안고 등장했다. 그리고 품 안의 치즈를 촛불로 녹인 다음, 그대로 접시에 부었다.
고기가 치즈 폭포에 묻혔다. 먹기도 전에 캐리어에 잠든 컵라면이 그리웠다.
“숙녀분과 신사분, 맛있는 저녁 되시길.”
“…….”
주방장은 느끼한 멘트와 음식을 남기고서 퇴장했다.
나는 물끄러미 치즈 범벅을 내려다보았다.
오른쪽엔 포크, 왼쪽엔 나이프가 식탁보에 다소곳이 뉘어 있다.
‘나이프.’
저 작달막한 날붙이… 유독 눈에 거슬린다.
“넌 음식을 눈으로 먹니? 여기 맛있어.”
아벨이 장난스레 핀잔을 던졌다. 반면 나는 심각하게 골몰했다.
중요한 제안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옳은 것일까. 머릿속의 저울이 이리저리 기울었다.
…그렇게 30초. 수많은 경우의 수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아벨에게 접시를 들이밀었다.
“저기, 아벨.”
그리고 부탁했다.
“이것 좀 네가 대신 썰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