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11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119화(119/300)
119화 검성가(家)의 사람들 (2)
캐슬 시구르드에 귀가한 다음 날 아침. 카론을 통해 검제가 나를 호출했다.
‘무슨 일이지?’
카론의 어투로 짐작건대 자못 심각한 사안인 듯하다.
그 때문인지 서재의 문고리를 잡은 손에 괜스레 긴장이 실렸다.
똑, 똑.
“검제님, 저 강검마입니다.”
-들어오게.
서재에 들어서자 보인 건 한 손으로 뒷짐 진 채 돌아서 있는 검제였다. 그는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서 창만 바라보았다.
‘…뭔 일이길래 이렇게 분위기를 잡으시지?’
살짝 당황해 절로 헛기침을 뱉어 버렸다. 그제야 검제가 고개만 슬며시 돌렸다.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
검제의 동공에는 묘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적의라기보단 경계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서재에 흐르는 기류가 새삼스럽다.
첫 만남에서도 검제는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아.”
검제는 나를 빤히 보고 있다가 곧 한숨을 흘렸다. 숨소리에서 초탈함이 묻어 나왔다. 그가 의자를 쭉 빼며 이윽고 말을 뗀다.
“앉게나, 몇 가지 할 이야기가 있네.”
“…아, 네.”
나는 떨떠름하게 의자에 앉았다. 착석하기 무섭게 검제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 이야기에 앞서서 말일세, 어제는 아벨과 무얼 했나?”
“네?”
짐짓 심각한 분위기에 튀어나온 다소 황당한 질문.
그에 나는 무심코 되물어 버렸다. 잔뜩 무게를 잡더니 아벨과 무얼 했냐니.
반면 검제는 지그시 나를 바라본다. 입은 꾹 다물어져 있으나 시선으로 답을 독촉했다.
간헐적으로 들썩이는 눈썹에서 조바심이 느껴졌다. 나는 목덜미를 긁적이곤 말했다.
“…그냥 별건 없었습니다.”
“별건 없었다는 건 어떤 의미지?”
묘하게 날이 선 되물음이었다. 이 상황이 몹시 의아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받았다.
“저녁 식사하고 바로 돌아왔습니다.”
“…정말인가?”
“네.”
단호하게 답했다.
더는 저 고압적인 태도에 휘몰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검제는 의뭉스러운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말의 진의를 가늠해 보려는 듯 내 눈을 응시한다.
알기론 검제의 직관은 몹시 뛰어나 통찰안으로까지 불린다. 발언의 사실 여부 정돈 몇 초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애당초 이리 추궁하는 게 이해는 안 가지만…….
그저 손녀 사랑이 강한 할아버지라 여겼다.
“그렇군…….”
검제가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뇄다. 그의 눈썹이 일자로 좁혀지나 싶더니 곧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안심이군. 하기야, 친구 사이끼리 밥도 같이 먹고 할 수 있는 것이지, 하하하!”
“…….”
“그치만―.”
검제가 웃음을 뚝 그쳤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말했다.
“다음엔 그런 일 있을 때, 꼭 말해 줬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검제의 딱딱했던 안색이 한껏 풀어졌다. 입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 양반도 참.’
나는 그에게 본론을 물었다.
“부르신 이유가 뭔가요.”
“아, 맞군.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놓칠 뻔했군.”
그리 말하곤 검제가 곧바로 서류 몇 장을 꺼내 내밀었다.
“본론만 간략하게 말하지. 아직 정확하진 않네만, 매우 심각한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어떤 게 말입니까?”
“일단 여기 적힌 걸 보게나.”
―〈인적 사항〉―
▷ 성명 ː 강검마
▷ 출생 ː 7월 7일 (17세)
▶ 소속 ː 호아킨 아카데미 1학년 랑 클래스 (재학)
▶ 학번 ː G034666M431
▶ H.P. ː 추산 중
―
지극히 평범한 인적 사항이었다. 뒷조사라고 하기도 뭐한 정보만이 간략히 적혀 있었다.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는 준영웅 취급이다. 그렇기에 인적 사항이 협회 시스템에 자동으로 등록된다. 나뿐이 아닌 생도 전원이 말이다.
하지만 검제의 시선에선 야트막한 불안감이 맴돌았다. 그가 낮게 물어 왔다.
“뭔가 이상한 점 없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기본적인 것만 적혀 있는 것 같은데요.”
“어허, 이 사람 눈썰미도 참. 여길 보게나.”
검제의 손톱이 서류의 밑 귀퉁이를 톡톡 건드렸다.
『▶ H.P. ː 추산 중』
빨간 줄이 밑에 그어진 문장. 검제는 그 글귀를 강조했다.
“이 서류의 핵심은 이 부분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생도는 히어로 포인트 추산 대상이 아니야. 그건 영웅 협회와 모든 아카데미 간의 암묵적인 규정일세.”
설명하던 검제는 이마를 좀 더 찌푸렸다.
“한데 보게나, 아직 점수가 매겨지진 않았지만 자네에 대한 포인트는 추산 중인 것을. 이건 엄연히 ‘규정’을 비튼 것이지.”
