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1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18화(118/300)
118화 검성가(家)의 사람들 (1)
이런 경우는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닐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서로의 우선 가치가 명백히 다르다. 아벨은 실종된 부모님의 시신을 찾기 위해, 나는 마석의 수급을 위해.
의도는 다르나 목적은 같다. 그거면 충분하다.
‘언데드 던전.’
공통의 목적지에 나는 아벨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그런 태도에 그녀는 얼빠진 표정으로 짓다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내용은 일정 조정 및 정보 교류가 요였다.
아벨이 의자 채로 내 옆에 바싹 앉았다. 그녀와 내 거리는 손 한 뼘 정도였다.
몹시 가까웠지만, 아벨은 개의치 않고 설명했다. 그녀가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내보였다.
“언데드 던전은 스위스와 프랑스 경계에 딱 위치한 던전이야. 원래라면 던전 소유권 때문에 골치 아팠겠지만, 이곳은 인기가 없거든. 절차상 문제될 건 없을 거야.”
아벨은 중요한 지점이 나타나면 손톱으로 톡톡 액정을 두드렸다.
꽤 오랫동안 준비했는지 GPS 앱 곳곳엔 마크들이 심겨 있었다.
“그리고 워낙 인적이 드문 던전이라서 통문소 직원도 따로 없어. 다만, 명부에 입장 조건인 최소 인원 세 명의 이름을 확실히 기재하고 입장은 해야 해. 안 그러면 국제 영웅 법 위배거든.”
핵심만 간추린 깔끔한 설명은 귀에 팍팍 꽂힌다. 그에 나는 내심 감탄했다.
난 본디 이곳 태생이 아니다. 그만큼 상식과 지식이 얕다.
하여, 어떠한 계획을 세울 땐 여러 매체로 자료를 조사한다. 그러나 눈으로만 훑는 데는 정보 수급에 한계가 뚜렷하다.
던전 공략에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하려는 것 또한 그 까닭이다.
까놓고 말해서 나는 지식 전반을 부원들에게 의존해 왔다.
째각째각 잔머리는 잘 굴리는 나지만, 머리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게 낯설기도 하고.
‘솔직히 걔네 없이 언데드 던전 공략 나서기는 영 난처했는데.’
표면상으론 최하급인 D급 던전. 하지만 그 안엔 최상급인 S급 마수가 봉인되어 있다.
그것도 공략이 가장 까다롭다는 드라우그. 대책은 강구해 놨으나 그 경로가 불통하던 차였다.
그런데, 아벨이 이리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니. 뜻하지 않은 길운에 던전 공략은 순항이 예상된다.
“설명은 다 이해했어?”
잠시 상념에 잠겨 있자 아벨이 확인하듯 물었다.
“응, 얼추. 혼자 그동안 준비 많이 했네.”
“…응.”
겸연쩍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제야 아벨은 너무 밀착했다는 걸 알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아카데미 생활도 어언 4개월에 접어든다.
슬슬 이 타이밍에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휙- 거리를 벌리는 것이 클리셰―
“흡.”
―일 테지만, 아벨은 헛숨을 집어삼킬 뿐이었다. 그녀는 헛기침하며 도리어 거리를 좀 더 좁힌다. 은은한 과향이 코끝에 스쳤다.
“집중해 줘, 여기서부터 중요한 이야기란 말이야. 일단 절차나 지리, 던전 내부는 내가 짬짬이 파악해 두었고…….”
머리를 착 쓸어내린 아벨이 설명을 계속했다. 몇 올의 머리카락 사이로 홍조가 떠오른 뺨이 보였다.
‘엄청 진지하구나.’
당연한 일이다, 가족에 관한 것이니.
이렇게 서로 딱 붙은 상황쯤은 가볍게 무시할 정도로 말이다. 뺨이 발그레한 건 그저 더워서일 터다.
아벨이 눈동자만 힐끔 돌려 나를 바라봤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샤일이 마중 나오기까지 이제 삼십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거든. 성으로 돌아가면 약속 날까지 둘이서 이야기할 시간도 없을 테니까.”
“추가적인 건 연락으로 해도 되는 거 아니야?”
“…뭐야, 너 몰랐어? 캐슬 시구르드는 통화권 밖이라 통신 불가 구역이야.”
아, 맞다. 얘네 집, 알프스 산골짜기였지.
연락이 올 곳이 적은지라 눈치채지 못했다.
안쓰럽게 쳐다보자 아벨이 한쪽 입꼬리를 떨었다. 그리곤 즉각 항변했다.
“검마 너, 지금 우리 집이 산속이라 그런 거라 생각했지! 네가 생각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니벨룽 영지의 보안 때문에 그런 거야!”
이 세계 여자들은 죄다 독심술이 패시브인가?
메디아도 그렇고, 료조나, 아벨 얘나.
뭔 생각만 떠올렸다 하면 바로 끄집어낸다.
그런 능력이 실재한다면 몹시 오싹할 것 같다.
