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1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17화(117/300)
117화 어색한 사이 (2)
아벨은 한 조각의 추억을 회상했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적의 과거. 구릿한 치즈 냄새가 회상에 현장감을 더한다.
⎯ 히잉- 나도 이제 칼질할 줄 안다고요! 제 건 제가 썰어서 먹을게요.
아벨의 투정에 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가 한없이 따뜻한 미소로 말했다.
‘하하하. 우리 아벨, 벌써 다 컸구나.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안 돼. 원래 우리 니벨룽가의 사람들은 일곱 살 전에는 날붙이를 쥐지 않는단다.’
⎯ 엥, 할아버지 말씀으론 아빠는 돌잡이 때부터 칼을 잡았다던데요?
‘아버지도 참…….’
⎯ 이 말도 하셨어요. ‘네 아비는 니벨룽 역사에 이름 남을 재능이란다, 아벨.’
아벨의 검제 성대모사에 부모님이 쿡쿡 웃으셨다. 그녀의 조그마한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아버지는 기린아였다. 그는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검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재능은 니벨룽가의 계보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럼에도 오만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타고나길 성품이 겸손했다.
‘흠흠- 할아버지께서 잘못 기억하신 모양이구나. 아, 아무튼 아벨, 나이프는 내려놓고 접시를 이리 주겠니? 아빠가 먹기 좋게 잘라 줄게.’
⎯ 나도 이제 다 컸는데……. 아빠는 맨날 애 취급이나 하고!
아벨은 입술을 삐쭉 내밀면서도 접시를 밀었다. 저 상냥한 미소는 반칙이었다.
아버지는 싱긋 웃으시며 어린아이가 먹기 좋은 크기로 고기를 커팅했다.
한참을 칭얼거리는 아벨에게 어머니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거 아니, 아벨? 음식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건, 그 사람을 그만큼 믿고 좋아한다는 마음의 표현이거든. 아빠는 아벨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저러는 거야.’
⎯ 엥, 왜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식사잖니. 그러니 믿을 수 있는 상대에게만 맡길 수 있는 거란다.’
⎯ 아……!
순진무구한 아벨은 바로 납득했다.
‘아벨도 숙녀가 되면 무슨 뜻인지 알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아빠한테 한 번만 져 주자.’
어머니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아벨도 끄덕끄덕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누군가에게 이런 걸 부탁하는 건, 그 사람을…….’
딸아이가 다칠까 나온 염려였다는 걸, 열일곱 살이 된 현재는 안다.
그러나 이젠 그 따뜻한 말을 건네줬던 부모님이 곁에 없었다.
* * *
“……?”
아벨의 눈가가 그렁그렁 반짝였다.
고기 좀 잘라 달라 부탁했더니, 이 반응이다.
‘…그게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검신의 가호 발현을 피하고자 부탁했는데, 아벨은 울기 일보 직전의 표정이다. 무엇이 트리거였는지 알 턱이 없었다.
몹시 무안하다.
그렇게 내밀었던 접시를 슥- 잡아 빼려 할 때.
덥썩.
아벨이 팔목에 이어 이번엔 내 손목을 잡았다. 그녀는 상기된 눈시울 문지르며 말했다.
“미안.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
“잘라 줄게. 잠깐 기다려 봐.”
아벨은 성심껏 칼질을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 변화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이 됐다.
괜찮다며 손을 뻗어도 아벨이 포크로 쳐 냈다. 그녀는 접시까지 썰어 버릴 기세였다.
“자, 먹어. 한입 크기로 잘라 놨어.”
“…….”
먹기 좋게 잘린 요리와 아벨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시선을 피하고서 식사를 계속했다.
오물오물. 아벨은 말없이 입술만 움직였다. 그녀의 코끝과 눈시울엔 여전히 홍조가 머물렀다.
어색한 침묵 속에 식사가 얼추 마무리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아벨에게 파티 합류 제안하려 했건만…….
분위기가 이래서야 무슨 말을 못 꺼내겠다. 사래가 안 들린 게 신기할 정도니.
“…왜 안 물어봐?”
먼저 입술을 연 것은 아벨이었다. 그녀는 시선을 음식에 둔 채로 포크와 나이프만 움직였다. 아벨의 목소리엔 아직도 물기가 섞여 있었다.
“궁금할 거 아니야. 내가 왜 울었는지.”
정직하게 말해서 궁금했다. 아벨은 돌연 눈물을 흘렸다. 처음엔 당황했다. 그러나 나는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분명 사연이 깃들어 있는 울음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묻지 않았다.