“…법에 위촉되는 건가요?”
“아니, 위법은 아니지. 하지만 선례가 전혀 없는 일임은 분명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생도의 본업은 학업이야. 개개인에 대한 평가는 아카데미 내에서 이미 충분히 받고 있단 소릴세.”
“그렇다면.”
검제는 잠깐 뜸을 들인 뒤에야 입을 열었다.
“협회에선 강검마 자네를 일개 생도로 여기지 않는다는 소리지.”
“……?”
“협회 설립 40년 이래, 제아무리 뛰어난 생도였어도 이런 일은 없었네만, 이 일을 진행한 자들은 유추할 수 있지.”
“자‘들’이라면 여러 명이란 뜻인가요?”
“그렇지. 사소해 보일지라도 HP 담당 부서는 협회 내에서 규모가 가장 커. 그런 곳에 압박을 넣으려면 못해도 협회 간부진쯤은 되어야 할 거야.”
검제가 목소리를 낮추며 뒷말을 덧붙였다.
“아마도 영웅 협회장과 부협회장인 리차 드 뮈라, 두 사람의 입김일 확률이 높네.”
검제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은 세계관 내에서 한 손에 꼽히는 거물들이었다.
‘창성과 협회장이 날?’
나와 접점이 전혀 없는 굴지의 거성들이 나를 주시한다니.
너무나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웠다.
…설마 얼마 전 올라간 기사들 때문인가?
‘올뮤트 나-와’, ‘사시미 검성 기자 폭행’ 같은 어그로성 짙은 표제들. 그리 생각하니 손등에 혈관이 맺혔다.
“갑자기 불러 놓고 너무 심각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아 미안하군.”
내 표정이 굳어 있자 검제가 찻잔을 건넸다. 모락모락 피는 김에 잔잔한 차향도 덩달아 흘렸다.
이어 검제는 애써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인다.
“너무 심각해 말게나. 협회가 자네의 히어로 포인트를 추산하는 건 미심쩍네만……. 아무래도 검마, 자네가 축젯날에 거한 이벤트를 벌여서일 거라 생각하는 수밖에.”
“아, 마오 랑 말이군요.”
그 말에 검제가 자그맣게 실소했다.
“하하, 좀 살살하지 그랬나. 그 때문에 자네만 귀찮게 됐으니 말이야.”
“죄송합니다…….”
“나한테 미안할 게 뭐 있나. 문제가 발생했으면 해결하면 되는 것이고, 그 역할은 자네의 보호자인 내가 하면 되는 것이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제가 나를 따뜻하게 마주 바라본다.
‘보호자.’
그 세 글자에 가슴이 울렸다.
이 세계에 이방인인 내겐 몹시 낯설지만, 한편으론 간절히 원했던 낱말이다.
별안간에 부모님의 존재가 말소된 이 시점에 검제가 나의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것이다.
마치 첫 스승님이 내게 하셨던 것처럼.
설령 그것이 무심한 한마디일지라도.
나를 이 외로운 세계에 구성원으로서 받아 준 말이기에.
감회를 표현키가 어려웠다. 목에 매이고, 코끝이 시큰거린다.
침묵이 잠시 일었다. 나는 건네받은 찻잔을 입가에 댔다. 온기가 느껴졌다.
“카론에게 들었네만, 이틀 후에 아벨, 샤일과 언데드 던전을 공략하러 간다지?”
검제의 어조가 느슨하게 변했다. 그는 고갯짓으로 조용히 답했다.
“그렇군.”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이다. 그라면 당연히 이 여정이 어떤 의미인지 알 터인데.
더군다나 어제 아벨이랑 외출했다고 심문을 가하던 할아버지 아니던가.
그러나 검제는 허공에서 찻잔만 휘휘 저을 뿐, 추가적인 반응은 없었다.
…잠시 뒤, 검제가 짧게 덧붙여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오게, 실전만큼 좋은 경험은 없을 터이니. 그럼, 이제 가 보게나. 무슨 이변이 생기면 다시 부르겠네.”
“예.”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을 향했다.
그렇게 문고리를 비틀기 전, 시선만 돌려 검제 쪽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하늘만 망연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위해 소리 없이 문을 닫아 주었다.
* * *
끼이익.
서재 문을 다시금 열고서 들어온 이는 집사 카론이었다.
검제는 여전히 쓸쓸한 눈으로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다가간 카론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검제님.”
“안 괜찮을 게 어딨겠나.”
검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입가 주름엔 야트막한 애환이 서려 있었다.
“…왜 안 말리시는 겁니까. 언데드 던전이잖습니까. 위험함을 떠나서 아가씨가 충격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카론이 말했다. 검제와는 명백한 상하 관계임에도 그는 목청을 높였다. 점잖던 평소와는 다른 태도였다.
“하물며 검제님께서 같이 가시는 게 더 좋았을 거라 생각―”
“카론.”
검제가 말을 끊었다. 근엄한 한마디에 카론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황급히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흥분했습니다.”