…근데 그랬다면 내 존재가 이질적이라는 걸 알았겠지. 누구와도 공유한 적 없는, 오롯이 나만 품은 비밀이니까.
내가 이 세계 사람이 아니란 걸 아는 사람이 존재한다라… 생각지 못한 가설이다. 설령 있다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우군이라면 좋겠지만 적이라면 곤란해지겠지.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는 속으로 짧게 웃고서 입을 열었다.
“가는 길이나 이런 건 네가 다 파악해 둔 거 같은데. 가장 중요한 건 남은 파티원 아닐까. 너랑 나 이렇게 두 명이잖아. 한 사람이 부족해.”
“엥? 왜 한 명이 부족해?”
얘 뭔 소리야? 라는 표정으로 아벨이 되물었다.
“샤일 있잖아.”
“어?”
“샤일도 호아킨 아카데미 출신이야. 더군다나 협회 전속인 시니어(senior) 영웅이기도 하고.”
…얜 또 뭔 소리지?
* * *
캐슬 시구르드로 향하는 귀갓길. 우리는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있다. 아벨은 피곤했는지 차량에 오르자마자 뒷좌석에서 잠에 빠졌다.
‘하긴 그렇게 열렬하게 설명했으니 피곤할 만도 하지.’
나는 아벨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조수석에 앉았다. 그리고 안전벨트를 단단히 붙들어 제 기능을 하는지 확인했다.
이 줄이 앞으로 30분. 내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부우우웅.
운전대를 꽉 움켜잡은 샤일. 그녀는 날카로운 눈매로 정면을 주시하면서 악셀을 지르밟는다.
전방에 나타난 270도는 꺾인 듯한 코너.
샤일의 입꼬리가 씰룩이더니 한 손으로 운전대를 빙글빙글 돌린다.
핸들을 쫓는 내 동공도 소용돌이처럼 회전했다. 내 생사가 이 메이드의 손아귀에 달렸다, 염병.
휘리릭.
폭력적이지만 노련한 핸들링. 샤일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다시 속도에 박차를 가한다.
일련의 현장을 똑똑히 목격한 내 입에서 절로 침음이 샜다.
‘이 난폭 운전 메이드가 시니어 영웅이라고?’
‘기적의 가호 M’ 세계관 내, 영웅 통솔 기관인 협회.
협회는 더 효율적인 관리를 명분으로 영웅들을 분류했다.
이를테면 모 유명 게임의 티어 시스템과 비슷한 구분법이다.
다만, 그 가짓수가 세 개만 존재한다.
밑에서부터 〈주니어(Junior)〉, 〈시니어(Senior)〉, 〈워리어(Warrior)〉 순이다.
협회 자체적으로 그 영웅의 실적을 평가, 추산하여 점수를 매긴다.
물론 아카데미 생도들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생도의 본질은 학업이라나. 묘한 구석에서 인권을 챙겨 주는 세계관.
‘썩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참고로, 점수 자체는 기밀이지만 그 영웅이 어디에 속했는지는 공시된다고 하며 히어로 포인트, 줄여서 【HP】라고 불린다.
【HP】라면 딱 떠오르는 초록색 체력 바가 생각났을 것이다. 그러나 본디 기적의 가호 M엔 따로 ‘체력 바(Health Point)’란 스텟이 부재했다.
뭐, 사실 ‘체력 바’란 개념은 이 세계 떨어진 나로서도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차라리 체력 바가 있고, 포션이 존재한다면 나는 반겼을 것이다.
하지만 기적의 가호 M 세계는 내게 냉혹한 현실이다.
자칫하면 팔다리가 날아가고 툭하면 입원하는 판인데, 무슨.
‘돌이켜 보니까 웃기네…….’
가장 기초적인 스텟 시스템들이 빠져 있다.
비단 체력뿐 아니라 마나, 경험치, 심지어 레벨도 누락한 모바일 게임이라…….
물론 그 차별점에 매료된 게이머도 많았지만, 일각에선 불편하단 말도 많았다.
수치가 당연시되는 게임판에 담백하기 그지없는 인터페이스만 덩그러니 떠오르니 말이다.
그런 말 많고 탈 많은 게임에서 레이팅 시스템과 엇비슷한 ‘히어로 포인트’는 존재한다. 이질감과 친숙함이 공존하는 묘한 세계관이다.
―어쨌든.
브론즈부터 플래티넘이 〈주니어〉, 다이아 마스터는 〈시니어〉, 그랜드마스터부터는 〈워리어〉라 보면 된다.
구성원 수도 티어별로 그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90%의 영웅은 주니어 소속, 나머지 상위 10%가 8대 2로 시니어와 워리어로 이뤄진다.
요는 이러하다.
내 옆에서 난폭 운전 중인, 미녀 메이드.
샤일이 상위 10%의 영웅이라는 점이 경악스럽다는 것이다.
일견 비범한 메이드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시니어 영웅, 심지어 차기 영웅들의 요람인 호아킨 아카데미 출신이라니.