눈가에 맺힌 저 감정들. 그리움과 상실감.
20년 동안 칼 밥을 먹으면서 눈칫밥도 비례적으로 늘었다.
눈빛만 봐도 감정을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포크로 고기를 찔렀다. 그 무반응에 아벨의 눈썹이 휘었다.
“검마, 너는 남한테 전혀 관심이 없니? 아무리 사고방식이 나 같은 일반인이랑 다르다고 해도 그렇지.”
타박이라기엔 미약하고, 타이름이라기엔 진중하다.
아벨의 눈시울이 좀 더 붉어졌다. 그녀는 울먹울먹한 말투로 호소했다.
“다른 애들하고는 그렇게 잘 지내면서… 왜 나랑 있을 때만 이러는 건데. 그리고 이참에 말하는 건데, 너 처음 봤을 때 수석생이었던 거 숨겼었지? 내가 뻔히 푸념하는 거 눈앞에 두고 말이야.”
“…….”
“그때 난 네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말 안 하는 줄 알았어. 근데 보면 볼수록 내 생각이 틀렸네. 그때의 너는 그냥 귀찮았을 뿐인 거야, 안 그래?”
“…….”
“모든 사람이 너 같은 천재라고 생각해? 아니, 천만에. 그거 아니?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서로 심적으로 의지하고 공감하면서 살아가.”
나는 곱게 잘린 고기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말없이 씹었다.
한차례 말을 쏟아 낸 아벨. 그녀는 차오른 숨을 몇 번을 끊어 쉬었다. 그리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다시 한번 가라앉은 침묵. 나는 고기를 씹어 넘기고서 물로 입을 축였다. 이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리광은 그쯤 해라.”
“…뭐?”
아벨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녀의 얼굴에 남아 있는 감정은 당혹감뿐이었다.
아벨은 지금 촉발된 감정에 휘둘린 것이다. 물론 잠자코 들어 준다는 선택지도 있다. 어떠한 말을 하든 무시하고 그냥저냥 다독여 줄 수도 있다.
하나 그것은 아벨을 위한 바른 처세가 아니다. 오지랖이라 하여도 할 말은 없다. 굳이 참견할 바 아니란 것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서 덧붙였다.
“아벨, 네가 나한테 뭐라 하는 건 상관없는데, 방금 한 말은 순전히 네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거잖아.”
“……!”
아벨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일부러 정곡을 찔렀다. 나는 멈추지 않고서 못처럼 말을 때려 박았다.
“그리고 너는 나를 다르다 다르다 하는데, 그 발언들, 나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말들이야. 너 말이야, 내가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고 하는 소리야?”
“…그, 그건.”
아벨이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그녀의 항변 기회를 즉각 차단했다.
“그리고 아벨, 너는 지금 자신의 노력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는 거야. 나한테 ‘재능’이라는 감투를 씌우면서 말이야.”
“…….”
주변에선 나를 칼질의 천재라 부른다.
전생에선 5년 만에 업계의 정점을 찍었으니 그런 말이 나옴 직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내막을 알지 못한다. 과정의 고됨은 백안시한 채 결과만을 바라본다.
손에 피딱지가 눌어붙을 정도로 칼자루를 잡았다. 발려진 생선 뼈를 보며 머릿속으로 칼질을 복기하고 연습했다.
정점을 향한 열망. 그것이 내가 전국 제일의 칼잡이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검신(劍神)의 가호. 발현하는 동안에는 적수가 몇 없는 강력한 힘임은 분명하다. 상대도 못 할 적을 베게 해 주는 가호.
그 이면엔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 어마어마한 리스크가 뒤따라온다.
무통의 가호 시간을 초과하면 병원 신세.
동화율이 상승하면 인간성이 메말라 간다.
타인은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게는 대가성 가호.
내 신체력과 정신력을 지급해야 하는 역천의 힘이다.
그렇기에 육체를 단련하고, 본연의 힘을 키워 왔다.
빌어먹을 마석을 수급하려는 것도 결국엔 단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된다.
‘살아남는 것.’
처음엔 손톱만큼의 경각심도 없었다. 그러나 종국엔 그 안일한 마음을 갈아엎었다.
게임을 중간에 접어 스토리를 중후반부까지밖에 모른다. 안개 속의 앞날이다.
또한 정사가 뒤엉켰다. 모든 것이 미지수다.
본디 배경 인물 A에 불과했을 강검마에게 내가 깃든 탓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부정할 순 없지 않은가.