“자네가 아벨을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아네.”
탁- 검제가 테이블에 찻잔을 놓았다. 그는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벨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지 않은가.”
“…….”
“아벨도 언제까지고 과거에 이끌려 다닐 순 없는 노릇이지. 내가 손을 보탤 순 있네만, 그건 그 아이의 성장을 더디게 할 걸세. 그리고―”
뒤늦게 들려온 검제의 확신에 찬 한마디에 카론은 흠칫했다.
“―강검마가 함께 가지 않나. 어떠한 적이 나타나도 저 소년에겐 위협조차 되지 않아.”
“네?!”
몹시 놀라 헛숨을 삼켜 버리는 카론.
“세간에선 강검마를 불세출의 천재라 부르지만. 허- 천만에. 저 친구는 그런 테두리로 규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하물며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을 때도―”
검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급정지하듯 중얼거리던 말을 멈추었다.
검제는 강검마의 참모습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발론 섬에서 강검마가 보였던 힘. 5군단장 아고르를 일격에 절멸시킨 검극. 가호를 초월하는, 예컨대 신비의 영역이라.
‘그건 누구에게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말해서도 안 된다.’
마족의 귀에 흘러 들어갈 경우, 그들은 기필코 강검마를 제거하려 들 터.
검제는 태연하게 대화의 흐름을 바꿨다.
“그건 그렇고, 부모님이 누군진 몰라도 저 친구 이름 참 잘 지어 주지 않았나.”
카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검마 님께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이지만… 다소 특이한 성함이시긴 합니다.”
“하하하, 이름값 한다는 건 딱 그 소년을 두고 하는 말일 거야. 아, 물론 좋은 의미로 말이지.”
검제의 웃음이 퍼지는 가운데, 카론은 그 이름을 띄엄띄엄 발음했다.
“…검… 마.”
돌연 강검마와의 첫 조우가 카론의 뇌리를 스쳤다.
덧없이 권태로운 칠흑색의 눈동자. 지금껏 살아오며 본 적 없는 새카만 흑발.
당시에 카론은 등골이 졸아붙는 걸 느꼈다. 하지만 모셔야 할 객에게 실례를 범할 순 없는 법.
카론은 포커페이스로 놀란 기색을 바로 지워 냈다.
그럼에도 밤길에 마주치면 자못 공포를 느낄 만한, 마치― ‘암흑이란 개념을 의인화한 듯한 외모’에 카론은 강검마와 시선이 맞닿을 때면 흡-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밤길에 마주쳤다면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비범한 포스를 풍기는 소년이다.
더구나 회칼을 무장으로 선택했다는 점도…….
‘어쩌면 상대를 생선 따위 수준으로 여기는 건가?’
며칠 전 보았던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라는 기사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 무렵엔 코웃음을 쳤던 카론이지만 검마 님이라면… 그 발언을 뱉었을 확률은 충분하다.
등허리를 훑는 소름과 동시에 카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말의 앞뒤가 맞아 들어간다. 원래라면 검제님은 아가씨와 외간 남자가 같이 나간 걸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카론은 검제의 불호령을 예상했다.
하지만 실상은 가벼운 추궁으로 종결됐다.
검제의 입에서 노성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상황임에도 말이다.
그에 카론은 판단했다.
유독 강검마에게 보이던 검제의 호의적인 태도.
아가씨와의 외출도 묵인해 준 까닭.
반추해 볼수록 결국은 가능성은 한 갈래로 좁혀진다.
‘검제님은 검마 님이 아가씨의 옆에 계속 계셨으면 하는 거다.’
검제의 통찰력은 이능에 가까운 직관이다.
무력만이 뛰어났다면 그가 창성의 위에 있진 못했을 테니.
카론은 알고 있다. 주군의 특출함은 비단 무력이 아닌 사람을 꿰뚫어 보는 혜안임을.
그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검제를 보좌한 지 어언 30년이 된 집사로선 가당찮은 소리였다.
상념을 마친 카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뻐해야 할지 아닐지 모를 상황이지만 그는 안심했다.
‘칼의 악마라…….’
그 소년이 옆에 있는 한, 아가씨는 무탈할 것이다.
그런 확신이 카론의 가슴께에 맴돌았다.
한편으론 입맛이 떫었다.
딸처럼 키워 온 아가씨인지라 심경이 복잡했다.
아가씨가 아카데미를 입학한 시점에서 각오한 바다.
아카데미에서 훗날의 반려를 찾는 것. 귀족으로선 당연한 절차다.
다만, 막상 닥치니 카론은 싱숭생숭함을 느꼈다.
딸아이가 사윗감을 데려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그것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어여쁜 자식이 말이다.
‘어느덧 아가씨도 숙녀가 되어 버리신 거야.’
카론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선 주전자를 기울여 공허한 검제의 찻잔을 채워 주었다.
“…부족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검제님.”
“허허, 고맙군. 역시 내 옆을 항상 지켜 주는 건 자네밖에 없군그래.”
설핏- 카론은 소리 없이 웃음으로 화답했다.