샤일의 업무에 어째서 치안 방범도 껴 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보다 뛰어난 방범 시스템은 웬만해선 없을 테니까.
“검마 님, 하실 말씀이라도.”
눈은 유리창 너머에 고정한 채 샤일이 물어 왔다.
그 와중에도 내 시선을 느낀 모양이다.
나는 잠깐 말을 골랐다. 고민은 짧았다.
결국엔 샤일, 이자와 함께 언데드 던전을 가야 한다.
또한, 지위상 그녀가 아벨과 내 인솔자 포지션일 터.
이 시점에선 터놓고 말을 하는 쪽에 마음이 기운다.
“아까 아벨한테 들었습니다. 샤일 씨도 ‘언데드 던전’에 동행하신다고…….”
“네, 부족한 실력이지만 아가씨와 검마 님께 폐를 끼치지 않게 모쪼록 노력하겠습니다.”
겸손이 지나치면 농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교관 이상급인 시니어 영웅께서 ‘발목 잡지 않겠다’라는 대사를 뱉는다니. 누가 들으면 기가 찰 소리다.
“지금에야 말씀드리지만 검마 님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네?”
샤일이 룸 미러에 반사된 아벨을 바라봤다. 새근새근 잘도 자는 아벨. 그 모습에 샤일이 싱긋 웃었다.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의 아벨 아가씨는 항상 외로우셨거든요. 니벨룽의 영지 내에 동년배도 저 이외엔 없기도 하거니와, 아가씨의 성격상 누구와 적극적으로 교분을 쌓지도 않으시니까요.”
나는 조금 놀랐다.
평소엔 소리 없이 노크만 하던 샤일이 술술 말을 뱉어 낸다. 발음과 목소리도 마치 아나운서처럼 또렷했다.
“아가씨께 들으셨을지 모르지만 저는 호아킨 아카데미를 졸업했습니다.”
샤일이 한 손으로 핸들을 반 바퀴 돌렸다. 능숙한 무브에 창 너머의 풍경이 필름처럼 전환됐다.
“제가 아카데미에 재학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전부 니벨룽 덕분이에요.”
샤일의 진솔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표정은 덤덤했지만 그 내용까지 건조하진 않았다.
“저는 10년 전에, 지금은 안 계시는 아가씨의 부모님께 거두어졌습니다. 그때까지는 센터, 그러니까 고아원에 있었어요.”
“그렇군요…….”
내 반응에 샤일이 후후 소리 내 웃었다.
무겁게 깔리는 공기를 환기하려는 듯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있나요.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죠. 삐뚤어진 귀족들이 얼마나 많은데, 니벨룽가에 고용됐으니 말이에요.”
짐짓 이해가 가는 말이다. 쓰레기가 만연한 귀족 사회에 니벨룽만큼 청렴한 가문은 몇 없을 터다.
“게다가 일개 메이드인 저를 자질이 보인다며 아카데미에 입학시켜 주신 아가씨의 가족분들에게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샤일 씨도 대단하네요. 스물한 살에 시니어급이라니. 보통 재능이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니벨룽에 빚진 보은이 많습니다. 그에 보답할 수 있는 건,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었죠. 재능이 없다고는 말 못 하지만 검마 님 앞에선 평범한 수준일 거예요.”
시속 200km로 내달리는 차 안, 샤일의 말투엔 나직한 회한이 서려 있었다. 그 괴리감이 엄청난 위화감을 조성했다.
“여튼, 부족한 실력이나마 던전에 동행하는 건 순전히 제 부탁이었어요.”
“샤일 씨가요?”
샤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삶에 가치를 부여해 주신 아가씨의 부모님을 찾는 일입니다. 오히려 제 쪽에서 먼저 아가씨께 말했습니다.”
“아.”
샤일이 고개를 내 쪽으로 살짝 돌렸다. 그녀의 눈가엔 고운 반월이 걸려 있었다. 연상의 눈웃음이었다.
‘이것이 성인……?’
나는 헛기침하며 화제를 바꿨다.
“그건 그렇고, 저한테 고맙다 한 건 어떤 의미입니까?”
“…우웅.”
돌연 뒤쪽에서 아벨이 졸음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샤일이 설핏 웃고는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저도 특진생 출신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요새 검마 님이 참교육했다는 기사만 보면 어찌나 통쾌하던지요.’
“…아.”
‘그건 그렇고―’
곧이어 그녀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가공할 만한 속력으로 주행하면서 한눈을 판다니. 비명이 턱 끝까지 몰려 왔다.
샤일이 조용히 키득거리곤 능청스레 입을 연다.
‘―데이트 차림으로 추리닝은 너무한 거 아닐까요? 아벨 아가씨 화 많이 나셨겠네~’
“…….”
무어라 한마디 하려다 말았다. 왜냐면, 이 폭주족 메이드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으니까.
어느덧 앞창 너머에 캐슬 시구르드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이어지는 샤일의 현란한 기어 스냅.
―부우우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