부단히 준비해 변수를 막고, 불가지의 앞날을 대비해야 한다.
때문에 아벨의 ‘천재다 뭐다’ 하는 말들은 그간의 노고를 지우는 발언이다.
더욱이 아벨은 최고 명문가의 자제지만, 나는 특진생 아닌가. 그녀로선 무어라 토로하는 것이어도 내겐 그저 기만이다.
하여, 그녀에게 냉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미안…….”
효과가 상당한지 아벨이 축축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나는 폭 한숨을 흘렸다. 어째 잔소리를 한 것 같다.
“됐어, 밥이나 먹자.”
“…응.”
조그맣게 돌아오는 대답. 왠지 긴장감이 풀려 옅은 웃음이 새었다. 그러자 아벨이 흠칫 나를 바라본다.
기적의 가호 M에선 얼음 여제라 불렸던 아벨.
그 괴리감 때문일까?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 퍽 귀엽게 느껴졌다.
근데 그 이상으로 이 대화의 흐름이 어처구니없었다.
[검신의 가호] 발현을 회피코자 한 부탁이 여기까지 이어진다니, 나 역시 적잖이 민망하다.‘몸뚱어리가 얘가 되더니 정신머리도 십 대가 된 건가…….’
달그락, 달그락. 접시와 식기가 맞물리는 소리만 적막히 돌았다.
안 그래도 니글거리는 저녁 식사 중이었다.
어색한 적막이 끼얹어지니 톡 쏘고 매콤한 맛이 절실했다. 캐리어에 고이 잠들어 있을 컵라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잡념이 이상한 방향으로 이어지던 차, 나는 퍼뜩 정신을 되찾았다.
그보다 이 식사 자리의 본말이 전도됐다.
아벨에게 합류 의사를 묻기는커녕 사이만 악화한 듯싶었다
그때 돌연 아벨이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내 부모님은 던전에 가셨다가 실종되셨어. 오늘이 딱 두 분이 사라지신 지 10년 된 날이거든.”
전조 없는 무거운 이야기에 살짝 놀랐지만, 묵묵히 들어 주었다.
“나 말이야, 이 방학만을 기다렸어. 던전 입장의 최소 조건이 아카데미의 생도가 되는 거잖아.”
아벨은 물을 홀짝여 입술을 축였다. 이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 방학은 나한테 의미가 깊어. 아무래도 부담감도 심하고.”
“많이 위험한 던전인가 보네.”
내 의문에 아벨은 설레설레 고개 저었다.
“던전 난이도 자체는 높은 곳은 아니야. 솔직히 지금까지도 부모님이 실종되신 것도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매우 낮은 등급의 던전이거든.”
“…….”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만 해도 어느 날 갑자기 이곳 부모님이 실종되지 않았던가. 그 부분에 대해서 그녀와 나 사이엔 공감대가 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 아벨을 너무 쏘아붙인 것 같기도 하고.
하여, 잠깐 이어지던 상념은 이내 바로 말로 이어졌다.
“같이 가자.”
“!”
“마침 나도 방학 틈타 던전도 돌아야 했었는데 잘됐네.”
아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의 황금색 홍채가 선명히 번뜩이더니 눈물이 맺힌다.
“그, 그치만… 너랑 완전 상관없는 일이잖아. 남한테 민폐 끼칠 순 없어.”
“애초에 방학 동안 너희 집에 머무는 거에서 신세를 지는 거고. 이참에 조금이라도 갚는다 생각하지, 뭐.”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감상이 스친 시간은 지극히 찰나였다.
결국에 내 판단은 엄연히 여러 차례의 타산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정신의 격’은 내게 철저하게 합리성만을 강제한다.
‘아벨에게 도움을 주면 얻는 게 압도적일 것이다.’
차디찬 이성이 그리 말한다.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에 젖어 들었다.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감성이 머물렀던 자리가 텅 빈 기분.
기계처럼 서늘한 심상만이 속에 자리 잡았다.
물론 아벨의 저 마음이 갸륵하게 느껴진 점도 한몫하긴 했지만. 그 정도가 몹시 옅었다.
‘동화율이 상승하면 인의 격이 하락한다.’
그 끝에서 나는 무엇이 되어 버리는 걸까. 소름이 끼친다.
나는 머리를 훌훌 흔들고서 던전의 소재지를 물었다.
“어디로 갈 건데?”
아벨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그녀는 훌쩍거리던 기색을 훔쳤다.
“언데드 던전.”
“……!”
그 한마디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